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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에 비친 당신을 생각하며(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06 14:03
조회
425

신종환/ 공무원


 인권연대에 기고하는 글은 전반적으로 나의 직업 혹은 직업에서 파생된 감정에 대한 글들이었다. 처음 칼럼을 권유 받았을 때 ‘공무원’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비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몇 년간의 공직생활 이후 나의 정체성에서 공직에서의 책무와 책무에서 비롯된 부정적 감정 이외에는 전부 소거되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소거, 유능하고 책임감 있고 지향점이 있는 동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소거’라는 말이 공직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말이었던 것 같다. 말의 테두리를 상사와 동료와 민원인에 맞게 절지하고 언급할 수 있는 생활의 범위와 권하고픈 도서와 그 묘사를 지자체의 테두리 안에서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 제한하다보니, 정착하고 나면 자신의 뇌를 용해한다던 멍게와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졌다. 새로 생긴 가게, 편의점에 출시된 신메뉴는 읊어도 어느 순간 글은 어렵게도 나왔고 나온 글도 부끄러웠다. 어떤 글인지 알 수 없기에.


 소거의 나날에 제동을 걸은 건 고통이었다.


 마감에 임박해 글거리를 생각하자니 소거되지 않은 나날이 떠오른다. 머리에는 남아있어도 글로 옮기기 다소 어려운 순간들도.


 한 부서의 예산과 회계를 맡고 나서 머리 속에 있던 철학자들과 그 구절들을 잊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부터는 어느때보다 제2차대전 5년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포로들의 고통을 목도한 루이 알튀세르의 고통만이 학문의 진리라는 말이 늘 머리에서 맴돌았다.(<철학 듣는 밤>, 김준산, 김형섭 지음. 프리렉 출판사)


 정신과에 가기까지는 누구의 아픔도 생각 할 수 없었다. 듣고 보더라도 그 아픔은 얼마나 하찮고 가소로워 보였는지. 나는 자기 전에 죽고 싶었고 눈을 뜨기 전에 죽었으면 했고 전화벨 소리와 메일 수신 알림, 누군가 나를 부를 때는 심장이 쳐맞는 것 같았다.


 결혼한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인생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궁금했다는 그로테스크한 선배의 대답이 바로 이해가 되고 소행성과 충돌한다는 멜랑콜리아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정맥이 멎고 잘 때도 일어날 때도 덜 죽고 싶을 때, 숨을 몇 차례 돌리고 나면 맘 속에서 나간 사람들이 다시 들어왔다. 작은 연대도 아쉬웠기에 그들의 겪은 상상 이상의 시간들보다는 도와준 손길이 부각된 글. 추앙받아 마땅하기에 당신들의 잃은 동료들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다시 형언키 어려운 일터로 가야 했던 글. 그 간극이 이랬다는 건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말은 경험의 재구성인데 나는 그만큼 아프지 않았으니.


 나무는 외연을 확장할 때마다 테가 생긴다고 했던가. 그 동안 느꼈던 감정들 중 고통들은 다소 자기 회귀적이었고 발원지를 향할 때조차 이를 연대하는 스스로의 비중이 높았으니 테의 확장이라고 하긴 어렵겠다. 그럼 테의 확장은 무엇일까. 알 수 없지만 어느새 부끄러움보다는 말의 모습을 띠지 못해 짐작만 할 수 있는 당신들의 모습에 닿기 위해 먼저 나를 드러내려는 태도를 그렇게 불러도 될까. 좀더 자세히는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의 비명과 불면, 그리고 그 흔한 고통을 먼저 드러내보려는 나의 태도를 그렇게 불러도 될까.


 먼저 나의 부끄러운 테두리를 드러내본다. 고통이 잦아든 뒤에 들리지도 보이지 않던 당신들의 고통에 나를 비춰볼 수 있었으니. 이 꾸진 고백이 ‘같이 비를 맞는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과 비슷한 맥락에 있기를 바라고 또 그런 태도에 당분간 불어올 험한 세월을 서로 견딜 마중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