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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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개미’보다 못한 ‘인간’ -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장윤미/ 국민대 학생 얼마 전, 자유권 중 집회시위의 자유 제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 지라, 국가의 자의적인 법조문 해석과 공권력 남용에 대한 불만부터 시작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정말 있느냐 하는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로도 이어졌다. 그렇게 집회시위의 자유의 취약점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는 사이, 무수하게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던 생각은 좀 더 원론적인 문제였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국가와 싸울 것이 아니라 민중들을 감응시키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하는 거였다. 공권력이 집회시위를 막는 방향으로 행사될 수 있는 것도 그들을 못마땅해 하는 서민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회나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교통이 통제돼서 짜증나고, 불쌍한 전·의경들 괴롭혀서 나쁘고, 때로는 할 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 취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감응하지 못하는 사회 한미 FTA 체결이 서민들의 삶에 초래할 위협을 선전하는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주의 깊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서민들을 귀 기울이게 하는 시위가 되지 못하는 지도) 그런데 하물며 생존을 위해 메마른 거리로 나온 장애인들의 시위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농민들이, 재개발로 쫓겨난 철거민들의 목소리가 들릴까. 나는 가끔 주위 대학교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한미 FTA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잘 모른다.”가 대다수다. 이보다 더 중요한 대답은 “물론 농민들이나 몇몇 집단이 피해를 보겠지만 대세가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어쨌든 경제적으로 혜택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들 말이 맞고 틀렸고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대체 왜 우리들은 소수자의 아픔에 감응하지 못할까 하는 거다. 이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이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우리는 왜 단 한 명의 아픔에 같이 울어주지 못하는가. 그 한 명의 아픔을 위해 다 같이 한 걸음 늦춰 보조를 맞춰줄 수는 없는 걸까.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보면 흥미 있는 구절이 있다. 한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 개미도 이러할진대 인간들은 왜 이리 무정한가.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생각. 그렇다면 소수자를 배제한 다수를 위한 사회, 그 다수를 위한 사회 속에서 또 양산될 소수자, 그리고 다시 소수자를 배제한 다수를 위한 사회. 이러한 연산 과정의 사회 속에서 결국은 누가 남을 것이고 그건 무엇을 위한 사회일까. 집단적 고독으로 달려가는 ‘편도티켓’ 아닐지 누군가 ‘우리 모두는 소수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언제나 잠재적 소수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를 버스 속에서 그냥 얌전히 실려 간다. 그렇게 얼기설기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들은 결국 집단적으로 고독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첫걸음으로, 고통 받는 소수자들에게 감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멀기만 하다. 어쩌면 난 그저 한때 타오를 뿐인 젊음의 열정으로 사회의 변화만을 꿈꾸는, 현실의 대세에 감응하지 못하는 젊은이일 뿐일지도 모른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16 | 추천: 0
강유미/ 수색초등학교 교사 인생에서 간혹 마주치는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발견할 때이다. 가슴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머리 속을 명료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머리 속을 텅 비게 만들어 버리면서 심장 근처가 아프도록 물결치며 떨려오는 영화도 있다. 물론 영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판타지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오거나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5공화국 시절 우민화 정책인 3S(Screen, Sports, Sex)의 하나이기도 했을 만큼 사람들에게 엄혹한 현실을 잊게 하는 자기 위안의 탈출구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과 삶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영화를 보거나 감독이 던져주는 여러 색깔의 갖가지 시선을 따라가며 공감하다 보면 때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삶의 향기가 순간적이나마 달라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영화 ‘말아톤’을 보고 나면 막 세수를 마친 사랑스런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말갛게 갠 자신의 영혼과 마주치게 된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영화의 제목은 얼룩말을 좋아하는 주인공 초원이 그림일기의 ‘내일의 할일’란에 마라톤을 말아톤이라고 쓴 것에서 따 온 것이다. 영화 말아톤은 스물 살 청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표현이나 조절이 어려운 자폐아, 초원의 이야기이다. 이제까지의 영화나 다른 예술 작품은 신체적 또는 정서적 장애인을 다룰 때에 주인공이 지닌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이겨내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거나,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장애인의 이야기지만 시선은 철저히 ‘일반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영화 말아톤의 시점은 그 반대이다. 