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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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 / 사회복지사   일상에서의 장애의 의미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이렇게 놀려대곤 했다. “애자, 애인, 병신, 찐따, 사이코” 위의 호칭들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먼저 ‘애자, 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장애인복지법이 생겨난 1989년 이전까지, 장애인의 법적용어는 ‘장애자’였다. 당시 장애와 관련된 지원을 다루고 있는 법률의 명칭은 심신장애자복지법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선 장애자라는 표현에서, ‘장’을 제외한 ‘애자’라고 부르며 서로를 놀려대곤 했다. 그 표현이 더 이상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게 된 이후였지만, 우리는 ‘애자’라는 표현을 썼고, 그 표현이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 표현을 알게되었을까? 뜻이나 제대로 알고 그 표현을 쓴 것일까?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자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사람을 비하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병신은 신체적인 손상으로 인해 장애가 생긴 것을 일컬으나, 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찐따 역시 지체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용어이다. 짝짝이를 뜻하는 일본어인 찐빠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 6.25 전쟁시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사람을 모욕하는 멸칭, 소아마비로 걷는 게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등으로 쓰인다. 요새는 ‘힘숨찐’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힘을 숨긴 찐따’라나? 바보라는 표현 역시 지적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나, 요새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사용되는 사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이코는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날은 애자, 애인으로, 다른 날은 병신, 혹은 찐따, 사이코로 장애는 그렇게 부정적인 존재로 우리 곁에 계속 있었다. 과연 장애는 부정적인 실체로만 고착화 된 것일까? 출처 - 경주신문 제도 속 장애의 변화 1985년에 첫 시행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심신장애자’를 지체불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또는 정신박약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실시된 다음 해인 1989년 ‘심신장애자’라는 용어를 ‘장애인’으로 변경하고, 법의 명칭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게 된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정의는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또는 정신지체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용어의 변경과 아울러, 장애인등록제도도 처음 도입되었다. 당초 5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장애는 2000년에 10개(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로 늘어나게 된다. 2003년이 되어선 5개가 더 늘어, 장애의 유형이 15개가 된다. 요새 부쩍 매스컴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자폐증이 발달장애라는 이름으로 장애의 유형으로 추가되었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가 추가된다. 2007년이 되자, 정신지체가 지적장애로 변경되고,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로 명칭이 변경된다. 2014년이 되자, 간질장애가 뇌전증장애로 변경된다. 2015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함께 칭하는 용어로 정의가 된다. 장애의 유형과 관련된 용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감소하기 위해 사회는 조금씩 변화했다. 지체부자유에서 지체장애로, 정신박약에서 정신지체 그리고 지적장애로, 간질장애에서 뇌전증장애로 장애의 유형을 일컫는 용어가 변경되었다. 장애의 유형 역시 늘어났다. 5개에서 10개로, 그리고 현재 15개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하고 있는 장애의 종류만을 장애로 보는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은 뚜렛증후군(Tourette’s Disorder) 역시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 종류는 아니지만,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뚜렛증후군이라는 내부기관의 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에 해당함이 분명하므로,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해당한다” 라며, 장애인복지법 상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지자체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열거하고 있는 장애만을 장애의 종류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였다. 장애인복지법 상 15개 장애유형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등록의 문은 조금 더 열렸다. 2021년부터는 기면증(과도한 졸음을 유발하는 만성 수면장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도 상태에 따라 장애인등록이 가능하도록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최근에는 노인성치매의 경우 지적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고시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복지부 고시 2022-167호는 '정신장애의 정도 판정기준'을 정하면서 '선천적인 지능저하의 경우 지적장애로 판정하며 뇌손상, 뇌질환으로 성인이 된 후 지능저하가 온 경우에도 지적장애에 준한 판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다만 '노인성 치매는 제외한다'라는 단서를 두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취지는, 지적장애와 노인성치매로 인한 상태가 서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노인성 치매를 지적장애 등록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평등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지능지수 70이하)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지능지수 71~84)을 갖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이 장애인등록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현행 지적장애인 판정기준이 개별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 없이 지능지수만으로 장애등록심사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 하다는 것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주장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와 대다수 사람들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이 2022년 12월 완전하게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 라며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래 친구를 놀리기 위해 생각 없이 장애 비하 표현을 사용하던 아이는, 사람들이 장애비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핏대를 올리는 사람으로 변했다. 장애를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와 일상에서 장애의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던 시민들 역시 시나브로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2023-04-11 | hrights | 조회: 563 | 추천: 4
