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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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행정사), 이원영(전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평화활동가   오랜 시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질문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10년간 몸담았던 아시아 인권평화 단체 '아디'를 떠나며, 내가 처음 평화와 인권 현장에 뛰어들었던 이유를 돌아보고 싶었다. 목적지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출장이 아닌 개인적인 여정으로 이곳을 다시 찾는 것은 2014년 여름 이후 12년 만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05년, 나는 요르단 대학교 어학센터에서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암만 시내의 허름한 자취방에 살던 어느 날, 아랫집에 살던 이라크 난민 가족의 두 아이가 물을 빌리러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네 살 후세인과 여덟 살 자하라였다. 2003년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1년간 바그다드에서 활동했던 나에게, 전쟁을 피해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라크 아이들은 남 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그렇게 아부 아흐메드 씨 가족과 1년 동안 한 식구처럼 지냈다.   사진 1. 2005년 크리스마스, 이라크 난민 아부 아흐메트 가족과의 시간, 사진: 이동화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그리움은 마음 한편에 켜켜이 쌓였고, 이듬해 다시 요르단을 찾아 그들의 집에서 이틀간 머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4년 여름에도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길에 암만에 들러 무작정 그들의 문을 두드렸다. 가족들은 눈물로 나를 맞아주었고, 내가 사 간 고기와 야채로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나누었다. 그러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길, '이제는 정말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사진 2. 2014년 다시 만난 이라크 난민 아부 아흐메트 가족과의 시간, 출처: 이동화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흘렀다. 2026년 10월,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오래된 페이스북 연락처를 뒤지다 둘째 딸 자하라의 계정을 발견했다. 큰 기대 없이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가족이 여전히 암만에 살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가장인 아부 아흐메드 씨는 독일에서 홀로 힘겹게 난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큰아들 아흐메드는 결혼 후 이라크로 돌아가 식당 일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흩어져 살아가는 현실은 안타까웠지만, 암만에 남은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21년의 시간을 건너 요르단에 도착한 날, 자하라의 남편 모하메드가 직접 호텔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를 따라 집으로 향하는 동안 '과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마주한 순간, 모든 염려는 사라졌다. 네 살 꼬마였던 후세인은 스물다섯 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고, 여덟 살이던 자하라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동생 디아나는 니캅(얼굴과 몸전체를 가리는 방식)을 쓰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반짝이던 눈매는 그대로였고,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 역시 옛 모습 그대로였다.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마주한 얼굴들에는 낯섦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마치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 3. 2026년 다시 만난 아부 아흐메트 가족과의 시간, 출처: 이동화   우리는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추억을 되짚고, 가족이 차려준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식사 도중에는 독일에 있는 아부 아흐메드 씨, 이라크에 있는 큰아들 아흐메드와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비록 한자리에 모이지는 못했지만, 화면 너머로 온 가족의 얼굴이 이어지며 멀리 떨어진 가족이 다시 하나의 식탁에 모인 듯했다. 독일과 이라크, 요르단. 서로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들이 화면 안팎으로 한자리에 모인 그 순간, 21년이라는 시간과 국경은 잠시 의미를 잃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서로를 완전히 잊지 않고 마음속에 자리를 남겨두었기에 가능했던 재회였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삶의 무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막내 후세인은 이라크 난민이라는 신분적 제약 탓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줄곧 밝게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삶의 무거움에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큰아들은 이라크에서 각자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전쟁은 총성이 멎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하고, 가족은 흩어지며, 그 상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일상 속에 깊게 남는다.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 음식을 나누면서도, 그들이 감당해 온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진 4. 아부 아흐메트 가족이 차려준 정성스러운 음식들, 출처: 이동화   꿈같았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일정을 마친 뒤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헤어짐이 아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인사'였다. 시간은 화살처럼 흐르지만, 어떤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21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의 얼굴에서 나는 오래전 내가 품었던 마음의 흔적을 발견했다.   다시 현장으로 내가 왜 다시 요르단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지,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의 재회는 그 이유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 반전평화 활동을 하고, 이후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대했던 시간들. 지난 10년간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면서도 어느 순간 처음 품었던 질문과 열정을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왜 이라크에서 평화를 이야기했고, 왜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연대했는지 그 답을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곳의 사람들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가는 일이 여전히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에 아마 희미해져 버린 초심을 찾아 떠난 나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1년 만에 만난 가족과 나눈 한 끼의 식사, 그 안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서로를 잊지 않았다는 확인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선물이 되었다.   사진 5. (위)독일에 거주하는 아부 아흐메트와 (아래) 이라크에 거주하는 아흐메트와의 영상통화  
2026-10-27 | hrights | 조회: 21 | 추천: 2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기술적 유토피아 환상과 숨겨진 그림자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편리함을 선사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인과 소수자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구원투수로 묘사되곤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눈앞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묘사해 주는 시각 보조 AI, 세상의 모든 소리를 즉각 수어와 문자로 번역하는 가상 아바타와 스마트 안경, 뇌파와 안구의 떨림만으로 음성을 합성해 내는 신경망 인터페이스까지 기술이 가진 포용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 장애인과 소수자는 마침내 기술의 은총을 입어 신체적·환경적 결핍을 메우고,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로 안전하게 '정상화'될 수혜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유토피아의 환상 이면에는 장애인과 소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구조적 부작용과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인공지능은 진공 상태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객관적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데이터와 가치관,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편향을 학습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거울과 같다. 