정윤철 감독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닫아버린 아이’인 자폐아에 비해 정상적으로 말하고 표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숱한 기만과 허위를 만들어내고 그 관계 속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진 출처 - 영화 '말아톤' 홈페이지   경기장의 치어걸들을 보고 단상 위로 올라가 같이 춤을 추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실례가 될 말도 서슴없이 해버리는 초원이가 감정 표현에 장애가 있다는 말은 오히려 어폐가 있어 보인다. 정윤철 감독의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까닭은 초원이 이 세상 사람과 교감하는 방식이 소위 어른들로 불리는 일반인의 그것과 다만 ‘다른 것’ 뿐이라는 ‘차이’를 드러낸다는데 있다. 극 중 초원이가 낮게 읊조리는 대사처럼 “얼룩말은 다른 말들과 내구력에 차이가 있어 가축으로 길들이지 못한 것”이다. 영화 말아톤은 ‘그들에게는 우리와 다르지만 분명 자신만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소통하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은 동일한 것이 아닌 다른 것 간에 이루어질 때 더욱 설레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초원의 엄마인 경숙은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비정상아로 손가락질 받던 아들이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정상적으로, 아니 비장애아들보다 더욱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라톤 완주의 꿈을 키웠지만 그 꿈은 초원이 아닌 자신의 위안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소통은 세계선수권 대회를 제패하고도 마라톤을 포기한 코치 정욱이 마침내 초원을 이해하게 될 때에도 생겨난다. 정상적이지만 오히려 꿈을 잃고 방황하는 정욱의 손을 끌어 초원은 자신의 벅찬 심장 박동의 리듬을 들려준다. 감전되듯이 얼어붙은 정욱은 그 순간 그토록 사랑했던 달리기 그 자체와 꿈을 위해 달렸던 자신의 열정을 기억해낸다. 초원 또한 “비 오는 날이 뛰기에는 더 좋지!”라고 기분 좋게 소리치는 정욱에게 굳게 닫혔던 가슴의 문을 서서히 열어간다. 초원에게 정욱은 코치이자, 아버지이자, 같은 꿈을 가슴에 품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다분히 정윤철 감독의 바램처럼 보이는 이 소중한 소통의 순간들은 초원이 마라톤을 거의 완주하는 장면에도 들어있다. 이글거리던 트랙은 갑자기 초원이 늘 다니던 길과 마트와 전철 안으로 변하고, 오해 때문에 초원을 때렸던 청년들까지 한마음으로 초원을 응원한다.   초원은 정욱의 손을 끌어 자신의 벅찬 심장 박동의 리듬을 들려준다. 사진 출처 - 영화 '말아톤' 홈페이지   드넓은 평원 위에 한 마리의 얼룩말이 뛰놀고 그 뒤를 무한한 자유와 함께 뛰어가는 초원의 모습은 환상처럼 표현되고 초현실적이거나 마술주의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역설적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말아톤의 매력은 달리기를 닮은 리드미컬한 영상의 흐름과 음악, 정교한 카메라 워킹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나비’, ‘밀애’를 찍은 권혁준 촬영 감독은 초원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과 바람과 나무의 숨결까지 잡아냈고, 김준성 음악 감독은 초원의 심장처럼 벅차오르는 감동을 따스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에 녹여낸다. 정욱과 초원의 교감을 표현한 ‘뛰는 가슴’, ‘대지를 적시는 비’를 비롯한 O.S.T는 대단히 아름답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 말아톤을 생동감 있게 뛰어오르게 한 원동력은 억척스러우면서도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연기한 김미숙과 그녀의 아들 역을 맡은 조승우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충무로에서 일찌감치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그는“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계산된 연기를 해나갔지만 나중에는 그냥 다섯 살짜리 어린애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별로 변화가 없는 초원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수백 가지 인상과 감성을 창조해낸 배우, 조승우의 ‘타고난 감각과 신들린 몸의 연기’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932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지난 보름 동안,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한미FTA라는 거대한 녀석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이부자리까지 하였다. 물론 여전히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도 있긴 했으나, 어느 언론사에서 제3의 개항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한국사회는 거대한 한미FTA 파도에 크게 휩쓸려 왔고, 앞으로는 더욱 더 크게 휩쓸려 갈 전망이다. 필자가 한미FTA 타결 이전에 타결 반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부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것이지만, 작년에 비해 많은 이들이 한미FTA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주요한 의제로서 자리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권은 국민, 국회의 의사 수렴 과정을 배제한 채 결국 졸속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지난 2일, 한미FTA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정말 극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협상 기한이 연장되었고, 한 국가의 경제활동에 매우 큰 영향력을 펼치는 협상이 마치 시청률이 낮은 어느 한 드라마가 연속적 흐름도 없이 갑작스럽게 마감하듯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세계 최대 경제 강국과의 자유협정을 맺었다며 기뻐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독소조항 등 우리에게 불리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망국적 결과라고도 외치고 있다. 현재 한미FTA 타결 이후 곳곳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고, 향후 비준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더불어 정치, 경제, 시민사회, 학계 등의 다양한 입장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는 미국이 개성공단 등 여러 북한지역 상품을 과연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가져보면서 글을 써내려 가보고자 한다. 