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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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 사회복지사   네이버 국어사전: 자립(自立).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 중 정말 자신 혼자만으로 자신의 삶을 이뤄내고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퇴근하는 길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집 옥상에 균열이 있으니 균열을 메워달란다. 철물점에 가서 외부용 실리콘을 사 놓으라고 말한 뒤 엄마에게 갔다. 실리콘 총을 들고 옥상에 균열이 난 곳들을 메웠다. 엄마는 고생 많았다며, 검정색 비닐 봉투에 상추를 잔뜩 넣어줬다. 옥상에서 키운 무농약 상추라며, 씻어서 먹으란다. 집으로 돌아오자,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아내는 그제서야 숨을 돌린다. 코로나에서 일상으로 복귀한 뒤 아이들은 더욱 자주 감기에 걸렸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병원에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은 아내는 장모님을 소환했다고 했다. 하루종일 보채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진이 다 빠졌고, 아이들은 겨우 방금 잠이 들었단다.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묻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내에게 고생 많았다며 등을 쓸어주는 것 외에 특별히 해 줄 수 없는 미안함을 뒤로 하고 땀에 젖은 옷을 벗었다. 적당히 따뜻한 물에 땀을 씻어내고 나니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제육볶음에 상추쌈 그리고 시원한 맥주로 저녁 일과가 시작된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는 몇 시간 뒤 다시 전쟁통이 될 집을 치웠다. 집을 치우는 일은 집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아이들이 다시 지저분하게 어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하는 일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니, 빨래 건조대에 있던 빨래들이 거실 바닥으로 내려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빨래를 개면서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묻고 대답하기. OTT로 드라마 보기.   12시가 조금 넘었다. 빨리 침대에 누워야 한다. 두 시간 후면 잠에서 깰 아이가 엄마를 찾아올 수 있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상 중 그 어떤 날도 혼자서 이뤄지는 날이 없다. 성인이 된 아들의 삶의 궤적에 여전히 엄마가 있었으며, 엄마가 된 딸의 옆에도 든든한 조력자인 친정엄마가 있었다. 부모가 된 두 남녀는 서로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때론 삐걱대는 바퀴에 맥주를 붓기도 하면서 말이다. 사람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소속이 필요하다. 가족, 친구, 연인, 학교, 직장, 동네, 국가.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 엮여 있다는 것은 일종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뜻이다. 관계란 도저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커먼 바닷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붙잡아 주는 생명줄이다. 관계가 다양하고 깊을수록 사람은 안전하다. 타인에 대한 의존, 의지, 예속에서의 탈출이 자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타인과의 관계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자립의 진정한 의미이다. 자립은 국어사전의 개념, 한자어의 뜻풀이처럼 고정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자립의 개념은 100가지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유일한 개인이 타인에 의존하고 관계에 의지해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자립을 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특히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자폐성장애인)이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에 두려움과 걱정이 크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냐 묻고는 한다. 혼자서 요리를 할 수 있냐고, 혼자서 공과금을 납부할 수 있냐고, 혼자서 여행을 갈 수 있냐고 걱정을 하고, 혼자 살다가 화재를 내는 게 아니냐며 두려워 한다. 이 모두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 요리를 못하면 음식을 사 먹는 방법을 배워도 된다. 공과금 납부와 세금 납부를 어려워 하는 어른들은 의외로 많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고 동네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 안된다고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다. 혼자서 여행 가는 일을 어려워 하는 사람 역시 의외로 많다. 가스렌지 사용으로 인한 화재를 걱정하는 것 역시, 요즘 세상엔 기우이다. 가스렌지 대신, 인덕션을 사용하면 될 일이며, IOT의 발전으로 가정 내의 모든 사물을 관리하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 발달장애인이 자립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발달장애인은 자립할 수 없다는 합리적 근거가 빈약한 편견, 자립의 개념을 지극히 사전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는 편협한 인식 때문이다. 출처 - 국민도서관   “인간은 의존적이다. 태어난 후, 고령으로 죽음을 맞기 전, 장애가 있을 때, 아플 때,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의존적이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생을 이어왔고, 붙여왔으며,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했었다. 따라서 의존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벗어나거나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존재론적 사실이다.”   「돌봄:사랑의노동」, 2021, Eva Feder Kittay 저, 김희강, 나상원 역  
2023-06-20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4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지난 5월 11일은 팔레스타인 언론인인 쉬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kleh)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미국과 팔레스타인 이중국적을 지닌 그녀는 중동의 대표적인 언론사인 알 자지라 방송사에서 팔레스타인 특파원으로 25년 동안 활동한 베테랑 언론인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언론인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2022년 5월 11일 이른 아침, 이스라엘 군대가 서안지구 북부에 위치한 제닌(Jenin) 난민촌을 공격한다는 연락을 받고 동료 4인과 함께 제닌 난민촌에 도착한 쉬린은 'PRESS'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조끼와 헬멧을 착용하며 이스라엘 군인의 동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몇 발의 총성이 울렸고, 그녀는 땅에 쓰러졌다. 당시 쓰러진 그녀를 구조하기 위해 동료 언론인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에게도 총이 발사됐다. 이후 그녀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으나 오전 7시 15분에 사망했다.   사진 1. 이스라엘에 살해당한 쉬린 아부 아클레<출처: 트위터 쉬린 아부 아클레 추모계정> 사건 발생 직후 이스라엘은 그녀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을 거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총격현장이 찍힌 영상에서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의 교전이 없었고, 쉬린을 구하기 위해 접근하는 이에게도 조준 사격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스라엘 정부는 그녀가 이스라엘 측 또는 팔레스타인 측에서 발포한 총격에 의해 사망했을 거라고 발표를 정정했다. 하지만 유엔과 외신의 독립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녀는 이스라엘 군의 발포에 의해 사망했고, CNN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조준’사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이스라엘은 그녀의 장례식 때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과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발포하며 장례식을 막으려 했다. 이스라엘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스라엘이 언론인을 살해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제언론인단체인 CPJ(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Israeli Defence Force)이 살해한 언론인은 최소 20명이고 이 중 팔레스타인 사람이 18명, 유럽인이 2명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 누구도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2021년 가자지구 침공 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언론사인 AP와 알 자지라 방송사가 입주한 건물을 폭격하여 수십 명의 소속 언론인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점령폭력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일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SNS도 자국 보안을 핑계로 광범위하게 감시하고 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하는 이용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2020년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에서 ‘여성활동가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을 받았던 현지 여성활동가 리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스라엘 점령을 반대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2022년 6월에 체포되어 현재까지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이러한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여성들 중에 언론인을 꿈꾸며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다. 사람들은 아랍 무슬림 여성들이 수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2018년부터 매년 팔레스타인 인권보고서를 제작하고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를 운영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스라엘 점령폭력에 대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더욱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여성을 억누르는 가부장적 사회로 인해 여성들은 더욱 도전적이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아디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그녀들의 열망은 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디는 현지 여성단체, 언론단체와 함께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독립언론인으로 성장시키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 독립 언론인을 세우는데 함께 해주세요” 이 캠페인에는 굶주림에 힘겨워 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없고, 파괴된 가옥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사진도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 캠페인이 잘 안될 거라 비관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기꺼이 제 2의 제 3의 쉬린이 되고자 열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탄압을 뚫고 그녀들이 보다 자유롭고 다채롭게 현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아마 조금 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아닐까? 언제까지 어쩔 수 없는 현실만을 탓할 수는 없지 않는가?  