신종환 / 공무원 출처 - 저자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인류는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도시는 이로 인해 공황에 빠지고 런던 정도의 도시만이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며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도 허무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에서는 신청하면 자살용 약을 제공한다. 이런 영화는 외부요인으로 미래가 막혀 사람들이 실의에 빠질 것은 걱정하지만 현실은 조용하게 우리가 미래로 가는 문앞에서 멈춰선다는 느낌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듦과 지나감을 동시에 겪으며 나날이 강하게 느낀다. 저번주에 친한 직장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지인들과 갔다. 신랑 신부는 모두 시청에서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장 주변은 온통 공무원들로 가득해서 이게 결혼식장인지 월례조회를 앞둔 시청 회의실 앞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막힘 없이 진행하는 사회자, 정감가는 축가, 이어지는 신랑의 노래. 흥겹게 이어지는 기념촬영까지. 내 결혼식도 아닌데 괜시리 만족스럽고 흠 없는 결혼식에 기분이 좋았다. 지인들과 돌아오는 길에 결혼식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하다 그들의 결혼식 비용으로 주제가 옮겨졌다. 동생은 미국 올란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거기에 세계 유일한 ‘디즈니 월드’가 있고 또 그곳의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전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신혼여행 내내 거기만 둘러볼 거라고 했다. 이번 신혼여행에만 천오백이 들었다던가 천칠백이 들었다던가... 시청에서 잘나가는 둘이 결혼했고 하객들은 구름같이 왔지만 대부분이 공무원이라 5만원을 냈을 거고 요새 1인 식대는 5만원이 넘으니까 하객들은 그들에게 금전적으로는 약간 마이너스 였을 것이고...어쨌든 수천만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란 게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혼집... 부부는 속초 해변가에 완공된 지 2년 정도 된 신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정했고 당연히 양가의 부모님의 도움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 선남선녀인 남녀, 고액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리지는 않을 것이고 꽤 승진가도를 달릴 두 공무원, 금전적인 지원이 어느정도 가능한 양가 부모님들. 결혼이란 중대사는 물론 많은 준비를 마치고 해야 하지만 최근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자면 그 준비는 마치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처럼 고도의 자본력과 정밀성과 전문성이 가미된 사람들만이 시도하는 것 같아서 결혼식 뒤풀이 일행들에게 결혼은 점점 요원한 일 같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한 경우는 예상치 못하게 자녀가 생겨 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의 가정생활은 물론 나름대로 행복하겠지만 주변 소식에서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열심히 살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자녀의 귀여운 사진 외에는 별로 알 수 없었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언급되면 오래지 않아 다른 주제로 전환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나와 내 친구들은 허들 앞에서 다리를 오들거리며 떨고 쭈뼛거리다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기로 털썩 자리에 앉는다. 결혼이 우주선 발사라면 우리는 우주선 운전 면허도 아직인 사람들인걸... 결국 우리는 그늘에 모여 시시하게 소멸을 잡담한다. 김애란 작가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했지만 너가 어딨어... ‘너’를 결심하는 것도 큰일이고 ‘내’가 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라고 농담섞인 자조를 하면서. 물론 이런 세상에도 지혜, 사랑,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있어서 어려운 처지에도 서로 기대서 생을 살기도 마음 먹고 자녀를 낳고 열심히 키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다른 양태의 멋진 우주선 발사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지에 선뜻 발을 디디는 용기가 삶에 필요함을 깨닫는 건 많은 시행착오나 좋은 선배, 선생님에게 이어 받는 단단한 지혜인데 이를 체감하거나 배울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든다. 호기롭게 발사되는 우주선들의 빛이 만드는 그늘은 우리를 시도에서 밀어낸다. 삶은 부스러기들을 겨우 모아서 뭔가를 이뤄보려는 시도 자체이고, 그 나름의 시도의 결과를 하나의 결과물로 인정해야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그런 가치관은 사회 전반에서 의무적인 규정으로 일정 부분이 할애되어 겨우 존속되지 지향할 가치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우리 부스러기들이 힘내서 불안전한 빈칸으로 발을 디딜 가치관이 다시 흐르게 될지 모르겠다. 시시한 모두의 소멸보다는 불안전한 모두의 시도가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미래가 있다면 좋겠다.
2023-03-22 | hrights | 조회: 398 | 추천: 1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나는 살아 남았다. 지난 1월 15일 은평구 기온은 영하 19.5도를 기록했지만 기후위기에도 길거리에서 얼어죽지 않았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는 단 한줄도 장애인에 대한 언급이 없고 연이은 화재에 죽어나가는 장애인들, 여전히 전체 장애인 정책을 책임진다는 장애인 개발원의 재난 구조 매뉴얼에서도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불이나면 계단을 이용하라고 지극히 형식적으로 장애인을 구조할 지경이지만 아직까지 서울 시장에 의하여 혼자 살기 힘들고 돈이 많이 드니 시설에 강제 입소당하지는 않았다. 출처 - 픽사베이 나는 여기 구산동에서 혼자서 개인 핸드폰을 열어 보면서 살아 남았다. 지난 달에 비해 난방비 요금이 두 배로 뛰고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대중 목욕탕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아파트 욕실에 흡착판 손잡이를 달아 대며 살아 남았다. 오늘 서울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어도 카페마다 흔하디 흔한 공기 청정기를 가동시키지 않고 KF94 마스크 쓰기도 어려움이 많지만 멀리 보이는 북한산과 고양시 넘어가는 서오릉 가는 둔덕의 바람길 덕분에 맑은 공기를 접할 수 있어 아직까지 홀로 살아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 조사망률은 53.6%로 사망 원인 중 10위를 차지하고 건강검진 역시 3년째 마음대로 편히 받지 못하고, 외출하는 일도 사람을 만날 일도 생기지 않아 아직 코로나를 경험하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격리할 일도 없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의 조력이나 간병인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한 채로 병원에 입원할 일도 없이 질병의 두려움에도 여전히 살아 남았다.   큰 길 건너 은평구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무연고로 사유 알길 없는 오래된 유골들이 다수 외롭게 발견되어도 그 누구도 치밀한 수사나 탐문 조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대구 장애인 생활시설 희망원에서 최근 2년간 거주 장애인 3명이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되어도 그 어느 언론도 기사를 쓰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이유없이 방문하는 동창생들, 친구들 때문에 정신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열일시키며 꿋꿋이 살아 남았다.   출처 - 픽사베이   여전히 서울 고양시의 어느 학교에서는 버젓이 교장이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급 설치를 거부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80년대 때는 지금처럼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특수학급이나 전문성을 지닌 특수교사도 없었지만 자원 봉사 따위로 나를 의무 교육을 퉁치지 하지 않았고 사회복무요원같은 사람들이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강당에 끌고 가서 벌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내 담임 선생님이 나를 화장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신변처리를 지원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기에 화장실에서 목발로 수십번 넘어졌지만 난 기꺼이 살아 남았다. 