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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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 / 사회복지사 대한민국의 장애계에 2008년은 상당히 뜻 깊은 해이다.   2007년에 제정되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차별금지법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첫 시행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한민국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의 당사국이 되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회에서 비준한 조약인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출처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장애인권리협약은 21세기 최초의 국제 인권법에 따른 인권조약이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도농을 가릴 것 없이 장애인은 차별받았던 존재이고, 현재도 차별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차별적 상황의 개선과 장애인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논의되었다.   2001년 제53차 유엔총회에서, 멕시코의 빈센트 폭스 대통령은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안했다. 2006년 12월 13일 제61차 유엔총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되어, 2008년 4월 3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20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였고, 2008년 5월 3일에 발효되었다. 2022년 12월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유엔 회원국의 185개 국가가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다만 대한민국은 2008년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에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장애인이 직접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개인진정제도’와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는 직권조사권이 포함되어 있다. 태현(가명)씨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을 한다. 학교에서 시내에 나갈 때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데, 저상버스는 계단이 없고 버스의 높이가 승강장의 높이와 유사할 만큼 낮아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 지팡이를 짚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타고 내리기 편한 교통수단이다. 2021년 기준 전국 (시내)저상버스 도입률은 30.6%이다. 특히, 충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2023.2.20. 국토교통 통계누리 검색).   출처 - 경인일보 어느 날 저녁 태현씨는 시내에서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여느 때 처럼 잘 오지 않았다(사실, 버스가 늦은 것이 아니라 버스가 없는 것이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에 타려는 태현씨에게 버스기사가 말했다. "어떡하죠, 미안해요. 리프트가 작동을 안하네. 고장 났나봐요" 또 한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두번째 버스가 왔다. 이번에도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기사는 미안해하는 표정과 말투로 태현씨에게 말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게 제 버스가 아니라, 사용법을 몰라요. 다음 버스 금방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날 태현씨는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2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태현씨에게 이런 일은 평생 한번 겪을 만큼 드문 일이었을까? AI가 글도 대신 써 줄 수 있다는 시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안되는 게 없는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버스를 타는 일을 거부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태현씨는 또 버스를 기다렸다. 한 참을 기다려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기사는 또 다시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사용법을 몰라요.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니까 다음 차 타세요."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된다는 말인가. 얼마나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말인가. 장애가 없는 승객은 기다리면 안되는데, 장애가 있는 승객은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당연하다는 것인가. 버스기사들은 한결 같이 사과를 했다. 사람 좋은 미소와 적당히 미안해 하는 표정을 섞어가며 난처한 모습을 취했다. 자신이 일부러 장애인을 버스에 태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꾹꾹 눌러 담았다. 버스기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보통의 시민 태현씨는 저상버스에서 탑승을 거부당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소송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 장애인 차별을 당했다며 버스회사와 버스회사가 속해있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를 대상으로 차별구제소송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당한 사유없이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제한, 배제, 분리, 거부 등으로 불이익하게 하는 것을 장애인차별로 정하고 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소송 결과 버스기사. 버스회사의 장애인 차별은 인정되었으나 지자체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은 모두 지자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비용 마저 원고인 태현씨에게 부담하도록 했다. 장애인차별이 인정되었지만, 대중교통 관리의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장애인차별에 법적 책임이 없으며, 법적 책임 없는 지자체에게 장애인 차별의 책임을 물은 못된 시민, 못난 시민은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 우리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지자체는 법원의 판단대로, 태현씨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된 지 14년 만인 2022년 12월 장애인권리협약의 선택의정서가 드디어 비준되었다. 이제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한 경우, 국내에서 모든 구제절차를 취하고도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다면, 개인이 직접 유엔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된 지 15년이 지났다. 장애인의 인권, 장애인의 권리는 분명 신장된 것 처럼 보인다. 제도는 더욱 촘촘해 졌으며, 사회는 더욱 발전했다. 특히 과학기술(편의시설)은 소위 눈부시게 발전했다. 시민들의 인식은 2008년에서 1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진보했을까.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단 5분도 못 참는 선량한 시민들이, 과연 내가 아닌 다른 시민들의 손해에는 귀 막고, 눈 가리고, 입을 닫고 있지 않나. 되려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스테판에셀은 「분노하라」에서 공적 분노가 없는, 사회에 무관심한 현재의 세태에 대해 탄식하며 시민들의 연대를 주문했다.   사회가 아닌 사인(私人)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넘치는 요즘 시대, 각자도생이 현명한 생존전략으로 여겨지는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사적분노와 혐오 대신, 공적분노와 연대가 함께하길 바라본다.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목에가시 #정한별 #사회복지사 #장애인 #인권 #차별금지법
2023-02-21 | hrights | 조회: 492 | 추천: 1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지난 2월 1일은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가 발생한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중들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힘겨운 투쟁을 2년째 이어가고 있지만 군부는 폭력 진압과 학살로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2년이 되는 날, 아디를 포함한 국내외 인권단체와 재외 미얀마 단체는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를 개최했고 국제사회 역시 추가 제재를 통해 군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의 폭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쿠데타 발생 2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는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았다. 사진. 2월 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2년 규탄 및 민주주의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아디 홈페이지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023년 1월 30일 기준 최소 17,525명이 체포되었고, 약 3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5만 채의 민가가 불에 탔으며,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군부의 공격을 피해 난민이 되어야 했다. 불과 이주일 전인 지난 1월 24일에도 카렌주의 마을들이 군부 공격에 파괴되었고, 5천여 명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군부에 비한적인 언론사를 사실상 모두 폐쇄하고 150명에 가까운 언론인을 체포하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군부가 운영하는 언론사만을 유지시키고 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중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1월 30일 아디와 교류하는 현지 활동가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기름값은 세 배로 뛰고, 전기사정이 안 좋아져서 하루 절반 이상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미얀마 군부의 행정제재, 미얀마에 투자했던 기업들의 투자철회로 미얀마 화폐의 가치는 폭락했고, 쿠데타 이전 연 6%내외로 성장했던 미얀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쿠데타 이후 -18%가까이 후퇴했다. 