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권장기준의 그늘에서 나눈 잡담(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3-22 10:04
조회
189

신종환 / 공무원




출처 - 저자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인류는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도시는 이로 인해 공황에 빠지고 런던 정도의 도시만이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며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도 허무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에서는 신청하면 자살용 약을 제공한다. 이런 영화는 외부요인으로 미래가 막혀 사람들이 실의에 빠질 것은 걱정하지만 현실은 조용하게 우리가 미래로 가는 문앞에서 멈춰선다는 느낌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듦과 지나감을 동시에 겪으며 나날이 강하게 느낀다.



저번주에 친한 직장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지인들과 갔다. 신랑 신부는 모두 시청에서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장 주변은 온통 공무원들로 가득해서 이게 결혼식장인지 월례조회를 앞둔 시청 회의실 앞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막힘 없이 진행하는 사회자, 정감가는 축가, 이어지는 신랑의 노래. 흥겹게 이어지는 기념촬영까지. 내 결혼식도 아닌데 괜시리 만족스럽고 흠 없는 결혼식에 기분이 좋았다. 지인들과 돌아오는 길에 결혼식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하다 그들의 결혼식 비용으로 주제가 옮겨졌다.



동생은 미국 올란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거기에 세계 유일한 ‘디즈니 월드’가 있고 또 그곳의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전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신혼여행 내내 거기만 둘러볼 거라고 했다. 이번 신혼여행에만 천오백이 들었다던가 천칠백이 들었다던가... 시청에서 잘나가는 둘이 결혼했고 하객들은 구름같이 왔지만 대부분이 공무원이라 5만원을 냈을 거고 요새 1인 식대는 5만원이 넘으니까 하객들은 그들에게 금전적으로는 약간 마이너스 였을 것이고...어쨌든 수천만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란 게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혼집... 부부는 속초 해변가에 완공된 지 2년 정도 된 신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정했고 당연히 양가의 부모님의 도움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 선남선녀인 남녀, 고액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리지는 않을 것이고 꽤 승진가도를 달릴 두 공무원, 금전적인 지원이 어느정도 가능한 양가 부모님들.



결혼이란 중대사는 물론 많은 준비를 마치고 해야 하지만 최근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자면 그 준비는 마치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처럼 고도의 자본력과 정밀성과 전문성이 가미된 사람들만이 시도하는 것 같아서 결혼식 뒤풀이 일행들에게 결혼은 점점 요원한 일 같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한 경우는 예상치 못하게 자녀가 생겨 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의 가정생활은 물론 나름대로 행복하겠지만 주변 소식에서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열심히 살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자녀의 귀여운 사진 외에는 별로 알 수 없었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언급되면 오래지 않아 다른 주제로 전환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나와 내 친구들은 허들 앞에서 다리를 오들거리며 떨고 쭈뼛거리다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기로 털썩 자리에 앉는다. 결혼이 우주선 발사라면 우리는 우주선 운전 면허도 아직인 사람들인걸...


결국 우리는 그늘에 모여 시시하게 소멸을 잡담한다. 김애란 작가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했지만 너가 어딨어... ‘너’를 결심하는 것도 큰일이고 ‘내’가 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라고 농담섞인 자조를 하면서.



물론 이런 세상에도 지혜, 사랑,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있어서 어려운 처지에도 서로 기대서 생을 살기도 마음 먹고 자녀를 낳고 열심히 키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다른 양태의 멋진 우주선 발사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지에 선뜻 발을 디디는 용기가 삶에 필요함을 깨닫는 건 많은 시행착오나 좋은 선배, 선생님에게 이어 받는 단단한 지혜인데 이를 체감하거나 배울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든다. 호기롭게 발사되는 우주선들의 빛이 만드는 그늘은 우리를 시도에서 밀어낸다.


삶은 부스러기들을 겨우 모아서 뭔가를 이뤄보려는 시도 자체이고, 그 나름의 시도의 결과를 하나의 결과물로 인정해야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그런 가치관은 사회 전반에서 의무적인 규정으로 일정 부분이 할애되어 겨우 존속되지 지향할 가치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우리 부스러기들이 힘내서 불안전한 빈칸으로 발을 디딜 가치관이 다시 흐르게 될지 모르겠다. 시시한 모두의 소멸보다는 불안전한 모두의 시도가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미래가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