등교를 하려고 가끔 아침에 기본 요금 600원짜리 택시라도 잡을려면 많은 차들이 불운이 온다면서 마냥 지나치기 일쑤였고 놀이공원에서는 아무도 놀이 기구에 태워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내 모교에서는 다니기 위험하다거나 비장애인 학생들이 힘들다고 하거나 집에 얌전히 있으라 절대 말하지 않았다. 6학년 수학 여행에는 늙은 교감 선생님께서 나를 업고 먼저 토함산 석굴암에 올랐다. 나는 그렇게 교감 선생님의 등줄기를 적시던 땀과 함께 즐겁게 살아 남았다. 같이 지하철로 출퇴근 이동하자는 장애인들은 더 이상 사회의 약자가 아니라며 시민의 기본권마저 부정하는 정치인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따금씩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새치기 하여 먼저 자동차 문을 열어 제끼는 사람들을 타박하고는 나를 제일 먼저 태우는 택시 운전사 분들, 그게 운전하는 사람들의 의미라는 사람들로 날마다 날마다 깨어서 살아 나오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대사들이 미디어에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겉멋으로만 인권을 말하고 지켜야 하는 이 곳, 온갖 겁박과 회유 과도한 업무에도 가끔 같이 밥먹는 동네 마을 사람들 덕분에 그만두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나는 아직 사무실에 고독히 앉아 일을 하며 계속 인권을 말하며 쌀을 팔아 오듯이 살아 있다.   출처 - 은평시민신문   사는 곳에 하루가 멀다하고 생기는 각종 무인 가게는 계단과 출입문들이 천안문 앞 무장 탱크처럼 목발과 휠체어를 막아서고 자동차를 타고서 주문을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가게들은 음성으로만 주문이 가능해서 목소리 없거나 약한 사람들을 거부하지만 깡통에 담겨와 끼우기 쉬운 캡슐커피 덕분에 나도 도시 시민처럼 설탕 두 숟갈 가득 넣은 아침 가배(커피)를 먹으며 잠에서 깨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창문마다 맻힌 서리와 이슬로 말미암아 체중을 실어 밀어도 해뜨기 전까지는 창이 얼어 붙어 바깥 공기를 만날 수 없고 천장에 붙은 전기 콘센트에 선을 연결할 수 없어 키가 되고 손이 닿는 사람이 방문하는 날이 되어서야 전기 장치가 멈춘 지 일년이 지나서야 다시 환풍기가 돌아갔지만 나는 질식해 쓰러지 않고 또다시 살아 남았다. 딴딴하게 경직된 근육과 피사의 탑처럼 비스듬히 넘어진 몸뚱아리는 겨울잠을 마치지 못하고 한기에 노출된 개구리처럼 바짝 웅크리고 있지만 늘 그러하듯이 버티고 있는 현관문의 산세베리아는 동네 누나의 마음처럼 새순이 빠꼼히 올라오고 뭘하지 않아도 항상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우리 장애인 학생들도 명지전문대의 신입생이 되고 우리 아파트 옆 구산중학교의 일학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교사 일을 하는 벗은 오랜 암투병을 마치고 찾아와 오는 3월 복직을 한다고 수다를 떤다. 인구는 광속으로 소멸되는데 여전히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 학생 한명 지역 사회를 돌아 다니는 장애인 한명을 소중히 할 줄을 모른다.   대학교는 벚꽃이 피기도 지기 전에 사라지는 작금인데 장애인 입학을 여전히 거부하고 지원에 대한 인식은 새마을 운동 전에 머물러 있는 교육계, 한국이 없어진다고 난리 피는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장애인 이동권도 혐오와 돈문제로 이전 투구를 벌이면 어느 누가 노산과 난산에 도전하겠는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동성애자든 어떤 존재든 낳기만 해라고 해도 낳을까 말까 할터이다. 언제부터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광권을 신경썼다고 국립 공원에 장애인 핑계삼아 케이블카를 만들고 공항을 짓고 길을 내고 있다. 아마도 20년 안에 나무 한그루 자리값이 그 케이블카 개발비보다 더 비싼 날이 올터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지금도 버텨내고 았다. 그렇게 우리의 땅에, 광장에 파르나니 봄이 오고 있다. 아무리 외롭고 슬프더라도 좌절과 실패가 휘몰아 치는 눈보라처럼 절망스러운 분노가 온몸을 휘감고 좋은 사람들이 힘들게 곁을 떠나도 우리의 봄은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리며 오고 있다. 불광천에, 여의도에 솜사탕 가득하게 벚꽃이 몽실 몽실 넘칠 때까지 우리는 그 때까지 함께 살아 내야 한다. <본 글은 은평시민신문에 올린 기사를 재수정 추가한 글임을 밝힙니다.>
2023-03-08 | hrights | 조회: 407 | 추천: 2
정한별 / 사회복지사 대한민국의 장애계에 2008년은 상당히 뜻 깊은 해이다.   2007년에 제정되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차별금지법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첫 시행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한민국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의 당사국이 되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회에서 비준한 조약인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출처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장애인권리협약은 21세기 최초의 국제 인권법에 따른 인권조약이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도농을 가릴 것 없이 장애인은 차별받았던 존재이고, 현재도 차별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차별적 상황의 개선과 장애인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논의되었다.   2001년 제53차 유엔총회에서, 멕시코의 빈센트 폭스 대통령은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안했다. 2006년 12월 13일 제61차 유엔총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되어, 2008년 4월 3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20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였고, 2008년 5월 3일에 발효되었다. 2022년 12월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유엔 회원국의 185개 국가가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다만 대한민국은 2008년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에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장애인이 직접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개인진정제도’와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는 직권조사권이 포함되어 있다. 태현(가명)씨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을 한다. 학교에서 시내에 나갈 때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데, 저상버스는 계단이 없고 버스의 높이가 승강장의 높이와 유사할 만큼 낮아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 지팡이를 짚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타고 내리기 편한 교통수단이다. 2021년 기준 전국 (시내)저상버스 도입률은 30.6%이다. 특히, 충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2023.2.20. 국토교통 통계누리 검색).   출처 - 경인일보 어느 날 저녁 태현씨는 시내에서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여느 때 처럼 잘 오지 않았다(사실, 버스가 늦은 것이 아니라 버스가 없는 것이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에 타려는 태현씨에게 버스기사가 말했다. "어떡하죠, 미안해요. 리프트가 작동을 안하네. 고장 났나봐요" 또 한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두번째 버스가 왔다. 이번에도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기사는 미안해하는 표정과 말투로 태현씨에게 말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게 제 버스가 아니라, 사용법을 몰라요. 다음 버스 금방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날 태현씨는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2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태현씨에게 이런 일은 평생 한번 겪을 만큼 드문 일이었을까? AI가 글도 대신 써 줄 수 있다는 시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안되는 게 없는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버스를 타는 일을 거부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태현씨는 또 버스를 기다렸다. 