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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코리아’(홍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0-06 16:44
조회
1149

홍세화/대학생


 

 최근 한달 반 정도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넷플릭스의 두 작품 <D.P.>와 <오징어 게임> 덕택이다. 국내에서 D.P.의 흥행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등장한 오징어게임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의 흥행까지 성공했으며,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와 OTT 등 다양한 미디어 채널의 발달로 근래 들어서는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지 못해 월요일 아침의 대화에 끼지 못하던 학창 시절의 추억과 같은 일들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D.P.와 오징어 게임의 경우 인터넷과 일상생활 곳곳에서 회자되며 두 작품을 보지 않는다면 대화에 끼지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잔혹하며 충격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시청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평에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라는 맘을 갖고 시청하게 된 두 작품은 단순히 내게 재미만을 선사한 것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켜주었고, 한국의 현 세태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두고 목숨을 걸어 게임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시종일관 밝은 색채와 디자인의 공간과 평화로운 클래식의 BGM, 아이들의 놀이 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건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은 아이러니와 함께 기괴함 마저 자아낸다.


 이 드라마에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들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데 빈부격차, 노인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이주노동자와 탈북민의 현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계급·계층 발생의 표현과 이를 통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영화 <기생충>의 주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며 세계적으로 흥행한 작품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며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위와 같은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문제점을 다룬다는 것도 오징어 게임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내게 오징어 게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따로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 두 작품은 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켜주었는데, 오징어게임이 상기시켜준 아픈 역사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과잉진압 사태’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10여 년 전 자동차 공장의 조립 노동자로 일했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부당 해고에 맞서 파업 투쟁을 하다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동료를 잃은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는 2009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과잉진압 사태를 연상케 하고, 나에겐 이와 더불어 남일당 건물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 또한 떠올리게 하였다. 2009년 당시 나는 11살의 나이였지만 희미하게 뉴스에서 두 사건을 접했던 것을 기억했고, 오징어게임을 통해 그때 당시의 뉴스를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국가가 소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자행한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남일당 철거민들에 대한 처우가 조금은 나아졌을까 하고 최근 소식을 찾아보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복직은 이뤄졌지만,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여전히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었고, 용산 참사 철거민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올해 초까지도 DNA 채취를 받아야 했다.


 오징어게임에서 ‘깍두기’ 규칙을 적용하며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아이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고 소개하는데, 어른들의 사회는 아이들의 놀이 규칙보다 형편없고 더욱 악랄하여 씁쓸했다.


 <D.P.>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으로, 각종 군 관련 사고가 크게 일어났던 2014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2014년은 ‘윤일병 사건’과 ‘임병장 사건’이 발생하며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와 부조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한 시민은 뉴스 인터뷰에서 “참으면 윤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병장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내겠습니까?”라고 그 당시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러한 군대 속 가혹행위와 부조리는 2014년에만 벌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D.P.를 시청할 때 엄마와 나는 가슴 아파하고,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극에 몰입되어 이틀 만에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모두 시청했지만, 아빠는 어째서인지 초반 1, 2회까지만 우리와 함께 시청하시곤 이후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시청하지 않으셨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여쭤보니 군 생활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며, 아빠도 군 생활 당시 위험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는 과거의 일을 알려주셨다. 인터넷을 보니 군 생활을 극 사실주의로 표현한 D.P.는 우리 아빠뿐만이 아니라 많은 군필 남성들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겨준듯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어림짐작과 함께 이러한 일들이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란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음 아파하는 와중에도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요즘엔 저런 일 없겠지...’라고 혼자 위안 삼으며 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이 드라마의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의 작가 김보통씨가 D.P.의 흥행 이후 자신의 SNS에 올린 내용은 나의 뼈를 때렸다.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수 있길 바란다.”


 글을 읽고 잠시나마 ‘이제는 좋아졌다’라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현실을 돌아보니 최근 공군에서의 성추행과 집단폭행, 전기드릴 가혹행위와 해군 일병의 자살 사건 등이 변화하지 않은 군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라마 말미에 나오는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은 병사들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우리 사회와 군 당국에서 나와야 할 말과 행동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D.P.의 흥행이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오징어 게임이 등장하여 D.P.가 반짝하고 사라지는듯하여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과 D.P.는 흥미진진한 극의 전개와, 뛰어난 연출 등도 흥행에 한몫 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픈 현실을 다뤄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흥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들의 흥행이 단순히 한때의 화젯거리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