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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엉긴 피냄새를 맡으며(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17 09:19
조회
139

신종환 / 공무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격언은 많고 그만큼 여기저기서 언급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만큼 생각보다 쉽게 잊힌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있지만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을 지금과는 관계없는 일들로 치부하고 또 그런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하다고 믿고 여지저기에서 말하곤 한다.



그런 일들의 시비를 가리는 일 이전에 그런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벌이는 까닭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들의 생활과 환경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아가서 우리가 처한 여러 상황적 맥락에 과거와는 다른 점들이 많아졌다는 말인 것도 같다.


출처 - 뉴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를 비추는 시선들은 짧은 시간에 달라지는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복잡하고 비참한 풍경 중 하나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 속에서 팔레스타인에 살던 여러 아랍계 민족집단의 후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빼앗긴 과거와 고통받는 현재를 공유하고 있고, 세계를 방랑하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운 유대인의 후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강토를 침범하는 이들에 대해 심적으로 정정당당한 분노를 가림 없이 표출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언론에 실린지 20년 가까이 된 사진에서 이스라엘 아이들이 헤즈볼라를 향해 발사될 포탄에 낙서하고 있는 장면은 서로를 향한 인식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사이가 안좋은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포탄에 웃는 얼굴로 우리의 죽음을 기원하는 사진을 어느 아이가 인터넷에서 보고 자란 아이가 10명이라면 그중 몇이 어떤 마음을 먹을지 확답을 할 수 없어도 평화적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진행자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기울어진 보도에 ‘팔레스타인 사람의 죽음은 다섯 글자로 적히고 이스라엘인의 죽음은 책 한권으로 적힌다’고 말했다.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는 반대방향으로 비대칭적인 보도와 이에 따른 비난이 이어진다면 이는 차라리 다음 폭력에 대한 양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출처 - KBS뉴스


하마스는 음악축제를 기습해서 수십의 사람을 죽이고 기백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았다. 당시 영상과 상황은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 이스라엘은 먼저 잘못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듯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천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가자지구에 백린탄을 발사한 영상이 인터넷에 듬성듬성 보였다. 백린탄을 실제로 쏘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죽음들 앞에서 편을 드는 일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팔레스타인이 백린탄을 쏘았다면 양상이 달랐을 거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앞으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을 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궁지에 몰린 가자지구에는 비명이 멈추지 않고, 눈물에도 멈추지 않는 피와 불을 본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의 목젖을 마이크 삼고 그들의 집을 무너뜨림으로 자신의 집이 무너졌음을 알리고자 마음 먹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줄곧 피가 흐르고 비명이 이어진 비극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양 터전에서 이어지는 비참함에 의식적으로 비대칭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를 알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은 불꽃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국에서 먼 땅의 비참한 냄새를 맡으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