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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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제목만 보면 무슨 글일까 하고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무슨 내용을 쓰려고 엄마, 아빠를 등장 시켰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먼저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내 자녀 이야기는 아니다 라는 것을 밝혀둔다. 나는 최근에 ‘청소년 통일교육’ 기획 및 진행을 맡아서 하고 있다. 제목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교육 모임에서 만났던 한 청소년 친구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며, 교육 활동에서 만났던 청소년들의 소담스러운 모습들에서 커가는 내 모습을 말해보고자 저작권 침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용해 봤다.   야외 교육활동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일회용 컵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컵을 계속 사용하였다.  우리 모두는 청소년 시기를 겪었다. 겪어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게다. 단지 자신이 겪었던 청소년 시기의 고민, 방황, 노력의 흔적들이 지금의 모습에 비춰져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정도의 차이점일 것이다. 나의 청소년기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참 평범했던 것 같다. 학원을 자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집, 학교, 집, 가끔은 친구들과 오락실도 가곤 했던 매우 평범했던 아이였다. 이러하다 보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서는 그들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경험적 준거, 가치 판단의 철학적 기준을 분명히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그들을 만날 때에는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그들이 왠지 두려운 존재로도 인식되었다. 통일교육 활동 중, 청소년 친구들에게 ‘갈등’에 대해서 표현해 보자고 했다. 친구, 가족과의 마찰, 전쟁, 폭력, 정치인 싸움, 옷과 음식 선택의 갈등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한 친구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로 표현했다. 순간 모두가 웃었다. 나도 비슷한 상황들을 겪었지만, 모두들 겪은 듯 했다. 그 내용처럼, 어린 아이들에게는 정말 큰 갈등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청소년 자녀에게까지도 그 물음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듣고자 하는 부모님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가 웃은 이후에 이어진 그 친구의 말이 지금까지도 깊게 남는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이러한 갈등을 겪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통일의 모습과도 닮은 것 같다고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 안에서, 우리들이 갇혀 있는 것 같으며, 어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이후 그 친구의 얘기를 떠올리면서 나 또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 분단의 역사 관점에서 청소년들을 대하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들을 해 보면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통일 카툰을 그리기 위해 연습장에 미리 그려보는 청소년 친구의 뒷모습. ‘아~ 갈등 밀려오네~’ ^^*  통일교육 활동을 마칠 때 쯤, 우리는 그동안 함께 해온 여러 통일교육을 통해 변한 자신을 사물, 동물, 자연 등으로 각자 표현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참 다양하며, 자신의 마음이 담긴 소박한 표현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저는 젓가락이 떠올라요. 젓가락이 하나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만, 둘이면 해낼 수 있거든요. 이 활동을 통해 통일 마음이라는 친구와 또 지금 제 옆에 있는 친구들을 둘 다 얻고 갑니다.”, “저는 민들레요. 민들레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많은 꽃씨를 만들어서 여러 곳에 날려 보냅니다. 저도 이 곳에서 통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만들었고, 이 꽃씨를 여러 곳에 날려 보내고 싶어요.”, “저는 숄이 떠올라요. 사람의 어깨를 감싸주는 따뜻한 숄처럼, 분단의 갈등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싼다면 통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언어,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경운기를 타고 통일농장으로 출발~~ ^^*  시간이 흐르고, 그 두려운 존재였던 청소년들이 어느덧 이제는 더욱 더 두려운 존재, 존경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고자 날 찾아오지만, 엄밀히 말하면 활동을 펼치면서 내가 더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의 몸짓, 마음 하나하나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고, 깊은 강을 건너니 내 혼이 깊어졌다고. 이제는 어느덧 청소년 친구들이 나에게 키 큰 나무 숲, 깊은 강이 되어 주었다. 나 또한 그 친구들에게 그렇게 되어주고 싶다. 이번 주 창조하는 토, 일요일 대구 지역의 키 큰 나무 숲, 깊은 강을 만나러 간다. 서로에게 바치고 싶다. 그런 나를 떠올리며, 벌써부터 들 떠 있다. ^^* * 보태기 : 매월 2, 4주 토요일이 언제부터인가 ‘놀토’라는 표현으로 대변되고 있다. 