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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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사회복지사 지역사회에서 운영되는 다수의 사회복지 관련 기관들은 어린이날 즈음에 어린이날 기념 행사를 하곤 한다. 지역의 어린이날 기념 축제에 참여해서 행사를 하다 보니, 어린이날 혹은 어린이날 전의 주말은 우리 아이들이 아닌, 남의 아이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노는 일이 잦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이 일이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일에도 무리가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작년 어린이날 축제에는 비가 왔다. 축제가 예정되어 있던 날에 비 예보가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어린이날 당일, 같은 장소에서 축제를 진행했던 역사가 있으니 비가 오더라도 축제 일자를 변경할 수 없으며, 축제에 참여하는 기관들도 함께 해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이 있었다. 결국 비옷 속이 땀으로 젖은 것인지 비로 젖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흠뻑 젖은 채로 아이들을 만났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서 어린이날을 축하했고,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를 치르고 난 뒤의 평가회의에는 내년 축제에 비 예보가 있다면 행사 일자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축제를 진행한 어른들도, 참여한 아이들도 모두 만족한 축제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회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은 흘렀고 2025년의 어린이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어린이날 축제 역시 비 예보가 있었다. 비 예보만이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올해는 주말과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대체공휴일이 연달아 있는 소위 황금연휴였다. 축제 기획회의에는 작년과 같이 축제 일자를 변경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축제를 주최하는 단체에선 “이 축제는 어린이날에 이런 축제가 아니면 즐거운 추억을 갖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반드시 어린이날 당일에 같은 장소에서 축제를 해야 한다” 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공감 가는 설명이었지만 나는 물론, 함께 하는 동료들도 모두 가족과의 계획을 이미 정해두고 있었기에 나의 가족과 동료들을 설득할 힘이 부족했다. 결국 어린이날 축제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린이날을 한 주 앞둔 주말, 한 아이를 만났다. 오후 2시에 만난 아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먹을 게 마땅 치 않아서 과자를 건넸다. 허겁지겁 먹는 아이의 점퍼는 많이 지저분했고 맨발에 신은 고무 샌들 역시 지저분했다. 아이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사무실 안의 공기도 금세 달라졌다. 아빠와 단둘이 사는 아이는 집에서는 주로 컵밥을 먹는다고 했다. 한식류를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에는 밥솥도 없다고 했다. 아빠가 집에 오지 않는 날에는 조금 무섭긴 하지만 혼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다가 혼자 자고, 늦게 일어나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그러다 보니 한 달에 5번 정도 학교에 가지 않은 적도 있다고. 아이는 밥을 먹을 수 있고, 혼자가 아니어도 되는 학교와 지역아동센터가 집보다 좋다고 했다. 아빠와 함께 집에 있어도 서로 휴대전화만 보며 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는 벌레가 많고, 주방에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특별히 불편한 점이 없다고 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에게 바라는 게 있어? 아빠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없어요.” 아이는 여덟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너무 조용했고 너무 지쳐 보였다. 방임도 학대다. 아이를 방임하는 부모들은 대개 비슷한 변명을 한다. ‘바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있지 않나. 깨끗하지 못한 의복과 환경, 균형 잡힌 식사 제공도 어쩌다 보니 놓친 것이다. 일부러 밥을 주지 않은 것도 돌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이에게 욕을 하거나 때린 것도 아니다. 단지 사는게 팍팍해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었고 아이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던 것뿐인데, 이게 어떻게 학대인가.’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방임도 학대가 맞다. 충분히 사랑을 받고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면 아이의 신체 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에, 방임도 다른 유형의 학대처럼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2024)에 따르면,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방임하는 행위(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 즉,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한 환경에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 아동에게 필요한 의료처리를 하지 않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는 행위, 아동을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행위는 전체 아동학대에 7.7%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치상으로 보면, 방임이라는 학대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방임은 다른 유형의 학대와 함께 일어나는 특성이 있으며, 방임이라는 행위 역시 아동학대라는 점에서 다른 유형의 학대보다 그 피해가 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아동학대 사망 아동의 수는 42명이다. 