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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바뀌면 공교육이 산다? -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36
조회
314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올해에는 새로 신입생 1학년을 맡게 되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볼을 하고 아직은 어색한 교복을 입고 부산하게 수업준비를 하고 교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는 것 자체가 교사로서 큰 행복이다. 이 눈망울을 마주대하면서 교사들은 수업이나 교육활동에 대한 최선을 새삼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1학년 신입생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어려움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처음’ 이라는 것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넘쳐나는 의욕으로 반짝거리고, 그 모습에 교사들은 힘들지 않게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마다 조금씩 그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싱싱하고 보송보송해야 할 우리 새내기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모든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배추 고갱이와도 같은 싱싱함을 지니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들끼리 올해 신입생 아이들에게 ‘절여진 배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수업시간마다 절여진 배추 헹구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많다.

이 지역의 많은 아이들은 입학 전에 이미 엄청난 선행학습을 하고 온다. 수학과목의 경우, 이미 1학년 과정, 또는 2학년과정까지 마치고 고교과정인 ‘수학정석’을 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아이들이 많은 이 지역의 특성상 영어사교육 또한 엄청나다. 대학교수준에 해당하는 ‘TEPS’를 공부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며, 더 나아가 아침 7시에 영어 학원 수업을 1시간 듣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력수준이 제각각인 이런 아이들 40여 명이 앉아 있는 교실에서의 학교수업이 학생들 개개인에게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늘어져 있는 이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을 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도 수업이 끝난 후 뒤통수 개운하게 교실문을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달 KBS 추적60분에서 방송한 ‘이래서 사교육이다!’라는 프로그램은 현장교사로서 정말 착잡하다 못해 참담한 기분을 떨칠 수 없게 했다. 일명 ‘스타강사’로 불리우는 대치동 학원가의 강사들과 학부모들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학교현장에서는 열심히 하려는 교사가 왕따 당한다.” “교사들이 다시 열정을 가지고 교육활동을 하면 공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우리도 공교육이 잘 되길 바란다.” “성과급을 주면 뭐하냐? 1/n로 나눠 갖는데...” “학교에서는 인성교육도 학력신장도 다 제대로 못하고 있다.” 등등. 그리고 한 해 20조원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사교육시장, 거기다 600억 원을 재투자하는 명문학원들, 카이스트졸업생들을 연구원과 비서진으로 10여 명 씩 두고 있는 연봉 수십억의 스타강사들의 모습, 월 평균 한 아이 당 3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쓴다는 강남 학부모들의 이야기, 족집게 강의를 받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자료들.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는 거였다. “입시제도나 정책만 탓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 것” 이라고. 그 방송을 보면서 정말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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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스타강사나 학부모들의 인터뷰내용에 진정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웬만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사교육에 쏟아 부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저지른 심각한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10여 명의 연구진을 거느리고 오로지 성적향상만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몇 몇 스타강사의 일상과 하루에도 몇 건 씩 보고해야 하는 공문처리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겸하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학교교사의 일상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어느 교육학자의 말처럼 학력신장을 학교교육의 목표로 삼는다면 공교육이 이미 골리앗이 돼버린 사교육을 이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앵커의 주장을 존중해 교사가 현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변화한다고 해도 학원을 따라잡을 순 없다. 차라리 이 정부가 좋아하는 ‘효율’을 따진다면 학부모에게 이중과세하지 말고 차라리 공교육기관인 학교를 모두 없애고, 이 정부가 진리로 믿는 ‘시장의 원리’에 교육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알아서 학부모의 경제력에 맞게 능력껏 학원에서 ‘실력’을 향상시키면 될 일이다.

이 해괴한 우리의 교육현실이 빚어진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경쟁제일주의’라고 봐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감이 승인한 국제중을 비롯한 자립형사립고들이 늘어나고, 대학들이 고교를 등급화 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 한 모든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1등과 꼴찌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수학도 아닌 산수로 풀어도 되는 쉬운 문제 아닌가? 이렇게 쉬운 답을 애써 외면하고 공교육 부실의 원인을 교사들의 탓으로 슬쩍 넘겨버리는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에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추진할 교사평가를 위한 초석을 다지려는 의도는 아닌지 말이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차분히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공교육기관인 학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민주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게 한다.’로 기억하고 있다. 이게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학교교육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지 않을까.

교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싶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도 우리 교사들의 몫임은 인정한다.

며칠 전 또 100여 명의 교사들이 ‘진단평가’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일제고사에 ‘불복종선언’을 한 바 있다. 공교육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 진정이라면, 학교현장에서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교사들의 주장을 ‘불법집단행동’으로만 매도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