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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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권” “윤리” “정치”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는 별로 인기가 없고, 그 대신 “문화” “성” “건강”과 같은 이름이 붙은 강의는 인기가 높아서 수강신청이 몰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과목을 수강하겠다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삶의 근본적인 문제, 가치, 공동체 등에 관한 문제는 외면한 채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돈 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번 학기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맡은 과목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교양과목이었다. 제목이 그럴 듯해서 수강인원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책도 몇 권 새로 구입하고, 강의계획표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수강신청변경기간이 끝난 후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강인원이 적어서 폐강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최고 인기강좌 중의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요즘 대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역사책에서 접하고, 87년 민주화운동 역시 유아기에 겪은 세대이니 민주주의와 인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야말로 대학가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는 빈곤층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통상 국가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교육”이 아닌 “훈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반면 인문학 교육은 삶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어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라는 것이 가난 그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 쇼리스의 주장은 한계가 있지만, 삶과 사람에 대한 성찰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참으로 타당하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인문학 교육은 어떠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요즘의 대학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가를 키워낸다는 미명하에 실용적인 “훈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저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가난한 기술자를 원하는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는 현실을 보면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닌 것 같다. 얼 쇼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필요의 지배를 받게 되면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도 열정도 사라지게 되며, 그 결과 힘 있는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진다.” 정치적인 삶이란 인간으로서의 삶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인권연대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반시민, 재소자,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사람의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경찰청은 10월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박명재 행정자치부장관, 유인태 국회 행정자치위원장, 이택순 경찰청장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우선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경찰청장 이하 15만 경찰관 여러분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 창설 이래 시대 여건에 따라 건국경찰, 구국경찰, 호국경찰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봉사와 질서”라는 구호 아래 탄생한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대개혁과 경찰혁신을 통하여 선진 경찰로의 도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경찰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경찰의 숙원사항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결론을 짓지 못하고 해를 거듭하고 있어 못내 아쉽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수사권의 분권화’를 실현하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구조가 개편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검·경의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난이 쏟아지면서 ‘수사권 관련 논의를 당분간 중단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더 이상의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는 국정원리에 따라 수사권의 조정 문제가 공약사항에 포함돼 추진되었다. 2005년 3월 16일 경찰대학 21기 졸업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고 경찰이 책임감 있게 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10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검·경 수사구조 개혁과 관련하여 양측이 성의 있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단계적 접근을 통한 제도개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9일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공약했던 수준보다 더 나아간 안을 마련해서 중재하려고 했으나 여러분의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 방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경찰의 혁신과제로 선정되었던 검·경 수사구조 개혁은 국민의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마무리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2007년 12월 19일 치러지는 제17대 대통령선거의 각 당 대통령후보들이 경선 절차를 통해 속속 선출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데 이어 9월 15일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10월 10일에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10월 15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2007년 10월 16일에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밖에도 창조한국당 문국현을 비롯하여 참주민연합의 정근모 등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후보들이 대권을 꿈꾸며 경제대통령, 교육대통령 등을 기치로 내걸고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앞으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어떠한 내용의 경찰관련 공약들을 내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경찰관련 공약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의 도입’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서도 다른 공약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100년 정당을 기약했던 열린우리당이 창당 4년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렸으니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자치경찰제의 도입’과 같은 공약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일 대선 후보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번 기회에는 이를 반드시 관철할 수 있도록 경찰 지휘부를 비롯한 모든 경찰관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찰과 검찰 사이의 그동안 쌓인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어 ‘견제와 균형’, ‘분권과 자율’에 충실한 합리적인 ‘민주 분권적 수사구조 개혁’을 통하여 국민에게 양질의 수사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3월 8일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서 