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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용산구청장 사퇴 촉구 운동(이원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11 09:16
조회
223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사건의 지평선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 아스라이 하얀 빛 /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 새로운 길모퉁이 /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출처 - 대학신문


가수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매우 어려운 물리학 용어를 노래 가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놀랍다. 예술의 경지라고 부를 법하다.


사건의 지평선은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공간의 영역의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사건의 지평선에는 블랙홀 주변의 사건의 지평선과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네이버지식백과)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경계를 왜 물리학에서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지칭했을까?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는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며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라고 애절하게 표현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은 무수히 많은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많은 관계와 사건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원 참사 1주기와 너무 멋진 가을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이태원참사는 있어서는 안될 사건, 159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진 사건이다. 이런 사회적 참사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붙은 이유는 사회적 원인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동아일보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고 오랜만에 할러윈 축제가 열린 공간에는 수많은 군중이 밀집할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수 군중의 원활한 흐름을 아무도 통제하지 못해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몇 시간 전부터 그곳에 머물렀던 시민들의 심각한 경고와 호소가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지 못했다.


결국, 이태원참사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정부의 부재, 행정력의 외면으로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 드러났다. 사회적 참사는 그 사회 공동체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이웃과 가족에게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그런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사 이후, 용산 시민사회 공동체의 노력


작년 10.29 이태원참사 이후 용산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1029이태원참사추모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용산시민행동’이라는 연대단체를 꾸렸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용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젊은 청춘들이 모이는 축제의 공간, 해방의 공간이기도 하다. 너무도 익숙한 공간에서 참사가 발생했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지킴이를 일요일마다 해 왔다. 녹사평역 부근 분향소에서 시작해 지금은 시청 앞 분향소에서 진행하고 있다. 또 추모 문화제와 현수막 게시, 유가족간담회 등을 비롯해 유가족협의회의 활동에도 결합해왔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퇴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세 달 사이에 2천 명 가까운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고 구속되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6월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보석 석방되어 용산구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용산구청의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매월 한 차례씩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재판이 있을 때마다 유가족들은 법원 앞에서 “구청장 자격 없는 박희영은 사퇴하라”라며 울부짖었다.


159명이 죽었는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사회적 참사가 왜 계속 반복되는지를 바로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용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형사 처벌을 제대로 받고 그 사퇴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이 많기는 하지만 주민소환 운동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다.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


이태원참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기억과 안전의 길’을 조성하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렇지만 기억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바로 투쟁하는 일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제정되고 생명안전기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매우 험난한 투쟁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항상 그 징후가 발견된다. 누군가는 그 징후를 경고하고 해결을 하라고 촉구했다.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조치했다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참사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말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가 만지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믿음과 희망으로 시민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우리,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