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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죄와 벌]과 코로나: 오리엔탈리즘과 탈진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5-21 11:40
조회
686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라스콜니코프는 사순절이 끝날 무렵부터 부활절 내내 병원에 누워 있었다...병중에 그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무서운 전염병이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유럽으로 퍼져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처한 꿈을 꾸었다...그걸 몸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귀신이 들린 듯 미쳐버렸다...다들 진리가 오로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다...모두가, 모든 것이 파멸했다. 전염병은 기세를 떨치며 멀리, 더 멀리 퍼져갔다...”


 서양 고전의 대명사인 『죄와 벌』의 에필로그 속 한 대목이다. 150년 전 발표되었으나, 지금의 상황과 신기할 정도로 흡사해 예언적이기까지 하다. 예언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고전의 가치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에 있다. 코로나 사태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너무나 예외적인 병리 현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보편적인 우리 시대의 질병과 깊이 연루돼있다.


 첫번째 보편은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다. 『죄와 벌』의 전염병은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퍼져나간다. 당시 유럽 지식인에게 아시아는 서구적 표준으로부터의 일탈이자, 광폭한 자연적 힘의 근원으로 표상됐다. 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토옙스키는 서구주의자와 달리 아시아를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했지만, 그의 아시아 역시 야만의 기호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특히 러시아의 오리엔탈리즘은 러시아를 250년 가까이 지배한 몽골의 기억과 직결되는바, 몽골은 유럽 정복과정에서 흑사병 시체를 성안으로 던져 넣어 ‘인류 최초의 세균전’을 벌인 주체로 회자됐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가 세계를 절멸시키는 전염병에 대한 상상력은 이러한 오리엔탈리즘과 무관할 수 없다.


 현실의 전염병 코로나도 중국 우한에서 세계로 퍼져갔다. 그와 동시에 안 그래도 수상쩍던 일대일로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세기 말에는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원했지만, 21세기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것이다’란 말이 돌았다. 일대일로를 따라 걷는 길은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중국의 길’의 보편성을 시험하는 길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우한에서 발원해 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 이후, 또 중국 정부의 극단적이고 비민주적인 대응 이후 중국모델론은 근저에서 흔들렸다.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질병과 오염, 야만의 근원으로 다시 한 번 등치되고, 오리엔탈리즘이 인종주의적 폭력과 결합되며 정당화됐다.


 한국에 쏟아졌던 세계의 찬사, 코로나 이후를 가늠하는 한국의 비전은 또 다른 버전의 오리엔탈리즘이면서, 그 극복 가능성을 제안한다.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과 유럽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심각한 기능부전을 시현했다. 코로나 제압에 성공한 나라들은 대체로 아시아 국가들이다. 중국의 대응은 비서구적 방식을 대표한다. 반면 한국에 대한 서구의 찬사는 선제적인 대응이 투명한 민주적 절차와 공존했다는데 놓인다. 중국의 아시아성에 한국의 서구적 선진성이 대비되며 그들은 어쩌면 안도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성공적 대응에는 민주주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세계화 이후 무장해제된 ‘착한 국가’의 기능이 그것이다. 그간 동아시아의 지역 협력을 가로막는 병폐로 지목돼온 국가주의적 요소가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 오히려 힘을 발했다. 한국 정부는 국가의 공공성을 전면화했고, 한국 시민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시아적 공공성과 민주적 시민성의 결합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할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코로나뿐 아니라 고질적인 오리엔탈리즘의 극복도 기대해볼만하다. 그럴 때 한국에 대한 찬사와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이 공존하는, 또 한국을 지렛대로 중국을 가격하는 현재의 이율배반도 사라질 수 있다.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퍼진 전염병만큼이나,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식된 오리엔탈리즘도 전염력이 만만치 않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두번째 보편은 ‘진리’ 또는 ‘진실’과 관련된다. 『죄와 벌』 속 전염병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을 침범한다. 그 병에 감염되면 발열, 기침, 인후통 대신 ‘진리가 오직 나에게만 있다’는 광신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오만과 불신과 적의가 비말처럼 퍼지고, 감염된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고 베고 잡아먹다가, 모두가 파멸한다. 현실의 코로나 역시 탈진실(post-truth)의 촘촘한 네트워크에 공생하며 서로의 감염력을 증폭시킨다. 탈진실이 촉발하는 공포와 불안과 혐오가 바이러스와 함께 퍼진다.


 인류는 늘 진리에 목말라했지만, 그걸 손에 넣은 적은 물론 없다. 오히려 지성사는 인류가 진리의 존재 증명에서 그 객관성 주장을 용도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특히 국가, 민족 등의 대문자가 기각된 세계화 이후 진리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탈구조주의나 구성주의는 주체의 복수성, 맥락의 다원성으로 진리를 상대화하고 조건화했다. 특히 진리와 권력의 공모관계가 푸코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진 후, 객관적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진리를 해체하는 이 과정에 허무나 냉소가 없지 않았지만, 그 속엔 진리 주장의 지분을 갖지 못한 ‘작은’ 자들, 소문자 존재들을 향한 공감과 겸손이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작금의 탈진실에는 이것이 없다.


 브렉시트 사태와 트럼프 당선 후,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탈진실’의 일차적 뜻은 “진리의 객관성에 대한 합의된 기준의 상실”이다. 이어 옥스퍼드 사전은 “여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된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전자의 정의는 탈진실이, 앞서 설명한바, 진리의 탈근대적 해체의 지적 계보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후자의 정의는 이전과 달리 이것이 진리의 권위의 해체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의 해체를 겨냥함을 보여준다. 근대적 해체가 대문자 진리를 소문자 진리‘들’로 미분하고, 진리의 자리를 목적에서 과정으로 전치시켰다면, 탈진실은 진리와 사실의 자리를 아예 도려내버린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진리의 부재, 사실의 무의미가 선언된 이 시대, 모든 것이 진리를 자처하고, 모두가 진리의 담지자를 참칭한다.


 탈진실의 가장 중요한 발화 주체는 여론을 만드는 대중이다. ‘장삼이사의 미디어’라 할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각종 정보 플랫폼에서 발신된 가짜 진실들이 시공을 초월해 전파된다. 소통의 극대화와 정보의 과잉은 진리를 오히려 심각하게 훼손하고,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코로나와 같은 전대미문의 재난 사태는 이러한 위기를 증폭시킨다. 오프라인상의 극단화된 단절은 온라인상의 소통을 더욱 극대화하지만, 겁먹은 대중은 불신과 혐오를 퍼나르고, 불통의 호소가 소통의 유일한 메시지가 된다. 재난보다 무서운 것은 재난의 ‘상상적 효과’, 즉 공포와 불신의 확산과 그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다. 이 불길한 상상의 주요기제가 바로 탈진실이다.


 탈진실의 대열에 국가도 가담했다. 코로나의 기원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진실 공방을 벌였다. 탈진실 자체가 트럼프라는 징후와 쌍생아인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다. 트럼프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코로나의 탈진실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원조 탈진실과 다시 만난다. 『죄와 벌』에서 미생물에 감염된 사람들이 ‘나만 옳다’는 광신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다 공멸한 것처럼, 코로나 시대의 탈진실 역시 ‘진리가 오직 내게만 있다’는 도착 속에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는 야만의 도래를 예감케한다. 탈진실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해법 역시 공공성과 시민성의 결합을 통해 공론의 장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것이 될 터다. 한국이 그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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