나타난 수사 과정에서의 은폐와 외압 등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의 부단한 자기 혁신이 계속돼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해 국민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수사역량을 강화해 고품질의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매번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내걸었던 선거공약이 대통령이 된 후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자는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공약(公約)을 반드시 실현하여 공허한 약속(空約)으로 끝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아울러 국정을 정상화시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10대들도 장래 백수가 될 것을 걱정)’과 같은 말이 사라져서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청년실업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날도 빨리 찾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다시 한 번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15만 경찰관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이 감동하는 치안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부탁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국제문제연구소(PASSIA) 소장 *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PASSIA, http://www.passia.org/) 소장인 마흐디 압둘 하디(Dr. Mahdi Abdul Hadi) 박사가 인권연대에 보내온 기고문, “가자와 서안 분할(The Gaza-West Bank Split)”은 현재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고문의 번역과 정리는 홍미정(한국외대 중동문제연구소)교수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역사상의 팔레스타인 땅(26,323㎢) 중 78%는 현재 이스라엘 국가 영역이고, 22%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을 일으켜서 점령한 동예루살렘(345㎢), 가자(365㎢), 서안(5,310㎢) 지역으로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이스라엘 군사 점령지다. 이 세 점령지들은 이스라엘이 직접 지배하는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자 정당인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 자유주의자들 정당인 파타가 통치하는 서안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 세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이동은 모두 이스라엘의 허가증이 필요하지만, 허가증은 거의 발급되지 않는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을 종식시키고, 이 22% 지역을 통합하여 팔레스타인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동예루살렘, 가자, 서안 사이에서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분할이 진행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은 하루가 다르게 이스라엘의 패권 아래로 빠져들고 있다. 예루살렘의 상황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주변 지역에 8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여러 겹 건설하고, 수많은 검문소를 설치하여 수 천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과 경찰들을 배치함으로써 서안 지역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의 동예루살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상황을 계속해서 창출하면서, 동예루살렘 거주 25만 팔레스타인인들(Jerusalemites)에게 새로 창출된 상황을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도시 텔아비브와 유사하게 변해가면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를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에게 영주권을 의미하는 2등 시민권을 발급하였다. 2등 시민권을 소유한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은 의회 선거에서 투표할 수도 없고, 정해진 구역 밖에서는 재산도 소유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의 비율을 줄이는 정책의 일환으로 2등 시민권을 박탈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시민권 박탈 비율이 작년보다 6배 증가하였다.   그림 출처 - 홍미정 교수 가자의 상황 가자 전 지역은 이스라엘에게 포위된 채 고립된 감옥이다. 이 대형 감옥에는 5개(Erez, Nahal Oz, Sufa, Kerem Shalom, Rafah)의 출입구가 있으며,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경계를 분리시키는 5백 미터 폭의 보안 지대가 있다. 가자 공항은 파괴되었고, 항구 건설도 방해받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를 ‘적지(enemy entity)’라고 선언하면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경계를 영구적으로 폐쇄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다. 이 대형 감옥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약 40%를 구성하는 약 150 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우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중 60%는 등록된 난민이며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과 다른 국제기구들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70%의 주민은 실업 상태이며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한다.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하여 이집트로 가기를 원하는 수천 명의 가자 학생들은 이집트로의 출국 길이 막혀 있다. 빈곤, 실업, 연료, 전기, 식량 부족 뿐만 아니라 수출입이 전면적으로 차단되면서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집단 체벌을 당하고 있다. 서안의 상황 서안 지역은 이스라엘 점령촌, 분리 장벽, 이스라엘 검문소 등으로 철저히 통제된다. 가자는 통합된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며, 서안은 분리 장벽으로 건설된 거대한 감옥이 다시 갈기갈기 찢겨지고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상황이다. 영토, 주권, 민족적 정체성의 견지에서 서안 지역을 가자 지역에 비교해 본다면, 찢겨진 서안 지역이 통합된 가자 지역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리 장벽 건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9.5%를 이스라엘 본토로, 8%는 서안 내부의 이스라엘 점령촌으로 합병하였다. 2007년 현재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점령민 20만 명을 포함하는 약 45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점령민들을 보호하는 이스라엘 보안대가 570개 이상의 검문소를 설치하여 서안의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서안의 28.5%를 구성하는 요르단 계곡 지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폐쇄되어 있고, 이스라엘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된다. 약 3천 5백 내지 4천명의 이스라엘 점령민들이 이 지역 수자원의 85%를 지배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 계곡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 소유지에 접근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나머지 영토인 서안의 54%에만 접근이 허락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광범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협상들이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하여 세 지역에서 통합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마흐디 압둘 하디 소장과 홍미정 교수 사진 출처 - 홍미정 교수