2023-06-14 | hrights | 조회: 355 | 추천: 1
신종환 / 공무원 물이 마를 때, 잉어들은 서로의 침을 묻혀 서로 습기를 나눈다. 그러나 큰 호수에서는 서로를 잊고 사는 것이 나으리라. 나는 서경식 선생의 책 ‘시의 힘’에서 이 말을 처음 읽고, 그 말이 루쉰이 했음직하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루쉰의 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글을 쓰며 확인차 찾아보니 장자가 도의 큰 덕을 비유한 상유이말이란 사자성어의 뜻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루신과 그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동한다. 루쉰의 길에 대한 비유와 강철로된 방에 대한 비유,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유언조차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삶. 루쉰은 자신의 죽음을 소박하게 마무리달라고 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루쉰 기념관이 세워졌다. 낙관한 현실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무이자로 끌어오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던 나카노 히게하루에 대한 조문 등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부분의 루쉰의 글에서 읽히는 낮은 온도의 전망은 그가 거의 미래에서 낙관을 끌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어두운 전망을 직시하며 걷기로 마음먹을 때 그는 어떤 마응이었을까. 출처 - 저자 큰 기관이나 단체부터 작은 모임까지 배움이 걸쳐 있다면 그게 최종목적이든 활성화를 위한 수단이든 내부에 의견이 교차하는 장을 만들고 활성화하고자 한다. 의견이 교차하며 타인의 의견과 의중을 숙고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이 입체화되고 깊어지면서 행동이 변화하거나 같은 행동이라도 의미가 달라질 계기의 장이 만들어지곤 한다. 과거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장을 많이 제공했고 거기서 많은 생각이 활발히 오갔다.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의 특색과는 무관하게... 하지만 일간베스트나 워마드 등의 타자에 대해 누가 더욱 원색적이고 새로운 언어로 적의를 드러내는지가 자랑인 커뮤니티들이 한때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또 그들의 언어가 사회에서 유통되는 시점과 맞물려 사유 교차의 장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동진 평론가의 ‘직조’라는 말이 굳이 그런 말을 써야 하느냐는 논란을 일으킬만큼 지적활동이나 그 교류를 굳이 해야하느냐는 넘어 까닭없이 적대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비논리적인 비난이 가깝고 쉽고 즐겁다는 걸 많이들 느끼면 이를 부정하는 이들도 결국 단편적인 조롱과 비난만을 교차하게 된다. 그럼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런 장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고 느껴져서 우리 노조의 영화모임에서도 그런 장의 역할을 했으면 해서 매 모임마다 개발과별로 쓴 발제문을 들고 간다. 최근 시내 극장 하나가 문을 닫아버려서 이번 모임에서는 영화 ‘다음 소희’를 각자 보고 주민센터 근처의 족발집에서 모였다. 발제문을 돌리고 몇마디는 떠들고 시작하려는데 우선 참석한 일곱명 중 세명은 영화를 보지 않았고 두명은 유튜브 축약본을 봤다고 기습고백을 했다. ‘음 그럴 수 있지. 예상범위 안이야.’ 라고 생각하며 발제문 내용을 떠들어대려는데 노조 청년부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아 이런거 써오지마 그냥 술이나 먹는 게 좋은 모임이야.’ 음... 맞는 말이다, 두드려 맞는 말. 속으로 이제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웃는 스스로의 인내심의 증진에 감탄하며 술을 따라가며 축약본이라고 보고 온 친구들과 말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농담으로 ‘좋은 내용입니다.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농담조로 쓰이곤 했지만 이제는 ‘좋은 말을 읽어야 하나요? 당신의 이게 좋은 말이라고 어떻게 단정하나요?’로 따지는 태도들이 여기저기서 복병처럼 등장한다. 노조가 지원하는 무료 알콜의 힘에 기대어 어찌어찌 화기애애하게 다음달을 기약하고 돌아오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모임의 내일을 생각한다. 대단히 모임에 호의적인 친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글을 쓰게 하면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겠냐고 고마운 의견을 주었지만 그렇게 되면 술집에서 나혼자 등신대 거울을 보며 ‘그대의 망한 모임에 치어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사람 괜찮다 싶으면 도청 발령으로 도망가는 일의 반복이라 큰 기대도 비관도 없이 모임을 꾸리는 데 익숙하다. 다만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이룰 가능성은 다소 요원하다면 모임의 의미와 까닭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루쉰처럼 올지도 모를 낙관적 상화이 나를 볼 수 있게 지표처럼 있자는 마음으로 임해야 할지 오장완의 ‘프란츠 카프카’에서 제자를 ‘미친’이라고 표현하는 조소로 임할지 모르겠다. 가기는 가는 이길,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나.  