우린 창조하는 토요일 ‘창토’, 무언가 꿈틀거리고, 꿈을 품을 수 있는 토요일, ‘꿈토’라 부른다. 청소년 친구들과의 약속이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605 | 추천: 0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팔당댐, 청평댐, 의암댐, 춘천댐 그리고 우리 동네가 나온다. 저희 아랫동네(?)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가 멱 감은 물 드시고 계시니 잘 보여야 깨끗한 물 드실 수 있을 거다. 이곳 춘천시 고탄리를 중심으로 인근 5개리의 시골아이들은 유치원생(4명) 포함 37명. 한반에 5명 안팎의 교육선진국 학급보다도 적은 인원으로 도시 부모님들이 부러워할 선생님과의 일대일 교육을 받고 있다. 전교생 모두가 형제처럼 지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벗삼아 공부하고 뛰놀며 살고 있다. 물론 학원이나 과외는 전혀 없고 이곳까지 태우러도 안오는 관계로 사교육비 지출은 할래야 할 수도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아이들 데리고 이사 오실래요? 지난겨울, 맨 날 집안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위해 태권도 학원 한번 보내보는 것이 소원인 학부모님들을 꼬셔서(?) ‘겨울방중 공부방’을 했었다. 동네 들어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나를 믿고 공부방을 위해 회비도 내고 하루씩 돌아가며 아이들도 봐주시고... 태권도 시간은 없었지만 암튼 아이들과 부모님들 모두에게 너무나 행복한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학기가 시작되면서 상설적인 공부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빗발친다. 동네 힘도 모으고 기금도 마련코자 백창우 선생님을 모셔서 콘서트도 근사하게 했다. 우리 아이들 그 큰 콘서트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불렀다. 까만 시골 아이들이 1,000여명 앞에서 주인공으로 당당히 노래를 부를 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었다. 난 ‘차이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비농촌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을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접해 보지도 못한다면 이 역시 차별 아닌가? 귀농하고 나서 농촌의 다른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내 눈에는 아이들이 보였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 아이들이 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학원중독증에 사교육비에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과잉교육열풍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데도 여기서는 다른 세상 뉴스를 보는 듯하다.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인데 왜 그럴까? 철저한 자본의 논리다. 여기에다가 농촌인구의 대부분이 노인분들이니 마을의 모든 관심과 일들은 할아버지,할머니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 동네도 나와 귀농한 형님들 포함 4명 빼면 그 위가 바로 환갑을 넘기신 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또다른 소외와 차별을 당하고 있다. 나도 아이들이 학원의 홍수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구리 잡고 냇가에 멱감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부모님 일 도와드리는 것도 가끔씩 해야 재미있지, 갈데없고 할 일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해 보시라. 교육환경만 그런가? 문화도 복지도 먹거리도 모두 그렇다. 몸에도 좋지 않지만 피자나 짜장면 한번 배달시켜 먹을 수 없다면, 그 흔한 캠프한번 못 가봤다면 누가 믿을까? 그러니 컴퓨터니 텔레비전이니 꼭 닫아걸고 옛날처럼 한복 입히고 머리 땋아 키워? 얼마 전 운동회가 있었다. 시내에서는 아이들이 많아 한, 두 개 경기면 끝난다고들 하는데 우리아이들은 하나 끝나면 바로 다음 경기가 연이어 있다. 동네 노인분들 경기에 부모님 경기가 두어 개씩 있어도 아이들은 종일 주인공이다. 이 날 하루만큼은 아이들 적은 것이 좋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쓸쓸하다. 37명이 양팔에 양팔을 벌려 서도 운동장의 빈 공간은 채울 수가 없다.   가을운동회에서 학생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요즘 60명 이하는 통폐합 한다는 교육부 발표가 있고나서 부모님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복식수업(우리 민재엄마가 초등교사인데 정말 복식은 안 된다고 합니다)에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보다는 시내학교로 통폐합 되는 게 낫다는 의견과 그래도 학교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 저는 후자의견에 한 표! 농촌에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점점 더 어둡고 삭막한 곳으로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시골 작은 학교라도 혹 경제적 논리가 안 맞더라도 적어도 아이들 교육환경 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지금보다 더 개선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살고 농촌도 살 수 있다. 올해 농사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올 겨울 공부방은 또 어떤 재미나는 걸로 채우나 고민해야 될 때가 왔다. 마누라가 농사만으로도 정신없는데 잘 해도 욕먹는 공부방에 왜 매달리냐고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 도시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때 느낄 당혹감과 소외감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다면 이유가 될른지... 여러분! 아이들 데리고 이사 오세요!