2017-06-19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일 년 일정으로 동경으로 오기 전 해외 은행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모 은행 현금카드를 하나 만들었다. 국내 은행에 잔고가 있으면 해외 대부분의 현금인출기에서 현지 화폐로 인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금 일부는 국내 은행에 두고 일부는 손에 들고 동경으로 날아왔다. 동경에 머문 지 일주일 쯤 지나서 나는 현금 인출이 과연 자유로운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듣던 바와는 다르게 내가 시내에서 만난 어떤 현금인출기에서도 카드 사용이 불가능했다. 사용할 수 없으니 발행기관에 문의해보라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나는 카드를 발행해준 은행 동경 지점에 문의하러 숙소 근처 허름한 공중전화를 찾았다. 동경지점 직원 말에 의하면 아무 은행에서나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계 은행과 우체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카드라고 했다. 특히 우체국은 곳곳에 있으니 우체국 현금 인출기를 이용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왜 한국에서 들은 말과 다른지 간단한 항의를 한 뒤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때가 초가을 어느 날 오전이었다. 이어 나를 초청해준 일본 교성학림 학장을 비롯한 전문학교 교장, 일본종교인평화회의 관계자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환담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늦은 오후였다. 잠시 휴식하다가 은행 직원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 우체국에서는 내 현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 이리 저리 물어 알아놓은 뒤 그 카드를 찾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갑에 있어야 할 카드가 없는 것이었다. 온갖 주머니, 가방, 방안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질 않았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사고를 쳤나보다 싶었다. 침착하게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최근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면 동경지점에 문의하기 위해 갔던 그 허름한 공중전화 근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은 기대를 품고 옷을 챙겨 입고는 그 공중전화로 향했다. 가면서 생각했다. ‘그 공중전화 자리에 카드가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대로 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신뢰할 수 있게 될 거야....’ 부지런히 도착해 허름한 공중전화 보호대 문을 여는 순간 전화기 옆에 놓여있는 내 은행 카드가 한 눈에 쏘옥 들어왔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단면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들 휴대전화를 쓰니 어쩌면 그 공중전화에는 나 이후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금이나 다름없었던 카드는 여섯 시간 동안 공중전화 부스 안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래도 중요한 것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카드가 그대로 놓여있었고, 나는 현금이나 다름없는 그 카드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카드를 들고 나는 바로 근처 우체국으로 향했다. 은행 직원 말마따나 우체국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번 더 다행이었다. 동경의 외곽 한적한 동네우체국 뒤로 넘어가는 저녁 햇살 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뒤 이 날의 느낌을 남겨놓으려 한국에서 쓰던 노트북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수십 여 개 의미 없이 깔려있는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삭제해도 되는 아이콘들은 정리해야겠다 싶어 이리 저리 마우스를 클릭 하다가 뜻밖에 가수 윤도현의 거의 모든 노래가 담겨있는 폴더를 하나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윤도현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언젠가 나의 아들이 저장해놓은 곡들이었다. 이것이 바탕화면에 있었는데 그동안 전혀 몰랐다니... 여러 음악 파일 중 눈에 띄는 노래가 있었다. 언젠가 딱 한 번 듣고는 인상적이었다가 그 뒤로는 전혀 들을 기회가 없었던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였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나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서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가사가 좋았고, 멜로디는 반복적이었지만 따뜻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그 노래 분위기에 푹 빠졌다. 반복해서 수십 번 들었고, 외워버렸다. 일 년 이상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듣지 못하던 이 노래가 뜻밖의 상황에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내게 이렇게 묘한 감동을 주다니 역시 세상 이치는 다 알 수 없었다. 여섯 시간 동안 현금카드를 공중전화기 옆에 고스란히 놓아주었던 그 “아름다운 것들이” 노래 가사처럼 “오래 남을 수 있기”를 바랬다.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가수가 고마웠고,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컴퓨터에 저장해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일지, 두 사람일지, 아니면 전혀 없었을지 모르지만, 공중전화기에서 그 카드를 보고도 그대로 둔 이가 고마웠다. 이런 고마움들이 내가 일본으로 오게 된 흔치 않은 상황과 미묘하게 어우러졌다.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아름다운 것들이 오래 남도록” 하는 일, 내가 할 일은 그런 것이어야 하리라는 생각에 날 새는 줄을 몰랐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거짓말 아닌 거짓말 처녀 시집 안 간다는 말, 장사치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 얼른 죽어야지 하는 말을 3대 거짓말이라고들 한다. 거짓말인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 말에 어찌 진실이 없을 것인가? 여자라고 반드시 시집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 안 간다는 말이 거짓일 수만은 없고, 장사하면서 물건을 떼 온 값에 자기 품삯 정도는 더해야 원가가 되니 물건을 떼 온 값 이상으로 판다 하여 밑지지 않는 게 아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얼른 죽어야지.” 하시는 말씀은 어떤 때에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어찌 거짓말이라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말은 아마도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하는 “딱 한 잔”이 아닐까 싶다. 죽음 - 가장 엄숙한 삶의 순간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으로써 이승의 삶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죽음을 어떻게 맞고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어쩌면 삶의 가장 진지한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살려면 잘 죽어야 하고 잘 죽는 사람은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믿는 바 가치를 실현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죽는 것,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떠나는 것, 남는 사람들에게 한을 남기거나 짐을 지우지 않고 죽음으로 오히려 화해에 이르게 하고 떠나는 것은 잘 죽음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교인들의 경우는 다른 차원의 덕목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잊고서는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잘 사는 것도 배워야 하지만 잘 죽는 것도 배워야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학습공간 "얼른 죽어야지."라는 노인들의 말은 상당 부분 진실이라고 믿는다. 늙어 자식들에게 짐만 되거나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어느 날 잠자듯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마음은 숭고하게 느껴진다. 곧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곡기를 끊고 속까지 다 비운 채 죽음을 택하는 모습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죽음의 모습은 일생을 통하여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결과라 생각한다. 종교를 신앙한다는 것도 그러한 차원을 만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음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그 원인이 상당 정도는 생활공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이의 무덤이 산 자의 생활공간 안에 존재하는 시골마을의 공간구조는 산 사람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집을 나서 논과 밭으로 가면서 조상님들의 묘를 지나고 산 자에게 얘기하듯 조상님을 만나는 생활을 통해 죽음이 삶 깊이 자리 잡게 된다고 생각한다. 