한 참을 기다려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기사는 또 다시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사용법을 몰라요.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니까 다음 차 타세요."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된다는 말인가. 얼마나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말인가. 장애가 없는 승객은 기다리면 안되는데, 장애가 있는 승객은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당연하다는 것인가. 버스기사들은 한결 같이 사과를 했다. 사람 좋은 미소와 적당히 미안해 하는 표정을 섞어가며 난처한 모습을 취했다. 자신이 일부러 장애인을 버스에 태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꾹꾹 눌러 담았다. 버스기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보통의 시민 태현씨는 저상버스에서 탑승을 거부당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소송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 장애인 차별을 당했다며 버스회사와 버스회사가 속해있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를 대상으로 차별구제소송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당한 사유없이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제한, 배제, 분리, 거부 등으로 불이익하게 하는 것을 장애인차별로 정하고 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소송 결과 버스기사. 버스회사의 장애인 차별은 인정되었으나 지자체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은 모두 지자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비용 마저 원고인 태현씨에게 부담하도록 했다. 장애인차별이 인정되었지만, 대중교통 관리의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장애인차별에 법적 책임이 없으며, 법적 책임 없는 지자체에게 장애인 차별의 책임을 물은 못된 시민, 못난 시민은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 우리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지자체는 법원의 판단대로, 태현씨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된 지 14년 만인 2022년 12월 장애인권리협약의 선택의정서가 드디어 비준되었다. 이제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한 경우, 국내에서 모든 구제절차를 취하고도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다면, 개인이 직접 유엔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된 지 15년이 지났다. 장애인의 인권, 장애인의 권리는 분명 신장된 것 처럼 보인다. 제도는 더욱 촘촘해 졌으며, 사회는 더욱 발전했다. 특히 과학기술(편의시설)은 소위 눈부시게 발전했다. 시민들의 인식은 2008년에서 1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진보했을까.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단 5분도 못 참는 선량한 시민들이, 과연 내가 아닌 다른 시민들의 손해에는 귀 막고, 눈 가리고, 입을 닫고 있지 않나. 되려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스테판에셀은 「분노하라」에서 공적 분노가 없는, 사회에 무관심한 현재의 세태에 대해 탄식하며 시민들의 연대를 주문했다.   사회가 아닌 사인(私人)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넘치는 요즘 시대, 각자도생이 현명한 생존전략으로 여겨지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사적분노와 혐오 대신, 공적분노와 연대가 함께하길 바라본다.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목에가시 #정한별 #사회복지사 #장애인 #인권 #차별금지법
2023-02-21 | hrights | 조회: 536 | 추천: 1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지난 2월 1일은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가 발생한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중들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힘겨운 투쟁을 2년째 이어가고 있지만 군부는 폭력 진압과 학살로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2년이 되는 날, 아디를 포함한 국내외 인권단체와 재외 미얀마 단체는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를 개최했고 국제사회 역시 추가 제재를 통해 군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의 폭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쿠데타 발생 2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는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았다. 사진. 2월 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2년 규탄 및 민주주의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아디 홈페이지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023년 1월 30일 기준 최소 17,525명이 체포되었고, 약 3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5만 채의 민가가 불에 탔으며,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군부의 공격을 피해 난민이 되어야 했다. 불과 이주일 전인 지난 1월 24일에도 카렌주의 마을들이 군부 공격에 파괴되었고, 5천여 명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군부에 비한적인 언론사를 사실상 모두 폐쇄하고 150명에 가까운 언론인을 체포하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군부가 운영하는 언론사만을 유지시키고 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중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1월 30일 아디와 교류하는 현지 활동가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기름값은 세 배로 뛰고, 전기사정이 안 좋아져서 하루 절반 이상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미얀마 군부의 행정제재, 미얀마에 투자했던 기업들의 투자철회로 미얀마 화폐의 가치는 폭락했고, 쿠데타 이전 연 6%내외로 성장했던 미얀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쿠데타 이후 -18%가까이 후퇴했다. 미얀마 통계청이 밝힌 2022년 미얀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1%에 이르러 미얀마 사람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 젊은 층(20대~40대)은 미얀마 내에서의 희망을 접고 해외로 이주노동을 신청하고자 했지만 미얀마 군부는 지난 1월 17일부터 미얀마 국민의 신규 여권 발급과 기존 여권 갱신을 전면 중단하여 합법적인 출국을 원천 봉쇄했다.   미얀마내 교육상황 역시 크게 후퇴했다. 미얀마 공교육은 교사들의 시민불복종운동 참여로 인하여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고 미얀마 군부의 강제적인 교사 등원 조치와 함께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하였지만 교제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미얀마 중부지역 고등학교 교사는 전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외곽의 소수민족과의 전투를 계속 이어가면서도 미얀마 내의 치안상황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지의 치안상황이 불안정해져서 강도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나날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쿠데타 발생 2년이 되는 날, 미얀마 민중들은 자신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군부와 전세계에 알리고자 침묵 시위(Silent Strike)를 기획했고, 비록 군부의 강제명령때문에 일부 자영업자와 상점주인들이 가게 문을 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미얀마 민중은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미얀마는 침묵했고,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018년부터 아디와 미얀마 현지에서 마을도서관을 운영하는 현지활동가들은 늘 담담했다. 미얀마에서 전해져 오는 온갖 비극과 슬픈 소식에도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활동을 이어갔고 일상을 살아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군부의 거센 폭압속에서 잠시 몸을 누일지언정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그들의 강한 염원은 땅속에 뿌리깊게 박혀서 언젠가 올 변화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2023-02-07 | hrights | 조회: 430 | 추천: 4
