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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입니다 -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24
조회
215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오후 내내 내린 눈은 성당 뜰을 가득 채웠습니다. 빗자루로 눈을 쓸었습니다. 지나가는 분이 조언을 하십니다. “다 내린 다음에 치우세요.” “네”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잠시 비질을 멈추었습니다. 쓸고 지나 온 길을 돌아보니 새로이 얌전히 내려앉은 눈이 길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쉬었다 쓸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것이 욕망이며 허영이 아니겠는가. 그때그때 살피면서 치우고 쓸어야 인간이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저절로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가 무도합니다. 단어만 가지고는 '새정부'라 하니 뭔가 새로운 기운, 좋은 기운의 정부일 듯 한데 영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도하다는 느낌, 그 느낌은 이렇습니다. 허름한 단칸방,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는 방에 흙투성이 작업화를 신고 들어와 험하게 세간살이들을 뒤지고 쪽박을 깨고 이불을 내팽개쳐대는 불한당, 그렇지요 불한당 같이 무도하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시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그렇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자니 갈수록 설상가상 일듯해서 제 마음이 번잡스럽습니다.(중략)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 가지려 하면 반드시 다 잃습니다.”

일 년 전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입니다. 인수위 때였음에도 싹이 노란 정권인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당시 ‘설마’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에 마음이 번잡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일 년, 무도한 ‘느낌’은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무도한 정부입니다. 삽질의 대가들답게 온 산하를 파헤치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알량한 세치 혀로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날카로운 삽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분열과 대립, 갈등과 경쟁이 이들의 생존전략입니다. 나는 다만 본 것을 말할 뿐입니다. 나의 숨은 욕망 또한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추하고 더럽고 거기에다 두려움 많은 정치권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는 형국입니다. 안 되면 남 탓, 잘 되면 내 탓이라는 도둑놈 심보로 가득 찬 진짜 도둑놈 세상입니다. 도둑놈을 보고 도둑놈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돈과 권력의 노예로 살라 합니다. 나는 다만 본 것을 말할 뿐입니다. 나의 숨은 욕망이 이와 같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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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첫번째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그렇습니다. 다 가지려고 합니다. 도무지 만족할 줄 모릅니다. 나는 다만 볼 뿐입니다. 나의 숨은 욕망이 꼭 이 무도한 정권을 닮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금지된 희망이라며 붉은 부적을 온 천지에 덕지덕지 붙여대고 있습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공동체의 소통과 희망, 연대에 넉넉한 자리를 내어줄 줄 아는 인간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가난하고 불편해도 이정도면 됐다 하는 자족감으로 다른 인간을 위해 기꺼이 비껴주고 물러서는 인간이고자 합니다. 밥은 필요하지만 밥보다 중요한 것이 많음을 깨달아 생활하는 인간으로 살고자 합니다. 다행히도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백년을 산들, 천년을 산들 도대체 내 것은 하나도 없음을 수용하는 인간의 나이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해입니다. 얼이 썩은 정권에게 인간적으로 덕담하나 오롯이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인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도둑들의 나라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둑은 반드시 쫓겨나고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멸망할 자리를 알아서 파고 기어 들어가는 이 정권이 측은하고 불쌍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단 하나입니다. 인간의 시간을 기다리며 비질을 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