따라서 기존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 편향, 불평등이 고스란히 알고리즘에 내재화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감시는 더욱 정교해지며, 인간 존엄성의 훼손은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공지능이 소수자 인권에 미치는 주요 우려점 인공지능 모델의 성능은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 개발을 주도하는 데이터 세트는 대부분 비장애인, 백인, 남성, 주류 집단 중심으로 편중되어 구축된다. 장애인이나 특정 소수자 집단의 신체적 특징, 언어적 패턴, 행동 양식은 전체 데이터 풀(Pool)에서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아예 '이상치(Outlier)'로 분류되어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 배제된다. 국내외 기술윤리 연구 논문들에 따르면, 안면인식 기술의 경우 비전형적인 안면 근육 구조나 불수의적 움직임을 가진 장애인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다. 심지어 치안 유지 AI 시스템에서는 이를 범죄 가해자의 이상행동이나 징후로 오인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음성 인식 AI 역시 청각장애나 언어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발화, 혹은 특정 소수자 집단의 독특한 악센트와 억양을 인식하지 못해 서비스 이용 자체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의 고용 심사, 금융권의 신용 평가, 공공서비스의 수급자 선정 등에 인공지능 평가 알고리즘이 무비판적으로 도입되면서 발생한다. 과거의 데이터적 통계를 학습한 AI는 고용 공백기가 많거나 신체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지원자를 '생산성이 낮은 군'으로 자동 분류하여 서류 심사에서 원천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소수자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구조적 차별의 자동화'이자 '기계적 배제'의 실상이다.   안전과 지원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과도한 감시와 프라이버시 박탈' 최근 지자체와 복지 시설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자해, 타해 등)을 분석하기 위한 지능형 CCTV나 실종 예방용 스마트워치 등 AI 기반 관제 시스템 도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상행동을 자동 감지하는 스마트 시스템은 취약계층의 안전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성과로 포장되지만, 이는 동시에 심각한 인권 침해의 뇌관을 품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녹화되고 위치가 실시간으로 추적되는 시스템에 대해 명시적이고 실질적인 동의를 행사하기 어렵다. 대다수 상황에서 이들의 프라이버시 권리는 '안전 관리'와 '보호'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명분 하에 손쉽게 묵살된다. 많은 인권 연구 논문들은 이러한 조치가 장애인을 존엄한 인권의 주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24시간 가동되는 AI 감시 체계 하에서 당사자들은 일상적인 행동 통제를 경험하며, 이는 오히려 정서적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악화시켜 돌봄의 지향점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의 기술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디지털 감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복지 효율화 논리가 가져오는 '대면 돌봄의 대체와 인간적 소외' 정부 기관과 복지 현장에서는 AI 자동 안부전화, 복지 로봇, 사물인터넷(IoT) 기반 취약계층 통합돌봄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예산 절감과 업무 효율화를 앞세운 이러한 스마트 복지 정책들은 실제 현장에서 필수적인 대면 돌봄 인력의 감축이나 관련 예산의 삭감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복지와 돌봄의 본질은 단순히 대상자의 물리적 생존 상태를 확인하거나 기능적인 보조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눈빛, 정서적 교감, 유대감, 그리고 유기적인 상호작용은 고립되기 쉬운 소수자들의 사회성을 유지하고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핵심 자산이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대면 소통의 단절이 가져오는 인간적 소외와 정신적 황폐화를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만약 인공지능 기기나 태블릿 화면 뒤에 장애인을 앉혀두고 '스마트 복지'를 달성했다고 착각한다면, 이는 당사자의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키고 인지적·정서적 퇴행을 유발하는 '구조적 방임'을 낳을 뿐이다. 기계의 프로그래밍된 대답은 인간 복지사의 진심 어린 손길과 온기를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디지털 정보 격차(Digital Divide)의 심화와 배리어프리 환경의 부재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도로 생활 양식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를 다루고 활용하는 디지털 역량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이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AI 실무 교육이나 생성형 AI 활용 프로그램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 심각한 배제 구조가 발견된다. 학습 환경 내에 문자 통역, 수어 해설, 쉬운 말 교재, 그리고 장애 유형별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 기본적인 '배리어프리(Barrier-free)'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공공기관이 앞다투어 도입하는 생성형 AI 기반 맞춤형 민원 챗봇 시스템 역시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인지장애인을 위한 '쉬운 설명(Easy-read) 모드'가 제공되지 않아 발달장애인이나 고령층 소수자들이 이용하기에 턱없이 복잡하다. 결과적으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기술을 온전히 향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류 집단과 기술로부터 소외되는 소수자 집단 간의 '2차 디지털 정보 격차'는 더욱 가파르게 벌어진다. 인공지능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접근성의 장벽을 높여 새로운 형태의 독점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정한 기술을 위한 제도적 대안과 나아갈 방향 인공지능이 장애인과 소수자에게 진정한 ‘약’이자 인류의 동반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맹목적인 기술 속도전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강력한 인권 중심의 가이드라인과 거버넌스를 정립해야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위원회가 디지털 환경에서도 협약 제9조 '접근성(Accessibility)'과 제5조 '평등 및 비차별'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알고리즘 투명성 법제화: 지자체 및 국가 단위에서 '인공지능 기본 조례'를 조속히 제정 및 정비하고, 그 내부에 '장애인 및 소수자 차별 방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특정 신체 조건이나 비전형적 행동 양식을 가진 주민이 알고리즘의 오류나 편향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소스 코드와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정기적으로 실사하고 점검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인권영향평가제 의무화: AI 시스템을 공공 부문에 발주하거나 도입하기 전, 해당 기술이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지 사전에 면밀히 평가하는 '장애인·소수자 인권영향평가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개발 과정에 소수자 당사자가 직접 모니터링단으로 참여하는 구조적 통로 역시 필수적이다. 셋째, 인간 중심 복합 돌봄 체계 수립: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기는 어디까지나 인간 복지 인력의 업무를 보조하고 사각지대를 메우는 수단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기존의 방문 요양, 활동 지원 등 필수적인 대면 돌봄 서비스를 기술 도입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축소하거나 대체해서는 안 되며, 주기적인 직접 방문과 디지털 안부 확인이 결합된 '인간 중심의 복합 돌봄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기계가 내리는 의사결정과 자동화된 시스템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의 초입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진정한 성패는 그것이 얼마나 똑똑하고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사회적 소수자도 뒤에 남겨두지 않을 만큼 '얼마나 다정하고 포용적인가'에 달려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의 속도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은 모두를 위한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10-20 | hrights | 조회: 131 | 추천: 1