미얀마 통계청이 밝힌 2022년 미얀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1%에 이르러 미얀마 사람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 젊은 층(20대~40대)은 미얀마 내에서의 희망을 접고 해외로 이주노동을 신청하고자 했지만 미얀마 군부는 지난 1월 17일부터 미얀마 국민의 신규 여권 발급과 기존 여권 갱신을 전면 중단하여 합법적인 출국을 원천 봉쇄했다.   미얀마내 교육상황 역시 크게 후퇴했다. 미얀마 공교육은 교사들의 시민불복종운동 참여로 인하여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고 미얀마 군부의 강제적인 교사 등원 조치와 함께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하였지만 교제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미얀마 중부지역 고등학교 교사는 전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외곽의 소수민족과의 전투를 계속 이어가면서도 미얀마 내의 치안상황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지의 치안상황이 불안정해져서 강도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나날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쿠데타 발생 2년이 되는 날, 미얀마 민중들은 자신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군부와 전세계에 알리고자 침묵 시위(Silent Strike)를 기획했고, 비록 군부의 강제명령때문에 일부 자영업자와 상점주인들이 가게 문을 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미얀마 민중은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미얀마는 침묵했고,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018년부터 아디와 미얀마 현지에서 마을도서관을 운영하는 현지활동가들은 늘 담담했다. 미얀마에서 전해져 오는 온갖 비극과 슬픈 소식에도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활동을 이어갔고 일상을 살아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군부의 거센 폭압속에서 잠시 몸을 누일지언정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그들의 강한 염원은 땅속에 뿌리깊게 박혀서 언젠가 올 변화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2023-02-07 | hrights | 조회: 386 | 추천: 4
신종환 / 공무원   오늘의 글은 2015년에 개봉한 프랑스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에서 산드라는 복직 예정인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친한 동료의 항변으로 그녀의 해고 여부를 직장 동료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그녀가 해고되면 동료들은 1,000유로, 당시 기준으로 130만원 가량의 보너스를 받게 되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거절키로 하면 그녀의 자리는 유지된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   그녀는 다가올 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을 부탁하기 위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어떤 동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얘기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하고, 어떤 동료는 자신에게 부탁하러 온 그녀를 보고 울며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고 부자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녀의 말을 듣던중 부자간에 몸싸움이 난다.   복직을 향한 그녀가 겪는 어려움은 공권력 등의 외부적 제재로 인해 발생하지는 않는다. 경찰도 행정력도 그녀를 막거나 훼방 놓지 않는다.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동료들이 자신으로 인해 이런저런 식으로 불편해함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불편을 유발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짐에서 기인한다. 이는 계속해서 남을 불편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러운 회의감이기도 하고 자신의 더도 덜도 없는 자리를 위해 이만큼의 일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다소 우울하고 별로 던져본 적 없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끊임없이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목도해야 하는가, 자신이 130만원이라는 금액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낮은 가치를 지녔는가. 아팠던 나날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만 해도 번거로운데 왜 자신은 남들을 이토록 불편하게 들쑤셔야 하는가. 가뜩이나 슬픈 그녀에게 이어지는 질문들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산드라의 여정은 자신의 자리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보여주는 한편 그녀 동료들의 삶의 무게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무게는 집수리, 전기세, 자녀의 학비 등 여러 가지와 저울되고 동시에 그런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삶의 아슬아슬하고 무거운 균형을 느끼게 해준다.   길게 이어진 분투 끝에도 아쉽게 그녀의 해직이 결정될 것처럼 보이자 그녀는 먹던 약을 한번에 털어넣고 침대에 눕는다. 눈이 감기기를 기다리던 중 남편이 그녀의 동료 한명이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는 말을 하고 희망이 보이자 그녀는 급히 속을 게워내고 입원한다. 짧은 시간동안 죽어버리려고 마음먹었다가 바로 다시 살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김준산 작가가 본인의 책에서 ‘상상력이 현실에 완전히 포섭될 때 사람은 자살한’다고 했던 말이 이번에도 생각난다. 우리를 죽고 살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낙관을 빚어낼 수 있는지 인것 같다.   그녀를 힘들게만 만들었던 이틀의 여정은 실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회사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좋냐며 그녀를 힐난하는 반장 앞에서 그녀는 이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그가 한 행동을 짚으며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투표결과 이틀의 분투에도 그녀는 과반 득표를 실패하나 사장은 그녀의 분투를 높이 사며 다가오는 계약직들의 계약만료 기간에 그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동료들에게 보너스 지급과 그녀의 고용유지 모두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자리가 남의 자리를 뺏은 자리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며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들 잘 싸우지 않았냐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출처 - 저자 악화되는 경제 속 세대와 직업 등 분화되는 기준이 늘어만 가는 것 같은 요즈음 거진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영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서로를 구분 짓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겠지만 근 1, 2년간 세대 혹은 세대의 행위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를 짚자면 라떼와 mz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어 모두 구체적인 까닭으로 분석되기보다는 농담 섞인 비난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상호간에 지칭할 때 쓰이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도보다는 이해할 수 없음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대표적 표상 같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자연스럽던 행동에 ‘mz세대는 역시’라는 주변의 농담섞인 시선이 닿을 때는 타 세대에 대한 가벼운 배척과 누가 먼저 칭했을지 모르는 서로를 대용할 칭호로 서로를 포섭해서 치부해 버리면 상황이 쉬워진다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라떼’와 ‘mz’를 세대의 특성을 파악한다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기를 방기한 지금 서로를 무엇으로 치부하기로 한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물론 서로를 이격시키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공무원 임금과 연금에 대한 탄식이 예전보다 많은 공감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 피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범위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더 차갑고 날선 비난을 세우기에 주저치 않는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어느 부분에서는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비단 정부의 강경한 태도만이 그들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은 아니기에 이를 더욱 상기시킨다.   훌륭하게 번역된 영화 제목들은 원제가 미처 예상치 못한 의미들을 발굴한다. 영화 ‘미용사의 아내’가 ‘사랑한다면 그들처럼’으로 그들의 애정의 궤적을 강조하고 ‘ghost’의 한국어 제목이 ‘사랑과 영혼’이 되었다. ‘two days one night’는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되어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내 일’을 위한 시간이고 나아가 내 일을 향하는 시간만큼 우리는 남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마지막 그녀의 결단과 약에 의존했었던 그녀의 홀가분하면서도 강해진 태도에서 그 상호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해석으로만 치부되기 어렵지만 전에 없던 강한 공감과 강한 배척은 우리의 더 강한 원자화와 신호인 한편 전보다 나은 연대의 미약한 가능성을 품게 하는 것 같다. 각자를 호명하는 기호를 넘어선 시대를 향한 투쟁에의 생각이 내 일과 네 일을 향한 시간을 잉태하지 않을까. 추운 날 따뜻한 볕을 생각해본다. 자기로부터 시작된 시선이 타인을 경유해 자신에게 돌아올 때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과 사람 사이 라는 뜻의 ‘인간’이 우리 안에서 힘을 얻지 않을까.
