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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의 눈물 그리고 11년만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승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4-19 09:25
조회
220

이승은/ 경찰관




“ 아이고~~ 우리 현빈이(가명)가 또 죽고싶다 카는데 우짜능교.. 아이고오..아파트에서 또 뛰어내린다케가,, 무서버가 집 밖으로 끄집고 나와가 지금 둘이 카페에 몇 시간째 앉아 있니더. 아이고.. 우짜능교.. “


 

퇴근 후 집에서 느긋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급한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휴대폰 화면에 ‘A 중학교 김현빈 친모(피해자)“ 라고 뜬다.


 

사연을 들어보니 교실에서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말리다가 가해학생에게 코를 가격당해 학교폭력으로 학교에 신고를 했는데 학교폭력담당 책임교사가 현빈이를 따로 불러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니? 니가 너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니? 너의 기억이 100퍼센트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니? “ 현빈이가 싸움을 말리는 것을 본 아이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K교사는 이런 말을 해버렸다고 한다.



출처 - 더중앙


 

현빈이는 지난 해 11월, 1대 4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처음 만나게 된 학생이다. 그 당시 중2였던 현빈이는 한 명이 웃으면서 구경만 하고 있는 사이에 세 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가해학생들 모두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고 그들 중 두 명은 종종 함께 놀던 사이였다. 어머니는 이 일을 학교폭력으로 학교에 신고 했다가 다시 경찰로 재신고하였다. 학교측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경찰에 다시 신고를 한 이유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 K가 피해자인 현빈이 보다 가해학생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증거 있나요? 증거 없이는 곤란합니다’



폭행당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에 직접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찾아가 CCTV를 열람하게 해 달라 요청했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학교에 제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교사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한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엄격한 판사가 되어 구체적인 물적 증거가 있는지, 그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등을 피해학생에게 집요하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기도 바쁜 현빈이에게 K교사의 이 같은 언행은 고스란히 2차 피해로 이어졌다.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갔고 가해학생들과 K교사의 얼굴을 떠올리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거실 베란다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다리를 걸쳐보기까지 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리고 가해학생들이 현빈이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조치를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끊을 수 있었다.



“우리 아들 인자 괘안니더~약도 끊었고요. 마~ 공부에 욕심이 생겨서 학원도 잘 댕기니데. 고맙습니데이.“



오십줄에 귀한 늦둥이를 얻었다는 어머니께서 안도의 한숨의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겨울은 고요히 지나갔다.


 

그런데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던 신학기 봄날에 현빈이는 또 다시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그 K교사가 이번에도 현빈이를 ,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현빈이를 복도 구석으로 데리고 가 음험한 목소리로 가스라이팅을 한 것이었다.



“니가 너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니? 너의 기억이 100퍼센트 맞다고 볼 수 있니?“



독한 정신과 약 없이도 잘 지내던 현빈이는 K교사의 이런 말 한마디에 매일 자살을 생각하던 11월의 현빈이로 뒷걸음쳤다.



‘엄마..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런 기분이 사라지겠지? 너무 괴롭다. 그냥 뛰어내려서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다. 엄마..’



어머니는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아들의 손목을 낚아 채 덜덜 떨면서 아들을 데리고 나와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11년만에 발표된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로부터 50일, 이 사태를 계기로 11년만에 새로이 발표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뜯어 보면 교원에게 ‘학교폭력 지도 면책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나온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학교폭력 기록 보존기간이 단축된 것, 교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학교폭력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폭력에 대응토록 민·형사상 책임 면제와 책임계약 등을 지원할 방침이며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수업 경감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학폭 사건 해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 책임을 완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빈이의 사례처럼 단 한번도 가해 경험이 없고 소위 ‘사고 안 치는’ 아이일지라도 K교사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학교폭력을 축소하기 위한 교묘한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K교사 같은 사람이 현빈이가 다니는 학교에만 있을까?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피해학생의 17.3%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신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교급이 올라갈 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올라갔는데 초등학생은 16. 6%, 고등학생은 27.1%가 주변에 알려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부분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학생들이 신고를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유추할 수 있다.



교육부 차관의 ‘학생들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등이 복잡하게 작용해 학교폭력이 늘었다’ 는 말에 맘편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존중받았던 것이 사실이면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학생 비율이 저렇게 높게 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번 종합대책에서 이전의 정책에서 진일보 한 것이 사실이고 피해자를 위한 정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하나 학교폭력 책임 교사와 학생들간의 관계성에 대한 세밀한 진단과 분석은 매우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폭력 책임교사 또한 하나의 벽으로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빈이의 어머니는 나와 면담을 한 다음 날, A학교 교장실로 직행, 아들이 당한 수모를 낱낱이 밝히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 번 만 더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K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K교사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며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현빈이가 다시 이전처럼 밝음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11년만인데 다소 급하게 만든 것 같은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


지금부터라도 면밀히 살펴서 부족한 면은 어떤식으로 보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