이승은/ 학교폭력 행정사·전 학교전담경찰관   검정마스킹으로 비식별 처리된 회의록17쪽 중 일부 _보호자 제공 자료   법은 ‘개인정보만 빼고 공개하라’ 했지만, 판단 근거는 전면 마스킹 행정사로 학교폭력 사안을 맡다 보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회의록을 정보공개로 받아 보는 일이 잦습니다. 학생 이름이나 위원 이름이 검게 지워진 회의록은 익숙합니다. 법이 그렇게 하라고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 보호자가 보여준 회의록은 달랐습니다. 학폭위가 아이에게 내린 조치에 불복하려고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받은 회의록이었습니다. 앞부분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양쪽 아이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원들이 토의한 대목에 이르자 종이가 검게 변했습니다. 한 줄이나 한 문단이 아니었습니다. 17쪽이 통째로 검은 사각형이었습니다. 그 17쪽에는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위원들이 무엇을 사실로 인정했는지, 어떤 근거로 조치의 수위를 정했는지. 불복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바로 그것입니다.   법은 이미 ‘공개하라’고 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1조는 학폭위 회의를 비공개로 하되, 단서를 하나 달아 두었습니다.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회의록 공개를 신청하면 학생과 가족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위원의 성명 같은 개인정보를 빼고 공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여야 한다”입니다. 2011년 법 개정으로 들어간 조항입니다. 법이 지우라고 한 것은 이름입니다. 내용이 아닙니다. 누가 말했는지를 가리라는 것이지, 무엇을 말했는지를 가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개인정보’라는 말이 자꾸 넓어집니다. 이름을 지우던 펜이 문장을 지우고, 문단을 지우고, 결국 쪽 전체를 지웁니다.   다른 지원청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저는 여러 지역 교육지원청의 학폭위 회의록을 받아 보았습니다. 많은 곳이 학생과 위원의 이름, 학년과 반처럼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만 최소한으로 가리고 공개합니다. 위원들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어떤 사실을 두고 토의했는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처럼 위원 토의 전체를 통째로 가린 회의록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같은 법, 같은 조항인데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받아 드는 회의록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해석의 차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 비정상적인 처리입니다.   비공개 이유가 세 번 바뀌었습니다 보호자가 왜 가렸느냐고 해당 교육지원청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처음 들은 답은 ‘법령상 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법령이 내용 전체를 가리라고 하는지 다시 묻자, 이번에는 목격 학생 등 제3자의 진술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주여 뒤 서면으로 온 답변에는 이유가 더 늘어 있었습니다. 관련 학생들의 진술, 심의 결과에 따른 조치 사항, 그리고 표결 내용. 조치 사항은 이미 서면으로 통보된 내용입니다. 받은 사람에게 다시 감출 이유가 없습니다. 표결 내용은 더 이상합니다. 위원 몇 명이 어느 쪽에 손을 들었는지는 학생의 개인정보가 아닙니다. 법이 빼라고 한 것은 위원의 ‘성명’뿐입니다. 목격 학생의 진술은 보호해야 합니다. 다만 보호하는 방법은 그 학생의 이름과 학년, 반을 지우는 것입니다. 정보공개법은 공개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눌 수 있으면 나누어 공개하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17쪽을 통째로 가렸다는 것은 나누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유가 세 번 바뀌었다는 사실은 한 가지를 말해 줍니다. 가리기로 먼저 정하고, 이유는 나중에 찾았다는 것입니다.   녹음은 폐기됐고, 회의록은 가려졌습니다 더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교육청은 국민신문고 답변에서 심의 녹음 파일을 회의록 작성의 보조자료로 쓴 뒤 폐기했다고 밝혔습니다. 학폭위는 속기록이나 녹음 기록을 남겨야 하는 회의가 아니고, 회의록에는 발언 전체가 아니라 요지만 적으면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녹음은 사라졌습니다. 회의록에는 요지만 남았습니다. 그 요지마저 검게 칠해졌습니다. 심의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하나씩 닫히다가, 마지막 하나까지 닫혔습니다.   이유를 모르는데 어떻게 불복합니까 학교폭력 조치에 불복하는 길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입니다. 청구인은 처분이 왜 위법하거나 부당한지 구체적으로 다투어야 합니다. 사실을 잘못 인정했다면 어느 사실인지, 판단이 지나쳤다면 어느 판단인지 짚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정심판 청구서를 쓸 때 가장 먼저 펼치는 자료가 회의록입니다. 판단의 근거가 검게 칠해져 있으면 청구서는 짐작으로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눈을 가린 채 과녁을 맞히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이 당사자에게 회의록 공개를 의무로 정한 이유가 바로 이 불복권입니다. 이 문제는 피해 쪽과 가해 쪽을 가리지 않습니다. 조치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는 피해학생 보호자도,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가해 지목 학생 보호자도, 판단의 이유를 알 권리는 똑같습니다. 심의가 늘수록 이 권리를 묻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전국 학폭위 심의 건수는 2021학년도 1만 5653건에서 2025학년도 2만 9405건으로,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가정이 언젠가 검은 사각형을 받아 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불복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버립니다 다른 지역에서 행정심판을 준비한 보호자들은 대개 회의록을 받으면 곧바로 청구서 작성에 들어갑니다. 판단의 근거를 읽고, 다툴 지점을 고르고, 서면을 쓰는 데 시간을 씁니다. 이 보호자는 달랐습니다. 조치를 통보받은 지 한 달이 지나도록, 회의록 하나를 온전히 받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다시 청구하고, 담당자와 통화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행정심판은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안에 청구해야 합니다. 그 기간의 3분의 1이 본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흘러갔습니다. 시간보다 더 크게 잃은 것은 힘입니다. 불복 절차는 원래도 길고 고됩니다. 그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보호자는 이미 지쳤고, 문턱에서부터 절망을 먼저 배웠습니다. 그사이 아이는 끝나지 않은 사건을 안은 채 매일 학교에 갑니다. 보호자와 아이 모두에게, 이 한 달은 회의록 몇 쪽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었습니다.   법을 바꿀 일이 아니라 법대로 할 일입니다 교육청은 답변 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육청이 법령과 달리 별도 기준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고, 공개 범위를 바꾸려면 법 개정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교육부에 건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건의는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법을 바꿔야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현행법은 이미 개인정보만 빼고 공개하라고 합니다. 그 교육청이 스스로 만든 비공개 세부기준에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새 법이 아니라, 있는 법을 있는 그대로 읽는 일입니다. 그래도 제도로 다듬을 것이 있다면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비공개할 때는 부분마다 근거와 이유를 적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이름과 학년, 반을 어떻게 지울지 전국에 같은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셋째, 녹음 기록은 적어도 불복 기간이 끝날 때까지 보존해야 합니다. 이 사안은 곧 교육지원청 정보공개심의회에서 다시 다뤄집니다. 17쪽 가운데 몇 쪽이 다시 하얗게 돌아올지 지켜보려 합니다.   이유 없는 판단은 ‘통보’입니다 학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던 시절, 저는 학교를 돌며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어른에게 말하라고. 말하면 어른들이 들어주고, 공정하게 판단해 줄 거라고.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듣고 판단을 내린 어른들은, 자신들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학폭위의 비공개 원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판단하게 하려는 것이고, 진술한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그 취지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법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정하면서도, 당사자가 요청하면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예외를 함께 두었습니다. 외부에는 닫되 당사자에게는 열어 두라는 뜻입니다. 이유가 적히지 않은 판단은 판단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통보만 받은 사람은 승복할 수도, 제대로 다툴 수도 없습니다. 검게 칠해진 17쪽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폭위의 판단이 존중받으려면, 먼저 그 판단의 이유가 당사자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름은 지우되 이유는 남기는 것, 법이 이미 요구하고 있는 최소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해당 사건의 보호자에게서 직접 제공받은 자료(정보공개 결정 통지서, 마스킹된 회의록, 교육청·교육지원청의 국민신문고 답변 등)를 바탕으로,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했습니다.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학생 이름과 학교명 등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2026-10-13 | hrights | 조회: 153 | 추천: 9