마을 뒤의 무덤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잔디 깔린 운동장이다. 자신도 죽으면 저렇듯 무덤을 이루고 자손들이 얘길 걸어줄 것이라 믿고, 죽음이 삶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른 모습임을 깨닫고 살게 되는 것이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차례를 통해서도 죽음과 삶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교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분들이 죽음을 대하는 것은 죽음을 공포로 느끼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조상의 반열에 드는 것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추석을 맞아 조상의 묘를 찾은 성묘객들의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죽음이 추방된 도시 반면 도시에서 죽음의 자취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도시에서 죽음은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동묘지는 음습하고 처녀귀신이 나오는 장소이다. 비 오고 흐린 평일에 한산한 공동묘지에 택시기사들도 가길 꺼린다. 시골이라고 무섭지 않을까만 도시에서 그 분위기는 유난한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도시의 생활공간에서 죽음을 거의 접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게 도시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도시에서는 죽음을 배제하고 있다. 병원은 사람이 치료받는 곳이긴 하지만, 치료가 된 사람은 병원 정문으로 퇴원하고 치료가 되지 않은 사람은 지하실을 통해 큰(?) 차타고 길을 나선다. 분명 살아 병원 문을 나서는 사람과 죽어 문을 나서는 사람이 있지만 죽어 나가는 사람의 모습은 애써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에서도 상가(喪家)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변 주민들의 항의로 장례식장은 대부분 지하에 자릴 잡는다. 생활 속에서 상시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오로지 충격과 함께 죽음을 만난다. 송장을 태우는 화장장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만들지 않으려 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화장장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한다. 죽음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면 죽음의 자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삶이 있을 수 없을 텐데, 도시의 삶은 그만큼 종교적 차원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종교가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메우고 있겠지만 말이다. 납골묘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 얼마 전 천주교 추기경이 탄 차가 어느 성당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의 계란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성당에서 건설 중인 납골묘에 대해 항의한 것이라 한다. 초·중등학교가 부근에 있다던가? 그들에게 납골묘가 그렇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을까? 납골묘가 가까이 있다고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가?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 말고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다. 기독교 교회나 천주교 성당에서 내걸고 있는 십자가는 2천 년 전 한 청년을 처형한 형틀이었음을, 그것도 시뻘건 피를 흘리며 죽었음을 기억하고자 붉은 빛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십자가라는 상징을 바라보는 마음이 단순할 리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종교란 본래 삶과 죽음에 관한 가르침이자 믿음임을 떠올린다면 죽은 이들의 남은 흔적인 뼛가루를 종교시설 안에 모신다 하여 무엇이 그리도 문제가 되는 것일지? 납골묘 부근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오히려 훌륭한 철학적·종교적 품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계란은 먹는 것이지 차나 사람에게 던지는 게 아니다. 도시 안에 죽음과 같이 살자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와 경박한 행태를 경험하는 것은 멀리는 이러한 죽음의 부재에서도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강하고 화려하고 풍부하고 밝은 것만을 추구하는 도시의 문화는 약한 것, 힘겨운 것, 모자란 것, 어두운 것을 감춘다. 부자들이 산다는 동네에도 반은 집 없는 사람들이 살지만, 드러나는 것은 돈의 화려함뿐이다. 영원할 수도 없고, 사람을 살리지도 못하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자각을 위해서 생활공간 안에 그러한 자리를 마련하여야 한다.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묘지이다. 이렇게 보면 묘지, 화장장은 오히려 도시에 필요한 시설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시가 추진해오는 묘지공원사업은 답보상태이고, 간혹 설치되는 시내 납골시설조차 민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분명 반성하여야 한다. 물론 잘 때까지 곡소리 들리는 걸 방임하자거나 검은 연기 풍기는 걸 무작정 허용하자는 게 아니다. 죽음의 공간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 있는 묘지를 한가로이 산책하면서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차원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처럼 사는 환경에 따라 사람 사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라 하니, 죽음을 생각하고 살 수 있다면 종교적, 철학적 삶이 더욱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맹자 역시 공동묘지 가까이서 살았던 경험이 그의 사상형성에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살려면 잘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멀리 하면 삶도 멀리 있는 게 아닌가.
2017-06-19 | hrights | 조회: 321 | 추천: 0
이광조/ CBS PD 장면 1.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200시간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법원을 나서는 김 회장은 수염을 깎지 않아 여전히 초췌해보였지만 안도감 때문인지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심야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사람을 폭행하고 더구나 폭행과정에 쇠파이프 등의 흉기를 사용했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최소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다는 것이 변호사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에게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같은 법률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피고인은 그동안 재력으로 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해도 재벌그룹 회장으로서의 과도한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화광동진(和光同塵.빛을 부드럽게 해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의 자세를 갖춰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너의 땀을 통해 속죄하라’. 법에도 인간의 얼굴이 있겠지만 김승연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은 문제아를 지도하는 교사를 연상시킨다. 자상한 판사님. 게다가 문장력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화광동진이라는 절묘한 사자성어까지 동원한 문장력이란. 하지만 판사가 아버지야 선생님이야? 검찰은 집행유예가 선고될 정도로 적당히 수위를 낮춰 구형하고 재판부는 재벌회장에게 훈계성 멘트를 마구 날리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을 이렇게 자신들 임의대로 주무르는 법원과 검찰을 우리는 어떻게 통제할 도리가 없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장면 2. “미국에서도 교포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처럼 국내 시판 미국산 쇠고기 역시 이상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심지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특정위험물질이 포함된 경우까지 있었지만 우리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미국사람도 먹고 재미동포들도 먹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다. 농림부 방역과장의 얘기다. 