2023-02-01 | hrights | 조회: 493 | 추천: 6
이승은 / 경찰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소위 사고 치는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공통적으로 본인의 나이가 촉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나이니까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고요.   촉법소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형사상 미성년자를 뜻합니다.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 송치,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의 보호처분을 받지만 가장 무거운 처분(10호)을 받아도 2년간 소년원에 다녀올 뿐이며 전과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9조의 규정 때문이지요.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질러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 3만 5390명 가운데 만 13세가 2만 2202명(62.7%)에 달했습니다. 이 기간 전체 촉법소년 또한 6282명→6014명→7081명→7535명→8474명으로 증가 추세입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보호관찰 중인 소년범의 재범률은 2020년 13.5%로 성인 재범률 5%의 2배가 넘습니다.   22년 6월 리서치 전문업체 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 남녀 3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관련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2%가 연령 하향에 찬성했고 연령 하향 시 범죄율 감소 효과를 묻는 항목에는 77.5%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   인권연대 주최 촉법소년 연령하향? 소년 보호 정상화가 답이다. 토론회 중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10월 26일 형사처벌이 가능한 소년의 연령을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던 소년범죄 대응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형사 미성년자 연령 문제뿐만 아니라 교정·교화 강화, 피해자 및 인권 보호 개선, 인프라 확충을 망라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인권위는 “어린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낙인효과를 확대해 소년의 사회복귀와 회복을 저해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며 소년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에 적절히 대응하는 실효적 대안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80%가 법무부의 입장에 찬성하고, 넷플릭스 인기작 ‘소년심판’에서도 촉법소년이 정면으로 다루어져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분위기에서 보면 13세로 연령이 낮춰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준 연령을 14세로 정했던 1953년은 70년 전이므로 그때와 지금 청소년들의 정신적, 육체적 성숙도를 고려하면 1살 낮추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연령 현행화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절도처럼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운 범죄에 대해서까지 엄벌의 잣대를 들이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동네마다 있는 무인 점포에서 1000원 짜리 과자를 한 개 훔쳐서 절도로 입건되거나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셋이 하나씩 먹다가 특수절도 등으로 입건되는 경우가 많은데, 연령이 낮아지면 이 같은 바늘도둑 전과자를 대량 양산하게 됩니다.   법무부는 “이번 소년범죄 종합대책이 단순한 엄벌주의가 아니라 소년범의 교정·교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과연 소년범 개개인에 대한 섬세한 맞춤형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처벌과 교화 프로그램을 적용하더라도 소년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절도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불입건 또는 훈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학교전담경찰관의 업무로 지정되어 있는 선도심사위원회 (범죄심리상담사에 의한 전문가참여제 등 선도프로그램 이수를 전제로 소년범에게 훈방 또는 즉결심판 처분을 내리는 제도)를 대상 소년범의 수를 확대하고 절차는 더 간소화시켜 담당 수사관의 판단만으로도 신속히 훈방 처분이 가능한 절차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업무의 특성상 소년범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학교전담경찰, 여성청소년수사팀 등 현장의 목소리를 꼼꼼히 수집하여 조금의 부작용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2023-01-18 | hrights | 조회: 502 | 추천: 2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보통 1월은 현장인권강의하는 활동가에게는 가장 한가한 때이다. 입시 상담이나 차별 상담도 없고 현장 인권 강의를 요청하는 곳도 거의 없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는 마치 일년을 준비하듯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고 그동안 모아온 자료 등과 명함등을 정리하고 버리고 치운다. 그렇게 밀린 원고쓰다가 책상 서랍등을 정리하다가, 물건 등을 버리다 보면 어느새 오른쪽 창밖으로 아침해가 밝아온다. 그제서야 주섬 주섬 안방 침실로 옮길 물건 등을 보행기에 담아 소나기 만난 토끼처럼 추적추적 들어간다. 그렇게 기절하듯 침대로 몸을 뉘여서 엉덩이 중심으로 반바뀌 돌려서 잠이들면 까무룩 까무룩 잠이 들어왔다 나갔다 불면증인지 가위눌림 인지 모를 좀비 같은 꿈을 꾼다. 그렇게 오는 꿈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쫒기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높은 빌딩에서 하염없이 추락하거나 무엇에게 무지막지하게 물어 뜯기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제 그런 꿈을 꾸어도 식은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불현듯 궁금한 것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를 절벽으로 던져 버리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넉넉해진 꿈시간에도 요즘 인기있는 복수 드라마처럼 꿈에서라도 초중고에서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학교 때 그 추운 학교 복도에서 삼색 슬리퍼 한짝으로 내 뺨에 싸대기를 날리던 동급생 녀석의 능글맞은 얼굴, 도망치며 신나하던 그 목소리, 그 순간 기절할 것 같은 차가운 공기 냄새까지 생생하다. 정작 그 동창의 이름은 아무리 해도 기억 안나는 걸 보면 그 때 내가 당한 것은 요즘에 비하면 정말 애교스러운 수준이었으나 그 드라마의 예고만 보고도 온 몸의 아드레날린이 정맥주사로 맞는 것처럼 용솟음치는 걸 보면 피해자이긴 했나보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복수를 꿈꾸기엔 그것을 치밀하게 기획하기엔 나는 너무 귀찮고 피곤했다. 그 가해자 녀석의 괴롭힘보다 진학하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입학을 거부하지 않을까 더 두려웠기 때문에 얼굴에 남은 슬리퍼 자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 능글맞게 나를 괴롭히던 친구는 전교 1등을 하는 언어 실력으로 놀렸고 서울대 갈 성적으로부터 얻은 선생님들의 신망을 방패삼아 벌을 피해 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받아쓰기는 여전히 빵점이었다. 언제부터 다른 아이들이 나를 공룡이라 불러댔다. 아마 체육시간에 음악에 맞춰 무용을 할 때부터였다. 다른 친구와는 달리 당시 유명했던 마징가 Z 만화 주제가조차 나는 몰랐다. 아이들의 익숙하고 빠른 율동에 나의 흐느적 거리고 휘젖는 팔다리는 걸려서 넘어질 뿐이었다. 나는 분단별로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바로 보며 앉아 있었다. 그 때, 드디어 나는 안전해 졌고 편안해 졌다.. 