정한별/사회복지사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질문의 배경이 되는 기본 사실에 대한 후회 또는 반성의 의미가 묻어 있다. 살면서 수도 없이 후회하고 반성하며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되뇌곤 한다. 아빠 때문에 짜증을 내던 딸을 달래주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부터, 적극적 치료보다 자유로운 삶을 원한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한 결과가 생각보다 이른 이별이었다는 후회까지. ‘삶은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걱정의 연속’이라는 어느 염세주의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한 가족이 있었다. 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의 기대대로 어렵게 의대에 진학한 딸, 자신이 원하던 대로 영화인의 삶을 선택한 막내아들. 의대에 진학한 딸은 재학 중 갑작스레 조현병이 발병한다. 부모는 딸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진단조차 제대로 받지 않게끔 한다. 부모 자신이 의사라 자신들이 제일 잘 안다며… 환청과 망상으로 딸에게 돌발행동이 나타나자, 급기야 부모는 딸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쇠사슬과 자물쇠로 딸을 감금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막내아들은 촬영하기 시작한다. 촬영은 20년 동안 계속되었고, 딸은 감금된 채로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인지증(치매)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딸의 조현병 증상은 거짓말처럼 호전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얼마 전 한국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감독: 후지노 토모아키)>의 줄거리다. 후지노(아들, 감독)가 촬영한 마사코(딸)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마사코는 철저히 타자였다. 가족이지만 엄연히 타인인 마사코의 삶을, 부모가 결정하고 후지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관찰하는 모습. 영화 끄트머리에 “최선을 다했다”라며 자평하는 아버지와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고민하는 후지노. ‘딸을 위해 의대를 고집하고 공부를 강요하며 치료보다 가족에 의한 (왜곡된)보호가 최선’이었다며 자평하는 부모, ‘조금 일찍 치료했으면 마사코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로 가득한 동생(후지노). 관객인 ‘나’ 역시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생각하며 ‘빨리 치료했어야지, 가족이 잘못했네’라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영화는 마사코의 생각과 원하는 삶의 모습을 일부 보여주지만, 나는 마사코의 생각과 말을 정신과적 문제 증상으로만 이해하고, 마사코의 생각과 말, 삶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한국어판 포스터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려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상대가 이해할 방법, 상대가 주로 사용하는 소통의 방법을 사용하여 대화를 시도하고 대화의 속도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발달장애인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소통의 방식이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소통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소통의 방식과 있는 그대로의 수용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고려되지 않는다. 흔히, 와해된 언어라고 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말,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 나아가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일이 일상다반사이다. 생각해 보니,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아예 상대방과의 대화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장애 여부와 관련이 없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있다면,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려 한다. 아이의 옹알이를 이해하려는 부모, 영미권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 생활까지 자처하는 사람들. 이러한 엄청난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가 들릴 것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지적처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당사자는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 관심과 열린 태도는 의외로 힘이 강하다.  
2026-10-06 | hrights | 조회: 197 | 추천: 3
김성은/ 서울신문 기자   필자가 대학원 시절, 사주 보는 족족 척척 맞추는 명리가를 찾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 손에 이끌려 대학교 앞 사주집을 찾은 날이 있었다. 을지로 일대를 거쳐 대학가로 오기까지 십수 년간 수천 명의 팔자를 짚어주었다는 나이 지긋한 명리가였다.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꼬치꼬치 질문을 퍼붓는 필자를 상대로, 그는 길고 긴 사주 풀이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복채 값을 다 털어 넣은 긴 이야기의 끝자락. 그는 내게 반드시 명심하라며 묘하게 재밌는 비유 하나를 던졌다. “사주라는 건 결국 자신이 경차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잘 빠진 고급 중형차로 태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에 불과하오. 하지만 그 차 앞에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놓일지, 날카로운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자갈밭이 깔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경차라도 운 좋게 고속도로를 만나면 제 분수와 능력을 넘어서서 쌩쌩 달릴 것이고, 아무리 강력한 고급 중형차라도 자갈밭을 만나면 사정없이 덜컹거리며 경차만도 못한 속도로 겨우겨우 기어가게 되는 법이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말입니다. 사람이 쏟아붓는 노력이 그 길의 모양새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거요. 경차라도 나태해지면 고속도로가 순식간에 자갈밭으로 바뀔 것이고, 고급 중형차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자갈밭을 매끄러운 고속도로로 바꿀 수 있는 법이지.” 주야장천 사주 풀이를 늘어놓던 그가 막판에 이런 운명 개척론을 피력하자, 필자는 “그럴 거면 사주는 뭣 하러 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허허 웃으며 “어찌 보면 그 말도 틀린 게 없네” 하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사주팔자 맹신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은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묵직한 지론을 덧붙였다. 타고난 배경이 휘황찬란하게 좋아도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래성과 같다는 일침이었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문득 그 명리가가 남긴 비유가 다시금 떠올랐다. 온갖 군상을 상대하며 쌓아 올린 그의 혜안이 태생의 그늘과 노력으로 얽히고설킨, 한 인간의 복잡한 삶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가 내게 진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뭐였을까. 타고난 배경이라는 불평등한 도로,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개인의 노력이라는 엔진. 이 두 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통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영에게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빛나는 이력은 한동안 세상이 깔아준 매끄러운 고속도로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방송에서 그와 같은 배경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후광의 학습 효과가 아니었을까. 이는 가문으로부터 세습된 ‘상징 자본’이 만들어낸 달콤한 환상이었다. 그러나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탄탄대로라 믿었던 길은 일순간에 사정없이 덜컹거리는 자갈밭으로 변해버렸다.   하영 증조부 친일파 논란 이후 접속이 폭주한 ‘뿌리를 찾아서’ 홈페이지 갈무리   이 반전을 두고 누군가는 친일파 후손을 향한 통쾌한 응징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현대판 연좌제라며 혀를 찬다. 물론 친일 행적에 대한 역사적 청산과 책임 규명은 그 자체로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이 소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화두는 한 연예인의 수난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애초에 하영이 집안 배경을 앞세워 후광 효과를 누리려 했던 것도, 이제 와 비난받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배경, 즉 ‘어떤 도로에서 출발했는가’를 그 사람 자체의 가치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배경에 열광했던 시선과 그 이면에 등을 돌리는 시선은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은 ‘그가 어떤 도로에서 출발했는가’라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노력과 인성이라는 그 본연의 엔진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4대째 내려오는 의사 집안이든 아니든, 유복하게 자랐든 지독한 가난을 버텼든, 어떤 지역에 살든, 얼마나 비싼 집에 살든, 부모가 있든 없든, 누구 손에서 자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그가 어떤 힘으로 달리고 있느냐다. 오롯이 자신의 실력과 됨됨이라는 엔진만으로 자갈밭을 뚫고 나아가려는 이에게, 우리는 선입견을 거두고 그 본연의 진가를 가늠해 줘야 한다. 세습된 후광에 기댈 필요도, 선택할 수 없었던 배경 때문에 억울하게 재단당할 이유도 없다. ‘개인의 엔진’만을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참된 공정의 길목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2026-09-22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4