이 사망사례의 아동학대 유형을 살펴보면, 신체학대 61.9%(26명), 방임 23.8%(10명)이며, 사망 사례 행위자의 유형은 부모가 85.7%, 그중 친부 38.1%, 친모 45.2%로 나타나고 있다. 사망 아동의 연령은 6세 이하 영유아가 61.4%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1세 미만이 22.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3세 11.4%, 5세 11.4%, 8세 9.1%).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 풍족한 가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 풍족하지는 않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따뜻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 폭력적인 가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검은 문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왔다. 어린이날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나 쥐어주고, 놀이동산에 데려가며 휴일을 즐기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평소에 어떻게 아이들을 존중했는지 돌아보며, 아이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하는 날이다. 백 년 전 소파 방정환이 어른들에게 요청한, 아이들을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봐 달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2025-05-07 | hrights | 조회: 31 | 추천: 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촌이라 불리는 로힝야 난민캠프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방콕과 다카를 경유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도착하는 데만 하루 반이 걸렸고, 그곳에서 난민캠프까지는 다시 차량으로 2~3시간을 더 이동해야 했다. 편도 2차선 도로 위에는 삼륜차, 자전거, 버스, 마차, 그리고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었고, 끊임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 속에서 우리는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 끝에 캠프에 닿을 수 있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싼 이곳에는, 2017년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피해 넘어온 75만 명의 로힝야 난민들, 그리고 199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온 초기 난민들, 최근 라카인 지역의 내전 속에서 다시 길을 떠난 이들까지,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35개 캠프에 나뉘어 살아가고 있었다. 방글라데시는 이들을 받아들였지만, 이동과 교육, 노동을 제한하는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펴고 있다. 각각의 캠프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관리 기구(CIC)와 로힝야 난민구호 및 귀환 위원회(RRRC)의 감독 아래 운영된다. 로힝야 캠프 14 모습 아디가 활동하는 캠프 14에 발을 들이자 가장 먼저 코를 찌르는 악취가 다가왔다. 대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쉘터(임시 거주시설)에는 천막이 덧대어져 있었고, 지붕 역시 대나무와 천막으로 간신히 덮여 있었다. 창문도, 튼튼한 문도 없었다. 햇빛을 모은 태양광 패널로 최소한의 전기를 공급받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전기는 쉽게 끊겼다. 거주지 옆으로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렀고, 하천은 폐수와 쓰레기로 썩어가고 있었다. 오염된 물이 땅에 스며들어 다시 생활용수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웠다. 몬순(우기)이 오면, 범람한 오염수가 집 안까지 들이닥쳐 가재도구마저 썩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흙바닥이나 거칠게 다져진 시멘트 바닥 위에, 적게는 다섯 명, 많게는 열 명 이상이 한 공간을 나누어 살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면 신기한 눈으로 다가와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넸다. 경계보다는 웃음이 먼저였다. 13~14㎢, 여의도의 네다섯 배 정도 되는 이 좁은 땅에 10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살아간다.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로 꼽히는 다카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은 일할 자유도, 이동할 자유도 없이 8년째 외부의 구호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단법인 아디는 이곳에서 8년 동안 로힝야 여성들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 활동과 문해·수리교육,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왔다. 글을 읽게 된 여성들, 바느질을 배워 소득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때로는 작은 변화가 눈에 보이기도 했다. 아디의 현지여성들의 공간인 샨티카나(평화의집)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는 로힝야 여성들 그러나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쉽사리 희망을 말할 수 없었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무너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현실 앞에서 압도당했다. 여기는 로힝야 난민캠프이다. 살아야 하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2025-04-29 | hrights | 조회: 308 | 추천: 10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여러분, 자유롭게 들어오십시오. 하지만 먼저 다음과 같은 규칙을 숙지하십시오. 이곳은 누구나 모욕 없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욕설을 하는 사람은 12펜스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은 속죄하기 위해 모든 손님에게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해야 합니다. 시끄러운 논쟁은 철저히 삼가십시오. 무례한 언어로 국가의 문제를 경솔하게 논하지 마십시오.“ 18세기 영국 커피하우스의 벽면에는 ‘커피하우스의 규칙과 질서’가 크게 게시돼 있었다. 