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감동 없는 MB의 눈물 -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37
조회
223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대통령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 일산요양원에서였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아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공연이 끝나자 “여러분 노래가 가슴속,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같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며 “위로하러 왔는데 우리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우리는 언론에서 ‘이 대통령의 눈물’을 만날 수 있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거의 대다수의 언론이 일제히 이 대통령의 눈물 사진 또는 영상을 큼지막하게 보여주었다. 이날 눈물에 대한 사연도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다. 그 논조도 대부분 ‘감성이 풍부한 이 대통령’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눈물이 반갑지 않은 건 왜일까?

장애아들의 아름다운 공연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장애인의 날이라는 적절한 시기를 이용해 “쑈”를 한 것에 대해서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눈물에 감춰진 진실은 좀 따지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장애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이 정말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한 보수언론과 낙태에 관한 인터뷰에서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라고 말한바 있다. 즉, 장애인을 ‘낙태할 수도 있는’ ‘죽여도 되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장애를 가진 것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제거해도 된다는 천박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이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장애아들의 공연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니 어찌 그 눈물이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의 눈물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슬픔이나 참회 때문이 아니다. 종종 자기 입보다 훨씬 큰 덩이를 삼키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서 숨을 급하게 들이 쉬면서 눈물샘이 눌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먹이를 먹을 때 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것’처럼 위선적인 눈물이고 이 대통령의 눈물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090422web05.jpg
지난 19일 홀트일산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아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이 대통령은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 영상메세지를 보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에게 먼저 묻고 싶다. 장애인에 대한 당신의 편견은 정말로 없어진 것입니까?

눈물이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눈물이라는 감성으로 접근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피눈물 나는 싸움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장애인은 이동할 자유조차 제약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교육에 있어서의 차별과 배제는 뿌리 깊다. 민간영역에서의 장애인 고용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방송에서 장애인을 빗댄 개그와 코미디가 아직도 먹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그저 비장애인들의 시각일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훨씬 걸음마다. 장애관련 예산을 보자. 이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장애인 예산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OECD 평균 2.5%의 1/9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또 올해 장애인 예산은 3.6% 상승했지만 이는 물가상승에도 미치지 못해 실제로는 준 것이라고 한다. 장애인 고용은 어떤가. 2008년 공공부문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1.76%에 불과해 법적 규정조차 공공연히 어기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장애인의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축제여야 할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당사자들은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고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화려하게 진행된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 가지 않고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를 가진 이들이 주장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탈시설-주거권 전면 보장 △장애인차별금지법 무력화 시도 중단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악안 철회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실질적 정책수립 △장애인연금제도 즉각 도입 △활동보조권리 보장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장애인교육법 실효성 제고 정책 시행 △장애인 의료보험 및 의료정책제도 개선. 이른바 장애인 생존권 9대 요구안이다. 이런 일들이 어찌 손수건으로 훔칠 정도의 눈물로 해결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이 정말로 장애인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립서비스’나 ‘쑈’가 아니라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위로 받을 수 있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