어떤 유력 일간지의 한 데스크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 위험을 거론하며 철저한 검역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반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행동’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언론의 분석과 주장이야 각기 다양할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민의를 대변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둬야할 정부가 이렇게 ‘무대뽀’로 나오면 어떡하나. 미국의 약속위반은 내버려두고 갈비뼈도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위생조건을 바꾸려고 하는 정부의 입장은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이해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광우병에 대한 철저한 검역과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주장은 자국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주장이 아니다. 소비자로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다는 것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요구이며, 경험적으로 확인된 위험요소를 최대한 피하자는 것 역시 합리적인 수준의 요구일 뿐이다. 광우병이 발견된 국가들 중 미국처럼 광우병 검역을 소홀히 하고 여전히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는가. 그 뿐인가 미국은 아직 쇠고기에 대한 이력추적제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엉성한 제도를 고치는 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들뿐 아니 미국 내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 아닌가. 두 나라의 소비자를 위한 일이 어떻게 반미가 될 수 있나? 17년 전 존 검머 영국 농무부 장관이 “영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며 자신의 딸과 함께 텔레비전에 출연해 쇠고기 버거를 먹었다. 다행히 당시 검머 장관의 딸은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버거를 먹지 않았지만 검머 장관의 이 시식행사 이후 영국에서는 엄청난 광우병 파동이 불어 닥쳤다. 현재까지 18만 두가 넘는 소에서 광우병이 확인됐고 약 400만 마리가 도살됐다. 그 뿐인가. 1995년 인간 광우병으로 19세 청년이 사망한 뒤 143명이 인간 광우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어떤 전문가는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2015년쯤부터 해마다 약 2만 명 정도의 영국인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1년까지 동물 사료를 먹은 애완용 고양이 100마리가 광우병으로 죽었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동물성 사료를 먹은 다른 애완동물들도 광우병의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을 휩쓴 광우병 파동이 재연되질 않길 바라지만 마냥 안심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 불확실하다. 미국은 광우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던 지난 1997년 동물성 사료 규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동물성 사료 규제 조치는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금지했을 뿐 다른 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는 계속 허용했고 이런 사료정책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광우병은 반추동물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교차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경우 광우병은 밍크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모피를 만들기 위한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살코기와 부산물은 동물성 사료로 만들어져 소에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지난18일에 열린 '한우인 총궐기 대회'에서 축산농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한미FTA국회비준 저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차 감염의 위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몬태나 주에서 축산업에 종사했던 하워드 리먼의 얘기는 충격적이다. 하워드 리먼은 “성난 카우보이(Mad Cowboy)”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농장에서 나온 가축 이외에 사료업자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안락사 시킨 애완동물이다. 전국의 동물 수용소에서는 매년 6-7백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죽어간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만 하더라도 매월 약 2백 톤의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를 사료 공장으로 보낸다. 이런 섬뜩한 혼합물을 빻아서 증기로 쪄내는데, ... 무거운 단백질 원료는 말려서 갈색 가루로 만든다. 그 중 4분의 1 정도는 배설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갈색 가루는 가축의 사료뿐만 아니라 대부분 애완동물의 사료에 첨가된다. 축산업자들은 이것을 ‘농축단백질’이라고 부른다. ... 미국에서는 9천만 마리의 육우 가운데 약 75퍼센트의 육우에게 ‘영양가를 높인’ 동물성 사료를 일상적으로 먹인다.” 섬뜩한 광경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97년 동물성 사료 규제정책을 실시한 뒤에도 이런 현실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의 피는 여전히 소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지금까지 모두 세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9천만 두에서 1억 두에 이르는 소를 사육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률적으로 아주 낮은 가능성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경우 광우병 검역체계가 유럽연합이나 일본에 비해 대단히 허술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03년 12월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전체 축우의 0.1 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다.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광우병 검사 대상이 1퍼센트로 확대되었지만 최근 다시 0.1 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에서는 전체 축우의 25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축우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이나 일본처럼 광우병 검사 대상을 늘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미 농무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낸 도축과정의 문제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된 2003년 12월 이후 14개월 동안 도축과정에서 광우병 검역과 관련해 모두 829건의 위반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 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뼈를 포함해 미국 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개방이 이뤄질 경우 쇠고기 가공품이나 소의 피로 만든 사료 등도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광우병이 국내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을 가르치려고 하는 재판부와 국민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요구에도 ‘무대뽀’로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정부. 국민의 의견과 법이 이렇게 무시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기’ 아니면 ‘환상’이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42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1. 