학력고사 시절 중간고사를 보던 고등학생 때에는 아무도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능으로 대학 입시가 바뀌고 연산 로터리 재수학원에서 일년동안 본고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시인이었던 학과장이 이 점수면 합격이란 전체 7명만 얻은 언어 영역 점수를 들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홀로 입성했다. 서울에 오면서 제일 먼저 일년 일찍 그 대학에 갔던 그 가해자 녀석이 떠올랐던 것은 혼자라는 불안감이 주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알 수 없이 짜릿하게 승리한 것 같은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입학식 바로 다음날 점심 때 대학교에서 행정학과를 다닌다는 그를 만났다. 선배라고 1900원짜리 청경관 식판 밥을 사주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사과 비슷한 것을 한 것 같긴 한데 진정 내가 용서했다는 감정도 경험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녀석에 비해 내가 일년 늦게 대학을 왔지만 그 당시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무도 믿어 주지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전공에 내 실력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대학 내내 형언할 수 없는 만큼의 내 엔돌핀이었다. 출처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중 지금 그 드라마로 인해 태국의 유명 배우가 학창시절에 같은 반의 자폐인 학생을 괴롭힌 것이 재조명되어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떤 심정일까? 그것을 방조하고 방임했던 교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복수극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것은 그만큼 현실은 암담하기 때문일까? 그 드라마에서 학교 폭력으로 자퇴하려는 피해 학생을 더 때리고 겁박했던 교사가 장학사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듯 하면서도 아주 현실적이며 상징적이다. 의무교육의 최고 관리자가 단지 장애인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입학을 거부하고 그들을 지역사회서 함께 교육 하기를 거부하면서 특수학급조차 만들지 않는 교육계의 현실에서 그런 설정은 절대 황당하거나 기괴하지만은 않다. 그 드라마에 고데기로 인한 학교 폭력사건이 17년이 지난 2006년의 과거이지만 오늘날 학교는 과연 이런 폭력이 사라졌거나 줄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변한 것은 귀신의 복수로만 그 아픔과 피해를 호소하던 8,90년대를 지나 가족과 남자들의 복수로 점철되었던 막장드라마를 거쳐 치밀한 작전과 사고, 사람들과의 공감 연대를 통해 함울아비와 같은 복수극을 펼친다는 판타지가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 경험자로서 그 드라마의 가해자의 행위에 재경험을 통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도 복수극을 펼쳤던 여주인공을 통해서는 그렇게 많은 카타르시스 공감하지 못하겠다. 웃기게도 여주인공이 복수에 집중하기 위해 오로지 김밥만 먹는 것이 식판을 들수 없어 김밥만 먹었던 나에게 가장 공유하는 판타지가 되었다. 피해자인 주인공이 물리력을 거의 쓰지 않고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나와 같은 약자들의 욕망들이 충분히 투영된 것이지만 여전히 나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펼치는 복수극은 그 드라마에 없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일이어서 오히려 우리 사회는 둔감한 것일까? 학교인권교육에서 나도 가끔 복수심이 올라올 때가 있다. 장애인 학생을 괴롭힌 가해자를 향해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 가끔은 인권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에 날려드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모욕과 혐오를 마주하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도 장애인이 되거나 이동약자가 되면 두고 보자라고 하는 것 외에 더 드라마 같은 보다 더 인권적인 복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학교폭력 #장애학생 #인권 #김형수
2023-01-11 | hrights | 조회: 493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소설 「밤의 유서(요슈타인 가이더, 2021)」의 주인공 알버트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자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주치의인 마리안네로부터 ALS 진단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 에이린과의 추억이 깃든 호숫가의 오두막집에 찾아간다.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고통 받으며 가족들의 짐이 되는 것보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떠나고자 한다.   오두막집은 사랑의 추억이 깃든 장소임과 동시에, 가족과의 추억이 서린 별장이기도 하다. 알버트는 오두막집에서 자신의 생을 정리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사랑과 잘못들을 마치 유서를 쓰듯, 오두막집에 두고 쓰던 방명록에 눌러 담는다. 이틀 동안의 방명록에 존재, 사랑, 이별, 죽음에 대한 마음을 담으며 결국 방명록을 태워버린다.   소설은 상당히 짧았다. 예상되는 전개, 뻔한 문구들이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죽음이란 단어가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2021년 3월 23일 내가 사랑한 남자가 죽었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 지금은 4명의 손자, 손녀들의 할아버지인 그가 죽었다. 그는 죽음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고통을 유일한 친구로 삼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먼저 걷는 일이 힘겨워졌다. 뼈밖에 없던 다리가 어떤 날은 코끼리처럼 퉁퉁 붓기도 했다. 홀쭉했던 배엔 물이 차기도 했다. 걷기 힘든 다리를 끌고서도 그는 성당을 찾았다. 기도도 건강해야 하지 않겠냐고, 집에서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잔소리를 하면 그는 성당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면 된다며, 지팡이를 짚고 나설 채비를 하곤 했다.   먹는 일이 힘겨워졌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는 점점 줄었고, 먹는 양도 점점 줄어갔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그였지만, 내가 집을 찾을 때면 항상 밥솥에는 밥이 가득했다. 혹여나 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가족을 위해 밥솥 가득 밥을 하곤 했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끝까지 힘을 냈던 일은 성경을 쓰는 일이었다. 그에게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쓰는 건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 묻는 일이 무서웠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누워서 잘 수 없게 되었다.   통증이 심해 눕지 못하고 앉아서 졸기만 하는 그를 보는 일이 점점 힘겨워졌다. 그러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도 힘겨워졌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이 힘겨워도 그는 아들과 손녀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여주고자 동영상을 촬영하는 그를 보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을 친구 삼아 하루를 살아가는 줄 알았던 그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숨을 쉬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병원에 간 지 3일 만에 그는 비로소 그가 자랐던 마을에 돌아갔다. 내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동네로 돌아갔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묻었던 손으로 아들도 묻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자라난 마을 뒷산에 묫자리를 준비했다.   