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자기만의 언어(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24 10:49
조회
152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1. 이해 불가한 최고 권력자의 행태


최근의 정치 평론계를 보면, 누가 대통령 윤석열의 정치를 최대한 상식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이해 · 해석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가 워낙 잦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의 권력을 쥔 자가 이처럼 우왕좌왕, 어리둥절, 오리무중, 좌충우돌의 면모를 보이니 국민 모두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국가의 명운이 아슬아슬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해를 끼침에 틀림이 없는 일본 핵 오염폐수의 해양 방출에 관해 국가 예산을 들여 그 무해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했다. 지난 9월에는 대한민국을 반도체를 위시한 각종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기반인 R&D 예산을 20% 가까이 삭감했다. 정치사회평론가인 김어준 씨는 <겸손은 힘들다>와 <다스뵈이다>에서 대통령의 조치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전자는 분명 일본을 위한 조치임을 알겠는데, 후자는 도대체 누굴 위한 조치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이해할 수 없음을 누차 토로하면서 심지어 박장대소까지 했다.


출처: 딴지방송국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더욱더 가관이라 어리둥절함이 도를 넘었다. 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씨가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되긴 했으나 1년 징역의 범죄자임이 확정되고 두세 달도 지나지 않아 8·15 광복절을 맞아 그를 사면 복권해 결국 보궐선거 ‘후보자로 내세웠다.’ 물론 국힘당이 알아서 한 짓이라고 하겠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무공천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국힘당은 모르지만, 당사자인 대통령 윤석열 씨는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제아무리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국민을 ‘바보’로 아는 처사임에 틀림이 없다. 왜 그랬을까? 뭔가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분석마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름으로 복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 씨를 내세워 민주당 대표 이재명 씨를 구속할 수 있고 그러면 민주당의 이른바 ‘사법 리스크’가 현실적으로 극대화될 것이고 그 여세로 몰아 자신이 내세운 김태우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세간의 논평이다. 물론 이러한 논평에 따르면, ‘국회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됨으로써 동의안을 제출했으나 구속 인용에 자신이 없었던 한동훈이 오히려 난감했을 것이다.’라는 일각의 분석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된다.


암튼 문제는 그다음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대통령 윤석열 씨가 “어떤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거나 “보궐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거나 또는 “선거 결과에 대해 각계각층의 민심과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할 예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민은 늘 무조건 옳아. 저와 내각 반성하겠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 안 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깜짝 놀랄 일이다. 국민의 80%가 일본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반대했을 때, 그런 국민을 심지어 ‘괴담을 퍼뜨리는’ 자들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민생 현장을 챙겨야 한다? 이 또한 놀랄 일이다. 그가 김태우를 사면 복권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강제 침탈과 민족 압살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음”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민생은 뒷전이었고 오로지 이념을 앞세웠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위기는 현재에도 여전히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진보 민주 인사’와 그 세력들의 활약이고, 이들 세력을 척결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급선무인 것처럼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법치를 내세우고 검찰 권력을 대대적으로 앞세워 무수한 압수수색과 구속으로 나라 전체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비록 야당에서 ‘정권 심판’을 구호로 내걸긴 했으나 그저 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패 하나를 계기로 국민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민생을 챙기겠다고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그런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말 그가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우려하기까지 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국민 대다수는 오히려 어리둥절, 오리무중의 정세를 감지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여러모로 다반사로 벌어지는 데서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는 가운데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최대한 이해해 본 최고 권력자의 행태