입장료 1페니만 내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었던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사교의 공간이 아니었다. 귀족부터 평민까지 신분의 벽을 허물고 모여 시사, 혁명적 사상, 예술, 과학, 경제의 미래를 논의했다. 1714년 영국 런던에만 8000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신문과 팸플릿이 돌며 최신 무역 정보와 과학, 정치, 경제 담론이 실시간으로 오갔다. 심지어 아이작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커피하우스에서 실험과 토론을 벌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열린 토론의 장에서는 치열한 격론이 벌어질지언정, 품위와 절제 있는 대화를 지키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인신공격과 조롱은 용납되지 않았다.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 예의는 혁신의 씨앗을 틔웠다. 18세기 커피하우스에서 논의된 해상 무역, 금융, 과학 정보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닌, 산업혁명과 금융·과학의 발전을 이끄는 사상적 엔진이 됐다. 지금, 이 커피하우스 규칙을 우리나라 정치권에 적용하면 어떨까? ‘무례함’이 특정 정당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최근 논란이 된 ‘키높이 구두’ 발언은 한 사례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는 한동훈 후보에게 “키도 크신데 왜 키높이 구두를 신느냐”, “생머리인지, 보정속옷을 입었는지” 등 외모 관련 언급을 했다. 이에 한 후보 측은 홍 후보를 “눈썹 문신 1호 정치인”이라고 지칭하며 맞대응했다. 굳이 최근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 정치사는 이미 ‘커피하우스 규칙’에서 저 멀리 벗어난 지 오래다.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 하도 많이 해서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는 발언이 정치권을 얼어붙게 했고, 2009년 대정부질문에서 한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에 비교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2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여성을 비하하는 ‘그X’라는 욕설로 파문을 일으켰으며, 2020년 일본을 다녀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등신외교” 발언은 국회 파행을 가져왔다. 막말은 진보와 보수, 초선과 중진 가릴 것 없이 나타났다. 이런 품격 없는 언행은 국회 등 공적 토론장에서도 수없이 반복됐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의원 간 욕설, 고성, 인신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해 회의가 파행되는 사례가 다수 보도됐다. “한국 국회에서는 오히려 욕설과 싸움이 칭찬받는 분위기”라는 지적마저 나왔다. 만약 이들이 18세기 커피하우스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자리에 있던 손님들에게 커피값을 다 내야 하는 것은 물론, 같은 공간의 손님들 사이에서 대화 상대로 인정받지 못해 바깥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300여 년이 흐른 지금 커피하우스 규칙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품격 없는 정치가 혁신의 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기술은 그 자체로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 기술의 법·제도적 발판을 마련하고 발전 방향과 활용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게다가 지금의 기술 혁신은 18세기 산업혁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18세기에는 새로운 기술이 대중화되기까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렸지만, 21세기에는 AI와 같은 기술이 10년 이내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의 막말과 조롱이 난무하면서 사회적 갈등만 증폭될 뿐, 제도 변화의 동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미 AI·로봇 기술 도입에서 선도국에 비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의 품격 없는 언행과 불필요한 정쟁이 사회적 관심을 집어삼키며 그나마 더딘 혁신의 발목을 더욱 단단히 붙잡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품격 없는 정치를 용인하는 것도 결국은 대중이다. 커피하우스의 주인이 손님을 내쫓듯, 우리도 품격 없는 정치를 거부할 때가 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만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이성적이고 품격 있는 언어와 태도를 요구하는 ‘커피하우스 정신’이다.
2025-04-23 | hrights | 조회: 209 | 추천: 9
신종환 / 공무원 윤석열의 탄핵이 가결되었다. 시종일관 못난 꼬라지만 보였고 앞으로 더 많은 모자라고 시시한 꼬라지만 보일 그와 그 부인은 주렁주렁 이어질 심판을 남기고 있고, 어물쩍 억울한 듯 정의로운 듯 그와 거리를 두는 듯 아닌 듯한 그의 일당들이 남아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악역들은 나름의 품위 비스무리한 게 있는데 이제는 ‘전’이 붙은 정권의 놀라운 점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마음을 여러 차례 깨부순 것이다. 이제 그동안 유예되었던 미래를 다시 그리고 함께하며 또 정권의 그늘에서 고통받지만 가려져 있던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지만 탄핵 이후 내 마음은 줄 서 기다리는 민원인같이 시간은 오래 걸리고 보람도 새로도 주지 않은 일상의 슬픔과 피곤과 분노만이 정리되지 않은 아기방의 용품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시골의 폐해는 신영복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말을 ‘나’라는 주체는 나를 둘러싼 관계의 총합이라는데 나를 둘러싼 것들이 단순해서 덩달아 단순해지는데 이에 대한 저항보다는 일상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거기에 대한 한탄만 하다 내가 지향하는 나는 마모 되는데, 쿠팡 같은 광역 배달서비스는 자본주의의 최첨병이라서 편리함만 내가 추구하는 요인이 되어 딱 니체에 나오는 종말인간 일보직전의 사람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11시에 퇴근해서 글과 뉴스를 가까이 하는 것은 어렵지만, 업무시간 틈틈이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에서 옥석을 가리듯 신중히 주문할 것과 삭제할 것을 가리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즐겁고도 쉬운 일이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수도권민들아...