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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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관심, 오지랖(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1-18 15:31
조회
618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오래전 일이다. 골목 끝, 막다른 집 대문 앞에 교복을 입은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여름 오후라 인적이 드문 시간인데,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남의 집 대문 앞에 왜 모여 있는 거지 하면서 다가가니,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 게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숨어서 몰래 피는 것도 아니고 서로 둘러앉아 있기는 했지만 대놓고 피는 모양이 섣불리 다가설 수 없게 했다. 그래도 집으로 들어가려면 아이들을 피할 수는 없으니, 아는 척은 해야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그냥 모르쇠로만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어른들 누구도 관심이 없다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얘들아, 내가 이 집에 사는데, 어른을 보면 담배를 숨기는 척이라도 해야지? 내가 너희들이 담배 피우는 걸 보고도 아무 말 않고 그냥 들어가 버리면 너희들 기분은 어떨 것 같애?” 하고 나름 우회적으로 말을 하니, 남학생 하나가 못마땅한 듯 침을 뱉으며 불쑥 일어서는데, 여학생들이 남자아이를 잡아끌면서 “아, 네네~ 조심할게요!” 하면서 “거봐, 야, 우리 다른 데로 가자니까~” 하면서 자리를 떴다.


 가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이구동성으로 그런다. “그러지 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이들이 무서운 걸까, 무서워진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걸까? 그때 아이들은 핀잔이라고 생각했을까, 관심이라고 생각했을까?


2.
 한겨울 늦은 시간, 철시한 공구 상가 거리는 깜깜했다. 모임을 마치고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가는데 가로등도 희미한 차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게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길로 갈 걸, 조금 빨리 가려다~~” 무서운 생각에 걸음을 재촉해 지나치려니, 식별도 되지 않는 깜깜한 차도에 사람이 그야말로 큰대자로 누워있었다. 새 도로가 나면서 구도로가 된 이 도로에는 오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었다. 문득 “자동차라도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을 운전자가 볼 수는 있는 건가? 술 취한 사람인가? 이 추운데 뭐 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에 뒤돌아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러봤지만 대꾸가 없어, 좀 더 다가가 “아저씨,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차라도 지나가면 그대로 친단 말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싶어 어떡하지 하는데,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지금 당신이 나 때문에 그러는 거요?” 한다. 헉,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그럼, 여기 누가 있어요, 아저씨 말고!” 참 이상하게 말을 한다 싶은데, “그럼 됐어, 가쇼!”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서 있는데, “당신이 나 때문에, 나한테 그런 거잖소! 그럼 됐소! 그만 가쇼!” 하는 게 아닌가! “아, 됐단 말이오! 나도 일어나 갈 거니 댁 가던 길이나 가쇼!” 하는 말에 뭔지 모르지만 일단 맘이 놓여 나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아저씨는 내가 한 행동에서 자신이 원하던 관심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을까?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이 세상 어디선가 자신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나, 여기 있다는 인간 실존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이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3.
 바쁜 아침 출근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전철역이다. 한 할아버지가 턱이 있는 데서 아래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내리고 있었다. 잠깐 들어드리면 쉽게 옮길 것 같아, 뒷부분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 그런데 그게 자전거를 확 잡아당기는 꼴이 되어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할아버지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할아버지는 “그냥 두면 되는 걸, 뭘 한다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고 그래~~” 하며 크게 화를 내셨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도 “그거 잘못하면 노인네 다치겠구만~” 하는 것이다. 아차, 할아버지의 처지는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간섭하면서 오지랖 폭도 넓게 굴었구나 싶었다.


4.
 저녁 무렵,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는 버스는 정류장 못 미쳐서 섰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풀숲에 노란색 물건이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밟으면 안 될 것 같아 허공에서 헛돌던 발을 헛디디면서 넘어질 뻔하였다.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고~” 들여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전동킥보드였다. 누군가 사용하고 이리 쓰러뜨려 놓은 모양이다. 나같이 발을 헛디디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한쪽에 세워놓으려는데 이게 또 꿈쩍을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도난방지 경고음까지 울어대니 도적질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지나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도 아까 그거 옮겨놓으려고 했는데 소리만 무지하게 나고 꿈쩍도 하지 않던데~ 에 이 사람들도 저기 세워진 데 놓으면 오죽 좋아~~” 하신다. 그때 든 생각,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 전동킥보드는 설치대에! 그러면 오지랖 넓은 이런 짓은 안 할 텐데~

5.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역사에서 만난 동료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우리 사이로 틈이 조금 벌어지면서 자전거가 씽 하니 스쳐 지나갔다. “햐, 묘기다! 나라면 그 좁은 틈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옆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저 묘기(?)를 부리는 거는 자전거만이 아니다. 전동킥보드며 오토바이도 그 대열에 합세한 지 오래니 말이다. 걸어가는 사람한테는 위협적인데 정작 타는 이들은 자신만만하다.


 “그런데 왜 버려진 전동킥보드는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홀로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서 있거나, 역 입구에 버려져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박치기할 준비를 하고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오가는 사람들 발에 채이거나….”


 그때 같이 가던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긴 한데, 그래도 그런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필요하다구는 생각해!”


 관심과 오지랖, 그건 경계가 있는 게 아닌 것을, 그냥 서로 다른 표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