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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규회원을 기다리며(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1-26 15:13
조회
796

신종환/ 공무원


 누가 어디에 살든 아쉽고 힘든 점 없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산다면 고정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과 자가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이 막막할 사람이 많을 것이고, 경기권에 산다면 일생의 1할 이상을 지하철에서 졸거나 사람 사이에 끼어 보내거나 차가 있다면 막힌 도로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방살이의 아쉬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대도시에 비해 동네사람들의 평균나이가 수직상승한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2018년 처음 고향 속초로 돌아왔을 때 관광객이 찾는 장소를 제외하면(때때로는 이를 포함하더라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적었다. 내 직업인 지방직 공무원은 취업난의 반사효과로 꾸준히 20대와 30대가 들어오지만, 공무원 세계와 이와 유사한 한전 등의 유사 공직, 그리고 극소수의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젊은'이 라고 부를만한 연령대의 사람은 거의 멸종되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서 수년 전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행정오판의 결과로 옆 동네 지자체에서 청춘남녀 맺어주기라는 계획서가 결재되어 강제로 집단 미팅을 해야만 했던 상황도 있었다. 영화는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유관한데, 당연하지만 전반적인 인프라가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보다 대단히 아쉬워진다. 주 수요층이 적으니 무언가 생겨도 조용히 망한다. 가끔 지자체 소속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운영하는 공연이 있지만, 취향에 맞는 공연이 아닐 확률이 높거나 공무원으로서 지원을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며, 마음에 드는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지방직 공무원의 주말은 통상적으로 출근이 우유에 붙어있는 행사상품처럼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라 한양을 가기란 다소 어렵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 주변을 돌봐야 한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전원생활을 해보면 된다. 우리의 수가 무수하니 우리의 이름은 잡초와 벌레 낙엽 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더 큰 고충은 위의 것들이라기보다는 위의 것들을 제외한 것들은 내 안에서 점차 풍화되어 없어졌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고궁을 나서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고궁을 나서는 대신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다시 다음 술 약속을 잡거나 잡히고, 세상을 직장, 술, 집 그리고 주가 하락이라는 RGB 값의 조합으로만 이해하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간다. 게다가 너무 시시한 고민이라 글로 옮기기에도 민망하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이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 말한 것처럼 시시한 고민이 크고 강대한 고민보다 때때로 더 큰 문제다.


 갈비탕에 비계가 많다고만 평생 불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므로 주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꼬시고 협박해서 영화모임과 책모임을 했다. 다행히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몇몇 서점은 잘 꾸며지고 운영도 잘 되고 있었고, 모자란 인프라에 비해 갈 만한 술집은 적지 않은 편이라 모임은 계속 번창할 것만 같았다. 서울을 갈망하는 동창들이 순식간에 전출을 가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들은 다 가버린다.


 다음 모임은 지역 선생님들이 오래 운영하던 모임에 내가 들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모임을 운영한 구력이 있어서 그런지 토론 거리도 많고 서로 흥미로운 책들을 추천하고 읽고 나누는 즐거움이 컸다. 그리고는 두 분이 육아의 세계로 사라지고 한 분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겠다고 다른 지자체로 가버리셨다. 다시 나만 남은 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시고 어느 순간 모든 책의 독서 논의 결론은 신종환 선생님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삐딱하다는 헤어날 수 없는 논리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정보수용범위 저편에서는 변함이 없어 많은 투쟁과 좌절과 상실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언어와 경험과 생각이 여러 갈래로 구성되어있어야 한다는 걸 나날이 느낀다. 생각의 원자가 많아야 마찰열이 발생할 텐데 원자의 수가 적으면 차갑게 침전될 따름이다. 2월이면 친한 동창 하나가 또 강원도에서 제일 큰 도시 원주로 떠난다. 네그리는 '0'이라는 개념이 호명될 수 없기에 가장 혁명성을 품고 있다고 예전 수업에서 들은 것 같은데 고도를 기다리듯 신규회원을 기다리는 이 나날이 혁명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나날일까. 혁명의 씨앗은 차치하고서라도 열심히 버티고 있으면 누군가 등대처럼 모임을 발견하고 영주하며 같이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까.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 생각을 애써 비벼 만들어지는 가상의 마찰열로 마음을 애써 덥히며 꾸역꾸역 다음 모임 책을 읽어본다. 지방소멸이란 게 이토록 시시하고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