너네도 여기 오면 힘들거다...봐라... 3월과 4월은 특히 힘들다기보다는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기간이었다. 산불이 크게 나고 우리 지역도 2019년에 큰 산불이 난 사례가 있었기에 때문에 완전 도심지역의 녹지부서를 제외한 대부분 시도의 녹지 부서와 이를 위시한 지역의 공무원들은 3월~4월 산불 비상근무를 편성해서 평일 주말 없이 근무를 했다. 남의 업무일 때는 위로를 건네던 친구들이 이제는 내가 주말 7시에 와서 산불예방 현장근무자들에게 주기 위해 하나하나 포장하는 빵과 두유가 맛이 똑같다며 피자빵이나 초코소라빵은 왜 없냐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사람이란 이렇게 쉽게 얄팍해질 수 있고 또 사람이란 왜 별것 아닌 일로 사회면에 나올 일들을 벌이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고, 비가 와서 산불근무가 일찍 끝나 기뻐하는 우리와는 달리 초과근무가 줄면 월 급여가 줄기에 기쁘지 않은 산불진화대원들의 아쉬움을 표하는 퇴근 무전을 듣고 순간 살짝 혈압이 오르는 스스로의 볼품없는 내면도 잘 볼 수 있었다.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선택을 누적해왔을 것이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내면을 갈무리하고 생활을 정돈하고 내면의 강도를 늘리겠지만 약자에게 비겁한 비탈길을 미끄러지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인 일이기에 나는 핑계만 바벨탑처럼 쌓아가며 생활을 무너뜨리고 소주병을 무너뜨리고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글을 쓰거나 강제로 삶 전반을 뒤돌아보게 되어 있는 활동을 하면 긴급제동시설에 들어간 차량이 멈추듯 반강제로 삶의 난장도 멈추는 것이다. 난장이 된 생활과 마음을 둘러보면 사람과 타인, 공동체라는 개념은 있지만 전혀 내게 와서 어떤 감각을 주지는 않는다. 당연하지만 나라는 개념과 이를 지탱하는 생활의 경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앎도 생명력을 잃는다. 삶의 생기가 없으면 타인의 생기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살아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그걸 잘 키워서 틔우고 확장할 수 있는 건가 싶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나보다 생활에 억눌린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이런 쓸모없는 모양새로 사는 게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는 것에서 위안과 다시 일어설 마음을 주워갈 것이기에, 그리고 앞으로 남은 할 일은 산더미지만 좌우간 모자라고 추악했던 대통령을 ‘전직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만을 사실이기에 과도기를 틈타 한가한 소리를 주워 섬겨본다. 스스로를 잘 챙겨서 마음속 ‘우리’의 생명력을 존속시키자.
2025-04-16 | hrights | 조회: 206 | 추천: 8
김태형 / 프리랜서 방송작가 3월 31일, 원고마감을 며칠을 앞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직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은 알 수 없습니다. 결론이 나면 무언가 얘기를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3월 26일입니다. 헌법 재판소에서 전원일치로 인용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구속취소가 됐고 대통령실 경호처 김성훈 차장은 경찰이 4번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했습니다. 일개 방송작가는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법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이 큽니다. 잘못에 대한 합당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복귀했을 때 우리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다시 계엄을 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부조리가 정의를 이길까봐 걱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특수부대가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걸 전 국민이 봤습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 방송인들의 체포명단도 나왔습니다. 법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명확하다고 생각했지만 헌재의 판단이 길어지면서 인용이냐 기각이냐 각하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50년 전으로 돌아갈까 봐 걱정입니다. 헌법 재판관들이 왜 혼란을 만들며 침묵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인권연대로부터 홍세화 전 장발장 은행장님의 묘소 참배 메일을 받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인터뷰 외에는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 뵐 일이 거의 없지만 오창익 사무국장님 덕분에 사석에서 좋은 말씀도 듣고 소주 한잔 두 손으로 부딪칠 수 있었습니다. 첫 인연은 2020년 장발장 은행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면서 시작됐고 오창익 선생님이 인연을 만들어 주면서 가끔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선생님이 만든 역사의 한 순간에 있었기도 했습니다. 어른으로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아버님의 기억을 말씀하시면서 다리를 떨면 목침이 날아오기도 했으니 다리 떨지 말라하셨고 제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못했다고 하니 늦지 않았다며 주례를 해주시겠다는 약속도 해주셨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의 샹송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건 그냥 ‘대박’이었습니다. (인권연대 회원이라면 모두 경험이 있을 겁니다.) 감히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분에게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을 정말 제대로 알고 계신 분께는 죄송합니다. 그저 저의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에서는 강한 분이었지만 저 같은 나약한 이에게는 한없이 눈높이를 낮추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라 느낍니다. 