2023-06-07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아동복지법 제6조). 1923년 방정환을 포함한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방정환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 맞춰하도록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갓 태어난 고작 팔뚝만한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고, 졸리다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아프다고 운다. 그저 운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부모가 처리해 줄 수 있도록 우는 일이 그 첫 번째다.   내내 울고 잠을 자기만 하는 아이가, 가끔 부모를 보고 웃는다. 정말 부모를 보고 웃는 것인지, 기분이 좋아 웃는 것인지, 반사반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조그마한 아이가 배냇짓을 한다. 아이의 우는 소리에 지치다가도 가끔 보여주는 배냇짓에 부모는 따라 웃고는 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우는 소리에 힘겨워 이 아이가 정말 죄없이 맑고 깨끗한 존재인가를 의심하다가도 아이의 웃음에 부모는 육아로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다. 동시에 아이로 인해 차올랐던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자신 스스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갓난 아이는 외부(부모)에 의존해 살아 남는다. 아이는 기고 앉고 일어서고 걷고 뛰게 된다. 울고 웃고, 옹알이를 하고 엄마, 아빠, 맘마 하다, 말을 하게 된다. 아이는 점점 외부(부모)의 의존에서 떨어져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이 필요하다.   방정환이 첫번째 어린이날 행사에서 보낸 편지처럼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아이를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갖는 일, 아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일, 아이의 성장에 비례하여 부모의 개입을 줄이는 일, 아이가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부모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는 일.   성장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고작 8살짜리 아이가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은 부모와 자신이 함께 있는 집이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꽤나 소란스럽고,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고, 제법 건방진 아이. 그런 아이 곁에 있는 부모는 어떤 사람이어야하나.   부모는 사는게 녹록치 않았다.   아이의 아빠는 오랜 시간 일을 했다.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울만큼 일을 할수록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은 되려 어려워졌다.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 지 고민해 본 일 없던 아빠에게,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이뿐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 었다. 다른 가족과 친구를 떠나 남편만 보고 이룬 가정이 아이의 엄마에겐 점점 섬처럼 변했다. 엄마가 속한 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다루는 일 뿐이었다.   어느덧, 커가는 아이의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는 부모가 아닌 스마트폰이 돼버렸다. 친구도 스마트폰을 통했고, 세상도 스마트폰을 통했고, 부모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떼를 쓴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부모의 요구로 아이에게 쥐어준 스마트폰. 아이를 보는 일이 힘들어서, 아이가 혼자 있는 게 불안해서, 아이가 심심해 할까봐 쥐어준 스마트폰은 어느덧 부모 자신의 권위를 대체해버렸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아빠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웃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을 하면 안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존경과 사랑을 빼앗긴 분노에 불과했다. 아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때리고 욕을 했다. 엄마는 남편의 옆에는 있었지만 아이의 곁에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의 엄마도 아이를 때렸고 아이는 폭력을 피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 조사를 앞둔 부모는 아이가 배냇짓을 하던 때처럼 한없이 사랑해 주었다.   "엄마한테도 혼이 나긴했는데, 기억은 잘 안나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엄마, 아빠 모두 잘 해줘요."   아이는 부모를 끝없이 용서한다. 학대의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는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가 날 미워할 리 없다. 부모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 잘못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부모가 내게 사과를 했다. 이제 괜찮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부모는 날 다시 예뻐할 것이다.   아이의 용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더없이 거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본능이다. 울고, 웃고, 용서하는 아이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마주한 어른들 역시 선택을 해야 한다. 100년 전 첫 번째 어린이날에 방정환이 쓴 편지는 민법상 징계권(민법 제915조 부모의 징계권은 2021년 삭제됨)이 사라진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4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수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 2020년 43명. 2014년 아동학대 발생 건수 10,027건, 2015년 11,715건, 2016년 18,700건, 2017년 22,367건, 2018년 24,604건, 2019년 30,045건, 2020년 30,905건. 2021년 아동학대 발생건수 37,605건, 하루평균 아동학대 피해아동수 103명, 재학대 발생건수 5,517건(재학대 발생비율 14.7%),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수 40명. <출처: 아동학대 주요통계, 보건복지부>
2023-05-09 | hrights | 조회: 539 | 추천: 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고대 버마달력으로 새해인 4월에는 미얀마와 태국, 라오스 등에서 최대 물 축제가 열린다. 미얀마에서 띤잔(Thigyan)으로 알려진 이 축제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잘못과 불결함, 불순함을 정화하는 의미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미얀마 최대 축제이자 연휴이다. 하지만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기존의 띤잔 축제의 모습은 사라졌고, 특히 올해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띤잔 축제로 기억될 것이다. 띤잔 기간인 지난 4월 11일, 미얀마 군부는 전투기와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의 학살을 자행했다. 