지난 번 ‘수요산책’에서 신정아씨 학위 위조 사건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일부 나오면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지만, 어떻든 이번 일이 박사학위, 가능하다면 미국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을수록 무언가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학문적 역량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분위기야 문제될 일이 전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쳐 학위, 학교 또는 학위 수여국 자체가 학문적 능력과 단순 동일시되는 현상은 경계하고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니 특정 대학 학위를 위조하고도 버젓이 활보하거나, 그렇게 행세하도록 조장하기까지 하는 일부 사회적 분위기는 타파되어야 하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에 적은 대로 과거에는 중국, 한 때는 일본, 그리고 이제는 미국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권력에 가깝게 다가설 가능성이 커지는 현실은 우리에게 체질화되다시피 한 사대주의적 구습이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니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기회에 일부라도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무엇보다 내 자신은 그러한 저급 문화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먼저 묻게 된다. 나부터 그렇지 않고서 어찌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겠는가? 이번에는 박사 학위에 얽힌 나의 얘기를 써보련다. 2. 나는 화학과 재학 중 인생 고민을 하다가 대학원을 종교학과로 진학했고, 학문에 대한 흥미와 순수한 열망 속에서 종교학 및 신학으로 두 번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뒤에는 나름대로 인생관도 뚜렷해지고, 학문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났다. 특히 종교 공부는 매력 있는 일이었고, 박사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학문도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신감만으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현실적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89년 종교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동료 및 선후배들과 ‘종교문화연구원’이라는 연구소를 창립해 연구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면서의 일이다. 연구소 활동은 충분히 즐거웠지만, 그런 즐거움과 자신감은 정말 나만의 것이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학문적 자신감에 넘쳤지만, 남들도 나를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학문, 특히 종교학과 신학의 핵심은 연구자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런 순수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색이 연구소의 연구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 보니, 사회는 나의 연구가 정말 신뢰할만한지 객관적인 근거가 있느냐며 물었다. 그러니까 박사 정도는 있어야 네 연구를 신뢰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 네가 하는 연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격증이 바로 ‘박사학위’였던 것이다. 혼자 도를 닦는 것이 아닌 마당에 나름대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것이 현실이었고, 나는 그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만 했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박사학위는 내 인생 첫 번째의 ‘타협’이었다. 평상시 신념에 따르면 학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위가 내 앞길을 넓게 열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타협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학자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 내지 흐름에 나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공부 자체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자격증도 필요했던 것이다. 신정아씨가 온갖 학위를 편법으로 취득하거나 위조한 것도 학위가 있으면 자신의 앞길이 좀 더 탄탄하리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는 나와 전적으로 다르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3. 석사 과정 중 나는 적어도 외국, 특히 미국에서는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서던 그런 학생은 아니었지만, 광주항쟁 이후 ‘반미’적 정서를 갖게 되었던 학생 시절 한국에서 쓸 자격증을 취득하러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그 때 내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반일한다면서도 일본 유학 한 뒤 출세 길로 들어선 상당수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종교학과 신학은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이니,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 믿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나중에 여행이나 다녀야 할 곳이라는 마음이 그 때는 강했다. 그렇게 해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박사 과정을 끝내고 보니 이른바 국내박사가 미국박사에 비해 받는 푸대접은 생각보다 심했다. 우리 사회에 미국에 대한 사대적 성향은 과거 중국 종속적이던 시절에 비해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박사가 돌아오자마자 받는 대우와 비슷한 대우를 국내박사가 받으려면 학위 취득 후 10년 이상 노력해 상당한 연구실적을 쌓으면 될까 말까 하는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박사학위 취득 후 학회에서 논문 발표라도 할라치면, 종종 듣던 말이 ‘언제 귀국했느냐’는 것이었다. 종교학이나 특히 신학계에서 학자라는 명함이라도 내밀려면 미국이나 독일 정도에서는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팽배했다. 아닌 게 아니라 97년 한 기독교 관련 학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국내에서 박사를 마친 이는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언제 귀국했느냐는 물음은 좀 불쾌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신학계에서 결코 어색한 물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학에도 ‘원조’가 있으며, 그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나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저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에서의 학문을 열등한 것으로 매도하고, 진리의 기준을 늘 자기 밖에서만 찾다가 결국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고 말게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미국 유학 박람회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4.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몇 가지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 때 제대로 읽지도 않은 외국어 책을 의도적으로 각주나 참고문헌으로 인용하면서 내가 외국 학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자랑하려는 유치한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몇 가지 단순하나마 나만의 규칙을 갖게 되었다. 첫째, 논문이나 책을 쓴 사람의 학위를 참고는 하되 내용을 읽거나 보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둘째, 연구자의 학위취득 국가나 학교에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셋째, 우리 말 책을 읽고는 마치 영어나 독일어로 읽은 것인 냥 논문 각주에 원서 참고문헌을 줄줄이 달아놓는 유치한 일은 하지 않는다. 넷째, 외국의 흐름과 현황을 익히기는 하되,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당시 결심했던 내용들은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요지인즉, 형식보다는 내용, 술수보다는 순수를 지키는 것이 결국 학문의 정도임을 나름대로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5. 적고 보니 다소 우습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때로는 이러한 단순한 규칙마저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은 늘 간직하고자 한다. 학문의 기준은 오로지 내실과 내면에 있는 것이지 외형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데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에야 실력을 보고 평가하지, 권력을 보고 평가하는 저급한 사례는 줄어들 것이다. 좀 더 전문성을 인정받으려 박사학위라는 ‘자격증’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니 박사학위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신정아씨나 나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아씨는 왜 학위 위조 내지 매수의 길을 갔을까? 