지금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홍세화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그저 생각을 해보면 지금 상황은 선생님의 마지막 유언처럼 되어버린 칼럼의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말씀을 모조리 부셔버리는 상황이라 바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인권연대에서 4월 12일 홍세화 선생님의 묘소 참배를 합니다. 저도 찾아뵈려고 하고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거인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 날에는 대한민국의 봄을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해 빈소를 찾았을 때 눈물을 흘리신 많은 분들을 봤습니다. 부족한 제가 친했던 것처럼 글을 남기는 것에 죄송한 마음이고요. 그저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25-04-02 | hrights | 조회: 120 | 추천: 7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당신의 노력은 당신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22일(토) 광화문 시민대행진의 한 사진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연세 많은 어르신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이었고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내 나이 92세. 내 평생 저런 놈 첨 본다. 당장 윤석열 그놈 파면해!” 자주 촛불대행진에 참여할 때마다 답답함도 많지만, 새로운 장면과 발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변곡점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입니다. 광장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열망이 단순한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역사의 지속적인 변화를 향한 간절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시민 권력을 한층 확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사회대개혁이라는 변화는 우리, 시민들이 만드는 것 물론 쉽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처럼, 우리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변화만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계엄 상황과 대통령 탄핵 국면, 이 격동의 시기는 우리에게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촛불 대행진이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실질적 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탄핵 이후 사회대개혁이라는 깃발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되는 줄 강조하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광장에서 목 놓아 외치는 이유입니다. 그 힘은 역시 시민들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아픔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욱 빛난다. 솔직히 집회를 나가면서 매번 갈등합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비슷한 발언과 공연들이 반복되기에 오늘은 또 누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될까, 오늘은 어떤 흥미로운 광경이 눈에 띌까, 오늘은 어디에서 뒤풀이할까, 오늘은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깃발과 가방을 챙깁니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이 생긴다."라는 말을 자주 되뇝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고통과 좌절이 깊을수록, 우리가 쟁취할 행복 또한 클 것입니다. 권위주의, 독재 정치가 움켜쥔 손아귀에서 시민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밀고 나가며 만들어가는 실체입니다. 그래서 요즘 헌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새삼스럽고 놀랍습니다.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는 헌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시민 권력을 더 넓게 확장하고,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길을 잃어도,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 2025년 제가 활동하는 용산시민연대가 지역의 변화를 꿈꾸며 준비하는 22주년 총회 역시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입니다. 총회 주제를 ‘다시 만날 세상을 향해’로 잡았습니다. 광장에서 매번 떼창으로 불리는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에서 따왔습니다. 회원 170명에서 두 배로 확장하겠다는 멋진 비전,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는 더 민주적인 용산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문제입니다. 만약 기존의 사업방식만을 생각했다면 이 길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다른 길이 찾아온다(박노해)’라는 말처럼 두려움을 응원봉으로 극복하는 시민들에게서 지혜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선택했습니다. 두렵고 무서워도 그래도 하는 게 용기 왜 갑자기 ‘용기’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모릅니다. 형형색색, 기발한 문구로 깃발을 만들어 열심히 참여해서 노래나 구호가 나올 때마다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특히, 단체 활동이 주업인 우리 같은 사람의 고정관념이 많이 부서졌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결국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험난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땀과 열정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용기가, 우리의 연대가, 그리고 우리의 헌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입니다.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우리가, 권력의 복판에서 의사봉을 쥐는 그날을 떠올리면서, 또 광장을 향해 나갈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면서. 함께 갑시다. 희망은 우리의 것입니다.