지난 2일 오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먼저, 이와 관련된 한미FTA 내용을 살펴보자.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에서 일정 기준 하에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ing Zone : OPZ)을 지정하고, 개성공단 등 여타 북한지역의 제품을 한국산과 동일한 특혜관세를 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일정 기준이라 하면 한반도 비핵화 진전, 역외가공지역 지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역외가공지역내 일반적인 환경 기준, 근로 기준·관행, 임금, 경영·관리 관행 등을 언급하고 있다.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살펴보면 한미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 협정 발효 후 1년 후 개최하고, OPZ 지리적 구역 지정, OPZ 지정기준의 충족여부의 판정, OPZ 생산품이 특혜관세를 받기 위한 요건 마련, OPZ 총 투입가치의 비율을 조정하는 기능을 할 예정이다. 하나 덧붙여 설명하자면 역외가공지역이라 하면 한 당사국에서 원자재(부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3국으로 수출하여 추가공정을 거친 후, 가공물품들을 당사국으로 재수입하는 생산방식을 역외가공이라 하며, 이 역외가공을 인정받은 지역을 말한다. 그럼, 과연 북한지역 상품이 미국으로부터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위한 일정한 기준 내용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비핵화 진전과 관련, 지난 2002년부터 부시 정권은 북한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면서 인권, 마약, 위조지폐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더욱더 북한을 고립화 시켜왔던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근로에 관련된 환경, 임금, 관리 등의 기준 관련, ILO 기준 등을 의미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현실적인 북한체제가 이러한 것들을 미국의 요구대로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바,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위한 일정한 기준 내용은 매우 큰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둘째, 미국은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을 정치적으로도 접근할 것이다. 즉 지금처럼 계속하여 경제봉쇄정책을 펼칠 것이며, 적성국 교역금지법을 적용할 것이다. 어느 한 방송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한 대학교 통상대학원장조차도 미국은 개성공단 등 북한의 외화량 증가를 안보 측면에서 경계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의 실현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했다. 결국 이것은 한미FTA의 경제적 측면을 벗어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질서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미국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성명 이행을 깨뜨린 미국의 행동을 경험해 봤다. 셋째, 역외가공지역 상품의 한국산 인정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작년부터 총 여덟 차례의 실무협상 및 한 차례의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었는데, 실제로 미국 측은 여덟 차례의 협상까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단지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역외가공지역’이라는 개념을 영화의 까메오와 같이 깜짝 등장시켰을 뿐이다. 또한 현재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정부 발표를 살펴보면 협정 합의문에 ‘개성공단’이 정식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성공단내 '좋은사람들' 공장에서 북측 여성 노동자들이 남녀 속옷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과 미국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입장이 너무 다르다. 미국 입장은 이번 협정은 개성에서 생산된 제품을 포함하지 않으며, 협정에서 개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통일부에서 4월 10일에 발표한 개성공단 관련 공식입장을 살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자면 “미국 측 일부 인사들이 한미FTA 협정문상 개성공단제품에 대해 특례원산지를 인정한다는 명시적 문구가 없음을 이유로 소극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아래에 “미국 측도 역외가공지역이 개성공단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함.”이라고 안타깝게도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이제 한미FTA 발효까지는 국회 비준까지의 중요한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벌써부터 많은 곳에서 사회적 갈등,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픈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내용들이 제대로 밝혀지고, 그리고 그 내용들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입장이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는 사회적 조정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하루 빨리 협정문을 공개하고, 그 협정문과 관련된 이면합의, 장외협상 등의 내용들을 샅샅이 밝혀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회, 시민사회, 학계, 재계 등 다양한 진영에서도 한미FTA 발효로 가져오는 한국사회의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비준을 저지시키기 위한 행동, 목소리를 내야만 할 것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아전인수(我田引水) 등 어렸을 때 배웠던 한자 숙어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나 혼자 만의 생각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벌써 많은 곳에서 이번 한미FTA 협정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고, 그 속에 숨어있는 독소조항 등의 이면합의를 우려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정부의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언급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정부의 꿈은 결국 ‘동상이몽’격으로 끝나지 않을까.
