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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과 조롱만 남은 날에 전복의 단초가 있을까(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8 11:11
조회
306

신종환 / 공무원



 

91년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글이 요새 생각난다. 그의 글이 가진 문제점들은 종이 한두 장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글로 연상되는 당시 반대 입장에서 연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죽음들 속에서 죽은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불을 질렀는지 그 주변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다.




출처 - 뉴스민


 

여러 가지 자살 방식이 있지만 삶을 체념한 사람이 분신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고, 많은 이가 보게 되며, 살게 되어도 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무언가를 자신의 삶 이상으로 여기고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사람 목숨의 무게를 모두가 알고 느끼기에 자신의 뜻이 전해지리라 믿었을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바랐던 사회적 삶에 우리는 가까워진 것 같지 않다. 멀어졌다기보다는 예전보다 그 가치가 점차 농도가 옅어지고 쉽게 지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과 죽음의 무게가 예전 같이 다뤄졌다면 최근 벌어진 gs건설의 부실시공에 대한 태도도 보다 분노가 서리고 진지한 단어들로 인터넷에 유통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 대신 빠르게 유통되는 것은 앞다투어 창의성을 다투는 gs건설에 붙여진 별명들이다. 하자이, 순살자이, 살아남자이, 백숙자이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운 조롱 섞인 별명들은 사람들이 간편하고 빠른 마음의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를 제외한 많은 진득하고 긴 시도들이 무산되고 지양되고 잊혔다고 보이기도 한다.



물론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삼성의 사과 등 너무나 가치 있는 승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공고하고 삼성의 노조 등 사람 다우려는 사람들은 즈려밟힌다.


 

사는 것을 살고 싶은 대로 살 뿐 아니라 살아지는 흐름대로 가기도 하기에 말소된 소용감은 말라붙고 무시되는 감정들이 자조적 비웃음과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조롱으로 흐른다.



그런 경향 속에서 나타난 결과가 최근 잇따른 죽음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들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 중에서도 열거하기 힘든 다수의 죽음들을 비교하는 일은 그 자체가 죽음의 무게를 상대화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정권의 태도와 이태원 참사 직후 윤석열 정권의 태도는 당시 상황을 둘러싼 여러 정황을 차치하고도 상이한 인상을 준다.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책임을 다했으며 자신들 또한 고통받고 있다는 일련의 반응들은 그렇게 뻔뻔해도 되며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뻔뻔하게 버티다 보면 죽음은 휘발되며 가벼워지고 희미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책임을 진 사람은 없고 현장에서 분투한 소방서장만 책임의 대상으로 올라왔었다. 책임감을 갖고 분투하면 돌아오는 건 책임질 일 뿐.


 


출처 - 서울신문


 

7월 들어 이어진 폭우로 인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인 실종되고 사망했다. 조선일보에 웬일로 일선 공무원들의 항변 관련 기사가 떠서 읽어보니 요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불가피한 재난을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해 비난한다며 일각의 공무원들의 의견을 대문짝만하게 확대한 기사였다. 그 당당함에 헛웃음이 났다.



최인훈 작가는 본인의 책 ‘바다의 편지’에서 ‘민족이라는 단어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면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개념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와 같이 이 사회가 생명의 가치라는 의미를 품기에는 유통기한이 만료되었고 그 여파로 이제 조롱섞인 응보심이 큰 줄기처럼 흐르는 것 같다.



출처 - pinterest


물은 범람하고 사람들은 눈물과 비명은 높고, 비웃음과 조롱은 짙다. 이 물결이 가야할 사람들에게 가 닿으면 사회는 더 바르고 단단한 그릇을 가질까. 가질 때까지 비웃음과 조롱의 농도는 짙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