당일 아침 8시, 미얀마 중부 사가잉 주(州) 파지기(Pa Zi Gyi)마을에서는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인민방위군(People Defence Force)의 지역사무소 개관식이 개최됐고, 이 행사에 약 800명의 지역주민이 모여 음식과 차를 나눠 먹고 있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전투기를 출동시켜 이 장소를 폭격하였고, 폭격 직후 무장헬기를 통해 폭격피해를 받은 지역주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34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최소 165명의 주민들이 사망했고 3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기에 폭격피해를 받은 이들의 시신은 사방으로 찢겨졌다. 부상자를 구조하고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접근하는 주민들에게 군부의 헬기는 재차 출격하여 사격을 하는 잔혹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당일 저녁 군부 대변인은 파지기 마을에 군사공격이 있었음을 확인하였지만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 공습으로 피해 받은 파지기 마을 현장 / 출처 - Myanmar Now 홈페이지 명백한 민간인 학살이고 전쟁범죄이다. 군부 쿠데타 이후 군부는 자국민의 저항과 시위를 무력진압 했고, 시위 연루와 상관없는 이들까지 무차별적인 체포와 구금을 하였으며, 저항인사를 강제 사형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자국민에 대한 집단 학살도 서슴지 않는 극악한 정권임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외부의 원조와 지원이 절실한 미얀마 군부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위해 매년 띤잔 축제에 군인들과 공무원을 동원한 평온한 물 축제의 모습을 연기한다. 큰 도시마다 물 축제를 할 수 있는 무대와 부스를 강제 설치하고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가 주도하는 물 축제 참여를 보이콧 하고 침묵으로 군부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다. 한편 파지기 학살이 있기 3일 전, 띤잔이 시작되는 4월 8일 토요일, 아디의 미얀마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에서 ‘평화와 희망 만들기’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도서관에 띤잔 축제를 맞아 작은 행사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만이라도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축제를 자유롭게 즐기길 위하는 마음으로 작은 물 축제를 결정했다. 도서관 아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물놀이를 하고 띤잔 축제 때 즐겨먹는 음식인 ‘몽로예보(Mont Lone Yay Baw)’를 함께 만들며 나눠 먹었다. 웃음과 흥겨움이 사라진 미얀마의 띤잔축제가 도서관에서 작게나마 부활한 것이다. 참여한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띤잔 축제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고 전통과자를 함께 만들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과자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군부의 폭력과 공포통치가 온 미얀마를 억누르는 상황에서도 미얀마 인들의 삶은 지속되고 미얀마의 아이들은 희망과 평화를 위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2023-05-04 | hrights | 조회: 385 | 추천: 2
신종환 / 공무원 이번 글을 얼마 전에 개봉했던 ‘다음 소희’에 대한 스포일을 담고 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사이 어딘가에서 활동하던 친구는 종종 ‘운동에는 반동이 따른다’고 했다. 나는 구 공산권의 몰락에 좌절했다는 과거의 대학생들이 겪은 일을 책으로 알고는 남 얘기인양 측은해하는 한편 조소하며 ‘우리’라는 개념이 소실되는 반동이 물러가길 바라며 ‘동지’라는 구호를 부르짖으며 짧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7급 지방행정직으로 2023년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반동 또한 운동이며, 반동에는 운동이 생긴’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낀다.   영화 '다음 소희' 중   영화 ‘다음 소희’를 봤다. 반짝이는 꿈을 가진 소희는 욕받이인 직장, 고충을 말하기 어려운 집, 사정과 무시가 섞인 담임, 자신처럼 무너져가는 남자 동기 사이에서 추위에 얼어가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죽어가고 소녀의 성냥불처럼 영롱한 그녀의 춤이 참담한 현실에 대비되어 더욱 암담하게 그녀를 비춘다. 그녀를 보며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그림자의 개념을 김현경 씨가 본인의 책에서 ‘환대’에 비교하여 언급한 것이 생각났다. 환대란 이를테면 가치에 부응한다는 인정이고 그림자는 그 상징인데 소설의 주인공에 빗대자면 그녀는 그림자를 팔지도 않았지만 박탈당했다. 어디에서도 그녀는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녀 주변은 그녀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나아가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어떠한 노력의 증여도 받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잃었고 방향과 좌표를 잃었다. 방향과 좌표를 잃은 사람은 고통을 해석할 실마리가 없고 그것은 지옥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한다. 그녀는 찬 물 속으로 들어갔다. 돌아나올 순간이 계속 있었을 자살방식을 그녀가 택함으로써 영화는 소희의 내면이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후반부터는 소희의 죽음을 규명하려는 배두나를 주목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연출한 소희의 부모, 담임, 교장, 교육청, 회사 사람들이 렌즈에 더 많이 비춰진다.   영화 특성상 화나게 하는 사람들이 음성이나 극중 인물로 등장하지만 결국 직접적인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누구도 타인에게 욕을 해서는 안되지만 대기업 하청 콜센터의 업무특성 상 서비스 해지까지 아주 어렵게 만들어진 구조는 가뜩이나 화 많은 사람들을 더 화나게 한다. 죽은 팀장도, 새로 부임한 팀장도, 주변 동료, 담인 선생, 교육청 직원 모두 비슷한 결을 가진다. 손에 바늘을 쥐고 다른 이의 항문을 꿰메지 않으면 자신의 항문이 꿰메일 것처럼 도망치는 동시에 타인을 쫓는 쥐처럼 보인다.   배두나는 그런 간접 가해자들 속에서 진범을 찾다 실패한다. 그림자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은 좁고 복잡하기에. 김수영 시인이 ‘아, 그림자가 없다’에서 사람들이 정처 없듯이.   영화를 보며 쓰면서 몇몇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겹쳤다. 자기도 처음 들어왔을 때 찻길에 발을 넣었다 뺐다 했다는 선배. 씨발놈 개발놈 하는 민원인 앞에서 소희처럼 욕하지는 못하고 울더니 공황장애가 생겨 휴직하고 다시 복직하기는 무섭다던 누나. 조직에는 희망이 없다며 면직 후에 교육행정직으로 다시 시험 쳐서 들어간 동기. 과거의 자신을 타자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조직에 남아 선두에 섰고, 무너진 자신과 이별하지 못한 사람들은 휴직자란 이름을 달고 조직에서 언젠가 떠날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몇몇은 그사이 어딘가에서 울기에도 웃기에도 애매한 마음으로 월급표를 기다린다.   노동 가수 ‘박준’은 본인의 노래에서 ‘옆을 쳐다’보라고 했다. 우리가 앞만 보지 않고 옆을 쳐다볼 때 모두 노동해방에 대한 열의와 동료의 부당함에 대한 의분이 생기리라 믿었던 것 같다.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책인 ‘담론’에서 선생께선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 존재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는 너와 내가 남이 아닌 ‘우리’라는 자각이 옳은 사회로 가는 원동력이라고 모두들 여겼던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은 공공적 연대, 우리라는 개념에 기반해 의분을 느끼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분노가 투명한 사회에서 응집한다. 부당함에 대한 투명한 분노가 동시에 많은 사안들을 바라보고 향한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참을 수 없으니 너에게 일어난 일도 참을 수 없고, 기술은 서로의 분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연대보다는 산불처럼 타오른다.   