신종환 / 공무원   오늘의 글은 2015년에 개봉한 프랑스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에서 산드라는 복직 예정인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친한 동료의 항변으로 그녀의 해고 여부를 직장 동료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그녀가 해고되면 동료들은 1,000유로, 당시 기준으로 130만원 가량의 보너스를 받게 되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거절키로 하면 그녀의 자리는 유지된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   그녀는 다가올 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을 부탁하기 위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어떤 동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얘기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하고, 어떤 동료는 자신에게 부탁하러 온 그녀를 보고 울며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고 부자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녀의 말을 듣던중 부자간에 몸싸움이 난다.   복직을 향한 그녀가 겪는 어려움은 공권력 등의 외부적 제재로 인해 발생하지는 않는다. 경찰도 행정력도 그녀를 막거나 훼방 놓지 않는다.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동료들이 자신으로 인해 이런저런 식으로 불편해함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불편을 유발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짐에서 기인한다. 이는 계속해서 남을 불편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러운 회의감이기도 하고 자신의 더도 덜도 없는 자리를 위해 이만큼의 일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다소 우울하고 별로 던져본 적 없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끊임없이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목도해야 하는가, 자신이 130만원이라는 금액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낮은 가치를 지녔는가. 아팠던 나날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만 해도 번거로운데 왜 자신은 남들을 이토록 불편하게 들쑤셔야 하는가. 가뜩이나 슬픈 그녀에게 이어지는 질문들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산드라의 여정은 자신의 자리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보여주는 한편 그녀 동료들의 삶의 무게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무게는 집수리, 전기세, 자녀의 학비 등 여러 가지와 저울되고 동시에 그런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삶의 아슬아슬하고 무거운 균형을 느끼게 해준다.   길게 이어진 분투 끝에도 아쉽게 그녀의 해직이 결정될 것처럼 보이자 그녀는 먹던 약을 한번에 털어넣고 침대에 눕는다. 눈이 감기기를 기다리던 중 남편이 그녀의 동료 한명이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는 말을 하고 희망이 보이자 그녀는 급히 속을 게워내고 입원한다. 짧은 시간동안 죽어버리려고 마음먹었다가 바로 다시 살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김준산 작가가 본인의 책에서 ‘상상력이 현실에 완전히 포섭될 때 사람은 자살한’다고 했던 말이 이번에도 생각난다. 우리를 죽고 살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낙관을 빚어낼 수 있는지 인것 같다.   그녀를 힘들게만 만들었던 이틀의 여정은 실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회사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좋냐며 그녀를 힐난하는 반장 앞에서 그녀는 이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그가 한 행동을 짚으며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투표결과 이틀의 분투에도 그녀는 과반 득표를 실패하나 사장은 그녀의 분투를 높이 사며 다가오는 계약직들의 계약만료 기간에 그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동료들에게 보너스 지급과 그녀의 고용유지 모두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자리가 남의 자리를 뺏은 자리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며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들 잘 싸우지 않았냐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출처 - 저자 악화되는 경제 속 세대와 직업 등 분화되는 기준이 늘어만 가는 것 같은 요즈음 거진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영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서로를 구분 짓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겠지만 근 1, 2년간 세대 혹은 세대의 행위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를 짚자면 라떼와 mz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어 모두 구체적인 까닭으로 분석되기보다는 농담 섞인 비난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상호간에 지칭할 때 쓰이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도보다는 이해할 수 없음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대표적 표상 같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자연스럽던 행동에 ‘mz세대는 역시’라는 주변의 농담섞인 시선이 닿을 때는 타 세대에 대한 가벼운 배척과 누가 먼저 칭했을지 모르는 서로를 대용할 칭호로 서로를 포섭해서 치부해 버리면 상황이 쉬워진다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라떼’와 ‘mz’를 세대의 특성을 파악한다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기를 방기한 지금 서로를 무엇으로 치부하기로 한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물론 서로를 이격시키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공무원 임금과 연금에 대한 탄식이 예전보다 많은 공감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 피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범위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더 차갑고 날선 비난을 세우기에 주저치 않는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어느 부분에서는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비단 정부의 강경한 태도만이 그들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은 아니기에 이를 더욱 상기시킨다.   훌륭하게 번역된 영화 제목들은 원제가 미처 예상치 못한 의미들을 발굴한다. 영화 ‘미용사의 아내’가 ‘사랑한다면 그들처럼’으로 그들의 애정의 궤적을 강조하고 ‘ghost’의 한국어 제목이 ‘사랑과 영혼’이 되었다. ‘two days one night’는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되어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내 일’을 위한 시간이고 나아가 내 일을 향하는 시간만큼 우리는 남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마지막 그녀의 결단과 약에 의존했었던 그녀의 홀가분하면서도 강해진 태도에서 그 상호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해석으로만 치부되기 어렵지만 전에 없던 강한 공감과 강한 배척은 우리의 더 강한 원자화와 신호인 한편 전보다 나은 연대의 미약한 가능성을 품게 하는 것 같다. 각자를 호명하는 기호를 넘어선 시대를 향한 투쟁에의 생각이 내 일과 네 일을 향한 시간을 잉태하지 않을까. 추운 날 따뜻한 볕을 생각해본다. 자기로부터 시작된 시선이 타인을 경유해 자신에게 돌아올 때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과 사람 사이 라는 뜻의 ‘인간’이 우리 안에서 힘을 얻지 않을까.