그는 감은 눈을 다시 뜨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막걸리 한잔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도 했다.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2021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저자 아버진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하고자 했다. 하루라도 더 가족들을 보고 싶어했다.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내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육체는 고통에 침식당하면서도 정신만은 지키고자 노력했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되려 부담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 하는 사랑의 의미’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죽음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몸소 가르쳐줬다.   “한때 우리는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하겠다고 서약한 적이 있다. ··· 어쩌면 그 나쁜 날 중에서도 무언가 좋은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밤의 유서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너무나 간단한 명제이며,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에 그 어떤 감흥도 없는 죽음.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도 모두 죽는다는 사실 자체엔 감정이 깃들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본질이 실존이 되는 순간, 죽어있던 죽음이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죽음이 갖고 있는 역설은 여기에 있다.   희망보다 절망이, 생명보다 죽음이 가득 찼던 2022년이 모두 지나갔다. 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 형제, 가족들이 전쟁기념관 앞에 모였다. 2023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에는 길거리가 아닌, 각자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출처 - 저자 지인
2023-01-03 | hrights | 조회: 530 | 추천: 3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내심 팔레스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2005년 팔레스타인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간 체류한 경험도 있고, 아디라는 단체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업을 추진하였기에 나름 현지의 경험과 인프라가 적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친구 K의 소식을 듣고 이 모든 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 K와의 인연의 시작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K는 대학 졸업 후 해외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유능했지만, 이스라엘의 신원 조회에 걸려 유학을 포기해야 했던 지역 인재였다. 그해 팔레스타인 옆 나라인 요르단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던 나와 한국의 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2달간 팔레스타인 소식을 기록하는 촬영을 기획했는데 이때 도움을 주었던 이가 K였다. 국내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K는 일면식도 없는 3인의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 소식을 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집도 내어주며 2달간의 일정들을 마련해 주었다. 덕분에 현지 일정은 순조로웠고,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가자 지구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K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2014년 여름 2달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체류할 때에도 K는 힘들 때 도움을 주는 해결사였고, 이후 2016년부터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다양한 조사 활동, 평화여행, 여성지원 사업을 할 때도 K는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고 조언을 구하는 친구였다. 반면 K와의 소통이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이는 K뿐만 아니라 다른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소통할 때도 생기는 일인데, 약속했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이 닿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락도 했지만, 활동 경험이 쌓이면서 현지의 활동 문화가 한국과 많이 다르고 현지 통신시설이 열악하기에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올해 2022년 10월 현지 방문 때도 그러했다. 방문 첫날 라말라에서 K와 반가운 재회를 했고, K에게 아디의 여성 지원센터 졸업식 참석을 요청했다. K가 거주하는 라말라와 여성 지원센터가 위치한 나블루스는 차로 약 1시간의 거리였기에 K는 흔쾌히 졸업식 참석에 응했고, 그때 K와 K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후 나블루스에서 여성지원센터의 사업을 모니터링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나블루스를 봉쇄했고 졸업식은 연기됐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K에게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았고 문자를 남겨도 답신이 없었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으로의 귀국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에 계속 연락을 해봐도 응답은 없었다. 결국 K와 K 가족에게 줄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또 나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K의 소식은 잊혔다. 사진 1. 2022년 10월 14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외곽 베이트다잔 이스라엘 검문소, 나블루스 봉쇄로 검문소 통과가 강화되자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차량들_사진 출처 김양균 ZDNet 기자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달이 조금 안된 12월 9일, 나는 K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친구여, 잘 지내지? 나는 2달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됐고, 어제 풀려났어” 그의 황당한 문자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내 다급한 질문에 그는 “너와 만난 후 그다음 날, 나는 예루살렘에 업무차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됐어. 그리고 정확히 2달 후인 어젯밤 12시에 풀려났어. 체포될 때 어떤 혐의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수감 기간 동안에도 어떤 심문이나 조사를 받지 않았어. 재판도 없었어.” 그의 황당한 답변에 궁금증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불현듯 ‘아. 행정구금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에는 영장이나 형사소송 절차 없이 임의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짧게는 2주 길게는 수년 동안 구금하는 ‘행정구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K가 이 경우에 해당됐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하모케드(HaMoked)의 지난 10월 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스라엘은 행정구금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500명을 체포했고, 현재도 800명이 재판 없이 구금되었으며,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숫자라고 하였다. K는 “그래도 다행인 게 (구금됐을 때)고문을 받지는 않았어. 감사할 일이지. 그리고 저번에 연락 못 하고 졸업식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때 가져갔던 너와 너의 가족 선물은 (너의 허락 없이) 주변에 나눠줬어. 다음에 갈 때 선물 두 배로 줄게. 아내분과 아이들에게 꼭 전해줘. 나도 미안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심 연락이 닿지 않아 원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령 상태인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깨달으며 ‘팔레스타인이 이런 곳이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점령이었지’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의 자만을 반성하게 됐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503 | 추천: 8