학대와 비인간화가 치밀하게 계획되어 아래로 흐른다면 우리의 분노는 직관적으로 위로 향해 올라간다.   ‘다음 소희’의 관객은 11만명 정도로 기록된다. 최소 500만명부터 시작된다고 여겨졌던 ‘헤어질 결심’의 관객이 189만명임을 감안하면 2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라던 영화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속초에서 우리 노조 모임은 영화를 단체관람 하려 했지만 영화가 이틀만에 내려버리는 통에 관람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지방에는 훨씬 많았을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지 않은 호응에도 어떤 갈증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배두나가 소희의 친구에게 연락하라고 말하는 선제적 온정과 사회 전반에 타오르는 분노의 궤가 다소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무수한 ‘나’들은 응징하지만, ‘우리’는 어떤 ‘나’가 허물어지기 전에 서로를 지킨다. 영화가 주는 강렬함과 아쉬움은 아마 ‘나’들이 아직 ‘우리’로 발아하지 못했음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열망을 강하게 촉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가 모두에게 이 일말의 갈증을 느끼게 하고 같이 발아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본다. #인권연대 #사람소리 #목에가시 #신종환 #참지않는'나'들너머를기다리며
2023-04-25 | hrights | 조회: 413 | 추천: 6
이승은/ 경찰관 “ 아이고~~ 우리 현빈이(가명)가 또 죽고싶다 카는데 우짜능교.. 아이고오..아파트에서 또 뛰어내린다케가,, 무서버가 집 밖으로 끄집고 나와가 지금 둘이 카페에 몇 시간째 앉아 있니더. 아이고.. 우짜능교.. “   퇴근 후 집에서 느긋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급한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휴대폰 화면에 ‘A 중학교 김현빈 친모(피해자)“ 라고 뜬다.   사연을 들어보니 교실에서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말리다가 가해학생에게 코를 가격당해 학교폭력으로 학교에 신고를 했는데 학교폭력담당 책임교사가 현빈이를 따로 불러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니? 니가 너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니? 너의 기억이 100퍼센트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니? “ 현빈이가 싸움을 말리는 것을 본 아이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K교사는 이런 말을 해버렸다고 한다. 출처 - 더중앙   현빈이는 지난 해 11월, 1대 4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처음 만나게 된 학생이다. 그 당시 중2였던 현빈이는 한 명이 웃으면서 구경만 하고 있는 사이에 세 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가해학생들 모두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고 그들 중 두 명은 종종 함께 놀던 사이였다. 어머니는 이 일을 학교폭력으로 학교에 신고 했다가 다시 경찰로 재신고하였다. 학교측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경찰에 다시 신고를 한 이유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 K가 피해자인 현빈이 보다 가해학생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증거 있나요? 증거 없이는 곤란합니다’ 폭행당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에 직접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찾아가 CCTV를 열람하게 해 달라 요청했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학교에 제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교사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한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엄격한 판사가 되어 구체적인 물적 증거가 있는지, 그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등을 피해학생에게 집요하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기도 바쁜 현빈이에게 K교사의 이 같은 언행은 고스란히 2차 피해로 이어졌다.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갔고 가해학생들과 K교사의 얼굴을 떠올리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거실 베란다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다리를 걸쳐보기까지 했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리고 가해학생들이 현빈이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조치를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끊을 수 있었다. “우리 아들 인자 괘안니더~약도 끊었고요. 마~ 공부에 욕심이 생겨서 학원도 잘 댕기니데. 고맙습니데이.“ 오십줄에 귀한 늦둥이를 얻었다는 어머니께서 안도의 한숨의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겨울은 고요히 지나갔다.   그런데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던 신학기 봄날에 현빈이는 또 다시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그 K교사가 이번에도 현빈이를 ,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현빈이를 복도 구석으로 데리고 가 음험한 목소리로 가스라이팅을 한 것이었다. “니가 너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니? 너의 기억이 100퍼센트 맞다고 볼 수 있니?“ 독한 정신과 약 없이도 잘 지내던 현빈이는 K교사의 이런 말 한마디에 매일 자살을 생각하던 11월의 현빈이로 뒷걸음쳤다. ‘엄마..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런 기분이 사라지겠지? 너무 괴롭다. 그냥 뛰어내려서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다. 엄마..’ 어머니는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아들의 손목을 낚아 채 덜덜 떨면서 아들을 데리고 나와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11년만에 발표된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로부터 50일, 이 사태를 계기로 11년만에 새로이 발표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뜯어 보면 교원에게 ‘학교폭력 지도 면책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나온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학교폭력 기록 보존기간이 단축된 것, 교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학교폭력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폭력에 대응토록 민·형사상 책임 면제와 책임계약 등을 지원할 방침이며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수업 경감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학폭 사건 해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 책임을 완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빈이의 사례처럼 단 한번도 가해 경험이 없고 소위 ‘사고 안 치는’ 아이일지라도 K교사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학교폭력을 축소하기 위한 교묘한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K교사 같은 사람이 현빈이가 다니는 학교에만 있을까?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피해학생의 17.3%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신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교급이 올라갈 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올라갔는데 초등학생은 16. 