2023-02-01 | hrights | 조회: 545 | 추천: 6
이승은 / 경찰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소위 사고 치는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공통적으로 본인의 나이가 촉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나이니까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고요.   촉법소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형사상 미성년자를 뜻합니다.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 송치,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의 보호처분을 받지만 가장 무거운 처분(10호)을 받아도 2년간 소년원에 다녀올 뿐이며 전과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9조의 규정 때문이지요.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질러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 3만 5390명 가운데 만 13세가 2만 2202명(62.7%)에 달했습니다. 이 기간 전체 촉법소년 또한 6282명→6014명→7081명→7535명→8474명으로 증가 추세입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보호관찰 중인 소년범의 재범률은 2020년 13.5%로 성인 재범률 5%의 2배가 넘습니다.   22년 6월 리서치 전문업체 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 남녀 3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관련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2%가 연령 하향에 찬성했고 연령 하향 시 범죄율 감소 효과를 묻는 항목에는 77.5%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   인권연대 주최 촉법소년 연령하향? 소년 보호 정상화가 답이다. 토론회 중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10월 26일 형사처벌이 가능한 소년의 연령을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던 소년범죄 대응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형사 미성년자 연령 문제뿐만 아니라 교정·교화 강화, 피해자 및 인권 보호 개선, 인프라 확충을 망라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인권위는 “어린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낙인효과를 확대해 소년의 사회복귀와 회복을 저해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며 소년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에 적절히 대응하는 실효적 대안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80%가 법무부의 입장에 찬성하고, 넷플릭스 인기작 ‘소년심판’에서도 촉법소년이 정면으로 다루어져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분위기에서 보면 13세로 연령이 낮춰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준 연령을 14세로 정했던 1953년은 70년 전이므로 그때와 지금 청소년들의 정신적, 육체적 성숙도를 고려하면 1살 낮추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연령 현행화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절도처럼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운 범죄에 대해서까지 엄벌의 잣대를 들이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동네마다 있는 무인 점포에서 1000원 짜리 과자를 한 개 훔쳐서 절도로 입건되거나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셋이 하나씩 먹다가 특수절도 등으로 입건되는 경우가 많은데, 연령이 낮아지면 이 같은 바늘도둑 전과자를 대량 양산하게 됩니다.   법무부는 “이번 소년범죄 종합대책이 단순한 엄벌주의가 아니라 소년범의 교정·교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과연 소년범 개개인에 대한 섬세한 맞춤형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처벌과 교화 프로그램을 적용하더라도 소년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절도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불입건 또는 훈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학교전담경찰관의 업무로 지정되어 있는 선도심사위원회 (범죄심리상담사에 의한 전문가참여제 등 선도프로그램 이수를 전제로 소년범에게 훈방 또는 즉결심판 처분을 내리는 제도)를 대상 소년범의 수를 확대하고 절차는 더 간소화시켜 담당 수사관의 판단만으로도 신속히 훈방 처분이 가능한 절차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업무의 특성상 소년범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학교전담경찰, 여성청소년수사팀 등 현장의 목소리를 꼼꼼히 수집하여 조금의 부작용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2023-01-18 | hrights | 조회: 546 | 추천: 2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보통 1월은 현장인권강의하는 활동가에게는 가장 한가한 때이다. 입시 상담이나 차별 상담도 없고 현장 인권 강의를 요청하는 곳도 거의 없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는 마치 일년을 준비하듯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고 그동안 모아온 자료 등과 명함등을 정리하고 버리고 치운다. 그렇게 밀린 원고쓰다가 책상 서랍등을 정리하다가, 물건 등을 버리다 보면 어느새 오른쪽 창밖으로 아침해가 밝아온다. 그제서야 주섬 주섬 안방 침실로 옮길 물건 등을 보행기에 담아 소나기 만난 토끼처럼 추적추적 들어간다. 그렇게 기절하듯 침대로 몸을 뉘여서 엉덩이 중심으로 반바뀌 돌려서 잠이들면 까무룩 까무룩 잠이 들어왔다 나갔다 불면증인지 가위눌림 인지 모를 좀비 같은 꿈을 꾼다. 그렇게 오는 꿈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쫒기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높은 빌딩에서 하염없이 추락하거나 무엇에게 무지막지하게 물어 뜯기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제 그런 꿈을 꾸어도 식은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불현듯 궁금한 것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를 절벽으로 던져 버리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넉넉해진 꿈시간에도 요즘 인기있는 복수 드라마처럼 꿈에서라도 초중고에서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학교 때 그 추운 학교 복도에서 삼색 슬리퍼 한짝으로 내 뺨에 싸대기를 날리던 동급생 녀석의 능글맞은 얼굴, 도망치며 신나하던 그 목소리, 그 순간 기절할 것 같은 차가운 공기 냄새까지 생생하다. 정작 그 동창의 이름은 아무리 해도 기억 안나는 걸 보면 그 때 내가 당한 것은 요즘에 비하면 정말 애교스러운 수준이었으나 그 드라마의 예고만 보고도 온 몸의 아드레날린이 정맥주사로 맞는 것처럼 용솟음치는 걸 보면 피해자이긴 했나보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복수를 꿈꾸기엔 그것을 치밀하게 기획하기엔 나는 너무 귀찮고 피곤했다. 그 가해자 녀석의 괴롭힘보다 진학하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입학을 거부하지 않을까 더 두려웠기 때문에 얼굴에 남은 슬리퍼 자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 능글맞게 나를 괴롭히던 친구는 전교 1등을 하는 언어 실력으로 놀렸고 서울대 갈 성적으로부터 얻은 선생님들의 신망을 방패삼아 벌을 피해 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받아쓰기는 여전히 빵점이었다. 언제부터 다른 아이들이 나를 공룡이라 불러댔다. 아마 체육시간에 음악에 맞춰 무용을 할 때부터였다. 다른 친구와는 달리 당시 유명했던 마징가 Z 만화 주제가조차 나는 몰랐다. 아이들의 익숙하고 빠른 율동에 나의 흐느적 거리고 휘젖는 팔다리는 걸려서 넘어질 뿐이었다. 나는 분단별로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바로 보며 앉아 있었다. 그 때, 드디어 나는 안전해 졌고 편안해 졌다.. 학력고사 시절 중간고사를 보던 고등학생 때에는 아무도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능으로 대학 입시가 바뀌고 연산 로터리 재수학원에서 일년동안 본고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시인이었던 학과장이 이 점수면 합격이란 전체 7명만 얻은 언어 영역 점수를 들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홀로 입성했다. 