만일 그가 학위 조작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더라면, 그의 최소한의 실력마저 묻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간다. 더위와 습기찬 공기가 불쾌지수를 한없이 끌어올리던 올 여름. 그 불쾌지수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학력위조 논란이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박사 학위를 위조한 사건에서 비롯된 학력위조 논란은 엉뚱하게도 연예계로 불똥이 튀어 한참 잘나가는 개그맨 출신의 영화감독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왕년의 여배우며,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배우며 가릴 것 없이 대중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거짓말을 반성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만 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닌데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물론 학력을 위조해서 학위를 필요로 하는 교수 등의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학력과 무관하게 다른 재주로 유명해진 연예인들이 차례로 도마 위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연예인들에게 “00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학력 차별을 조장하던 언론을 비롯하여, “00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실제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 온 우리 모두가 그러한 차별적인 관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에도 여기저기서 꾸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불쾌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활동을 떠난 개신교 신자들 20여명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루한 논쟁들. 납치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내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어느 신문에 무분별한 선교를 탓하는 내용의 사설이 실린 것을 보고, 나는 보수언론이 파병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그러한 논조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정아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그런데 무모한 선교나 봉사활동을 비난하는 여론이 점점 드세지더니, 마침내 위험한 지역에 선교를 하러간 사람들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식의 극단적인 비난 여론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인터넷 신문을 보기가 겁이 났다. 어찌되었든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고, 봉사활동을 떠난 사람들이 범죄 집단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심한 비난을 퍼부어야 했을까. 이성적인 비판과 진심어린 반성은 온데 간데 없고, 이미 무분별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인질들에 대한 손가락질과 고함소리만 요란했다. 학력을 속인 연예인들과 무분별하게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인질로 잡힌 기독교 신자들이 거짓말과 무분별함에 대한 들끓는 비난여론 속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동안, 29만원의 재산을 가지고 호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는 전직대통령은 대신 인질로 잡혀갈 생각을 했다는 코믹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부동산 문제에 대한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는 그 말이 웃기지도 않은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또 다시 사람들을 웃겨 주었다. 웃으면서도 불쾌지수는 끝없이 상승한다. 더 큰 거짓말과 범죄 앞에서 관대해지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난다. 왜 우리는 작은 일에만 분노하고 더 큰 거짓말과 불의에 대하여는 그토록 쉽게 눈을 감고 잊어버리는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짜증스러운 마음도 한결 가라앉는다. 가을에는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 차별적인 관념, 무분별함, 배타성에 대해 차분한 비판과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작은 일에만 분노하고, 더 큰 거짓말과 불의에 대하여는 쉽게 눈을 감는 우리 안의 이중적인 잣대에 대하여도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69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인 탈레반이 7월 19일 경기도 분당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을 납치하였다. 8월 26일 현재 샘물교회 선교단원 2명이 살해되고 2명이 석방되었다. 나머지 19명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뉴스다.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99%는 무슬림이다. 그곳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선교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필자는 서울 시내에서 전철을 자주 이용한다. 전철 안에서 종종 마주치는 짜증나는 광경이 있다. 조용한 전철 안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협박하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속으로 필자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게 무슨 신이람 ... 차라리 그렇게 이기적인 신이 있는 곳보다는 그런 신 없는 지옥이 더 낫다.”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한국 기독교의 선교 행태는 전철 안에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기분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작년에는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 사원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이슬람 사원으로 올라가는 도로변 모퉁이에서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는 10명도 넘는 기독교인 아주머니들과 마주쳤다. 필자는 모른 체하고 지나치다가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그 아주머니들에게 “아주머니들 !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찬송가를 크게 틀고 춤을 추십니까? 바로 50여 미터 위에 이슬람 사원이 있고, 이 도로는 무슬림들이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도로입니다. 선교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묻고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아주머니들은 나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까지 모 기독교 교회를 다녔다.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윽박지르는 듯한 목사의 요구에 기가 질려서 그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 곳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지 않았고, 이미 만들진 패러다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할 것만 같은 공포가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한국 기독교의 독선적인 행태는 기독교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원인이다.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었던 샘물교회 선교단의 모습. 아프간 한국군의 연내 철군과 아프간 선교 중지를 조건으로 지난 28일 피랍자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런데,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가 태어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필자는 현지 조사를 위해서 매년 겨울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에 체류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근무한다. 이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예배드리는 양식에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신을 믿는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상호 인정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와 마찬가지로 신의 사도이며, 하나를 더 추가해서 예수는 로마의 지배에 대항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한 투사라고 강조한다. 