2025-03-26 | hrights | 조회: 332 | 추천: 15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얼마 전 40년 전 초등학교 동창 부모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 가셨다는알람이 떴다.  장례식장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그 다음 한 일은 신고 벗기 쉬운 검은 신발을 찾는 것이다. 양반다리로 앉아야 하는 장례식장의 문화가 식탁과 의자 중심으로 가구 배치가 변화 되었다지만 1983년 말 경기도 파주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장례식장이 등장한 이후 장례식장에 가서 추모를 하고 상주와 슬픔을 나눌려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함은 변하지 않았다. 상주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더라도 내가 직접  활동지원사와 동행하지 않는다면 검은 상복의 친구가 장례식장 입구에서 내 신발을 신겨주는 웃픈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장애인 당사자 조문은 액운 붙은 귀신을 달고 온다며 거부하던 시대는 아득한 옛날 갔지만 신축 종합 병원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2000년 초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었다. 작년이 되어서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구 지역에서부터 공식 차별 사항으로 진정되고 접근성 개선이 권고 되었다. 사실 내가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는 굳이 분향소까지 가지 않거나 입구 앞에서 상주와 위로의 말을 나누고 돌아올 때가 더 많았다. 그나마 그마저도 경제적으로 넉넉함이 허락될 경우다. 수백만원의 장례비용, 장례식장 대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장애인 당사자 상주는 수많은 장례식장의 계단 앞에서 조문객 응대는 꿈도 못꾸고 입관 절차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학 시절 외할머니가 양산 시골 어귀에서 돌아가셨을 때는 아예 나는 서울에서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올해 달려간 인천 큰 종합 병원의 장례식장에는 생전 처음으로 주저 앉아야 하는 좌식 방식이 아니었다. 모두가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고 위로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여전히 상주가 내 신발 신기를 지원해야 함은 변함이 없었지만 더 이상 불편한 자세와 상황 때문에 서로가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승강기를 찾아 병원 내부를 돌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휠씬 오랜 시간 상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도 검색을 해보면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큰 장례식장은 제법 검색이 된다. 모니터링을 해보면 대부분 장례식장은 이동식 경사로와 실내용 휠체어를 비치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적으로 이를 알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또한 신발을 벗지 않고도 휠체어 바퀴를 닦지 않아도 분향소까지 드나들 수 있는지, 식사는 좀 더 편히 할 수 있는지, 보다 자세한 안내는 찾아 보기 어렵다. 인권위 권고에서도 관련  법률 시행령에 장례식장 빈소에 관한 세부 기준이 없다면서 조문할 때 차별이 없도록 세부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점점 장애인 당사자가 상주가 되거나 장례를 진행해야 할 경우도 늘어나는데 이러한 장애인 고객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장례지도사가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계실까? 대부분 나이 들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면 당신들 대부분은 이동이 어렵고 버거운 장애를 가지고 계실 텐데 그 분들을 즐겁게 장례식에 함께 할 수는 없을까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 장례식장의 풍경은 한발 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추모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손쉽게 알리는 부고장부터, 각 병원의 장례식장 인터넷 사이트부터 다양한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죽음이 슬프고 서럽지 않지 않을까 마는,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와 추모할 자유마저 차별하지는 말자.
2025-03-21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4
정한별 / 사회복지사 “두루마리 휴지랑 하이타이 사와요!”   얼마 전 지희(가명)씨의 집들이에 다녀왔다. 지희씨는 30년 넘게 장애인거주시설(이하 ‘시설’)에서 살다가 8년 전 시설에서 나와 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살던 지희씨가 LH의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었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한 자신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며 집들이에 나를 초대했다. “영준(가명)오빠랑 같이 와요.”   지희씨가 처음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는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평생 시설에서만 살다가 낯선 공간을 접했고, 항상 같은 사람을 만나던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어쩌면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관계가 그녀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시설 밖의 일상에 힘들어 할 때, 영준씨를 소개했다.   다른 가족과 모두 관계가 끊어진 채 시설에서 살았던 지희씨와 달리 영준씨는 가족이 모두 있었다. 평일에는 시설에서 지내다 주말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 가던 영준씨도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었다. 취업을 하고 직장 근처에 작은 방을 구했다. 영준씨의 동생(정확히는 영준씨의 제수)이 일주일 치의 음식을 만들어 주면 냉장고와 전자렌지, 인덕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음식을 데워 먹고 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근한다. 일을 하다 오후 5시면 퇴근해 저녁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든다. 주말이 되면 동생 가족을 만나는 영준씨는 올해 50세가 되었다.   지희씨는 혼자서 척척 일상을 살아 내는 영준씨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고 때때로 연락하며 위로 받았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영준씨는 운동화를 선물했고, 지희씨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까지 덤으로 받았다.   지희씨와 영준씨가 만난 지 5년이 넘었다. 시간은 두 남녀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선물했다. 지희씨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어내는 법을 배웠다. 식사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가끔 외식 혹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고, 더 멋진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외모도 가꾸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병원 진료로 더욱 건강해졌고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택해 종교 생활도 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알게 된 다른 체험홈 입주인과 함께 단둘이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주장하기 위한 인권운동인 ‘피플퍼스트 운동’을 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으로 대구, 부산,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 방문해 정기적인 회의와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직장에 취업해 임금노동자가 되었고, 생활비를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소비로 문제가 되었던 모습에서 계획적인 소비와 저축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영준오빠 집들이 그냥 온거야?