이승은/ 학교폭력 행정사 · 전 학교전담경찰관   지난 칼럼에서 한 아이의 이야기를 썼다. 교문 앞에서 돌아선 아이, 서명 한 장으로 사건이 지워졌다가 서면 한 통으로 되살아난 이야기. 그 아이는 지금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렀고, 나는 비슷한 자리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만났다. 장애가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사건이 다르지만, 이 아이들이 절차 안에서 부딪히는 벽의 형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었다. 오늘은 그 닮음에 관해 쓴다.   덩치 큰 아이, 도윤 도윤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지적장애가 있고, 키가 182센티미터, 몸무게가 95킬로그램이 넘는다. 체격만 보면 누구도 이 아이가 괴롭힘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 학생들은 정확히 그 지점을 알고 있었다. 도윤이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형제 역시 지적장애가 있다. 같은 학년 238명 중에서 하필 그 형제의 이름을 골라 도윤이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애 자체를 조롱한 것이다. 놀림은 금세 신체 접촉으로 넘어갔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두 명이 도윤이의 유두를 열 차례 이상 꼬집고 비틀었다. 도윤이는 다섯 번 넘게 “하지 마”라고 말했다. 음수대 쪽으로 피했다. 두 명은 따라왔고, 같은 행위를 일곱 차례 이상 반복했다. 학생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유두가 노출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같은 날 오후,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도윤이의 복부를 때리고 도망갔다. 도윤이가 항의하러 가자 마구잡이로 폭행이 시작되었다. 복부, 옆구리, 명치. 책상을 밀어 의자에 부딪히게 했다. 그리고 뾰족한 연필로 얼굴을 찔렀다. 연필은 안경 아래 틈으로 들어가 눈에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곳까지 갔다. 팔에는 연필에 의한 찢어진 상처가 여덟 줄 남았고, 목에도 자국이 남았다. 도윤이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진단받았다. 심리평가에서는 자살·자해 고위험으로 판단이 나왔고, 실제로 자해 행동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해 학생이 도윤이가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학급에 퍼뜨렸다. 도윤이 가족이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사실이었다. 가해 학생의 보호자는 “스피커폰이 켜진 줄 모르고 말한 것을 친구들이 우연히 들었다”라고 해명했는데, 학교가 확인한 결과 가해 학생이 직접 만나서 말로 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도윤이가 돈 뜯으려고 학폭 신고한 거다”라는 말까지 돌았다. 사과편지가 왔다. "금요일에 장난친 거 미안해"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편지에 "2학기 회장도 됐어"라는 문장이 있었다. 실제로 그 학생은 반장에 당선되었다. 도윤이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진료 사실을 유포한 학생이 같은 반의 반장이 된 것이다.   말을 빼앗긴 아이, 시우 시우는 병원에서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은 6학년 아이였다. 같은 반 여학생 두 명에게 이른바 ‘어깨빵’-지나가면서 어깨를 부딪치는 행동-을 해서 학교폭력 신고를 당했다. 시우와 어머니는 어깨빵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했다. 세 차례나 자발적으로 사과문을 제출했다. 다투지 않았다.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신고 내용에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3월 말부터 가슴과 엉덩이를 고의로 매일 반복해서 접촉했다는 부분이었다. 시우는 이 부분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신고 내용이 형성된 과정이다. 담임교사가 시우에게 물었다. “여자아이들 허리, 엉덩이, 가슴을 쳤냐.” 시우가 “네”라고 답했다. 이 대답이 부위를 특정한 자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체 부위를 열거해서 묻는 폐쇄형 유도 질문이다. 아동의 진술을 청취할 때 권장되지 않는 방식이다. 권위 있는 어른이 부위를 나열하며 물으면, 아이는 “네”라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가 없는 아이에게도 그렇다. 언어적 핵심 정보 파악에 미숙하다고 진단서에 적혀 있는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사건에서 나는 두 가지를 갈라서 의견서를 썼다. 다툼이 없는 사실과 다툼이 있는 사실. 어깨빵을 한 것은 사실이고 시우도 인정한다. 그러나 특정 부위를 겨냥했다는 주장은 유도 질문에 의해 만들어진 답변에 기초하고 있으며, 수년간의 병원 진단 결과와 심리평가 소견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시우에게는 또 하나의 맥락이 있었다. 6학년이 시작되고 열흘도 안 된 시점에, 같은 반 아이들이 시우의 집 공동현관까지 따라 들어와 다툼이 있었다. 어머니가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 사건종별을 ‘학교폭력’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학기 초에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 시기에 시우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번 6학년은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이날 시우를 쫓아가 괴롭힌 아이들 무리 중에 어깨빵을 당한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학폭으로 신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UBC뉴스 <장애학생 10명 중 1명 피해, 전문가 기준 ‘빈틈’> 갈무리   세 아이가 부딪힌 같은 벽 지난 칼럼의 아이, 도윤이, 시우. 장애가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사건이 다르다. 한 아이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피해 학생이고, 한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 학생이며, 한 아이는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가해 지목 학생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절차 안에서 마주친 벽은 같은 재질로 되어 있었다. 첫 번째 벽. 아이의 말이 아이의 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 칼럼의 아이는 화장실에서 겪은 일을 어머니에게, 교사에게, 의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런 일이 있었죠”라고 답했을 뿐 즉각적인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윤이는 “하지 마”를 다섯 번 이상 말했다. 무시당했다. 시우는 “네”라고 한 마디 답했을 뿐인데, 그 한마디가 자기 것이 아닌 내용을 담은 채로 굳어졌다. 말해도 안 들리고, 말해도 왜곡되고, 말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된다. 이 세 가지는 같은 문제의 세 얼굴이다. 두 번째 벽. 장애 특성이 절차 안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의 진술이 시간순으로 정렬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장애의 특성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가 맞고도 되치지 않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반격이라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아이가 유도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것은 자백이 아니라 언어적 맥락 파악의 제한이다. 그런데 현행 절차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같은 칸에 넣는다. 비장애 아동과 동일한 조사 방식, 동일한 판정표, 동일한 기준. 세 번째 벽. 아이의 피해와 아이의 행동이 분리되지 않는다. 지난 칼럼의 아이는 화장실에서 폭행을 당한 뒤 도망치다 몸이 스쳤다는 이유로 역신고를 당했다. 도윤이는 사과편지와 반장 당선이라는 조합 앞에서 피해를 계속 호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진료 사실 유포라는 2차 가해까지 감당해야 했다. 시우는 인정한 행동과 인정하지 않은 행동이 뒤섞인 채로 심의에 올라갔다. 이 아이들의 사건에서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은, 장애 학생의 행동이 맥락에서 떼어져 독립된 가해행위로 취급되는 것이다. 두 달간의 피해 위에 얹힌 5분간의 반응이, 두 달을 지우는 것이다.   