지난겨울 라말라 거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무슬림 파티 히드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냐? 그렇다면, 최초의 테러리스트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렇듯 오늘날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군사 점령 아래서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예수를 본받아야할 행위의 본보기로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등 레반트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무슬림들보다 생활수준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레반트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한 네트워크 탓이기도 하고, 일부는 무슬림들에 비해서 교육 수준이 높은 탓이기도 하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66석 중 소수 종교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독교인들에게 6석을 할당하였고,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주의자 정당인 하마스는 가자 지역에서 당선을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하였다. 이 선거 결과 비기독교인 후보들은 1만 5천-2만 표를 획득해야 당선권에 들었으나, 기독교인 후보들은 2천-3천표로 당선되었다. 1989년 이후 2003년까지 4차례에 걸쳐 실시된 요르단 의회 선거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총 의석 중 10% 이상에 해당하는 소수 할당의석 특혜를 받았다. 레바논 대통령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선출된다. 이렇듯 기독교가 발흥한 본거지인 레반트 지역에서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은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선거 등의 정치 영역에서는 소수 기독교인들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공존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공세적인 선교 행태를 지향하는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레반트 지역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태도를 배워야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60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광복절을 맞이했다. 경축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광복절은 3·1절과 함께 폭주족들에게는 광란의 밤거리를 질주하는 날이다. 이들은 여의도 한강둔치와 자양동 뚝섬유원지, 그리고 주택가 근처에서 사납게 귀청을 찢는 굉음을 내며 과속으로 질주하여 교통사고를 유발함은 물론 심한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폭염에 지친 시민들을 더욱더 지치고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폭주족들은 단순히 도로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폭행과 절도 등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이처럼 폭주의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룬지 오래 되었다. 폭주족이라고 하면 흔히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많지만,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20~30대 성인 폭주족(이들 자동차 폭주족을 일명 ‘카폭’이라고 한다)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어렸을 때 오토바이를 몰다 20대 이후에는 승용차나 견인차, 구급차 등을 타고 폭주행위를 일삼기도 하는 것이다. 폭주족은 만화, 영화, 대중음악, 소설 등 모든 장르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강남연합 최강폭주’, ‘월미도 폭주카페’ 등 폭주족 관련 카페를 통해 폭주족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있다. 폭주족들은 과거와는 달리 ‘옵저버’, ‘리더’, ‘칼받이’, ‘뒤커버’ 등 역할을 분담하여 폭주 대열을 경찰단속으로부터 유지·보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옵저버는 선발대로 미리 코스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선두를 이끄는 리더는 양손에 번쩍이는 야광봉을 이용해 대열의 주행 방향과 속도를 조정한다. 칼받이는 ‘앞커버’라고도 불리며, 폭주 대열이 교차로를 지나가고 중앙선을 넘을 때 굉음을 내며 일반 차량의 진입을 막아 대열이 끊기지 않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뒤커버는 경찰 차량이 폭주 대열의 뒤에서 추격해 올 때 곡예운전으로 이를 막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폭주족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 리더의 야광봉 신호에 따라 진로와 속도 등을 조절하며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갈지(之)자로 2~3개 차선을 지그재그로 질주하고, 중앙선을 넘나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역주행을 하며 마주 오는 차량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리고 드리프트(drift) 등 곡예운전을 보여주기 위해 중간 중간 전 차로를 가로막는 일도 예사로 저지른다. 폭주족들은 ‘리더 지시에 따른다’, ‘리더를 추월하지 마라’, ‘카폭은 1차선으로 다닌다’, ‘폭주시 심심하면 112에 신고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동수칙까지 만들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왜 그리 사납게 달리느냐고 물으면 폭주족들은 한결같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달리면서 털어 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폭주를 하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진다고 말한다. 게다가 경찰차가 뒤에서 따라오면 스릴(thrill) 넘친다고 한다. 폭주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로를 질주하는 스피드의 매력이 마약과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폭주족의 난폭운전과 소음으로 인해 시민불편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경찰에서는 폭주행위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특별단속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고성능 카메라와 차량탑재용 카메라 등 첨단 채증 장비를 활용해 현장 검거를 강화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년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폭주행위는 되풀이되고 있어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나 그마저도 신통치가 않다. 경찰관들이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마음껏 법을 어기는 폭주족들을 속 시원하게 적발하지 못하는 것은 폭주족들의 안전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폭주족들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게 되면 경찰의 단속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게 되어 경찰로서도 곤경에 처하기 일쑤다. 그래도 경찰관들은 주행 중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적극적인 단속보다는 차량으로 추격하며 동선을 좁혀 자진 해산하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경찰은 폭주족 단속의 어려움과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물망’, ‘바퀴에 감기는 밧줄체인’, ‘페인트볼 분사기’와 같은 최신 장비를 도입하여 폭주족의 단속을 지속하면서 폭주족을 상대로 한 계도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폭주족 가담행위자에 대한 간담회 개최와 문자메시지(SMS) 전송을 통한 사전 경고를 통해 난폭 운전에 대한 예방활동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폭주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폭주족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타인의 안전을 방해하는 심각한 범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것에 주안점이 두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가정에서의 적절한 훈육은 물론 학교·사회·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건전한 육성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폭주행위를 즐기는 청소년들의 말처럼 폭주행위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폭주행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2017-06-19 | hrights | 조회: 57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