2017-07-11 | hrights | 조회: 511 | 추천: 0
농협운영 ‘대충 대충’ 안 된다 조합원들의 정당한 요구도 묵살하는 농협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농촌은 60~70대 노인들의 마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들어오면 이일 저일 맡게 되는데 올해 내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동네사람으로 조금은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마을 지도자(새마을 운동이 아직도 진행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와 농협 대의원(우리 마을은 2명 배정)이 그것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마을 회의에서 하라고 하니 ‘예’ 하고 맡을 수밖에 없었다. 2주전인가 흥겨운 노랫소리에 이어 이장님의 방송목소리가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오늘 마을 진입로에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그러니만큼(우리 이장님 꼭 쓰시는 말씀) 아침밥을 일~찍 잡숫고 삽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동네 부역이 잡힌 것이다. ‘갑자기 웬 사과나무?’라고 생각하면서 삽을 들고 나갔다. 사정을 들어보니 동네 아저씨들(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 몇 분이 마을회관에서 농담을 나누시다가 마을 진입로가 너무 썰렁하니 사과나무를 심으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그날로 충주로 가서 사과나무를 사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재미있고 어찌 보면 황당하기도 한 사건이다. 농촌에는 도시나 사회의 조직과는 다른 의사결정 구조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성문법 보다는 불문법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을에도 공식적인 구조가 있긴 하다. 이장과 반장(3인), 새마을 지도자, 개발위원(2인) 등 긴급하거나 작은 일들은 이들이 모여 논의하고 마을의 큰일은 주민 전체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러나 사과나무 사건처럼 동네 유지(?)분들의 사랑방 의견은 절대적이다. 농담으로 심어진 사과나무 사과나무 몇 그루 심는데 동네 회의를 통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정도는 시골에 살면서 재미있는 얘기꺼리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농협이라는 거대 금융조직에서 그런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농협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깊숙이 알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농협 대의원이 되면서부터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농협 대의원이 된 것은 마을 전체 회의를 통해서였다. 2년 임기가 끝나는 우리 마을 대의원이셨던 어른 두 분이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게 좋겠다며 나와 먼저 귀농한 형님을 추천하셨고 동네 분들의 만장일치로 당선(?)되어 대의원을 하게 된 것이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사진 출처 - 한국경제   그런데 그 마을회의가 있고 다음날부터 조합장, 전무, 지소장, 이사 등 무지 바쁘실 분들이 우리 이장님께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용인즉슨 “왜 젊은 사람들을 시켰냐?”, “젊은 사람들이 농협 발전에 저해가 되는데 지금이라도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등의 내용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옆 동네에서는 자체 선관위원 입회하에 조합원 투표까지 했을 정도로 엄연히 ‘작은 선거’다. 그러니 조합장 등의 이런 행위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다. 우리 조합원 손으로 뽑힌 조합장이 일개 마을 대의원 선출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옆 동네에서 2년간 대의원을 하셨던 형님은 대의원 총회에서 예산안 등 문제제기를 몇 번 하자 농협 측에서 사전작업(?)을 해 이번에 대의원에서 떨어지셨다고도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머지않아 조합장 선거가 있다고 했다. 조합장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은 자기편이 아니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농협의 부실과 존폐위기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일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농협 운영도 사과나무 심듯이? 또 한 번은 조금 먼 옆 동네 형님이 전화를 하셔서 농협본소로 나오라기에 부랴부랴 달려갔다. 지난해 대의원 총회 때 예·결산이 공식적으로 통과되지 않고 일방적 날치기로 통과되었기에 농림부에 질의하였더니 관계 자료를 농협에 요구하여 보내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조합 정관에 대의원 3%의 요구가 있을 때는 자료공개 요청을 ‘접수’할 수 있었기에 자료요청서에 동의하고 사인을 했다. 총무부에 접수를 하려고 들어갔더니 조합장은 접수를 받을 수 없다 한다. 이유는 없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자료를 주고 안주고는 다음 문제니 접수라도 받아 달라고 해도 안 된단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그 형님 얘기가 조합 정관을 보자고 해도 안 보여 준단다. 역시 이유는 없다. 조합원이, 대의원이 자기 조직의 정관도 볼 수 없다? 세상에 이런 조직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문제제기를 할 만한 우리가 대의원이 되는 것을 막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조합장은 농협을 작은 마을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마을에서 사과나무 심듯이 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농민들의 피와 땀의 대가가 농협 대출이자 갚고 조합장 등 몇 분의 1억에 가까운 월급을 채우는데 쓰이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땅을 일구고 땀의 가치를 느끼며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자 했던 귀농의 꿈이 조금씩 뒤로 미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78 | 추천: 0
