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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군사작전, 누군가는 전쟁범죄(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25 09:26
조회
411

누군가는 군사작전, 누군가는 전쟁범죄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최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북부의 제닌 난민촌을 초토화시켰다. 다수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일과 4일 이틀간에 걸쳐 항공기와 무장헬기, 드론, 1,000명의 지상군과 장갑차, 탱크, 불도저를 동원하여 인구 약 14,000명의 제닌 난민촌을 폭격하고 침탈한 결과, 팔레스타인 측 13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120명 이상 그리고 난민촌 내 피란민은 4천 명이 발생했다.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와 트라우마힐링센터가 제닌 난민촌으로부터 차로 1시간 거리에 있기에 아디 역시 현지 상황에 대해 계속 점검하고 논의했다. 그런데 국내 뉴스를 보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서안서 20여년만에 최대작전...사상자 수십 명, 파이낸셜 뉴스, 2023.7.3.”
“이스라엘군, 서안서 20여년만에 최대 규모 작전...8명 사망, 아시아경제, 2023.7.3.”
“테러세력 소탕할 것 이스라엘, 20년만 최대 작전 서안에서 전개, 한국일보, 2023.7.3.”
“이스라엘, 서안에서 드론 동원 대규모 작전...최소 8명 사망, KBS, 2023.7.3.“
“이스라엘군, 서안서 20여년만에 항공기까지 출동 최대 작전...최소 8명 사망, 중앙일보, 2023.7.3.”

7월 3일 자 네이버 기사 검색을 통해 검색된 기사들의 제목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관련해서 국내의 기사가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번 이스라엘의 제닌 ‘군사작전’은 그 규모와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 제목이 온통 ‘작전’이고 ‘이스라엘’로 시작한다. 국내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특파원을 보냈을 리는 만무하고 제목이 대부분 비슷한 것으로 봐서 기사 소스 역시 이스라엘 국방부나 언론의 발표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무지 제닌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진.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인해 파괴된 제닌 난민촌 도로의 모습(출처: 한국NGO신문)


몇 년 전 방문했던 제닌 난민촌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팔레스타인 내 난민촌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제닌 난민촌은 아주 작다(UNRWA 자료, 0.43㎦).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많다(UNRWA 자료 23,628명) 제한된 공간에서 건물들은 위로만 올라가고 개인들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지기 어려울 만큼 인구밀도가 높다. 그러한 곳을 항공기가 폭격하고 무장헬기와 드론이 공격한 것이다. 중무장한 지상군은 난민촌을 포위한 상태에서 대포와 총을 쏜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스라엘 측이 주장한 대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난민촌의 특성상 민간인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또한 현지 활동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중 공격으로 많은 건물이 피해를 봤고 이스라엘군이 퇴각할 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스라엘 탱크와 불도저로 인하여 도로가 모두 파헤쳐졌다고 한다. 난민촌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사진.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인해 파괴된 제닌 난민촌 도로의 모습(출처: 알 자지라 뉴스)


언론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군사 작전’에는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군사 작전이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학살이고 전쟁범죄이다. ‘군사 작전’이라고 칭하면서 명백한 가해자인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이유와 서사가 부여하는 것이다. 현지의 소식을 기사로 접한 일반인에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고 학살하는데 뭔가 복잡하여 잘은 모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게 한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제닌 난민촌 공격은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하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고 명백히 과도하게 민간인인데 대하여 부수적으로 인명의 살상이나 상해, 민간 대상물에 대한 손해를 끼친’ 전쟁범죄이다. 또한 유엔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제닌 공격에 대해 ‘테러와 동급’이라고 비판했고, 3명의 유엔인권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 작전을 가리켜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법과 기준을 악질적으로 유린한 것이며 전쟁범죄가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시 돌아와서, 한국 언론의 보도한 이스라엘의 제닌 난민촌 공습과 지상군 공격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전쟁범죄’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정한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 힘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가해자의 서사는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언론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지(無知)할 순 있다. 그래도 기자님들에게 부탁건대, 자신들의 기사가 많은 이들의 판단기준이 되고 사회여론 형성에 근거가 될 터이니, 다음 기사 작성 시에는 이스라엘의 일방적 주장만을 담지 말고 적어도 비슷한 만큼의 피해자의 절규와 주장도 다뤄줬으면 한다. 그 정도의 기계적 중립마저도 지키기 어렵다면 제발 기사를 작성하지 말아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