절차가 아이를 두 번 다치게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피해를 당하는 게 첫 번째 상처다. 그 아이가 도움을 구했을 때 제도가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보호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아이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우는 것이 두 번째 상처다. 첫 번째 상처는 가해 학생이 주고, 두 번째 상처는 절차가 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더 오래 남는 것은 대개 두 번째 상처다. 아이들은 맞은 것은 잊어도, 말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5년에 학폭위 위원에 장애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하고 요청 시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2026년 3월에는 이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현행법의 “할 수 있다”를 “하여야 한다”로 바꾸는 법안이다.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법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심의는 계속된다. 전문가 없는 회의실에서 장애 학생의 진술이 평가되고, 장애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판정표의 칸이 채워지고 있다. 그 칸 하나의 점수가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무엇이 적히는지를 결정한다.   다시 한번, 같은 질문 지난 칼럼을 이렇게 끝냈다.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번에는 어른들이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세 아이를 만나고 나서 그 문장에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한 뒤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말했더니 역신고를 당하고, 말했더니 진술이 뒤집히고, 말했더니 가해자가 반장이 되는 세계에서, 다음 아이에게 “말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도윤이는 아직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다. 시우는 전학을 준비하고 있다. 교문 앞에서 돌아섰던 아이는 여전히 밖에서 또래를 마주치면 차도로 뛰어드는 행동을 보인다. 이 아이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장애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같다. 자기가 겪은 일을 제도가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해 줄 누군가다. 그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절차 안에 의무적으로 있어야 한다. 자비로 고용해야 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찾을 수 있는 가정만 사건을 지킬 수 있고, 찾지 못하는 가정의 사건은 서명 한 장으로 사라지는 구조를, 우리는 공정하다고 부를 수 없다.   ※ 알림: 본 칼럼에 등장하는 세 아이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학교명·지역·일자 등 사건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제외하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사실관계의 최종 판단은 관할 심의위원회 및 행정심판위원회의 몫입니다.  
2026-09-14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5
신종환/ 공무원   전임으로 활동하던 지부장의 정년이 내년 상반기로 다가오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가능한 한 미루고 싶었던 사무차장을 맡고, 노조 전임활동을 하게 되었다. 사무차장을 맡으니, 처음 노조 청년부에 들어갔을 때 ‘청년부니까 나 말고도 또래가 있겠지…’라는 지금 돌이킬 수 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 떠오른다. 가보니 또래가 한 명 있긴 했는데, 그는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같은 소수 직렬 대선배에게 잡혀 온 것이었고 몇 차례의 탈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그는 지금도 청년부장을 맡고 있다. 사무차장을 하면서 윗세대들과의 차이가 생각보다 실질적이고 크다는 걸 느낀다. 몇 차례 상경 집회에 참석하여 현장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사담을 하게 되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간부 조합원들이 종종 “지금 젊은 세대 조합원들도 집회에 참여하면 느끼는 게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텐데 아쉽다”라는 말을 하거나, 집에 가려는데 “고생했는데 술 한잔 사줄게”라는 말을 할 때 그게 진심이라는 게 느껴져서 좀 당황스럽다. 한편으로는 선배 조합원들이 왜 흔쾌히 내가 9급일 때부터 나에게 신규자 교육을 일임했고, 지금까지 별다른 터치가 없었는지도 막연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신입이 뭔가 하겠다는 게 마음이 들기도 했고, 또 그들에게는 그 잠깐의 교육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노조의 이름으로 영화 모임이나 여름 서핑 강습도 해보고, 4·3 제주 역사 기행도 가고, 광주도 가고, 백두산도 가봤지만 새롭게 임용되는 조합원들에게 어필하기 적절하다는 느낌의 사업을 찾지는 못했다. 올해 초 승진 인사에 대한 조합의 성명으로 인해 몇몇 조합원이 탈퇴하면서 가입자가 500명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아서 소심한 내가 더 노심초사한 면도 있겠다. 노조의 간부로 있으나 무언가 사업을 하고자 하면 참여하기에 앞서 부서의 눈치를 보게 되는 직원들, 혹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 외에 모든 참여 제안을 추가 업무로 인식해서 피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심리가 내게는 더 크게 보였고, 이를 신경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대부분의 조합원 마음이 그럴 거라는 약간의 확증편향 속에 있었다. 그런 나의 확증편향은 어느 정도는 맞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틀리기도 했다. 지난 7월 11일 교사·공무원 노동자 대회에서 50명을 모집하기 위해 휴일수당도 상향하는 등 추가적인 지원을 결의하고 넓게 홍보했으나 조합원 가족을 포함해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모였고, 과반은 간부들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참석 권유에도 각종 집회나 행사에 조합원들의 참여 실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선배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낙관적인 선배들을 보며 브나로드 운동의 지식인들이 연상되는 한편, 이 어둡다 못해 없는 것 같은 조합의 미래를 그들은 왜 모르는지, 그런 전임 자리를 내가 왜 맡았는지 하루하루 회의감과 도주 충동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드문드문 신규 가입원서가 답지해서 두어 달간 십여 명의 조합원이 새로 가입했다. 또 한편으로는 받고 싶은 선물이나 했으면 하는 사업을 거리낌없이 말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조합원들을 보며 새삼 수백 개의 조합은 여러 레이어가 겹쳐 있고 여러 시간과 시선이 걸쳐 있어서 단일한 방법론도 단일한 몰락 요인도 없고, 나아가 아주 틀린 방법론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제공 이미지   작고하신 홍세화 선생님께서 예전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강연자로 초청받으셨을 때, 노조 간부들이 주식투자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며 한탄하셨다는 글에 찔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럼, 무슨 얘기를 하지? 작고하시기 이전인 23년, 24년에도 당시 지부장과 간부들은 존 리 같은 유명 투자 강사를 부를까 논의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내일인 9월 8일 화요일에 열리는 우리 지부 총회에서도 조합원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재테크와 주식투자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연다. 선생님의 말씀에 찔리면서도 의아했던 까닭을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처음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질 당시 구성원들의 결의는 진보적이었고 또한 진보적으로 살았지만, 그 토대 위에 입성한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공무원노조 진군가에 서린 결의와 진보를 모르고, 샤일록 같은 수전노는 아니나 이익집단의 시선으로 노조를 인식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리라. 노조의 기조는 피로 쓰였지만, 나를 비롯한 후임자들은 피를 흘려본 적도 흘릴 까닭도 모르기에. 하지만 수지타산으로만 조합원들의 의중이 채워져 있다면 애초에 조합 자체는 붕괴했을 것이다. 공무원의 특성상 어차피 조합이 투쟁으로 이뤄낸 급여 인상이나 제도 개선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탈퇴보다 알음알음 가입해 주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건 어떤 마음이 교집합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나름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있다고 느낀다. 조합을 보며 느낀 불안은 예전의 진보적 기지가 있었고 진보적 삶을 살고자 했던 초기 조합의 선배들과 지금의 세대는 다르고, 그래서 공동체성을 응집해서 투쟁의 동력을 다시 확보한다는 발상 자체가 하나의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방팔방에 흩어져 없는 것 같지만 여러 정황으로 존재하는, 마치 암흑 물질처럼 되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옅은 애정을 어떻게 대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지레 실망해서 도주하지 말고, 조심히 관찰하며 배양해야겠다.    