"이건 협상도 아니고 국민들을 위한 것도 아녀" - 개그콘서트의 <같기도>판 한미 FTA 김지연/ 방송 작가 지난해 2월, 정부가 느닷없이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나선지 어느덧 1년. 두 나라가 어영부영 몇 차례인가 만나더니 벌써 협상 막바지란다. 다음 주 서울에서의 끝장 협상을 마지막으로 끝내겠단다. 결국 미국 무역촉진권한 종료시점에 맞춰, 당초 미국이 원하던 대로 타결해주겠다는 뜻이다. 물론 뼈를 포함한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 압력을 포함한 농업부터, 자동차, 섬유, 의약품, 무역구제까지, 쟁점 현안은 여전히 그대로고 우리가 얻은 것은 없다. 군자금 유용 의혹 등 북핵 현안에 밀려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는 단 한번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미국에 우리 입장을 전달했고, 계속 견지해가겠다는 협상단의 설명은 하나마나한 말이다. 이익이 되면 체결하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체결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낮은 수준의 합의 언급도 애시 당초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협상 자체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서 출발됐음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메이플라워호텔에서 19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고위급 협상에서 각국 대표가 무역구제 등 핵심쟁점 협상에 들어가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와중에 방송시장 개방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더니 CNN이 한국어 방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떠돈다. 아니 떠도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기정사실화 돼가는 분위기다. 한미 FTA 반대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 타임워너사 파슨스 회장 입에서 나온 소리다. 정황상 노무현 대통령과 교감 없이 할 수 없는 소리고, 그렇다면 실무차원의 협상 단계도 이미 넘어 문제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농업, 자동차, 섬유, 무엇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지만, 방송은 또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국 뉴스를 한국어로 듣는다...일각에선 글로벌 시대에 이미 안방에 들어온 CNN뉴스를 사람들이 보다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막상 너무나 일상화돼있어서 눈치 채기 어려운 TV라는 매체의 여론형성력, 영향력, 활용가치까지 따져 본다면 그 파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굳이 CNN이 <타임>, <포춘>, <라이프>, <피플> <워너브라더스>, <카툰 네트워크>, 등, 출판은 물론 영화, 인터넷, 케이블, 방송 분야에 총 60개 계열사를 둔 막강한 복합미디어 재벌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또 CNN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 역시 모르는 척 덮어둔다 하더라도, CNN을 앞세운 미국이, 미국 자본을 기반으로 만든 미국 뉴스를, 한국 정부의 너무도 친절한 인도 속에 한국의 안방까지 가지고 들어와 노리는 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전, 정책, 가치관 확산일 것이 분명하다. 이는 비단 우리가 그저 일상적인 TV보기 안에서 그 같은 미국의 가치를 별다른 여과 장치 없이 받아들이고 단순히 광고료만 낸다는 의미를 넘어 미국의 정치적 입장, 미국의 경제 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더한 것이다. CNN의 한국어 방송은 미국의 정치적 입장, 미국의 경제 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문득 푸줏간 앞의 개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푸줏간 주인에 대한 공포와 고기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전진할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는 개 한 마리. 그리고 니체의 이 말을 접하고 ‘욕망은 용기를 통해 자유를 얻고 용기는 욕망을 통해 풍요를 얻는다’라는 주석을 스스로 붙였다는 한국의 한 젊은 인문학자의 말도 떠오른다. 욕망을 접거나 용기를 내거나 할 수 없다면, FTA고 뭐고 지금이라도 모두 그만둬야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다시는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또렷한 이정표를 세워둬야 할 일이다. 한미 FTA,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협상도 아니고, 국민과 국익을 위한 것도 아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02 | 추천: 0