2017-06-22 | hrights | 조회: 674 | 추천: 0
김지연/ 방송 작가   금싸라기땅 여의도 곳곳엔 그곳의 가치를 더욱 배가시켜주는 대규모 면적의 방송사들이 있고, 그 큰 면적의 방송사 내부 비상계단 음습한 한 구석엔 한 평도 되지 않는, 담배꽁초와 담배연기 가득한 공간, 공간이라고 칭하기에도 민망하고 비참한, 은밀한 곳들이 있다. 방송국을 드나드는 작가를 비롯한 여성 흡연자들이 발붙일 수 있는 유일한 처소다. 2003년 여름, 복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법(제9조 금연을 위한 조치)이 시행되면서 한동안 흡연권과 혐연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다. 방송사 토론프로그램마다 흡연권을 둘러싼 각종 토론들이 줄을 이었지만, 흡연자 대표 중에 여성은 없었다. 그 후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금연빌딩으로 지정됐고, 흡연자들이 발 딛고 설 곳은 눈에 띄게 줄었다. 건물마다 어렵사리 궁색하게 만들어진 그나마의 흡연 공간이 남성들의 전유물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견고한 현실이었고, 보여지는 것과 실제 내용은 언제나 다르기 마련이어서, 언뜻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고, 재기발랄한 공기만 넘쳐날 것처럼 보이는,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배 없이 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담배를 끊어야할 특별한 동인도 없고, 주위의 압력에 쉽게 욕구를 희생시켜버릴 만큼 착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닌 필자, 그렇게 10년을 넘게 하루같이 담배와 더불어 살아오면서 갖게 된 생존 본능이, 바로 일터를 옮길 때마다 흡연실위치부터 파악해두는 거다. 지금 일하는 방송사에서 처음 만난 한 여성 작가에게 물었다. “담배는 어디서들 피우시는지?” 상냥한 그 작가, 복도 끝을 빠져나와 돌고 돌더니, 불빛 한줄기 없는 모 비상계단 꼭대기쯤 막다른 지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매캐한 담배연기가 가득한, 환기는 둘째 치고 마주서있는 사람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대낮에도 어둡고 음습한, 이 넓고 화려한 방송국 귀퉁이에 이런 곳이 있었을까 싶은 곳으로 나를 이끈다. 자존감에 상처가 엄습한다. ‘벼를 찧으면서도 학문을 할 수 있다’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장에 전율하고, ‘당신들은 천상의 별을 찬미하지만 나는 거리의 땀 냄새를 사랑하겠다’는 칼 마르크스의 전언에서 삶의 단서를 얻었다며 술만 마시면 주접을 떨어대던 필자, 역전 한복판에 담배 피우다 낯선 남자에게 따귀를 맞을지언정, 담배 한 개비 피우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남자 PD에게 재차 흡연실 위치를 확인한다. 사무실 옆 지척에 문달린 방을 하나 소개한다. 근사하고 폼 나는 공간은 아니지만, 소박한 테이블과 소파가 마련돼 있는, 그럭저럭 삼삼오오 모여앉아 뒷담화 늘어놓기에는 별 손색없어 보이는 그 곳은, 남성들의 흡연실이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문다. 그 후 1년 가까이, 그곳을 찾는 남성흡연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낯선 농담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 그곳에서 필자, 원숭이이자, 이물질이었다. 백번 양보해 방송국에 드나드는 생물학적 성비를 둘로 쪼개고, 그 성비 안에서 다시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나누더라도, 이건 너무 치사한 공간분할 아닌가.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드는 방송국 사정이 이럴진대, 다른 회사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국내최초로 만들어진 남여 전용흡연실의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학 1학년 교양선택 과목으로 신청해 들어갔던 문화인류학 첫 수업에서, 분필 한 자루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만큼 여리고 약해보이는 남자 교수 입에서, 돌연 터져 나왔던 흡연 여성에 대한 폭언을 기억한다.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함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여성이길, 나아가 인간이길 포기하는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그러니 결혼안하고, 애 안 낳을 결심 한 여자들이나 담배를 피울 테면 피워보라는. 여성의 흡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대체 이런 식의 논리로 박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으로는 더없이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인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 사실 자체가 필자로서는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다. 더 이상 단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무얼 먹고, 얼마나 잘 살 것이냐가 유일한 고민인 이때에, 하여 너도나도 웰빙을 위해 금연이 추세인 이때에, 그 무슨 흡연권 운운하는 야만적이고 뒤떨어진 소리냐 비웃는 분들 분명 있을 터다. 오해마시라. 필자는 우리 모두 행복을 위해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법으로 제도로 흡연을 막아대고 있는 이 판국에, 남자든 여자든 흡연자는 갈수록 소수자로 전락하고 있는 이 시절에, 동병상련 오순도순 피워 올리는 담배연기, 그 또한 아름다울 수 있지 않겠냐, 주절거려 보는 것일 뿐이다. - 김지연 작가는 현재 KBS 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프로를 맡고 있으며, KBS 2TV 시사투나잇,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iTV 전격토론, SBS <책하고 놀자>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785 | 추천: 0
