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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장애의 의미(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4-11 10:03
조회
344

정한별 / 사회복지사



 

일상에서의 장애의 의미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이렇게 놀려대곤 했다.


“애자, 애인, 병신, 찐따, 사이코”


위의 호칭들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먼저 ‘애자, 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장애인복지법이 생겨난 1989년 이전까지, 장애인의 법적용어는 ‘장애자’였다. 당시 장애와 관련된 지원을 다루고 있는 법률의 명칭은 심신장애자복지법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선 장애자라는 표현에서, ‘장’을 제외한 ‘애자’라고 부르며 서로를 놀려대곤 했다. 그 표현이 더 이상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게 된 이후였지만, 우리는 ‘애자’라는 표현을 썼고, 그 표현이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 표현을 알게되었을까? 뜻이나 제대로 알고 그 표현을 쓴 것일까?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자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사람을 비하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병신은 신체적인 손상으로 인해 장애가 생긴 것을 일컬으나, 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찐따 역시 지체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용어이다. 짝짝이를 뜻하는 일본어인 찐빠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 6.25 전쟁시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사람을 모욕하는 멸칭, 소아마비로 걷는 게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등으로 쓰인다. 요새는 ‘힘숨찐’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힘을 숨긴 찐따’라나?


바보라는 표현 역시 지적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나, 요새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사용되는 사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이코는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날은 애자, 애인으로, 다른 날은 병신, 혹은 찐따, 사이코로 장애는 그렇게 부정적인 존재로 우리 곁에 계속 있었다. 과연 장애는 부정적인 실체로만 고착화 된 것일까?



출처 - 경주신문


제도 속 장애의 변화



1985년에 첫 시행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심신장애자’를 지체불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또는 정신박약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실시된 다음 해인 1989년 ‘심신장애자’라는 용어를 ‘장애인’으로 변경하고, 법의 명칭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게 된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정의는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또는 정신지체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용어의 변경과 아울러, 장애인등록제도도 처음 도입되었다.


당초 5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장애는 2000년에 10개(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로 늘어나게 된다. 2003년이 되어선 5개가 더 늘어, 장애의 유형이 15개가 된다. 요새 부쩍 매스컴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자폐증이 발달장애라는 이름으로 장애의 유형으로 추가되었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가 추가된다.


2007년이 되자, 정신지체가 지적장애로 변경되고,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로 명칭이 변경된다. 2014년이 되자, 간질장애가 뇌전증장애로 변경된다.


2015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함께 칭하는 용어로 정의가 된다.



장애의 유형과 관련된 용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감소하기 위해 사회는 조금씩 변화했다. 지체부자유에서 지체장애로, 정신박약에서 정신지체 그리고 지적장애로, 간질장애에서 뇌전증장애로 장애의 유형을 일컫는 용어가 변경되었다.


장애의 유형 역시 늘어났다. 5개에서 10개로, 그리고 현재 15개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하고 있는 장애의 종류만을 장애로 보는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은 뚜렛증후군(Tourette’s Disorder) 역시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 종류는 아니지만,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뚜렛증후군이라는 내부기관의 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에 해당함이 분명하므로,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해당한다” 라며, 장애인복지법 상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지자체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열거하고 있는 장애만을 장애의 종류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였다.


장애인복지법 상 15개 장애유형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등록의 문은 조금 더 열렸다. 2021년부터는 기면증(과도한 졸음을 유발하는 만성 수면장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도 상태에 따라 장애인등록이 가능하도록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최근에는 노인성치매의 경우 지적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고시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복지부 고시 2022-167호는 '정신장애의 정도 판정기준'을 정하면서 '선천적인 지능저하의 경우 지적장애로 판정하며 뇌손상, 뇌질환으로 성인이 된 후 지능저하가 온 경우에도 지적장애에 준한 판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다만 '노인성 치매는 제외한다'라는 단서를 두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취지는, 지적장애와 노인성치매로 인한 상태가 서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노인성 치매를 지적장애 등록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평등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지능지수 70이하)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지능지수 71~84)을 갖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이 장애인등록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현행 지적장애인 판정기준이 개별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 없이 지능지수만으로 장애등록심사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 하다는 것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주장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와 대다수 사람들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이 2022년 12월 완전하게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 라며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래 친구를 놀리기 위해 생각 없이 장애 비하 표현을 사용하던 아이는, 사람들이 장애비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핏대를 올리는 사람으로 변했다. 장애를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와 일상에서 장애의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던 시민들 역시 시나브로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