2026-09-08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4
김태형/ 프리랜서 방송작가 민주당TV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민주당TV에 대한 언론사의 제목들을 보면 기대보다는 싸움을 붙이는 듯하다. - JIBS <민주당, ‘김어준 맞불 방송' 띄운다...민주당TV 진행자도 확정> - 한국NGO <민주당, 김어준과 맞장뜬다> - 한국경제 <‘김어준 대항마' 민주당TV 출범>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이유는 민주당TV가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과 동시간대에 방송이 되고, 김민석 민주당대표가 직접 출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벌써 ‘맞불 방송이다’, ‘김어준 방송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 방송은 출발점이 다르다. 민주당TV에 대해 민주당은 경쟁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을 위한 방송이라고 설명한다. 진보와 중도를 아우르는 열린 플랫폼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 공식 방송이라는 점이다.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은 김어준이라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 방송이다. 김어준 씨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의제와 출연자를 정하고, 시청자의 선택을 받아 광고와 후원 등으로 수익을 얻는다.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이 진보진영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하나 민주당의 공식 방송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결정에 책임지는 조직도 아니다. 김어준 씨의 판단과 민주당의 선택이 언제나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두 방송의 목적과 목표는 다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계속에서 민주당TV가 김어준 씨의 개인방송에 대한 맞불 방송이라고 한다. 만약에 민주당TV가 갑자기 생긴 거라면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민주당TV는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인 ‘델리민주’에서 ‘민주당TV’로 간판을 바꾸고 새로운 구성과 함께 더욱 많은 사람이 보도록 확대한 것이다. 민주당TV의 기획은 김어준 씨 개인방송 맞불용이 아니라 유튜브가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2030세대가 적극적으로 시청하고 있는 만큼 기존 민주당 공식 방송 ‘델리민주’를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핵심 아니었을까 한다.     민주당TV는 달라야 한다. 민주당이 중심이 되고 당원의 목소리를 담는 방송이어야 한다. 지도부가 당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고, 그 내용에 정치적인 책임까지 지는 방송이어야 한다. 김어준 방송은 김어준 씨의 길을 가면 된다. 민주당TV는 민주당의 길을 가면 된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TV가 김어준 방송의 시청자를 빼앗아야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쓸모없는 경쟁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민주당TV의 성공을 바란다. 그동안 민주당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정책을 왜 추진하는지, 지도부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론을 통해 추측만 해왔다. 다양한 추측은 논쟁을 불러오고 진위를 가리지 못하게 하고 오해를 만든다. 민주당TV가 그런 불필요한 과정을 불식시키길 바란다.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민주당TV만 할 수 있다. 정치적 쟁점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와 민주당 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바로잡는 노력이 민주당TV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당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도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정확한 목적과 목표를 갖고 간다면 민주당TV는 성공할 것이다. 그동안 정당 유튜브에서 볼 수 없었던 거대하고 믿음직한 항해를 통해 민주당의 또 하나의 역사가 되길 바란다.   한 가지 우려. 민주당TV가 지도부의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익숙한 인사들끼리 칭찬만 주고받는 방송이 된다면 오래갈 수 없다고 본다. 출연자 자리 챙겨주기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뢰할 수 없는 패널도 멀리해야 한다. 마지막의 민주당TV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것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2026-09-01 | hrights | 조회: 297 | 추천: 3
윤요왕/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우리 마을에 빈집들이 많은데 가격도 저렴하고 좋다. 한 채 구해서 가끔 놀러 오면 어떻겠냐?”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말이었다. 처음에는 웃어넘겼다. 일본 시골 마을에 집이라니, 생각만 해도 조금은 무모하고 엉뚱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정말 한번 해보면 어떨까?’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의 상상력을 건드렸고, 지난겨울부터 세 번이나 일본 돗토리현 치즈초를 찾아가게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곳에 오래된 빈집 한 채를 구했다. 매매도 가능하다 했으나, 일단 월세로 1년간 운영하면서 실험해보자고 결론 내고 지난 7월 21일 계약하게 되었다. 치즈초는 약 5,800명이 살아가는 작은 산촌이다. 유명한 온천도 없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름난 명소도 없다. 곧게 자란 삼나무와 깊은 숲,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 오래된 상점과 집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좋았다. 관광지로 포장되지 않은 일본의 시골 일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면 작은 도서관과 오래된 사진관, 친절한 양과자점, 주민들이 장을 보는 가게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구한 집도 치즈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곳에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것은 사람들이었다. 낯선 한국인들이 마을을 여러 차례 찾아와 이것저것 묻고 돌아다니는데도 귀찮은 기색 없이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빈집을 소개하고, 사람을 연결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관심을 가진다. 거창한 환영식이나 잘 짜인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동네를 함께 걷는 일, 자기 마을의 사람을 또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환대는 본래 이런 것이 아닐까. 낯선 이를 특별한 손님으로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이곳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 말이다.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면서 떠나오기 전에 이사 떡을 이웃 주민들에게 돌리면서 인사를 드렸다. 그 덕이었을까? 8월 한 달 집사 청년들에게 일부러 찾아와 안부를 묻고, 현관문을 고쳐주며, 쓰레기를 치워주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른 한편으로 치즈초를 찾으며 다시 일본의 ‘작은 자치’를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읍·면에 해당하는 정·촌이 하나의 자치단체다. 작은 시골 마을에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 지난해 일본의 ‘작지만 빛나는 지자체 포럼’에 참석했을 때 아치무라 전 촌장이 했던 말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사람은 자기결정의 폭이나 양이 클수록 행복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수록 보람을 느낀다.” 작은 자치는 단순히 행정구역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삶과 마을의 일을 스스로 의논하고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국가나 큰 도시가 정해준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자기 마을에 필요한 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빈집을 어떻게 쓸 것인지, 아이들과 어르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외지에서 온 사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도 마을의 중요한 자치다. 그런 작은 결정과 실천이 쌓여야 주민주권도, 실체적 민주주의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농촌에도 빈집이 늘고 있다. 사람이 떠난 집은 빠르게 낡고, 불이 꺼진 집이 늘어날수록 마을도 함께 어두워진다. 정부와 지자체는 빈집을 고치고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사업을 계속한다. 그러나 공간만 고친다고 마을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머물 사람, 사람을 맞이할 관계, 공간을 함께 돌볼 주체가 없다면 잘 지어진 건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빈공간이 되고 만다. 결국, 공간을 살리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은 관계다. 그러니 우리가 만들려는 집은 화려한 숙박 시설이 아니다. 이름은 ‘치즈 For:rest’, 나무처럼 살고, 숲처럼 연결되는 집이다. 