연규련/ CJB청주방송 노조 상근활동가   근자에 자주 만나는 K는 대학 때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다고 했다. 밥 먹을 땐 반찬으로, 술 먹을 땐 안주로, 학교 때 생활이며 음악 이야기가 더해지는지라 ‘녀석, 꽤나 열심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K의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생겼다. 기대했던 대로 그 자리에서는 외국그룹 누구누구에 대한 얘기며, 재작년 공연에서 연주한 곡이 정말 어려웠다는 얘기, 00학번 선배는 요즘 어떻게 지낸다는 얘기들이 곁들여져 어떤 안주보다도 맛있고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사진 출처 - sbs   흥겨웠던 분위기의 중반쯤. 얼근하게 취한 K가 맞은편에 앉아있던 후배에게 갑자기 “지금 동방에 가서 내 기타 좀 가져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집에 가져가서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도보로 왕복 20분이 넘는 거리를, 자리가 파하지도 않았는데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본인이 가져오는 것도 아니라 후배에게 말이다. “정 필요하면 네가 다녀오면 되지”라고 한 내 말은 술에 섞어 마셨는지 못들은 체하고 앞자리의 후배에게 “빨리 가져오라” 소리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K. 그런데 불편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후배, 어떤 기타냐고 자세히 묻더니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가는 것이다. 후배와 함께 돌아온 기타는 자리가 파할 때까지 구석에 박혀 있다가 집에 돌아갈 때쯤 다시 다른 후배의 어깨에 들러 메어졌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선 K가 왕고(최고 학번)여서 K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K의 일화는 단지 술 취한 사람의 주정일 수도 있고, 특별히 유대감이 깊은 동아리 선후배지간의 습관적인 심부름일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그 자리가 술자리였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많다. 그리고 어느 땐 내가 K같은 입장이기도 했다. 내 눈에 든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는 보인다고 했던가. 상황이 갑자기 달리 보인다. K든, M이든, 나의 경우이든 재미있는 공통점은 언제나 이런 일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집단에서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권력을 행사하고, 집단은 그의 방식을 당연하게(저항 없이) 수용한다. 무언가 구체적인 사례가 없을까? 프랑스 영화 ‘룩 앳 미’가 좋겠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기작가의 주위에 들러붙어 하루를 편하게 보내는 서글픈 인생들이 많다. 학교에서는 학번으로, 직장에서는 직책으로, 사회일반에서는 나이로 매겨지는 순번은 위계질서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목을 누른다. 가정에서 길들여지고 사회에서 인정받아온 이런 소통방식은 세습되고 교육되어져 사회를 지배하는 공식이 되는데 이 공식에 자기를 맞추지 않으면 ‘잘못된 답’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술자리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 크게 번졌나? 그렇다면 “이봐 K! 미안하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
2017-06-22 | hrights | 조회: 798 | 추천: 0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 연구원   여러분, 장연희 아주머님을 아시나요? 아마도 거의 모든 분들이 모르시겠죠. 전 오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아니라 울 아주머님을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장연희 아주머님은 늘 가방에 천 바구니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십니다. 모두 울 아주머님이 버려진 옷감들을 모아서 직접 제작한 천 바구니들이지요. 비닐봉지 쓰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나누어주신 천 바구니 숫자만 아마도 지금까지 만개가 넘을 것입니다. 