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그놈은 어디 갔을까 - 전종휘/ 한겨레 기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00
조회
440

전종휘/ 한겨레 기자



때론 답답하다. 늦은 밤 두들기고 있는 이 컴퓨터가 간혹 가다 말썽을 빚을 때면 ‘그놈’이 그리워진다. 반 푼짜리 알량한 글을 써 목구멍의 거미줄을 걷어내는 내게 컴퓨터의 느닷없는 파업이란, 더구나 마감시간을 코 앞에 두고서는 더욱, 당혹스런 것이다. 그래서 더, 내겐 그놈이 필요하다.

리셋 단추. 그놈은 16년 전 대학 1학년 때 몸담은 학교 영자신문사 사무실의 386AT 컴퓨터 본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첫 만남이었다. 당시 컴퓨터를 켜기 위해서는 5.25인치 도스 디스켓을 반드시 꼽고 전원을 켜 야했던 286XT 컴퓨터에 비해 하드디스크라는 획기적인 물건을 달고 태어난 386 컴퓨터는 그야말로 경이의 대상이었다. 그 빠른 처리속도며 각종 프로그램을 자체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획기적인 발상의 결과물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하게 여겨진 386 컴퓨터도 잦은 오류에 시달렸다. 자주 멈췄다.

“이스케이프 키를 눌러도 반응이 없으면, 컨트롤, 알트, 딜리트 키를 동시에 눌러보고, 그래도 안 되면 리셋 단추를 꾹 누르세요.” 방학 중 들은 컴퓨터 수업 시간에 강사는 이렇게 상황 대처 요령을 가르쳐줬다. 그냥 전원 단추를 눌러 꺼버리는 것보다 훨씬 컴퓨터에 가해지는 충격이 작다면서.

그놈의 효능은 녹록지 않았다. 컴퓨터가 부리는 모든 말썽에 그놈은 항상 통했다. 그놈을 부른 뒤 잠시 뒤에 보면 컴퓨터는 항상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실행되지 않은, 맑고 단순한 상태로의 회귀. 찜찜함 없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상상을 기획할 수 있는 자신감의 재충전. 다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새하얀 백지 위에 멋진 그림을 그리고픈 열정, 바로 그곳에 걸린 방아쇠와 같은 게 그놈이었다면 너무 심한 과장일까?

그러나 지금 내겐 그놈이 없다. 해거름녘 학교 앞 호프집 벽에 걸린, 멋진 몸매에 비키니 차림의 달력 모델에게 윙크를 보내며 맥주 500cc 4잔을 연속 ‘원샷’한 뒤 필름이 끊겨버릴 정도로 객기 충만하던 학생 기자는 어느덧 3명의 식솔을 거느린 8년차 직업 기자가 되었건만, 16년 전 내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던 리셋 단추가 내 컴퓨터에는 없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답답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놈이 더욱 그립다.

그러고 보면 그놈이 필요한 게 어디 나뿐이랴. 눈을 조금만 돌려보자.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오류와 시스템 정지 상태에 있으면서도 리셋 단추를 누르지 않고 있는 분야와 사람들이 숱하다. 여전히 일탈 방지의 이름으로 청춘의 꽃을 피워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제 머리와 옷 모양의 자유를 주지 않고 있는 초중고 교실에도, 진리 탐구와 비판적 지식인 양성보다는 높은 토익점수와 직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갖춘 취업준비생 육성 쪽으로 학풍을 이끌고 있는 대학 총장들의 방에도, 실력보다는 미국 대학 박사학위를 더 우러르고 여기에 편승해 없는 학력을 만들어 사람을 속이는 이들의 마음 속에도, 그놈을 연결해놓고 한번 눌러볼 순 없을까.


070816web04.jpg


지난 7월에 있었던 구속노동자 석방 및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 모습


 

해묵은 분단의 철책을 앞에 놓고도 남북 정상회담 소식이 선거판에 미칠 영향만을 셈하느라 주판알 튕기기에 바쁜 정당인의 손가락과,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나라를 이끌어갈 비전이 보이지 않음에도 무조건 ‘대통합’이라고 허무하게 침 튀기는 정치인들의 입, 그리고 자신의 선거를 돕다 불법을 저질러 선거법을 위반한 정치사범과 회삿돈을 내 돈처럼 꺼내어 쓰다 꼬리를 밟힌 천박한 경제사범들은 형기에 못 미쳐 감옥에서 마구 꺼내주면서도 국제사면위원회가 인정한 양심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등에게는 형량 그대로의 감옥살이를 방조하는 대통령의 ‘짝가슴’에도, 리셋 단추는 정녕 필요 없는 것일까.

광복절 62돌을 맞으며, 정의가 불의에서 광복하고 자유가 억압에서 광복하며 공존이 차별로부터 광복하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리셋 단추가 눌리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나는 직업적으로 쓰는 나의 반 푼짜리 글이 우리 공동체의 ‘그놈’이 되길 여전히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