혼자 온전히 쉬되 고립되지는 않는 공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는 공동 식탁에 앉고,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자기 방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을 상상했다.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디를 가야 한다는 일정도 없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창가에서 숲을 바라보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동네 가게에 장을 보러 가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눈치 보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만큼만 사람과 마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늘 바쁘다. 유명한 곳을 찾아가고, 사진을 찍고, 무엇인가를 먹고 경험하느라 여행지에서조차 쉬지 못한다. 사람들과 계속 어울려야 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부담스럽고, 완전히 혼자 머무는 숙소에서는 문득 외로워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함께’와 ‘혼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인지 모른다. 환대하되 간섭하지 않고, 연결하되 얽어매지 않는 관계 말이다.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갈무리   이 집에는 지역 활성화, 마을 교육, 농촌 유학, 사회적 경제, 농업, 출판과 로컬 브랜딩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온 15명이 추진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이나 단순한 수익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추진단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할, 십시일반 펀딩에 참여하는 모두가 이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돈을 낸 사람이 더 큰 목소리를 갖는 구조도, 누군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누군가는 소비만 하는 관계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집을 함께 고치고, 필요한 물건을 보태고, 한 달씩 집사가 되어 공간을 돌보고, 치즈초에서 만난 사람과 장소를 다음 방문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함께 주인이 되고자 한다. 함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소유권을 나눈다는 뜻만은 아니다. 이 공간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고장 난 곳이 있으면 함께 걱정하며, 이곳에서 만난 인연을 오래 이어가는 것이다. 누군가 다녀간 뒤 남긴 방명록을 다음 사람이 읽고, 한 달 집사가 기록한 마을 이야기를 또 다른 방문자가 이어가는 것. 그렇게 공간의 기억이 한 사람에게 독점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시간으로 쌓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쉐어 하우스의 의미다. 이번 펀딩에 참여하는 분들도 단순한 구매자나 숙박객이 아니라 이 집을 함께 만드는 ‘멤버’라 부르기로 했다. 빈집에 다시 불을 켜고, 공동 식탁과 의자를 놓고, 벽지와 문을 고치고, 마을 산책 지도를 만드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사람들이다. 공간은 치즈초에 있으나 그곳을 함께 염려하고 찾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 도시와 농촌을 넘나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창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늘 함께해야 하는 끈끈한 공동체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과 뿌리를 지키면서, 필요할 때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작고 느슨한 숲을 만들고 싶다. 한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로 온전히 서고, 그 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연결되어 숲을 이루는 모습 말이다. 빈집 한 채를 되살린다고 일본이나 한국이나 농촌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농촌소멸에 대한 답도 곧바로 찾을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집에서 자신의 속도를 되찾고, 누군가는 국경 너머의 동료를 만나고, 또 누군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치즈초에서 배운 작은 자치와 환대의 경험이 우리 마을로 돌아와 또 다른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채의 빈집에서 시작된 작은 상상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공간은 사람이 머물 때 집이 되고, 함께 돌볼 때 공동체가 된다. 올여름, 치즈초의 오래된 빈집에 다시 불이 켜졌다. 그 불빛이 지친 누군가에게는 쉼이 되고, 외로운 누군가에게는 연결이 되고, 우리나라 농촌 마을 곳곳에도 조금 다른 삶을 상상하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2026-08-18 | hrights | 조회: 992 | 추천: 7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최근 로힝야 난민 송환을 둘러싸고 중대한 논쟁이 발생했다. 지난 7월 29일 말레이시아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미얀마와의 협상을 통해 말레이시아 체류 난민 5,000명과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의 30만 명을 미얀마로 송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후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가 아닌 ‘신원이 확인된 국민’의 송환일 뿐이라 선을 그었고, 방글라데시 당국 역시 30만 명 송환 계획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말레이시아 정부도 8월 5일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으면 송환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외교적 성과로 포장된 발표가 불과 일주일 만에 실체 없는 모호한 검토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로힝야 난민들이 고향을 외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근 사단법인 아디가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700여 명의 로힝야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들의 궁극적 바람은 고향으로의 복귀임이 명백히 확인됐다. 하지만 ‘강제적 송환’과 ‘존엄한 귀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콕스바자르에서 활동하는 한 로힝야 인권활동가는 현지의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과 우리의 시민권이 보장되는 귀환입니다. …  저희는 저희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진. 2026년 5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인근에서 로힝야 여성활동가와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디 활동가들, 출처: 사단법인 아디>    이 목소리가 이번 논쟁의 본질이다. 진정한 귀환이란 단순히 미얀마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과 법적 지위, 토지·주거권, 이동과 기본권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삶으로의 복귀다. 나아가 2017년 로힝야에 대한 집단살해와 박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미얀마 라카인주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미얀마 군부와 아라칸군(AA) 간의 격렬한 교전 속에서 로힝야 민간인들은 강제징집과 학살, 차별이라는 이중 삼중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2017년 로힝야를 대규모로 추방하고 살해한 미얀마 군부는 지금도 로힝야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20년 로힝야를 집단살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잠정조치를 명령했음에도, 미얀마 군부정권은 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책임 요구를 부정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난민 송환 협상이라는 명목하에, 집단살해의 가해자이자 쿠데타로 정통성을 잃은 미얀마 군부정권을 정상적인 외교 대화 상대로 세우며 정치적으로 용인하려는 아세안과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불법적인 군부정권에 외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래 방식으로는 로힝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질문은 ‘미얀마가 몇 명을 언제 돌려받을 것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얀마는 누구를 국민으로 인정하고, 돌아온 로힝야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여야 한다.  난민의 장기화로 인한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의 부담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박해의 위험이 도사리는 사지로 난민을 밀어내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박해받을 위험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쿠데타 정권과의 외교적 타협보다 우선하는 국제법 규범이다.  로힝야의 귀환은 체류국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불법 정권을 정치적으로 양성화하기 위한 행정적 수단이 아니라, 난민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귀환은 각국의 정치적 시선이 아닌, 돌아가야 할 난민 당사자의 시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26-08-10 | hrights | 조회: 403 | 추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