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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들이 있다(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9-12 09:54
조회
177

정한별 / 사회복지사


 

 

세상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수성은 인간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유지되어야 하는가를 아주 명백히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존재의 특성이다. 한나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다수성에 대해 언급했다. “어떤 누구도 지금까지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만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 아렌트는 절대 같은 사람이 없는 다수성이 인간 세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로 인해 사회는 어떤 고민을 나눠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출처 - 브런치스토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해 나아가야 할 숙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도 자신을 알기가 어려운데, 어찌 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노력 없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개인을 집단으로 치환하여 바라보고 단순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인간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낸다. 요즘의 한국은 개개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학생 혐오의 확산


얼마 전, 한 웹툰 작가의 고소가 이슈가 되었다. 작가는 자폐성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이가 학교의 특수교사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아동이 학교에서 겪은 일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특수교사의 말을 녹음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웹툰 작가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작가에게 향해 있던 비난의 화살은 멈추지 않고, 장애학생에 대한 혐오로 확산되었다.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의 댓글에는 장애학생 전체를 비난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댓글들이 넘쳐났다. 장애학생에 대한 분리교육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장애학생 때문에 비장애학생, 교사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출처 - 에이블뉴스


장애학생에 대한 분리교육은 당연한 일이며, 정말 장애학생 때문에 비장애학생, 교사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은 가장 단순하고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지만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나자 수학여행을 없애 버리려던 일,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자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해 버리는 일, 교권하락 나아가 교권침해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학생인권을 제한하자는 일. 이 모두 문제의 변죽을 울리는 일에 불과하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특수교육에 대한 요구


대한민국의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학급당 학생 수 역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학생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 대상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2023년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국 특수교육대상자는 10만9703명으로 2018년 9만780명에서 5년 만에 20% 넘게 늘었다.


출처 - 동아일보


이 많은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은 어디에 있을까? 전체 특수교육 대상 학생 중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6.7%(29,236명)에 불과하다. 일반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73.3%(80,467명)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56.5%(61,993명)가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배치되어 있으며, 일반학급에는 16.8%(18,474명)가 배치되어 있다. 특수학교에 배치되어 있는 인원은 점점 줄어가는 추세이며, 대신 일반학교에 배치되는 학생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특수학교 아닌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비율이 73.3%나 해당하니, 다수의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일반학급에 배치된 16.8%에 불과하다.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의 장애영역은 지적장애 50.9%, 자폐성장애 17.6%, 발달지체 11.8%의 순서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발달장애에 해당하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이 특수교육대상의 70%에 육박하는 것이다. 특수교육법은 특수교육대상 개개인의 특색에 맞는 개별화된 교육계획을 수립하게끔 하고 있으며(제22조), 특히나 발달장애는 개별적인 접근과 개인의 특성에 맞춘 지원이 필수적이어서 발달장애인지원법에서 개인별로 지원계획(제19조)을 수립하게끔 하고 있을 정도이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개별화된 지원을 강조하는 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법상 특수학급 학생 정원인 유치원 4명, 초중등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에 따르다 보면, 학생 개개인에 대한 개별화된 지원은 불가능하다. 정원 문제 외에도 특수교육법에서 보장하는 지원인력(제28조) 역시 턱 없이 부족하다. 특수교육 지원인력은 별도의 전문적 교육을 받은 인원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경기도는 별도의 유급인력 보다 사회복무요원을 지원인력으로 더 많이 활용한다. 이마저도 충분히 배치되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지원인력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해 학습권을 침해받은 특수교육대상 초등학생과 부모가 교육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소송은 지난 5월 1심서 패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곤 한다. 비장애학생의 학부모들은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이 설치되는 일을 반대하고, 공공연히 차별적인 상황, 차별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장애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에 불과하다. 투사가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 심지어는 학교와 싸우든가, 조용히 지내거나 다른 학교나 다른 교육 상황을 찾아서 숨어드는 일.


장애학생들은 일상화된 혐오에 상처받다가 무뎌지거나, 견디지 못하고 더욱 곪아들어가는 일, 비장애학생들은 장애학생에 대한 편견과 불편이 강화되는 일. 이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사들은 학대의 행위자가 되거나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의 피해자가 되는 일. 그 어디에도 책임 있는 교육 당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출처 - 오마이뉴스


특수교육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및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있는 사람에게 통합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생애주기에 따라 장애유형, 장애정도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을 실시하여 이들이 자아실현과 사회통합을 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통합교육은 특수교육의 수단이자 목적이라고 할 것이다. 교육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애학생이 통합교육의 현장에서 비장애학생과 함께 지내면서 비장애학생의 행동을 보는 일 자체도 학습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이유로 장애학생만을 분리하여 교육하는 일이 결코 장애학생을 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비장애학생들도 장애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사람에 대한 배려와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장애학생도 비장애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그 누구도 피해받지 않기 위해선 학생 개인의 상황에 맞춘 보다 개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



1) 한나아렌트, 「인간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