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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자유’를 모독하는 대통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30 10:08
조회
523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란 말을 즐겨 쓴다. 집착이다 싶을 정도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당선 직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당선 소감은 모두 2052자인데 자유란 말은 5번뿐이었다. 410자에 한 번씩이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3번이고,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겠다”라는 식의 다짐뿐이었다. 오히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안심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거나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고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 경향신문

 

당선될 때와 취임할 때는 매우 달랐다. 취임사는 2626자인데 자유란 말을 35번이나 썼다. 75자에 한 번씩이다. 당선 소감에 비하면 5.5배가 늘었다. 어떤 단어를 자주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자유란 말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핵심 개념이기에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하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이 인권, 평화, 자유 등 긍정적인 개념어를 자주 사용하면, 그만큼 국정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테면 김대중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인권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던 게 그런 차원이다. 김 대통령의 말은 검찰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으며, 교정, 소년 보호, 출입국 관리를 맡은 법무부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국민의 인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라는 국정 철학을 제시한 거다.

윤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처럼 자유를 강조했다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편협한 극우적 이념과 닮았다.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자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면 극단적인 이념에 치우치거나 편협한 의미로 자유를 입에 올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준이어야 한다.

헌법은 윤 대통령만큼 자유란 말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모두 1만4324자 중에 21번이니, 빈도로 치면 682자에 한 번씩이다. 빈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거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확인하는 것들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식의 자유는 헌법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때 말하는 질서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말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르다. 헌법이 규정하는 ‘질서’도 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가 법률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권력자나 권력기관을 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집권세력은 국민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질서정연하게 살길 바라겠지만, 이런 식의 질서는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무례이며, 자체로 인권침해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은 국민주권주의 원칙이다. 국민의 능동적 정치 참여, 자유로운 투표, 반대 의견의 자유로운 형성 등을 뜻한다. 곧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는 대통령은 물론 어떤 국가권력이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제한할 수 없으며, 검찰이나 경찰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질서를 뜻한다.

헌법이 규정하는 자유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있어 자유란 어떤 특정한 이념에 치우친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일꾼답게 국가권력을 잘 통제해서,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라는 거다. 이를테면 경찰을 통제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수백번씩 압수수색을 할 정도로 검찰이 준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다른 대안이 없는 아주 특별한 최후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진행하도록 견인하는 데 있다. 자유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고, 취임 선서의 첫 번째 약속처럼 “헌법을 준수”하기로 모든 국민에게 약속한 사람이 지켜야 할 신성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대통령이 나서 자유를 모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다운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물론 대한민국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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