신종환 / 공무원   대학생 시절은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한다는 사실에 취했었다. 삶의 원동력은 여러 곳에서 흘러왔었고 세상은 총천연색이었으며 새로운 앎과 깨달음이 주는 일상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으로 마음을 이끌었지 ‘무엇을 더 하지 못할 때는 어떡할까’에 대한 공간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심취된 마음은 무언가를 이해할 때 느끼는 절반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역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지 않은 결의로 한없이 유예시키는 안정감이 절반씩 혼합된 것이었던 것 같다. 월급생활자가 되고 나서는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점점 어렵고 알고 있는 것을 잊지 않는 일에 할애할 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생활 속 작은 투쟁이 되었다.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과거를 반추하는 일에 겨울 때면 DC코믹스의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와치맨’의 대사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는 어두워지지만 과거는 밝고 또렷해진다’. 향수가 여러 형태로 나타날 때면 그 까닭은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데 애를 먹는 자신을 보게 한다. 한 때 열풍이 불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혁명’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무살 나이에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지만 서른이 넘어서 무정부주의자인 사람은 더더욱 어리석다’고. 편히 배척했던 이런 문장들은 과거에 보이지 않게 각자를 추동해주던 동력의 공급은 중지되고 두껍고 차가운 현실이 목전에 다가와 스스로도 모르는 채 피동적으로 마음이 전환될 것이란 은유임을 종종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부지런히 캐내고 보듬은 낙관적인 면을 알리거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지나치던 것들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이 의미없는 데이터 낭비는 무슨 짓인가 싶다. 그러나 드러나는 훌륭한 사람들에 비해 분명 완전 연소하지 않아도 훌륭함을 잊지 않고 또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긴다. 여러분, ‘양심과 지성에 자꾸 구멍이 난다고 벗어던지지 맙시다. 그것을 기워서 어떻게든 입어보려는 노력만큼이 저의 영역인만큼 우리의 영역이에요!’ 이어 소개할 책에 따르면 맹자는 번제물로 끌려는 소의 울음에 번제물 양으로 바꾸라는 왕의 태도에 말했다고 한다니까요! ‘그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기술입니다.’라고 했어요! 김영민 교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지지부진함과 그 지지부진함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응원을 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은 ‘논어’를 재료로 고전 읽기에 대한 훈련의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우선 서두에서 고전을 전가의 보도처럼 대하는 태도를 비판함으로써 고전의 독해는 여러 맥락을 알고 적용해야 하는 콘텍스트적 독해임을 강조한다. 논어의 경우 공자가 이루고자 했던 가치들은 그 시대 안에서 창안되고 해석되고 추구되던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지금으로 옮기는 적용하려는 시도는 헛되다는 것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그들이 바라던 것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보고 변화된 지점에서는 어떤 방향성과 지향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곱씹다 보면서 생기는 차이와 공통점에서 삶의 보편성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보편성,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훈련된 능력을 우리는 지혜라 부른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여러 권에 걸쳐 독자와 고전 읽기를 시도하고자 하나 아직 공자와 논어에 관해서는 저자의 다음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고전 같이 읽기의 시작이므로 책 내부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고 나열되는 여러 구절과 에피소드는 논어 자체 보다는 고전이란, 나아가 텍스트 읽기란 이처럼 시간적, 당시 화자 내지는 저자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지향성을 염두하며 읽고 또 그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기도 함에 대한 안내판이다. 가령 신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는 공자와 묵자의 시대의 문제성에 반한 그들의 의견을 되짚으며 그 시대 속 그들의 한계성과 급진성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묵자는 신에게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갈구하라고 말함으로서 피동적으로 신이 주는 대로 받아들임을 타파코자 하였다, 반면 공자와 맹자는 신이란 없다고 말하나, 신에 대한 예는 계속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있든 없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바람과 기도에서 묵자는 주체적인 면을 부각해 강조한 것이고 공자는 예가 가리키는 목적 그 자체보다도 목적을 위해 수반되는 올바른 과정이 우리를 더 이롭게 함에 주목했다. 어느쪽이든 당시의 민중이 봉착한 한계를 타파하려 한 것이고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단초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재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책은 더 많은 내용들을 담지만 그 내용들은 개별적 함의를 짚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알리는 예시들의 모음집으로 느껴진다. 노나라의 제신으로 있다 제사 고기가 본인에게 이르지 않아 떠났다는 부분에서도 저자는 현실에 비근한 예시를 들어 독자에게 납득 가능한 상황을 다각으로 제시하는데 비중을 둔다. 책의 마치는 말에서 책의 내용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겨레에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라는 문장도 이 책이 저자가 고전이라는 무의미해 보이는 텍스트의 유의미한 콘텍스트를 읽자는 취지를 매차례 권유했던 기록으로 읽히게 한다. 이뤄지지 못한 바람들은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져야 할까. 지난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 청년 영화 모임에서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 대해 ‘무엇이고자 싶었으나 무엇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온정’이라고 썼다. 앞선 책의 시선들이 발화되지 못한 것들은 발화되과자 했던 것으로 재발견 했듯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도 비실현을 실현의 가능성으로 다시 보고자 했다. 이 책의 시선도 앞선 영화의 시선이 담은 고만고만한 미처 발화되지 못한 것들을 향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앞으로의 나날에서 나와 당신 스스로를 긍정하는 단초를 발견하고 뿌리 내리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 작성자