우와 기쁜 소식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 안국동 5거리 육교를 추억하며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팀장 국회가 아무 일도 안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라도(표를 의식해서라도) 좋은 일을 하나 봅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뜻으로 좋은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온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온정한’ 평가를 하는 게 맞겠지요. (좋은 법을 많이 만들어 사회통합을 제고하는 것이 ‘인간해방’이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최근 들은 소식 중에 ‘북-미 대화의 훈풍’과 함께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드디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것이죠.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시작이 반이겠죠. 참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관련 단체들이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다 해도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고통과 차별, 편견의 벽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법 시행과 함께 더 많은 분야에서, 더 세심하게 싸우고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최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가 제기한 ‘시각장애인들의 지폐 식별에 있어서의 고통’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20여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은 생활의 기초가 되는 돈 문제로(지폐 식별이 잘 안 되서) 고통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싸우고 개선해 나가야할 일들이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것이 우리 장애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암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장애를 이유로 한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서비스제공 및 참정권 행사, 가정·복지시설 및 건강권 등 여러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직·간접 차별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그 조직 및 업무, 권리구제 등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토록 하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 와중에 그 예전, 안국동 5거리에 있었던 육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안국동 5거리(광화문-대학로-종각-풍문여고-인사동 방향)에는 육교가 있었거든요. 참여연대 건물이 있는 안국빌딩 앞길과 종로경찰서 앞길을 잇는 육교였지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앞에는 장애인들이 다닐 수 없는 육교가 있다? 안국동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안국동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육교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함이 많았습니다. 이 육교가 아니면 안국역 지하도 외에는 건널 방법이 없기도 했고요. 육교에서 광화문 쪽으로는 횡단보도는커녕 육교도 없었던 ‘비인간적’인 시절이었지요. 이 문제는 인권 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도 잠깐 나오기도 합니다.(광화문 대로를 휠체어로 건너는 장애인 장면) 지금은 없어진 이 육교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육교 바로 앞의 안국빌딩 구관(舊館)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과 관련한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었음에도 장애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barrier)’인 육교가 10년도 더 넘게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당국은 육교를 없앨 고민은 못할망정 ‘예술’을 위한다는 이유로 육교에 호피 모양의 장식품을 두르는 데 큰돈을 쓰기도 했었죠.(‘호피 퍼포먼스’ 예술 그 자체는 참 좋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육교 앞에서 차마 건너갈 엄두를 못 내고 돌아서야 했던 장애인들의 절망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가슴이 저밉니다. 그 육교는 한 출판사의 청원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2001년께 철거됐습니다. 안국빌딩 구관에 입주해 있던 <열린지평>은 장애인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곳으로, ‘비장애인들의 보행권 차원에서도,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 차원에서도 육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고, 결국 이를 행정당국이 받아들여 육교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너무 쉽고도 당연한 일을 왜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내지 못했을까... 그런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앞에 장애인들은 다닐 수 없는 육교가 있다?’ 여기에 대한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의문을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또는 의문을 가졌다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이처럼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많은 이들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동시대인의 고통과 절망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회변화의 에너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과 애정이 사회의 개인적·집단적 희망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안국동 5거리 육교와 같은 ‘장벽’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일은 어쩌면 이런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기뻐합니다. 앞으로 저도 장애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더 많이 싸우고, 개선해나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육교를 없애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계간 <열린지평>2001년 겨울호 표지입니다. 육교가 없어진 곳에 설치된 횡단보도를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기쁘게 건너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출처 - 필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518 | 추천: 0
