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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기사와 나눈 대화(하종강 칼럼, 한겨레 07040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30 11:54
조회
224
부산에서 한국고속철도(KTX)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오랜만에 새마을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새벽녘에 영등포역에 내려 택시를 타니, 사람 좋아 보이는 늙수그레한 택시 기사는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새벽에 올라오세요?”라고 말문을 튼다. 내 답을 듣고는 대뜸 “우리나라 노동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돼 가는 겁니까?”라고 다그치듯 묻는다. 그의 말씨로 미루어 성향을 짐작한 내가 “공무원까지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이라 걱정되시죠?”라고 대꾸하자 그는 “나라가 망할 징조지요”라며 이야기 봇물을 열었다.

비분강개한 그의 열변을 듣고 있다가 내가 넌지시 말했다. “전 세계에서 공무원노조가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까지 포함해 딱 두 나라밖에 없었다는 거 아세요?”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일단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교사노조,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수십 년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전교조,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거쳐,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경찰노조, 변호사노조, 판사노조가 만들어질 것이고 작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은행지점장노조, 의사노조가 만들어진 것이 그 ‘조짐’이라는 대목에 이르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며 놀라는 반응이다.


수천 명의 교사와 공무원들을 해직, 파면, 해임하면서도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아무리 많은 경찰들을 파면·해임한다 해도 경찰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터이니,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며 그렇게 억지로 막을 것이 아니라 경찰노조가 잘 활동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얘기를 상대방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스레 했다.


다행히 그 택시 기사가 “오늘 좋은 것 배운다”며 적당히 부추기는 바람에 집까지 오는 동안 일장연설을 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고 대화가 자연스레 택시 기사들의 문제로 이어졌다. 한 달 120만원 벌이가 어렵다는 얘기, 택시 기사들은 거의 대부분 위장병 등 질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 앞으로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막장’이라는 얘기, ‘완전월급제’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택시기사들이 분신자살을 많이 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게 택시기사 탓이겠어요?”


그러고 나흘 뒤, 또 한 사람의 택시 노동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한 인터넷 언론의 기자는 며칠 전 만났던 그의 이름을 취재수첩 속에서 찾아내고는 “한-미 에프티에이에 관한 선전물을 주었더니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손님도 있었다”며 기뻐하던 그 이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앞을 가렸고, 온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맞서는 경제학자 정태인씨는 파김치처럼 지쳐 길가에 서 있던 자신을 집까지 태워다 주고는 “저 같은 사람도 인사는 할 수 있어야죠”라면서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던 그를 기억하며 “허세욱 동지, 꼭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겨야 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이라고 서러워했고,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를 만나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빨리 성명 내세요. 절대로 아무도 죽으면 안 된다고 …, 살아서 이 긴 싸움을 끝까지 싸워내야 한다고 …”라고 호소했다. 이런 사람들과 “민주화된 사회에서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비난하는 대통령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가?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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