때로는 울 아주머님은 정성껏 만든 천 바구니를 각종 행사나 집회장에서 팔아서 어렵게 활동하는 시민단체를 돕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다들 ‘천 바구니가 너무 예쁘고 참 실용적’이라고 한마디씩 하곤 합니다. 울 아주머님과 함께 비닐봉지 안 쓰기 제대로 실천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할인마트는 천 바구니를 가지고 가면 50원을 할인해주기도 하잖아요. 천 바구니를 애용하고 있던 저에게 울 아주머님은 어느 날은 떠먹는 요구르트 케이스를 깨끗이 씻어 만든 ‘컵’을 주셨습니다. 당연히 그 컵은 이제 종이컵의 자리를 대신해 제가 애용하게 되었지요. 종이컵이 얼마나 많은 산림을 파괴하고 있겠느냐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직도 여러분 주변 곳곳에 종이컵을 쓰고 계시죠? 종이컵과의 결별, 분명 불편하겠지만 아마 ‘아름다운 이별’이 될 것입니다. 저도 한때 모 대학에서 ‘종이컵 안 쓰고 자기 컵 쓰기 운동본부’ 실무를 맡았던 생각이 납니다. 대학 내 50여 대의 자판기에서부터 종이컵 대신 자기 컵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으로 실제로 종이컵이 자판기에서 아예 안 나오고 자기 컵을 사용하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모든 학생들에게 예쁜 쇠 컵을 나누어 드렸었지요) 그러나 갈수록 그것이 불편하니까, 처음엔 호응했던 학생들도 ‘종이컵을 부활해 달라’는 요구를 거세게 하더군요. 결국 전 ‘에코(eco) 파시스트’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지요. 그러다 결국 10여 달 만에 종이컵이 부활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날 전 펑펑 울고야 말았답니다. 생활을 바꾸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이의 생활을 바꾸기 위해선 더 지난한 노력과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울 아주머님께서는 그것을 지금 3십여 년째 묵묵히 해내고 계시는 것이죠.   직접 만드신 노끈 이쑤시개와 예쁜 천 바구니를 들고 장연희 아주머님과 필자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 정기연  ‘참여연대’에서 자원 활동 하시는 울 아주머님께서는 참여연대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 바구니를 드리고, 깨끗이 씻어 만든 재활용 컵 등을 드립니다. 아마도 그 중에 사람들이 제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노끈을 잘라 만든 ‘이쑤시개’일 것입니다. 제가 사용해보니 참 좋기는 하였습니다만, 어쩐지 노끈이라고 하니 좀 망설여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울 아주머님은 나무를 잘라 만든 이쑤시개를 쓰느니 노끈을 깨끗이 씻은 이쑤시개를 쓰는 게 옳다고 정성껏 설명해주십니다. 지금도 참여연대 입구 안내데스크에는 울 아주머님이 갖다 놓은 노끈 이쑤시개 수십여 개가 사용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은 노순택 작가의 평택 대추리 사진전에서 만난 국무총리실 관계자를 붙들어 놓고 ‘왜 이렇게 정부 영역의 관용차는 (초)대형이냐’며 집요하게 설득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주변에 아는 사람 몇몇이 차관급 공무원이 되었는데, ‘전용차량이 에쿠스로 바뀌었다’며 이럴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해찬 전 총리 부부를 우연히 만났을 때도 한바탕 ‘교양’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발 공공영역에서부터 작은 차를 타자는 울 아주머님의 외침은 지금 사회적 캠페인으로 발전했습니다. 현재 <희망제작소>가 <오마이뉴스>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는 캠페인은 바로 울 아주머님의 제보와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컴퓨터를 사용 못 하신다’면서 16절지에 깨알 같은 글씨를 적어 오셨습니다. ‘김칫국물도 그냥 버리지 마라’는 제목이었는데요. 그 종이에는 “김칫국물이 몸에 좋기도 하고, 그냥 버리면 수질오염도 되니까 절대 그냥 버리지 말고 비벼먹거나 국을 끓일 때, 또 돼지고기 양념할 때 써라”는 호소를 담고 있었습니다. 오호! 울 아주머님은 도대체 아무것도 그냥 버리는 게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동아일보 해직기자의 아내로 모질게 세상을 살면서도 민주화투쟁과 언론개혁을 위해 항상 남편과 함께 투쟁해 오신 울 아주머님. 어떤 이들의 실천은 안타깝게도 민주화에서 그친 반면 울 아주머님의 실천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친환경적으로, 순환적으로 바꾸고 공익단체에서 자원 활동을 즐겨 하시며, 주변에 끊임없이 이를 알려나가고 전파하는 울 아주머님의 실천. 너무나 희망차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으세요? 겨울에는 버려진 솜들을 엮어 만든 귀마개를 하고 다니시는 아주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 웃음과 기쁨을 여러분께 그대로 전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 추신 : 아, 참 노끈 이쑤시개와 예쁜 천 바구니를 보고싶거나 필요하신 분은 <희망제작소> http://makehope.org로 오십시오. 항상 비치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70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