6%, 고등학생은 27.1%가 주변에 알려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부분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학생들이 신고를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유추할 수 있다. 교육부 차관의 ‘학생들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등이 복잡하게 작용해 학교폭력이 늘었다’ 는 말에 맘편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존중받았던 것이 사실이면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학생 비율이 저렇게 높게 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번 종합대책에서 이전의 정책에서 진일보 한 것이 사실이고 피해자를 위한 정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하나 학교폭력 책임 교사와 학생들간의 관계성에 대한 세밀한 진단과 분석은 매우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폭력 책임교사 또한 하나의 벽으로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빈이의 어머니는 나와 면담을 한 다음 날, A학교 교장실로 직행, 아들이 당한 수모를 낱낱이 밝히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 번 만 더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K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K교사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며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현빈이가 다시 이전처럼 밝음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11년만인데 다소 급하게 만든 것 같은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 지금부터라도 면밀히 살펴서 부족한 면은 어떤식으로 보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3-04-19 | hrights | 조회: 391 | 추천: 4
정한별 / 사회복지사   일상에서의 장애의 의미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이렇게 놀려대곤 했다. “애자, 애인, 병신, 찐따, 사이코” 위의 호칭들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먼저 ‘애자, 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하하는 표현들이다. 장애인복지법이 생겨난 1989년 이전까지, 장애인의 법적용어는 ‘장애자’였다. 당시 장애와 관련된 지원을 다루고 있는 법률의 명칭은 심신장애자복지법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선 장애자라는 표현에서, ‘장’을 제외한 ‘애자’라고 부르며 서로를 놀려대곤 했다. 그 표현이 더 이상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게 된 이후였지만, 우리는 ‘애자’라는 표현을 썼고, 그 표현이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 표현을 알게되었을까? 뜻이나 제대로 알고 그 표현을 쓴 것일까?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자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사람을 비하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병신은 신체적인 손상으로 인해 장애가 생긴 것을 일컬으나, 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찐따 역시 지체장애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용어이다. 짝짝이를 뜻하는 일본어인 찐빠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 6.25 전쟁시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사람을 모욕하는 멸칭, 소아마비로 걷는 게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등으로 쓰인다. 요새는 ‘힘숨찐’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힘을 숨긴 찐따’라나? 바보라는 표현 역시 지적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나, 요새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사용되는 사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이코는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날은 애자, 애인으로, 다른 날은 병신, 혹은 찐따, 사이코로 장애는 그렇게 부정적인 존재로 우리 곁에 계속 있었다. 과연 장애는 부정적인 실체로만 고착화 된 것일까? 출처 - 경주신문 제도 속 장애의 변화 1985년에 첫 시행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심신장애자’를 지체불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또는 정신박약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실시된 다음 해인 1989년 ‘심신장애자’라는 용어를 ‘장애인’으로 변경하고, 법의 명칭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게 된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정의는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또는 정신지체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일컬었다. 용어의 변경과 아울러, 장애인등록제도도 처음 도입되었다. 당초 5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장애는 2000년에 10개(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로 늘어나게 된다. 2003년이 되어선 5개가 더 늘어, 장애의 유형이 15개가 된다. 요새 부쩍 매스컴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자폐증이 발달장애라는 이름으로 장애의 유형으로 추가되었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가 추가된다. 2007년이 되자, 정신지체가 지적장애로 변경되고,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로 명칭이 변경된다. 2014년이 되자, 간질장애가 뇌전증장애로 변경된다. 2015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함께 칭하는 용어로 정의가 된다. 장애의 유형과 관련된 용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감소하기 위해 사회는 조금씩 변화했다. 지체부자유에서 지체장애로, 정신박약에서 정신지체 그리고 지적장애로, 간질장애에서 뇌전증장애로 장애의 유형을 일컫는 용어가 변경되었다. 장애의 유형 역시 늘어났다. 5개에서 10개로, 그리고 현재 15개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하고 있는 장애의 종류만을 장애로 보는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은 뚜렛증후군(Tourette’s Disorder) 역시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 종류는 아니지만,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뚜렛증후군이라는 내부기관의 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에 해당함이 분명하므로,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해당한다” 라며, 장애인복지법 상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지자체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열거하고 있는 장애만을 장애의 종류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였다. 