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박용석(책팔이), 신종환(공무원),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회림(경찰관), 정한별(사회복지사), 주윤아(교사), 최유라(지구의 방랑자), 홍세화(대학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국가는 제발 답해달라(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13 16:12
조회
419

정한별/ 사회복지사


 부모란 무엇인가?

 최근의 다양한 논의는 차치하고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는 아이를 낳아준 남자인 아버지, 여자인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했던 날은 사실 없었다. 오랜 기간 연애를 했고, 그냥 자연스레 결혼을 했다. 결혼이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했던 것도 아니었다. 직업은 있었지만,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부모는 있었지만, 집을 사줄 부모는 없었다.

 그냥 결혼을 했던 만큼, 부모의 의미나 역할을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양육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고민해 본 일도 없었다. 막연히 신혼 생활을 6개월 정도 하고 난 뒤, 준비를 해서 1년 내로 아이를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하자고 이야길 하자마자 아이가 생겼다. 그렇게 부부는 부모가 되었다.

 아이는 다소 작았지만, 건강했다. 여느 아이들만큼만 자주 아프고, 잠투정이 심하고, 예민하였다. 딱 그 정도였다. 부부는 넉넉지 않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싼 분유, 조금이라도 더 싼 기저귀가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전화길 손에 놓기 힘든 정도, 기저귀에 붙어 있는 마일리지 쿠폰 하나를 잃어버리면 하루가 찝찝한 정도의 평범한 부모였다.

 부모의 역할, 부모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결혼 전의 일상을 포기했고, 포기한 일상만큼 아이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보상으로 채워지는 지극히 보통의 가족이었다. 일상의 변화로 아이의 엄마는 10년 가까이 일했던 직장을 관뒀다. 그냥 딱 그 정도였다. 부침이 있어도 그 부침이 부모의 역할과 부모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진 않았다. 나아가 부모 이전의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지도 않았다.

 고민은 각자가 마주한 삶의 위치에서 일어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3에게 고민은 대학입시가 되고, 직장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 실업자에겐 취업이, 몸이 아픈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에겐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어려운 부모에겐 아이가 고민이 된다. 저마다 고민의 깊이는 삶의 무게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사진 출처 -  freepik


 2019년 8월, 발달장애가 있는 9살짜리 여자아이가 죽었다.

 아이는 말이 늦었고, 3세 이전부터 자폐증상이 보였다. 어려서부터 치료시설과 전문병원을 두루 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반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특수학교에 다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아이의 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처가 늘어갔다. 툭하면 소리를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는 등의 행동으로 경찰서에서 인계되는 일도 잦았다.

 아이의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2019년 초 불의의 사고로 가족이 죽었고, 그 충격에 아빠에게 공황장애가 생겼다. 공황장애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아이의 엄마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아이의 자폐증을 알고 난 이후부터 엄마는 그 누구도 만나는 일 없이 아이를 돌봤다. 아이에 대한 양육 부담과 경제적 부담으로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2019년 8월 아이의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고 아이의 아빠에게도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아이의 뒤를 따르고자 했다. 그날 오후, 먼저 떠난 아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에겐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피고인 아이의 진료를 맡아왔던 정신과 의사입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정성과 애정으로만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벅찬 현실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따라다녔고, 제대로 된 시설이나 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교육기관은 손에 꼽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를 짓는다고 하면 동네 땅값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주민의 반대가 거세고, 그런 자녀를 둔 부모만이 고스란히 그 짐을 지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임을 이런 아동을 치료하면서 늘 안타깝께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이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일지 모릅니다. 한 부모에게, 한 가족에게만 발달장애 자녀를 책임지우는 것은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1)

 

2022년 6월 3일 경기, 두 명의 발달장애 자녀를 홀로 돌보던 아버지 극단적 선택


2022년 5월 30일 경남, 발달장애자녀의 어머니 투신


2022년 5월 23일 서울, 6세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어머니 투신.


2022년 5월 23일 인천, 어머니가 중증장애 딸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022년 5월 17일 전남, 조카에게 폭행당한 발달장애인 사망.


2022년 3월 2일 시흥,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022년 3월 2일 수원, 어머니 8세 발달장애 아들, 입학식 날 살해


2021년 11월 전남, 아버지가 발달장애 자녀와 노모를 살해


2021년 5월 충북,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극단적 선택


2021년 2월과 4월 서울,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극단적 선택


2020년 6월 광주, 발달장애 자녀와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


2020년 4월 서울, 4개월 된 발달장애 자녀 살해


2020년 3월 제주, 어머니가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발달장애인가정 사건 관련 언론 보도>


 많다.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정말 너무너무 많다.

 과연 이들의 죽음 앞에서, 감히 온전히 부모의 책임만을 물을 수 있는가! 부모는 죗값을 받겠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한 아이를 살해한, 결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죗값을 받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우리 사회는 죗값을 받겠는가!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존재를 던져 답을 하고 있다.

 

 이젠 국가의 차례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국가는 답하라. 제발, 제발, 답해 달라.

 

 국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국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1) 위의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사건(2019고합365)‘ 피해아동 담당 의사의 피고인을 위한 탄원서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