과연 대통령 윤석열 씨의 이러한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그의 행위는 비일관적이고 임기응변적이고 마치 미친 자처럼 자신의 행위에서 모순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자인가? 그러니까 완전히 이중적인 내지는 다중적인 인격자로서 자기의 인격적인 정체성을 온전히 지니지 못한 자인가? 과연 그는 인격적 다중성을 견뎌낼 정도로 특이하고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자인가? 제기할 수도 없고, 제기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물음들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국민이 무조건 옳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닫고 있었다. 다만, 그 뜻이 특이했을 뿐이고 그러한 뜻을 확인하게 된 경험이 다를 뿐이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수십 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럴 때 자신의 행위에 국민이 환호했음을 경험했다. 법무부 장관인 조국을 ‘멸문지화’에 이르도록 몰아세웠을 때 이른바 ‘태극기 부대’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대대적으로 자신을 지지했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국민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그는 국민이 무조건 옳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출처: YTN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무조건’이라는 단서마저 붙였을까? 어차피 임기응변의 입발림을 하는 것이니 아예 크게 인심을 쓰는 차원에서였을까?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국민은 자신이 옳다고 지지하고 옹호하고 심지어 환호하는 국민이었고, 그런 국민이라면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흔히 정치권에서 ‘국민’이란 말을 그 참뜻과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다 붙여 쓴다. 말은 같지만, 정치 진영에 따라 그 뜻이 다르고, 맥락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그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의 경우, 이러한 오용이 극단적으로 자의적이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사람들은 제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가 생각하는 국민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국민이 아니고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고 “반국가 세력”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필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참패하고 난 뒤 “국민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을 했을까?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라고 그가 말한 것이 ‘과이불개’(過而不改),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그간에 지탱했던 그의 태도를 진정 반성하겠다는 것일까? 이제까지 민주나 인권이나 진보로 위장하고서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을 야당과 그 지지자들을 갑자기 국민으로 인정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각계각층의 민심과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할 예정이다”라고 한 그의 말이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의 의견도 수렴하겠다는 것일까?


만약 진정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그의 내면의 심정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해야 한다. 그는 오랜 세월 형성한, 그 누구도 조금이라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그를 겨냥했음에 틀림이 없을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라는 글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여 “각계각층”에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마저 포함하는 쪽으로 반성했다면, 오랜 세월 굳혀 시시때때로 실현하고 확인해온 강철같은 그의 자존심이 물처럼 녹아내리는, 보통 사람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대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민주와 인권과 진보를 예사로 입에 올리는 자들은 그가 말한 “각계각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그가 쓴 ‘각계각층’이란 말의 뜻은 대다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뜻과 다르다. ‘국민’이란 말뜻을 극단적으로 자의적으로 오용해 쓰듯이, 그는 ‘각계각층’이란 말뜻조차 다르게 적용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 그는 쓴 ‘무조건’이란 말뜻조차 다르게 적용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묘한 동어반복의 논리를 생각하게 된다. ‘무조건 자기의 뜻에 동조하는 국민’만이 진짜 국민이고, 따라서 ‘국민은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 자신은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번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그가 발언한 ‘무조건’은 ‘현재 당면한 전체의 상황에 적용되는 무조건’이 아니라, 지금은 잘못 판단하여 자기를 지지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자기를 옳다고 지지할 수밖에 없을 국민에 대한 ‘미래의 무조건’이다.


이번 강서구청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참패함에 따른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귀한’ 발언들에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말뜻과 그에 따른 진정성이 담겨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진정 그럴까 봐 오히려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정도로 비참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평론가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은 그런 희망이 실현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새 마음 새 뜻으로 개과천선하여 통합 민생과 평화를 목표로 삼고, 검찰을 대대적으로 앞세운 그동안의 가짜 법치를 일절 중지하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어 국익을 위해 국론을 조정해 나가고, 그럼으로써 경제 파탄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약자들을 보듬는 정치를 수행해나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그의 말을 믿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의 언행이 전혀 일관되지 못하고 이번의 ‘반성’ 운운함이 그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온 안하무인, 쇠귀에 경 읽기의 권력 일변도의 아집에 찬 태도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로서는 과연 그가 어떻게 이같이 앞뒤 아귀가 전혀 맞지 않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가를 최대한 이해함으로써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려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이해의 열쇠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이 오랜 세월 형성한 그만의 언어, 즉 자기만의 고유한 체험에 따른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자기만의 언어에는 공동의 소통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모순이란 게 없다. 공동의 소통을 원하는 대다수 국민으로서는 어리둥절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언어가 다른 자는 서로 소통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끼리는 소통이 안 될 때 만나지 않고 말을 섞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국민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오로지 자기만의 언어에 사로잡혀 있으면 국민 모두와 소통이 안 된다. 만날 수밖에 없는데도 소통이 안 되면, 공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없고 오로지 분란과 대립 그리고 고통과 불행이 가중될 뿐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누구나 쓰는 방법이다. 만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지 않는 길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같은 말을 같은 뜻으로 쓰는 줄 알고 대통령으로 뽑아 늘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전혀 아니다. 자기만의 언어에 온전히 빠져 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더는 만나지 않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