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 “그게...그게...” “으이구 못살아. 내가 다음에 오빠네 회사 근처에 갈 테니까, 밥 사.”   집들이는 요즘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피자와 치킨, 초밥과 음료까지 배달음식으로 잘 차려진 식사에 대비되게 집들이에 초대 받은 영준씨는 빈 손이었다. 자신이 먼저 가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초대받아서 가는 건데 선물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영준씨는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초대에 응했다. 영준씨는 흰 머리가 늘었다는 것 외에 5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동생이 챙겨주는 음식, 직장과 집.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구내 식당에서 식사하는 일 외에 밥 한번 같이 먹은 일이 없고, 동생 외에 만나는 사람도 연락하는 사람도 없는 일상. 퇴근 시간이면 동생의 전화, 7시 50분이면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알람이 울리는 일 외에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익숙한 일상.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되는 일은 두려워 하는 모습. 앞으로의 계획도, 특별한 목표도 없는 일상은 5년 전 그날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5년 동안 두 사람의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조금 더 경험해 보는 일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과 같은 내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의 차이. 조금 더 경험해 보는 일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함께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천천히 적응하고 조금씩 고쳐나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이 일은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너무 버겁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모든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채 시설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돌봄지옥 끝에 자녀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돌봄의 의무를 가족에게만 요구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의 개입이 있어야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가족은 돌봄 부담을 완화할 수 있으며, 돌봄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는 새장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새장 밖의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새장 밖에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투자하는 일이 사회의 역할이다.   새장 안에서만 살다가 목숨을 다하는 것보다 새장 밖의 하늘과 새장 밖의 공기를 느끼며 새 답게 사는 삶이 낫지 않을까. 비록 새장 밖이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2025-03-04 | hrights | 조회: 156 | 추천: 5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Take-over)하여 휴양지로 개발(development)하겠다고 발표했다. 충격적이고 황당한 발표였다. 15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기간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무기 지원국이자 학살 공범 국가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적은 없었다. 또한 외교적 수사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의 중동외교정책을 모를 일 없는 트럼프가 이토록 황당한 발표를 한 속내는 무엇일까? 정확한 속내는 트럼프만 알겠지만 그동안의 트럼프의 대이스라엘 정책과 태도 그리고 트럼프 발표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살펴보면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는 같은 날 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미국의 승리이고, 트럼프의 리더십으로 평화를 이룰 것”이라고 하며 “(트럼프의 계획은) 역사를 바꿀 결단”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이자 재무장관인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트럼프의 발표에 대해 “가자지구 주민들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터전을 찾도록 돕자는 것은 훌륭한 견해”라고 했고, 또 다른 극우 정치인이자 국방장관인 이스라엘 카츠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세계 여러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계획을 환영한다”고 하며 “가자 주민 이주 준비”를 군에 지시했다. 또한 트럼프 1기 시절(2017~2021년) 취했던 대이스라엘 정책을 보면 트럼프에게 이스라엘은 다른 동맹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국가였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6년 12월에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취했던 정책은 서안지구에 대규모 정착촌 건설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트럼프가 오바마 시절 서안지구 정착촌이 불법이며 제동을 걸었던 모든 정책을 되돌려놨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2017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을 이전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2019년 국제법상 점령지인 골란고원을 트럼프는 이스라엘 영토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1기 임기후반 2020년에 제안한 ‘중동평화구상안’ 역시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렇듯 트럼프에게 이스라엘은 동맹국을 넘어 쌍둥이와 같은 국가이고, 이번 가자지구의 개발도 ‘땅’에 대한 계획인 듯 보여 지지만 실상은 ‘땅’에 거주하고 있는 가자지구 ‘사람’에 대한 계획이고, 나아가 서안지구를 포함한 전체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계획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계획에 트럼프는 가자 개발 계획으로 확고한 지지를 선언하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신으로부터 자기 민족이 독점적으로 부여받은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시오니즘’이라고 일컫고 이를 믿고 지지하는 이들을 ‘시오니스트’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권리를 부정하는 시오니스트들 중에는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어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던 중동아랍국가 지도자들도 있고, 미국의 권력자들도 있으며, 국내에서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동시에 흔들고 있는 이들도 시오니스트들이다. 