서울에 오면서 제일 먼저 일년 일찍 그 대학에 갔던 그 가해자 녀석이 떠올랐던 것은 혼자라는 불안감이 주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알 수 없이 짜릿하게 승리한 것 같은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입학식 바로 다음날 점심 때 대학교에서 행정학과를 다닌다는 그를 만났다. 선배라고 1900원짜리 청경관 식판 밥을 사주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사과 비슷한 것을 한 것 같긴 한데 진정 내가 용서했다는 감정도 경험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녀석에 비해 내가 일년 늦게 대학을 왔지만 그 당시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무도 믿어 주지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전공에 내 실력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대학 내내 형언할 수 없는 만큼의 내 엔돌핀이었다. 출처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중 지금 그 드라마로 인해 태국의 유명 배우가 학창시절에 같은 반의 자폐인 학생을 괴롭힌 것이 재조명되어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떤 심정일까? 그것을 방조하고 방임했던 교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복수극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것은 그만큼 현실은 암담하기 때문일까? 그 드라마에서 학교 폭력으로 자퇴하려는 피해 학생을 더 때리고 겁박했던 교사가 장학사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듯 하면서도 아주 현실적이며 상징적이다. 의무교육의 최고 관리자가 단지 장애인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입학을 거부하고 그들을 지역사회서 함께 교육 하기를 거부하면서 특수학급조차 만들지 않는 교육계의 현실에서 그런 설정은 절대 황당하거나 기괴하지만은 않다. 그 드라마에 고데기로 인한 학교 폭력사건이 17년이 지난 2006년의 과거이지만 오늘날 학교는 과연 이런 폭력이 사라졌거나 줄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변한 것은 귀신의 복수로만 그 아픔과 피해를 호소하던 8,90년대를 지나 가족과 남자들의 복수로 점철되었던 막장드라마를 거쳐 치밀한 작전과 사고, 사람들과의 공감 연대를 통해 함울아비와 같은 복수극을 펼친다는 판타지가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 경험자로서 그 드라마의 가해자의 행위에 재경험을 통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도 복수극을 펼쳤던 여주인공을 통해서는 그렇게 많은 카타르시스 공감하지 못하겠다. 웃기게도 여주인공이 복수에 집중하기 위해 오로지 김밥만 먹는 것이 식판을 들수 없어 김밥만 먹었던 나에게 가장 공유하는 판타지가 되었다. 피해자인 주인공이 물리력을 거의 쓰지 않고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나와 같은 약자들의 욕망들이 충분히 투영된 것이지만 여전히 나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펼치는 복수극은 그 드라마에 없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일이어서 오히려 우리 사회는 둔감한 것일까? 학교인권교육에서 나도 가끔 복수심이 올라올 때가 있다. 장애인 학생을 괴롭힌 가해자를 향해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 가끔은 인권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에 날려드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모욕과 혐오를 마주하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도 장애인이 되거나 이동약자가 되면 두고 보자라고 하는 것 외에 더 드라마 같은 보다 더 인권적인 복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학교폭력 #장애학생 #인권 #김형수
2023-01-11 | hrights | 조회: 528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소설 「밤의 유서(요슈타인 가이더, 2021)」의 주인공 알버트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자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주치의인 마리안네로부터 ALS 진단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 에이린과의 추억이 깃든 호숫가의 오두막집에 찾아간다.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고통 받으며 가족들의 짐이 되는 것보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떠나고자 한다.   오두막집은 사랑의 추억이 깃든 장소임과 동시에, 가족과의 추억이 서린 별장이기도 하다. 알버트는 오두막집에서 자신의 생을 정리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사랑과 잘못들을 마치 유서를 쓰듯, 오두막집에 두고 쓰던 방명록에 눌러 담는다. 이틀 동안의 방명록에 존재, 사랑, 이별, 죽음에 대한 마음을 담으며 결국 방명록을 태워버린다.   소설은 상당히 짧았다. 예상되는 전개, 뻔한 문구들이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죽음이란 단어가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2021년 3월 23일 내가 사랑한 남자가 죽었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 지금은 4명의 손자, 손녀들의 할아버지인 그가 죽었다. 그는 죽음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고통을 유일한 친구로 삼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먼저 걷는 일이 힘겨워졌다. 뼈밖에 없던 다리가 어떤 날은 코끼리처럼 퉁퉁 붓기도 했다. 홀쭉했던 배엔 물이 차기도 했다. 걷기 힘든 다리를 끌고서도 그는 성당을 찾았다. 기도도 건강해야 하지 않겠냐고, 집에서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잔소리를 하면 그는 성당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면 된다며, 지팡이를 짚고 나설 채비를 하곤 했다.   먹는 일이 힘겨워졌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는 점점 줄었고, 먹는 양도 점점 줄어갔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그였지만, 내가 집을 찾을 때면 항상 밥솥에는 밥이 가득했다. 혹여나 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가족을 위해 밥솥 가득 밥을 하곤 했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끝까지 힘을 냈던 일은 성경을 쓰는 일이었다. 그에게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쓰는 건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 묻는 일이 무서웠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누워서 잘 수 없게 되었다.   통증이 심해 눕지 못하고 앉아서 졸기만 하는 그를 보는 일이 점점 힘겨워졌다. 그러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도 힘겨워졌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이 힘겨워도 그는 아들과 손녀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여주고자 동영상을 촬영하는 그를 보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을 친구 삼아 하루를 살아가는 줄 알았던 그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숨을 쉬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병원에 간 지 3일 만에 그는 비로소 그가 자랐던 마을에 돌아갔다. 내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동네로 돌아갔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묻었던 손으로 아들도 묻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자라난 마을 뒷산에 묫자리를 준비했다.   그는 감은 눈을 다시 뜨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막걸리 한잔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도 했다.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2021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저자 아버진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하고자 했다. 하루라도 더 가족들을 보고 싶어했다.