장애인복지법 상 15개 장애유형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등록의 문은 조금 더 열렸다. 2021년부터는 기면증(과도한 졸음을 유발하는 만성 수면장애),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도 상태에 따라 장애인등록이 가능하도록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최근에는 노인성치매의 경우 지적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고시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복지부 고시 2022-167호는 '정신장애의 정도 판정기준'을 정하면서 '선천적인 지능저하의 경우 지적장애로 판정하며 뇌손상, 뇌질환으로 성인이 된 후 지능저하가 온 경우에도 지적장애에 준한 판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다만 '노인성 치매는 제외한다'라는 단서를 두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취지는, 지적장애와 노인성치매로 인한 상태가 서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노인성 치매를 지적장애 등록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평등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지능지수 70이하)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지능지수 71~84)을 갖고 있는 ‘경계선 지능인’이 장애인등록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현행 지적장애인 판정기준이 개별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 없이 지능지수만으로 장애등록심사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 하다는 것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주장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와 대다수 사람들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이 2022년 12월 완전하게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 라며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래 친구를 놀리기 위해 생각 없이 장애 비하 표현을 사용하던 아이는, 사람들이 장애비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핏대를 올리는 사람으로 변했다. 장애를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와 일상에서 장애의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던 시민들 역시 시나브로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2023-04-11 | hrights | 조회: 517 | 추천: 4
신종환 / 공무원 출처 - 저자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인류는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도시는 이로 인해 공황에 빠지고 런던 정도의 도시만이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며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도 허무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에서는 신청하면 자살용 약을 제공한다. 이런 영화는 외부요인으로 미래가 막혀 사람들이 실의에 빠질 것은 걱정하지만 현실은 조용하게 우리가 미래로 가는 문앞에서 멈춰선다는 느낌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듦과 지나감을 동시에 겪으며 나날이 강하게 느낀다. 저번주에 친한 직장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지인들과 갔다. 신랑 신부는 모두 시청에서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장 주변은 온통 공무원들로 가득해서 이게 결혼식장인지 월례조회를 앞둔 시청 회의실 앞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막힘 없이 진행하는 사회자, 정감가는 축가, 이어지는 신랑의 노래. 흥겹게 이어지는 기념촬영까지. 내 결혼식도 아닌데 괜시리 만족스럽고 흠 없는 결혼식에 기분이 좋았다. 지인들과 돌아오는 길에 결혼식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하다 그들의 결혼식 비용으로 주제가 옮겨졌다. 동생은 미국 올란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거기에 세계 유일한 ‘디즈니 월드’가 있고 또 그곳의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전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신혼여행 내내 거기만 둘러볼 거라고 했다. 이번 신혼여행에만 천오백이 들었다던가 천칠백이 들었다던가... 시청에서 잘나가는 둘이 결혼했고 하객들은 구름같이 왔지만 대부분이 공무원이라 5만원을 냈을 거고 요새 1인 식대는 5만원이 넘으니까 하객들은 그들에게 금전적으로는 약간 마이너스 였을 것이고...어쨌든 수천만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란 게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혼집... 부부는 속초 해변가에 완공된 지 2년 정도 된 신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정했고 당연히 양가의 부모님의 도움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 선남선녀인 남녀, 고액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리지는 않을 것이고 꽤 승진가도를 달릴 두 공무원, 금전적인 지원이 어느정도 가능한 양가 부모님들. 결혼이란 중대사는 물론 많은 준비를 마치고 해야 하지만 최근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자면 그 준비는 마치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처럼 고도의 자본력과 정밀성과 전문성이 가미된 사람들만이 시도하는 것 같아서 결혼식 뒤풀이 일행들에게 결혼은 점점 요원한 일 같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한 경우는 예상치 못하게 자녀가 생겨 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의 가정생활은 물론 나름대로 행복하겠지만 주변 소식에서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열심히 살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자녀의 귀여운 사진 외에는 별로 알 수 없었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언급되면 오래지 않아 다른 주제로 전환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나와 내 친구들은 허들 앞에서 다리를 오들거리며 떨고 쭈뼛거리다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기로 털썩 자리에 앉는다. 결혼이 우주선 발사라면 우리는 우주선 운전 면허도 아직인 사람들인걸... 결국 우리는 그늘에 모여 시시하게 소멸을 잡담한다. 김애란 작가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했지만 너가 어딨어... ‘너’를 결심하는 것도 큰일이고 ‘내’가 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라고 농담섞인 자조를 하면서. 물론 이런 세상에도 지혜, 사랑,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있어서 어려운 처지에도 서로 기대서 생을 살기도 마음 먹고 자녀를 낳고 열심히 키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다른 양태의 멋진 우주선 발사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지에 선뜻 발을 디디는 용기가 삶에 필요함을 깨닫는 건 많은 시행착오나 좋은 선배, 선생님에게 이어 받는 단단한 지혜인데 이를 체감하거나 배울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든다. 호기롭게 발사되는 우주선들의 빛이 만드는 그늘은 우리를 시도에서 밀어낸다. 삶은 부스러기들을 겨우 모아서 뭔가를 이뤄보려는 시도 자체이고, 그 나름의 시도의 결과를 하나의 결과물로 인정해야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그런 가치관은 사회 전반에서 의무적인 규정으로 일정 부분이 할애되어 겨우 존속되지 지향할 가치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우리 부스러기들이 힘내서 불안전한 빈칸으로 발을 디딜 가치관이 다시 흐르게 될지 모르겠다. 시시한 모두의 소멸보다는 불안전한 모두의 시도가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미래가 있다면 좋겠다.
