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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 '블루엣'을 소개합니다(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0-12 16:19
조회
35

이회림/경찰관


 10월 3일 하늘 연 날 아침 6시 침대 머리맡에 둔 파란색 일기장을 꺼내 간단히 아침 일기를 쓰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만 살짝 읽을 생각으로 소파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매기 넬슨의 ‘블루엣’을 펼쳤습니다.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라는 긴 부제가 달린 이 수필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면 어떨까. 냅킨을 잘게 찢으면서 고백하듯 털어놓으면 어떨까. 천천히 시작된 사랑이야. 어 괜찮은데, 하다가 문득 끌리는 마음.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 이번에는 블루다. 마법의 주문에 걸린 듯, 마법에서 영영 깨어나기 싫어 발버둥 치다가, 또 빠져나오려 애쓰다가 하고 있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106편 소쉬르의 시안계 이야기가 나오는 장까지 읽어버렸습니다. 240편에서 끝나는 책이니, 이미 절반 가까이 읽은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고대하던 순정 만화책의 완결호가 나온다는 풍문을 듣고 실내화 바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던 여고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지요.


 

 당장 해결되지 않은 가슴 답답한 일들을 생각하면 진득진득한 진흙탕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청량해지고 덩달아 제 마음도 가벼워지니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책에 맛이 있다면 ‘블루엣’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처음 보는 맛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에세이집이라면 책의 분위기 정도만 느끼느라 휘리릭 넘겨보다가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렸을 텐데, 진한 파란색 표지에 내지 글씨까지 파란색인 온통 파랑파랑, 시푸르딩딩한 이 책이 저를 소파 속으로 더 깊숙이 파묻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 소파 색도 파란색이네요. 터키 블루. 이런 우연의 일치가!


 

블루에 대한 사색이 좋은 건 블루가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블루가 끌어당기기 때문이다-괴테


 

 이 책에서 괴테의 이런 말을 마주치자마자 속으로 ‘오호~~ ’했습니다. 괴테는 내내 심각하고 무거운 글만 쓸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감각적인 표현도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하는 그런 발견의 순간이었지요. 괴테는 어느 비평가가 “눈에 띌 만한 업적이 전혀 없는 기나긴 휴지기”라고 표현한 시기에 <색채론>을 썼다고 합니다. 괴테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는 “도무지 마음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스릴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요. 영화감독 데릭 저먼은 시력을 잃고 에이즈로 죽어가면서 <채도 chorom>를 썼고 영화에서도 ‘블루스크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위암 투병을 하던 삶의 마지막 18개월 동안 <색채에 관한 소견들 remarks on colour>을 썼다고 하네요.


 

 괴테의 말처럼 저 또한 수년째 블루가 저를 끌어당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파란색보다는 초록색을 더 좋아했었고 다음으로 보라색을 좋아하던 저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첫 미술 시간에 노란색 크레파스로 바탕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보라색으로 그리다가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짙은 물빛의 파란 소파와 쨍한 파란색 일기장뿐만 아니라 흰색과 파랑으로 가득한 산토리니에 여행 다녀오게 된 일이며, 수영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서핑을 배운 것 등등…. 모두 블루가 저를 끌어당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얘기를 잘 들어주던 스웨덴 친구 에밀의 눈동자 색깔도 연한 블루였고 말입니다.


 

 “삶은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처럼 알알이 엮인 다채로운 기분의 연속이고 차례차례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면 알알의 렌즈가 세상을 각자의 색깔로 칠하고 오로지 그 렌즈로 초점을 맞춰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에머슨의 글입니다.


 

 저자 매기 넬슨은 말합니다. “유리구슬 한 알이 세상을 색채로 물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목걸이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목걸이를 원했다.” 이 글 앞에서 우뚝 멈춰선 채 제 머릿속은 시간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소각장 옆 화장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기억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걸 뇌의 기억 중추를 꺼내서 바꿀 수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 할 수밖에요. 무용수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 란에 줄곧 “고전 무용가”라고 쓰던 아홉살 어린이, 영화감독의 꿈을 꾸느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열아홉 소녀, 세상 속에서 김치처럼 건강하게 발효되어지고 싶어 스물다섯에 선택한 경찰이라는 직업, 그 안에서 겪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일들이 빨리 감기로 눈앞에 휙휙 지나갔습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저 또한 다채로운 구슬 렌즈들을 꽤나 많이 수집해 왔던 것 같은데 목걸이로 잘 꿰어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요즘의 저는 파란색으로 칠해진 구슬 하나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가 싶습니다. 용기를 내서 알리고 추진하던 일에 장애가 생긴다고 해서 너무 힘이 빠져서는 안 되는데 혼자 해내기가 벅차다는 기분도 들고…. 이럴 때마다 안전한 블루 속으로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이런 저에게 얇고 파란 책 '블루엣'은 파란 유리구슬 한 알로는 결코 목걸이가 될 수 없다고…. 조금 더 힘내라며 저의 등짝을 세게 한 번 후려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애정어린 등짝 스매싱은 울 엄마의 전매특허였는데 말이죠….


 

 지금 이대로 바다로 뛰어내리면, 엄마를 다시 만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텐데…. 그냥, 뛰어내려 버릴까? 하던 저에게 구름에 걷힌 달빛이 발트해를 비추어 주던 그때 그 순간처럼,


 

개천절 아침에 읽은 이 파랗고 얇은 책 '블루엣'도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남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