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내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육체는 고통에 침식당하면서도 정신만은 지키고자 노력했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되려 부담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 하는 사랑의 의미’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죽음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몸소 가르쳐줬다.   “한때 우리는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하겠다고 서약한 적이 있다. ··· 어쩌면 그 나쁜 날 중에서도 무언가 좋은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밤의 유서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너무나 간단한 명제이며,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에 그 어떤 감흥도 없는 죽음.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도 모두 죽는다는 사실 자체엔 감정이 깃들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본질이 실존이 되는 순간, 죽어있던 죽음이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죽음이 갖고 있는 역설은 여기에 있다.   희망보다 절망이, 생명보다 죽음이 가득 찼던 2022년이 모두 지나갔다. 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 형제, 가족들이 전쟁기념관 앞에 모였다. 2023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에는 길거리가 아닌, 각자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출처 - 저자 지인
2023-01-03 | hrights | 조회: 578 | 추천: 3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내심 팔레스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2005년 팔레스타인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간 체류한 경험도 있고, 아디라는 단체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업을 추진하였기에 나름 현지의 경험과 인프라가 적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친구 K의 소식을 듣고 이 모든 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 K와의 인연의 시작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K는 대학 졸업 후 해외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유능했지만, 이스라엘의 신원 조회에 걸려 유학을 포기해야 했던 지역 인재였다. 그해 팔레스타인 옆 나라인 요르단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던 나와 한국의 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2달간 팔레스타인 소식을 기록하는 촬영을 기획했는데 이때 도움을 주었던 이가 K였다. 국내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K는 일면식도 없는 3인의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 소식을 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집도 내어주며 2달간의 일정들을 마련해 주었다. 덕분에 현지 일정은 순조로웠고,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가자 지구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K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2014년 여름 2달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체류할 때에도 K는 힘들 때 도움을 주는 해결사였고, 이후 2016년부터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다양한 조사 활동, 평화여행, 여성지원 사업을 할 때도 K는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고 조언을 구하는 친구였다. 반면 K와의 소통이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이는 K뿐만 아니라 다른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소통할 때도 생기는 일인데, 약속했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이 닿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락도 했지만, 활동 경험이 쌓이면서 현지의 활동 문화가 한국과 많이 다르고 현지 통신시설이 열악하기에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올해 2022년 10월 현지 방문 때도 그러했다. 방문 첫날 라말라에서 K와 반가운 재회를 했고, K에게 아디의 여성 지원센터 졸업식 참석을 요청했다. K가 거주하는 라말라와 여성 지원센터가 위치한 나블루스는 차로 약 1시간의 거리였기에 K는 흔쾌히 졸업식 참석에 응했고, 그때 K와 K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후 나블루스에서 여성지원센터의 사업을 모니터링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나블루스를 봉쇄했고 졸업식은 연기됐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K에게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았고 문자를 남겨도 답신이 없었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으로의 귀국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에 계속 연락을 해봐도 응답은 없었다. 결국 K와 K 가족에게 줄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또 나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K의 소식은 잊혔다. 사진 1. 2022년 10월 14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외곽 베이트다잔 이스라엘 검문소, 나블루스 봉쇄로 검문소 통과가 강화되자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차량들_사진 출처 김양균 ZDNet 기자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달이 조금 안된 12월 9일, 나는 K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친구여, 잘 지내지? 나는 2달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됐고, 어제 풀려났어” 그의 황당한 문자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내 다급한 질문에 그는 “너와 만난 후 그다음 날, 나는 예루살렘에 업무차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됐어. 그리고 정확히 2달 후인 어젯밤 12시에 풀려났어. 체포될 때 어떤 혐의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수감 기간 동안에도 어떤 심문이나 조사를 받지 않았어. 재판도 없었어.” 그의 황당한 답변에 궁금증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불현듯 ‘아. 행정구금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에는 영장이나 형사소송 절차 없이 임의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짧게는 2주 길게는 수년 동안 구금하는 ‘행정구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K가 이 경우에 해당됐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하모케드(HaMoked)의 지난 10월 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스라엘은 행정구금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500명을 체포했고, 현재도 800명이 재판 없이 구금되었으며,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숫자라고 하였다. K는 “그래도 다행인 게 (구금됐을 때)고문을 받지는 않았어. 감사할 일이지. 그리고 저번에 연락 못 하고 졸업식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때 가져갔던 너와 너의 가족 선물은 (너의 허락 없이) 주변에 나눠줬어. 다음에 갈 때 선물 두 배로 줄게. 아내분과 아이들에게 꼭 전해줘. 나도 미안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심 연락이 닿지 않아 원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령 상태인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깨달으며 ‘팔레스타인이 이런 곳이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점령이었지’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의 자만을 반성하게 됐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556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