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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28
조회
258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몇 해 전 가르쳤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수업시간에 늘 ‘딴 짓’을 하고, 심지어 칼 등으로 손장난을 하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유혈이 낭자하게 피를 쏟아 온 교실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던 그 아이. 수업에 아무 의욕도 없고, 잠시도 가만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래서 모든 교과목 선생님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아이였다. 학급당 인원이 48명이나 되는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업을 더욱 버겁게 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 아이가 내 수업시간(국어)에 ‘도덕 선생님’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오늘도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도덕선생님이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나비의 속삭임처럼 물으셨다.
“OO야, 너 무슨 일 있니?” 하고…….
순간 내 몸이 풍선처럼 부웅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얀 갈매기가 나는 저 바다에 도덕선생님과 함께 푸른 하늘이 되고 싶다.’

나는 이 짧은 시를 읽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늘 수업을 방해하고 힘들게 해서 단골로 야단맞던 그 아이가 이렇게 고운 마음결을 지니고 있었을 줄을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완벽한 시는 아니었지만, 읽는 순간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왔다. 때 묻지 않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푸른 하늘이 되고 싶다’는 부분에선 이 아이가 일상 속에서 느꼈을 어려움도 짐작하게 되었다. 시 속의 주인공인 젊은 도덕선생님에게도 이 시를 들려주며 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에 얼마나 인색했던 지를 아프게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수업 들어가는 모든 반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며 ‘시인의 탄생’을 요란하게 알렸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그 아이는 늘 나의 특별한 시선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의 ‘딴 짓’에 화가 나지 않았으며, 그 아이도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급기야 사회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가끔 복도에서 만나면 너무나 천진한 모습으로 인사해 주는 그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문득 돌아보니 내 삶의 여정에도 ‘나를 알아 준, 내 상처를 알아봐 준’, 참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춘기 시절 잦은 전학으로 친한 친구 하나 없이 어둡고 쓸쓸했던 나를 알아봐 주고 내 삶에 환한 빛을 부어주며 ‘국어선생님’이라는 꿈을 꾸게 해 주신 중 2때 국어선생님, 한동안 난청으로 힘들어했던 나를 위해 1년간 짝꿍을 자청했던 고 3때 친구, 해직시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 한 우리들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었던 시민단체 여러분들, 그리고 수술 후 복직한 나에게서 ‘우울의 징후’를 감지하고는 의미 있는 강연회니 탁구니 산행이니 하며 쉼 없이 나를 ‘건드려 준’ 동료들……. 그러고 보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그들이었지 싶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게 ‘타자’가 아니다.

얼마 전 읽은 정화스님의 글이 생각난다.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 원래 ‘둘’이 아닌 커다란 ‘하나’이며, 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서로 조화롭게 관계를 맺으며 지탱해 주고, 성장해 가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서로를 ‘타자화’ 하고 ‘대상화’하며, 결국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네 삶은 더 이상 소통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를 얻게 되었다. 서로의 처지에 관심도 없고, 아픔을 들여다 봐 줄 생각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철저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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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시스


이번 용산 철거민 참사는 이러한 우리네 삶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냉혹한 ‘타자’들에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되었던 그들이 건물 옥상 위에 지어 올린 ‘망루’는 자신들을 ‘철거민’으로 대상화하여 내몬 이 세상을 향한 처절한 절규이며, 생존의 마지막 몸짓이었다. 그럼에도 못들은 척 외면하다가 급기야는 법을 내세워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 땅의 사람들이 정말 무섭게 느껴진다. ‘예수불신지옥’이라고? 아니, 이런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이를 무심하게 넘기며 아무렇지 않아하는 ‘타자’들이 숨 쉬는 이 땅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지옥이지 않을까?

겨울바람이 매섭다. 그래도 아침 운동 길에 본 나무들은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매단 채 봄준비가 한창이다. 이 꽃망울이 터질 때 쯤 나는 설렘과 흥분을 안고 새로운 아이들과 또 다시 새 학기를 시작한다. 이들에게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하나의 덩어리임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신음하는 이웃들을 옆에 두고 나만 혼자 행복해질 수는 절대 없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의 ‘나’는 수많은 삶의 고비마다 ‘내 아픔을 알아 준 또 다른 여러 명의 ‘내’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간증처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