2023-03-22 | hrights | 조회: 357 | 추천: 1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나는 살아 남았다. 지난 1월 15일 은평구 기온은 영하 19.5도를 기록했지만 기후위기에도 길거리에서 얼어죽지 않았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는 단 한줄도 장애인에 대한 언급이 없고 연이은 화재에 죽어나가는 장애인들, 여전히 전체 장애인 정책을 책임진다는 장애인 개발원의 재난 구조 매뉴얼에서도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불이나면 계단을 이용하라고 지극히 형식적으로 장애인을 구조할 지경이지만 아직까지 서울 시장에 의하여 혼자 살기 힘들고 돈이 많이 드니 시설에 강제 입소당하지는 않았다. 출처 - 픽사베이 나는 여기 구산동에서 혼자서 개인 핸드폰을 열어 보면서 살아 남았다. 지난 달에 비해 난방비 요금이 두 배로 뛰고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대중 목욕탕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아파트 욕실에 흡착판 손잡이를 달아 대며 살아 남았다. 오늘 서울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어도 카페마다 흔하디 흔한 공기 청정기를 가동시키지 않고 KF94 마스크 쓰기도 어려움이 많지만 멀리 보이는 북한산과 고양시 넘어가는 서오릉 가는 둔덕의 바람길 덕분에 맑은 공기를 접할 수 있어 아직까지 홀로 살아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 조사망률은 53.6%로 사망 원인 중 10위를 차지하고 건강검진 역시 3년째 마음대로 편히 받지 못하고, 외출하는 일도 사람을 만날 일도 생기지 않아 아직 코로나를 경험하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격리할 일도 없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의 조력이나 간병인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한 채로 병원에 입원할 일도 없이 질병의 두려움에도 여전히 살아 남았다.   큰 길 건너 은평구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무연고로 사유 알길 없는 오래된 유골들이 다수 외롭게 발견되어도 그 누구도 치밀한 수사나 탐문 조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대구 장애인 생활시설 희망원에서 최근 2년간 거주 장애인 3명이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되어도 그 어느 언론도 기사를 쓰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이유없이 방문하는 동창생들, 친구들 때문에 정신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열일시키며 꿋꿋이 살아 남았다.   출처 - 픽사베이   여전히 서울 고양시의 어느 학교에서는 버젓이 교장이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급 설치를 거부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80년대 때는 지금처럼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특수학급이나 전문성을 지닌 특수교사도 없었지만 자원 봉사 따위로 나를 의무 교육을 퉁치지 하지 않았고 사회복무요원같은 사람들이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강당에 끌고 가서 벌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내 담임 선생님이 나를 화장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신변처리를 지원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기에 화장실에서 목발로 수십번 넘어졌지만 난 기꺼이 살아 남았다. 등교를 하려고 가끔 아침에 기본 요금 600원짜리 택시라도 잡을려면 많은 차들이 불운이 온다면서 마냥 지나치기 일쑤였고 놀이공원에서는 아무도 놀이 기구에 태워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내 모교에서는 다니기 위험하다거나 비장애인 학생들이 힘들다고 하거나 집에 얌전히 있으라 절대 말하지 않았다. 6학년 수학 여행에는 늙은 교감 선생님께서 나를 업고 먼저 토함산 석굴암에 올랐다. 나는 그렇게 교감 선생님의 등줄기를 적시던 땀과 함께 즐겁게 살아 남았다. 같이 지하철로 출퇴근 이동하자는 장애인들은 더 이상 사회의 약자가 아니라며 시민의 기본권마저 부정하는 정치인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따금씩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새치기 하여 먼저 자동차 문을 열어 제끼는 사람들을 타박하고는 나를 제일 먼저 태우는 택시 운전사 분들, 그게 운전하는 사람들의 의미라는 사람들로 날마다 날마다 깨어서 살아 나오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대사들이 미디어에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겉멋으로만 인권을 말하고 지켜야 하는 이 곳, 온갖 겁박과 회유 과도한 업무에도 가끔 같이 밥먹는 동네 마을 사람들 덕분에 그만두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나는 아직 사무실에 고독히 앉아 일을 하며 계속 인권을 말하며 쌀을 팔아 오듯이 살아 있다.   출처 - 은평시민신문   사는 곳에 하루가 멀다하고 생기는 각종 무인 가게는 계단과 출입문들이 천안문 앞 무장 탱크처럼 목발과 휠체어를 막아서고 자동차를 타고서 주문을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가게들은 음성으로만 주문이 가능해서 목소리 없거나 약한 사람들을 거부하지만 깡통에 담겨와 끼우기 쉬운 캡슐커피 덕분에 나도 도시 시민처럼 설탕 두 숟갈 가득 넣은 아침 가배(커피)를 먹으며 잠에서 깨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창문마다 맻힌 서리와 이슬로 말미암아 체중을 실어 밀어도 해뜨기 전까지는 창이 얼어 붙어 바깥 공기를 만날 수 없고 천장에 붙은 전기 콘센트에 선을 연결할 수 없어 키가 되고 손이 닿는 사람이 방문하는 날이 되어서야 전기 장치가 멈춘 지 일년이 지나서야 다시 환풍기가 돌아갔지만 나는 질식해 쓰러지 않고 또다시 살아 남았다. 딴딴하게 경직된 근육과 피사의 탑처럼 비스듬히 넘어진 몸뚱아리는 겨울잠을 마치지 못하고 한기에 노출된 개구리처럼 바짝 웅크리고 있지만 늘 그러하듯이 버티고 있는 현관문의 산세베리아는 동네 누나의 마음처럼 새순이 빠꼼히 올라오고 뭘하지 않아도 항상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우리 장애인 학생들도 명지전문대의 신입생이 되고 우리 아파트 옆 구산중학교의 일학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교사 일을 하는 벗은 오랜 암투병을 마치고 찾아와 오는 3월 복직을 한다고 수다를 떤다. 인구는 광속으로 소멸되는데 여전히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 학생 한명 지역 사회를 돌아 다니는 장애인 한명을 소중히 할 줄을 모른다.   대학교는 벚꽃이 피기도 지기 전에 사라지는 작금인데 장애인 입학을 여전히 거부하고 지원에 대한 인식은 새마을 운동 전에 머물러 있는 교육계, 한국이 없어진다고 난리 피는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장애인 이동권도 혐오와 돈문제로 이전 투구를 벌이면 어느 누가 노산과 난산에 도전하겠는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동성애자든 어떤 존재든 낳기만 해라고 해도 낳을까 말까 할터이다. 언제부터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광권을 신경썼다고 국립 공원에 장애인 핑계삼아 케이블카를 만들고 공항을 짓고 길을 내고 있다. 아마도 20년 안에 나무 한그루 자리값이 그 케이블카 개발비보다 더 비싼 날이 올터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지금도 버텨내고 았다. 그렇게 우리의 땅에, 광장에 파르나니 봄이 오고 있다. 아무리 외롭고 슬프더라도 좌절과 실패가 휘몰아 치는 눈보라처럼 절망스러운 분노가 온몸을 휘감고 좋은 사람들이 힘들게 곁을 떠나도 우리의 봄은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리며 오고 있다. 불광천에, 여의도에 솜사탕 가득하게 벚꽃이 몽실 몽실 넘칠 때까지 우리는 그 때까지 함께 살아 내야 한다. <본 글은 은평시민신문에 올린 기사를 재수정 추가한 글임을 밝힙니다.>
2023-03-08 | hrights | 조회: 358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