트럼프 취임시기에 맞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학살을 임시 중단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는 지금도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디와 연대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활동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건국으로 강제추방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세상은 트럼프의 발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가자는 다시 생명을 원합니다.” * 해당 보고서는 아디 홈페이지 www.adians.net 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2025-02-25 | hrights | 조회: 147 | 추천: 9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네가 아무리 콜라겐을 처먹고 처바르고 용을 써도 내 자리는 어림도 없단다. 이 어리기만 한 X야.”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에서 기상캐스터 연진이 후배를 ‘참교육’시키겠다며 얼굴 정면에 대고 퍼부은 말이다. 연진 입장에서는 후배가 먼저 심기를 건드렸으니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사안이 어찌 됐든 사람 면전에 ‘폭언’을 퍼부었다는 점에서 그의 대응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이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한 뒤 인터넷상에서 다시 화제가 된 걸 보면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방증일게다.  최근 <더글로리>의 이 장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사건 때문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된 지 6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남아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른바 ‘고 오요안나법’이라고 이름 붙인 특별법안을 준비 중이며,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단 1회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처벌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을 맞아 기획한 <빌런 오피스: 나는 오늘도 출근이 괴롭다> 관련 취재를 진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법적 처벌 강화만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제 적용 사례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관련 기사 2만 894건을 살펴본 결과 법 적용의 한계와 모호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된 데서 비롯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조사자에 따라 상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후배가 상사의 지시에 불만을 느끼더라도 그 지시가 업무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상사가 일을 시키면서 욕설을 퍼붓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지시가 업무 선상에서 정당했느냐의 여부를 두고 설전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법적인 모호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법안, 즉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1회만으로도 처벌 가능하도록 하는 오요안나법은 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누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할 것인가? 신고자인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사건이 가장 중대하겠지만, 상사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 있다. 결국 중대성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질 것이 자명하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한 제보 사례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법으로 인한 신고와 소송이 난무하면서 한 법인이 완전히 와해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법인장의 심한 욕설과 부당한 사내 징계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한 직원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암 판정을 받은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다른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며, 또 다른 직원은 운전 중 법인장이 퍼붓는 폭언에 차량 전복 사고까지 당했다. 직원들이 법인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자 법인장도 이에 대항해 직원들을 끊임없이 징계하고 관련자까지 싸잡아 고소했다. 양측 모두 “법대로 하자”를 외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이 거의 붕괴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법으로 맞붙는다 한들 괴롭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고 오요안나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 역시 회사에 직장 문화 개선 의지가 있느냐다. 물론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한 오 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기 위해선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직장에서 괴롭힘이 활개 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그런 행동을 묵인한 조직 문화다. 기상캐스터의 노동자성이라는 법적 쟁점이 직장 문화 개선이라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를 덮어버린다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나. 드라마 속 연진처럼 후배에게 폭언을 퍼붓더라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고 심지어 당연하다는 듯 여긴다면, 괴롭힘이 반복될 여지가 크다.  논점은 더 흐려지는 분위기다. 어느새 기상캐스터의 고용 형태에 있어 정규직이 옳냐, 계약직이 옳냐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물론 계약직 문제 역시 필요하다면 다뤄져야겠지만, 고 오요안나 사건을 계기로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건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핵심적인 해결책을 집중 모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사건을 기상캐스터뿐만 아니라 언론사를 비롯한 모든 직장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괴롭힘 가해자를 직장 내에서 몰아내거나 최소한 그들의 행동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괴롭힘 행위 자체를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는 조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사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적어도 ‘괴롭힘 문화는 덜떨어지고 후지다’는 인식이 구축돼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임직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괴롭힘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고인을 기리는 가장 의미 있는 마지막 배려가 되리라 본다.
2025-02-18 | hrights | 조회: 233 | 추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