2022-12-07 | hrights | 조회: 405 | 추천: 2
이승은 / 경찰관   ”저,,, 기훈이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 시선은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싶네요..“ ”덕수랑 저랑 다시 전처럼 만나면 안되나요? 함께 보내던 시간들이 그리워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간에요“ 위의 말들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일까요? 기훈이와 덕수라는 성소수자 커플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런 사연 ? 언뜻 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훈이는 학교폭력의 피해자, 덕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입니다. 덕수와 다른 아이들 네 명이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폭행을 하였고,이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되어 가해자 전원에 대해 2호(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이후 한 달 남짓 흐른 후,덕수와 교육청 wee센터 특별교육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기훈이를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이 있다면 어떻게 서로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출처 : pngtree   ”기훈이가 요새 자꾸 저한테 말을 걸어요.그저께는 우리반에 와서 제가 입고 있던 점퍼를 빌려달라길래 거절 못 하고 줬더니 그걸 입고 교내를 돌아다니고요..어제는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 데 갑자기 뛰어 들와와서 제 옆에서 같이 축구를 하고 있고..우리는 절대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사이라서 반도 분반되었는데 말이죠.   덕수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 할 수 없어 나중에 기훈이에게 따로 물어서 확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 끝난 후 덕수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기훈이와의 일에 대해서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 네가 한 말,기훈이가 요즘 너한테 자꾸 다가온다는 거,, 너 솔직히 그럴 때 마다 기분이 어때?“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기훈이가 다가올 때마다 도망갈 수도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요. 다른 애들이 제가 걔한테 접근하는 걸로 오해하고 선생님들께 신고할까봐 겁이나기도 해요.” “그럼 넌 기훈이를 피하고만 싶어? 아니면 다시 예전처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니?” 조수석에 앉아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덕수가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사실,예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면 좋죠..그 사건 전에는 기훈이가 매일 아침 저희집에 절 데리러 와서 함께 등교하고 그랬거든요. 담치기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담치기’라는 단어를 내밷을 때 살짝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모습을 보면서 덕수가 기훈이와 보낸 시간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너 기훈이랑 화해하고 싶지? 그런거지? 내가 도와줄게. 솔직히 말해 볼래?”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에이~참.. 맞아요.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제일 좋겠는데 어쩌죠? ” “기훈이가 피해자이니 기훈이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니? 기훈이에게 의사를 물어본 후에 교육청 담당자에게도 물어볼게.“ “오~! 진짜요? 헤헤~” 덕수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발랄하게 당부의 말까지 남깁니다. “샘~그거 진짜 꼭 알아봐 주세요. 샘 제 전화번호 알죠? 부탁 좀 드릴게요~샘~” “알았다 좀 기다려보렴 ,, 으이구~~”   곧장 기훈이를 만나 덕수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을 확인한 후 지체없이 교육청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교육청에서는 피해학생이 원하면 접근금지 처분은 무시해도 괜찮지만 이후 덕수가 다시 기훈이를 괴롭히게 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뒤따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방과 후,   덕수와 기훈이는 저와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악수를 하며 화해를 하였고 오랜 만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하교하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학교폭력으로 인해 2호 조치 결정이 내려지면 기훈이와 덕수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화해를 원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둘의 사연은 최초 신고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학폭위 개최와 화해에 이르기까지 피해회복이 빨랐던 매우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자주 일어 나는 일이 아니기에 2호 처분을 더이상 준수하지 않아도 괜찮은지에 대해 현장 선생님들도 정확히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위의 사례처럼 학폭위를 개최한 교육청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면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기훈이와 덕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ㆍ경찰ㆍ그리고 피해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화해의 골든타임을 놓치지않고 따스한 악수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22-11-23 | hrights | 조회: 481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얼마 전 방금 전화를 하나 받았다. 장애인의 학부모가 진학 상담을 하는데 교사가 왜 우리학교에 오려 하느냐? 우리는 가르치기 어렵다고 전화로 장애인 학생의 입학과 지도를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는 이야기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사건이 2022년 지금도 쏟아 진다. 문제는 이런 교사가 이런 교사의 말들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82년에도, 장애인들이 특수교육대상자로서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으로 명시적으로 법으로 규정한 1994년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2008년에도,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2016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의무교육 책임이 있는 교육 공무원 교사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교육청을 제끼고 특수교육대상자를 자의적으로 임의로 배치여부를 일방적으로 학부모에게 통보하는 이런 악의적인 차별이 버젓이 작금의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출처 : pixabay> 헌법 10조에도 강력하게 보장해 놓은 장애인 교육권 보장이 늘 버거운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장애인 학생을 교육기본법인 초중등교육법에 명확하게 ‘학생’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장애인 학생을 위한 관련 법에 다른 교육법에 비하여 처벌 조항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예비군 훈련을 방해해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 방해가 아니라 교육에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도 대중들이 인지할 수 있는 실효적인 집행체계가 없다. 