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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애인의 의료 접근과 이용에 대한 권리는 감동이나 배려로 완성되지 않는다(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5-28 10:47
조회
109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1. 아플 때의 풍경.


본인은 2년 전에 은평구로 전입신고한 장애인 중년 남성 1인 가구이다.


서대문구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은평구 노후 안착을 고민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의료접근성이었다. 연희동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나는 대상포진을 발견했다. 그 이전부터 통증은 있었으나 뇌병변장애의 일상적인 경직이 주는 통증과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발견이 늦었다. 얼른 병원을 가야했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피부과와 가정의학과, 내과 등은 모두 계단을 올라야 하고 혼자서 진료침대에 오르는 건 고역이며 무엇보다 진료를 받으러 간 내 질환보다 내 장애를 직관하고 더 당황스러워 하는 의료진 앞에서 내 장애로 불안해 하지 말라고 되레 내가 설득해야 하는 문제를 겪는다. 그래서 은평구로 이사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의료협동조합(살림병원)에 가입하여 조합원 인사를 하는 김에 '내 장애가 여기 있소' 미리 공개하고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덜컥 갑자기 한밤중에 코로나 확진으로 열이 오르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밤중에 몸을 움직여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있는지, 장애인 주치의는 이한밤 중에 요청할 수 있는지, 아니면 119를 불러야 하는지, 정작 심히 아프니 아무 생각도, 아무런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섣불리 움직였다가 낙상 사고가 나지 않을지 그게 더 두려웠다. 가까스로 병원을 가더라도 의료진들이 내 장애에 대해 익숙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아플 때 심야에 활동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제도지만 일상같이 병원을 진료를 본다고 해도, 서울시 병원 안심 동행 서비스 이용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안전을 안심할 수 없으니 결국 부정확한 자체 진단을 내리고 불안한 자가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다.


2. 병원 갔을 때의 풍경.


그렇게 겨우 코로나로부터 회복하고 나니 이번에는 발들이 문제였다. 왼쪽 발목은 걷기가 힘들었고 오른쪽 발가락은 알 수 없는 통증이 심했다. 파스와 연고로 버티다 버티다 드디어 병원을 갔다. 인권적인 진료로 유명하고 기본적인 장애인편의시설은 잘 갖추었지만 건물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장애인주차구역은 딱 한 곳이라 서둘러야 한다. 간 김에 건강검진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마침내 혼자 소변검사를 위한 샘플을 만들었다. 아무리 인권활동을 하더라도 진자처럼 목발을 휘저으며 온몸을 땅바닥으로 쏟아질 듯 병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늘 익숙하지 않은 긴장을 만든다. 보통 목발이 딱딱 들어서는 순간 병원 접수처는 일순간 침묵이 흐르고 오만가지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시선들이 내 몸에 꽂혀 든다. 난 휴지를 팔지 않고도, 보호자 없이도, 당신들의 특별한 도움이 없어도 의사 앞에서 꼬꾸라지지 않고 또박 또박 아픈 증상을 진술할 수 있음을 최선을 다해 증명해야 한다. 일상적인 아픔은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코로나에 걸려도,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함에도 병원을 잘 가지 않는 장애인들이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려서도 내원하지 않은 후유증으로 관절염과 욕창을 얻고 나서야 집 밖을 나서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굳이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는 정확한 치료를 하려면 어치피 다시 병원을 가야할 번거로움이 있고, 장애인 주치의를 부른다고 바로 통증 완화과 질병을 위해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간을 조율해야 하며, 무엇보다 외부 사람을 위해 내 집안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필요할 때, 급할 때 가서 기다리더라도 30분 거리 안에 1차 진료를 마음 편히 받는 곳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병원 문을 여는 것은 경직된 일이지만 장애인 주치의가 우리집을 방문한 지 1년만에 찾아간 병원에서 아무도 내가 접수처에 도착할 때까지 신경쓰지 않았고 웃음띤 수다를 멈추지 않으셨다. 이제 진료실까지 넘어지지 않고 의사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며 등받이 없는 진료 의자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이 남았다. 작년 정기검진을 놓친 이후 몸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다. 무리한 강의로 말미암아 발목 관절염과 코로나 후유증 면역 저하로 치유가 쉽지 않은 발가락 욕창을 진단하셨다. 그리고는 한마디에 덧붙이셨다. “휠체어는 아직 타기 싫으시죠?” 솔직히 당황스럽기 보다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보통의 의사들은 이제는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다소 단정적으로 진단 내리거나 내 장애로 인한 2차적인 질병을 잘 모를 때가 많다. 덧붙인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에는 적어도 장애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공감이 묻어남을 신뢰할 수 있다. 사실 의사 선생님은 내 장애보다도 내가 진료가 용이하게 신고 간 벗기 쉬운 신발에 더 관심을 가지셨다. 더구나 머리조명까지 이마에 차고서 맨손으로 내 발가락을 꼼꼼히 소독하신다. 진료용 라텍스가 끼기가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감각에 민감한 내 장애의 경직을 이해하기 때문일까?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약국까지 가기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서인지 일주일 분의 소독재료까지 챙겨 주신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보았다. ‘건강검진도 미리 받을 수 있을까요’ 혼자 사는 장애인에게 정기검진은 위 대장 내시경을 제외하더라도 너무나도 큰 일이다. 그 중에서 자기 소변을 검사용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곤란할 것이다. 공식적인 활동지원사 옆이라도 민망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직접 지원을 해도 부끄럽기 그지 없을 뿐 아니라 다들 혼자 뭐라도 하겠다 하면 그 불안 가득한 눈빛 때문에 더 긴장하여 검사를 위한 샘플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 의료조합은 장애에 대하여 자연스럽고 화장실도 신식은 아니더라도 장애인 위한 필수적인 환경은 갖추었으니 드디어 자력으로 성공해 냈다. 혼자서 소변 샘플을 안전하게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많이 이동하며 검사하는 사람마다 내 장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무엇보다 안심이다. X-레이도 혼자 찍고 심지어 키를 재는 기계에도 스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아쉬운 하나는 키를 잴 때 장애로 굽어진 무릎을 누군가 눈치껏 꾹 눌러 주었다면 내 키가 오센티는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장애인의 온당한 권리는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다른 사람처럼 본인 동네에서 일상을 누리며 필요한 지원을 민망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에서 받을 수 있음에 있다. 매년 오는 장애인의 날은 바로 당신 옆에서, 당신의 일터에서 이를 존중하고 고민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호들갑스러운 감동이나 위선이 아니라. 지역 사회 어디서나 어느 진료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장애인이든 우리 병원의 환자이며 내 환자이며 내 지역 주민이라서 정중히 거절할 수도 피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다는 의료인과 의료 기관의 책임의식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의료 종사자들의 의무적인 장애인 인권교육을 실증있게 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 책임 의식이 장애인에 대한 익숙함을 숙지하고 그 익숙함이 장애인에 대한 의료전문성을 높일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의료전문성이 높다는 것은 장애인을 존중하고 의료기관을 깊이 신뢰해서 어떤 물리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쉬이 병원을 올 수 있게 하여야 장애로 인한 차별과 2차 질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물리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당장 의사소통이 어렵더라도 지금 당장 장애인들이 병원 앞에 올 수 있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본 쪽글은 지난 5월 중순 은평구에서 열린  제2회 장애인 건강권 세미나 - 장애인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한 지역사회 변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토론문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