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빼앗긴 땅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여성 이야기(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1-12 16:23
조회
580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야기 하나, 팔레스타인 내 최대 난민촌인 발라타 캠프에서 거주하는 A.H.(여성, 30대 중반)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긴 출근길에 나선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바르칸’이라는 지역내의 사탕공장, 매일 출퇴근하는 곳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불편하다. 그녀가 일하는 ‘바르칸’은 팔레스타인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이다. 국제법상 점령국(이스라엘)은 자국의 민간인(이스라엘인)을 점령지(팔레스타인)에 이주시켜서는 안 되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팔레스타인 내에서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건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항의하지만 난민캠프에서 홀로 세 아이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녀는 오늘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득한 초소를 여러 개 지나야 한다. 가끔 이스라엘 군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 용의자로 몰며 죽이기도 하고 보안상의 이유로 검문소를 닫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녀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때론 검문소를 통과할 때 낯선 사람에게 내 집 출입을 허락받는 듯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이 빼앗아서 불법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리 정책과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매일 더 많은 땅을 빼앗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검문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야기 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를 ‘1948년 영토’라고 칭한다. 이스라엘이 건국했던 1948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영토였기 때문이다. ‘1948년 영토’에서 일을 하는 A.M.(여성, 50대 중반) 역시 검문소 통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당신은 우리가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하지도 못할 겁니다. 특히 검문소에 들어가고 나갈 때, 노동자들은 긴 줄을 서서 군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때로 노동자 중 누군가가 금속 도구를 소지하고 있다면, 검문소 경고음이 울린다면 그들은 굴욕적인 신체 수색을 당해야 하고, 여성 노동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때때로 확인을 핑계로 탈의하도록 강요합니다. 또한, 검문소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수 시간 동안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한때 우리가 주인이었던 땅에서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셋, 그나마 그녀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노동허가증을 받았다. 히지만 노동허가증을 받지 못한 소위 ‘미등록’ 상태로 이스라엘 정착촌과 ‘1948년 영토’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7남매 중 장녀인 L.D.(50대 중반)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남편마저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2년 동안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점령군이 주둔하기 전 울타리 구멍을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어요. 처음에는 소형 버스를 타고 우회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가고, 이후 산길을 걸어 국경의 울타리 구멍들 중 하나에 도달 할 때까지 계속 걸어요. 그리고 구멍을 통해 이스라엘 정착마을로 들어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가끔 점령군에게 발각이 되면 최루탄을 쏘거나 실탄을 발사하기도 합니다. ” 이러한 조건속에서도 그녀가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넷,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더욱 특별하다. 가자지구는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완벽히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거주하는 A.J.(여성, 20대중반)는 살면서 딱 한 번 국경을 넘은 적이 있는데 이는 남동생의 심장 수술 때였다고 한다. “남동생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가자지구 병원에서는 시행 할 수 없어 이스라엘 정부의 임시허가증을 발급받아서 라파국경(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을 통해 서안지구로 건너갔습니다. 저나 제 가족 중 한 명이 아프지 않고 우리나라(팔레스타인)의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어요. 질병을 가지는 것이 우리 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증언하면서 “경계선이나 국경은 감옥과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감옥 말입니다. 저는 꿈도 많고 스스로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상상 속에서만 꿈을 꿉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경계를 벗어나 자유와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덧붙임) 해당 이야기들은 사단법인 아디가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15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2021년 인권보고서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내용 중 일부이다. 아디 홈페이지(https://www.adians.net/issue)를 통해 전체 보고서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