또한 장애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타이밍에서 처절하게 약자의 싸움이다. 당장 몇 달 뒤에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인권위 진정하거나 법적으로 고소 고발해서 다퉈보기엔 학생으로서의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다. 법원 판결을 받을 즈음이면 이미 졸업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가버려서 개인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로서의 법적 소송의 이익이 없다. 또한 그런 학교와 교사를 관리감독하는 교육청을 상대할지 직접적인 그런 차별 발언과 행위를 그 교사를 상대할지, 그 교사의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지도 불분명하다. 지금 현재 차별 피해를 구제받을 가장 빠른 방법은 언론에 공개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신청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강도 높은 방법을 택하면 차별을 구제받아 원하는 학교에 들어 가더라도 위계적인 위치에서 장애인 학생들은 늘 불이익과 보복의 두려움을 안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른 선진국처럼 평소에 이런 학교와 교사를 모니터링하고 실제적인 차별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공익 소송을 진행하는 기구가 아직 없다. 대학을 제외한 그 어느 교육 기관에서 장애인 학생이 차별을 이유로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상징적인 행정소송이나 이미 입학한 이후의 지원 미비와 차별에 대한 것 뿐이다. 이렇듯 아무리 중한 장애라도 이미 교육 현장에 진입한 학생들은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많은 장애인 대학생들이 이른바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대학을 들어오지만 본인 스스로 ‘특수교육’ 대상자임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다른 장애인의 학교 진입을 막고 차별하는 행위가 벌어진다. 자원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 구조가 우리끼리의 갈등을 부추긴다. 결국 우리들끼리 살아 남는자 만이 교육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학교와 학력을 위한 교육을 위한 군사 문화의 잔재로써의 교육은 강하지만 개인과 그 행복을 위한 교육은 없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국가에 대한 경례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장애인 학생의 인권을 보조해야 할 특수교사조차도 장애인 학생들이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도 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근본적으로 비장애인 학생에 대한 막대한 협박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차별행위이다. 장애를 이유로 어떤 학생을 배제한다는 것은 비장애인 학생이 장애를 가진 순간 교사가, 학교가 장애인 학생을 퇴출시키겠다는 뜻이고 국가가 장애를 이유로 교육을 의무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과 경험을 배울 기회를 의도적으로 박탈하겠다는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법률과 제도가 버젓이 강력하게 있음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현장에서 동일한 차별과 배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그 법률이 그런 장애인 교육 차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피해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고 그 예방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은 그런 차별 행위에 대하여 의미있게 법의 효능이 수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상할 수 없는 전주교대의 장애인 학생 입학 거부를 모의하기 위한 입시 성적 조작도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교육 사회의 개인의 저주와 불행이라는 장애의 해석은 모든 정보를 차단한다. 이미 많은 정보와 제도가 있음에도 장애인들은 그 정보를 접한적이 없다고 하고 제공한 측은 알려주었다고 한다.인터넷에서 한번만 검색해보면 당장 내용증명을 보내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 고발장을 제출할 일이건만 대부분 부모들은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특히 교육차별은 장애인에게 있어 정서적 물리적 학대 행위에 준하지만 교육청 역시 학대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출처 : 매일경제> 법은 존재는 하지만 전달과 입력은 되지 않고 활용되거나 집행되지 않는다. 학생을 고르지 않고 어떤 학생도 만나면 분석하고 존중해서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고 정체성일텐데 왜 자기가 장애인 학생을 맡아야 하냐고 따지고 드는 담임에게 자기는 발달장애밖에 '관리' 하지 않는다는 특수교사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가능하다면 장애인 진단을 받는 즉시 각 장애인 가정에 공익 전담 전담 변호사 한명씩 다 붙여 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정 모니터링을 통해 기획 소송이나 기획 진정이라도 하고 싶다. 전국에 초중고 학교에 (민족사관고 등과 같은 사립학교 포함 ) 장애인 부모인척 상담 전화해서 입학 차별하는 곳은 죄다 녹취록 풀고 고발해 버리고 싶다. 장애인 학생에 대한 차별이 그 죄질이 나쁜 이유는 장애인 부모에게 그 차별이 통한다는 것을 피의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의무교육 대상자에게는 그런 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바장애인 부모에게는 국민신문고 민원 하나조차 무서워 하면서 장애인 부모는 그런 말 쉬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한마다에 부모와 학생들이 싸우지 못하고 절망하면서 무너지는 걸 아니까 그런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유아특수교사 임용선발 시험에서 조차 여성 비장애인 학생이 남성 장애인 학생 당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사가 의사소통 기술을 중재하는 것을 올바른 지도라고 정답으로 서술하기를 강요하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회이다. 사전에 인권적인 문제를 제기한 전공 교수의 강한 문제제기에도 그런 성역할 고정 차별이며 스토킹을 조장하면서 교사의 감정과 호불호에 따라 통합 교육을 하는 것을 올바른 특수교육이라고 주관식으로 쓰지 않으면 임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물러서면 안된다 포기하면 된다. 차별을 요령껏 피해면서 교육청 게시판의 문의를 남기시라. 입학 거부 하는 글을 남기면 공식 증거가 남는 것이다. 대부분 대놓고 그런 대답 학교는 못 남긴다. 학교는 장애인 학생에 대해 장애를 이유로 된다 안된다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장애인 부모님들 장애인 학생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을 두 팔로 보호하며 함께 싸워줄 우리가 있다. 우리 동네 친구에게, 우리반 친구에게 왜 딴 학교로 전학가라 그래요? 누군데 그래요? 막 같이 화를 내줄 같은 학생들,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걱정하지 말고 순풍순풍 낳아라 길러라 국가가 교육청이 사회가 이웃들이 책임지고 다양한 사람을 위한 교육으로 지원할께 교육할께 하는 세상을 만들자. 우리 이제, 차별 따위에 굴복하지 말자.
2022-11-17 | hrights | 조회: 444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