철창에 갇힌 교사들을 석방하라 - 공안기관의 시대착오적 탄압일 뿐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지난 1월 25일, 난 겨울방학 교사 자율연수에 참여를 했다. 이 연수는 학교 교사들이 모여 통일교육 행사 실태 및 교육 개정안 내용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필자는 교사들과 인사도 나누고, 학교 통일교육과 관련한 여러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일부 교사들이 강의실을 떠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띠었다. 그날 오후에 진행되는 구속교사 석방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석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며칠 전까지 함께 학교 교육을 얘기하던 동료 교사가 구치소에서 구속수사를 받고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구속교사 석방 촉구? 8, 90년대에나 있을 법한 얘기가 다시 흘러나온다. 광장의 힘으로, 촛불의 승리로 평가받던 노무현 정권, 바로 이 참여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정권 초기부터 이 참여정부에는 광장의 힘, 촛불의 승리의 거대한 파도를 감싸 안아줄 넓은 바다조차 없었을 수도 있겠다. 한 쪽에선 장관급 회담, 한 쪽에선 구속 수사 이 글을 읽는 지금 평양에서는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리고 있다. 지난 6자회담의 2․13 조치 이행, 미사일 문제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의 회복을 위해 담당 책임자들이 악수를 하고,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군포의 한 구치소에는 현직 교사 2명이 장관급 회담의 화사함과는 대조적으로 철창 안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1월 18일에 체포 연행된 이후, 보안분실을 거쳐 구치소 수감까지 벌써 42일이 지났다. 그럼 왜 이렇게 현직 교사들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동안 공안당국과 보수언론은 전교조를 이적 용공단체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들을 기울여 왔다.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활동, 임실 지역 중학교 통일 등반행사 등에 용공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러나 트집 잡을 만한 것이 없다보니 결과적으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되었었다. 하지만 승냥이는 먹잇감(?)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대로 물러설 그들이 아니었다. 지난 1월 12일, 서울지방검찰청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두 현직 교사 가택에 들어가 압수수색의 이유를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고, 컴퓨터는 물론, 개인 문서. CD 등을 모두 압수해 갔다. 그 두 교사는 2005년과 2006년 전교조 서울지부 통일위원장이었던 김 교사, 그리고 2004년 통일위원장이었던 최 교사였다. 더불어 같은 날 수사기관은 학생신상자료가 들어있는 학교 업무용 컴퓨터까지 빼앗아가 버렸다. 이후 두 교사들은 1월 22일에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경찰에 밝혔고, 경찰 측에서도 동의하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도 1월 18일 오전에 두 교사는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어 장안동 보안분실에 끌려갔고, 20일 구속 영장이 발부되어 현재 군포 지역의 구치소에서 계속하여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공안당국의 발표 내용은 이렇다. 두 교사가 전교조 게시판에 선군정치 승리 포스터를 게재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했으며,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불온서적을 읽고 인터넷에 인용했기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외쳐댄다. 보수언론도 맞장구를 치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공안당국의 행위는 내용이나 과정에서 모두 부당하며, 전교조 길들이기를 위한 시대착오적인 탄압이라 밖에 할 수 없다. 왼쪽 - 조선일보(Nkchosun.com)와 시사조선에 실려있는 선군정치 사진 오른쪽 - 전교조 서울지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군정치 관련 포스터. 왼쪽 - 교육부 평화학교(http://tongil.moe.go.kr)에 있는 북한 사진들 오른쪽 - 서울교육청 발행 통일교육 지도자료 '북한사회의 이해'에 실린 사진 일부. 국가보안법,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첫째, 범죄사실이 전혀 성립되지 못한다.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 중 선군정치 관련 포스터 한 장이 국가 질서를 위태롭게 했다고 볼 수 없으며, 더불어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는 것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이것이 위법 행위라면 이보다 더 많은 내용의 선군정치 사진을 게재한 통일부, 교육인적자원부, 보수언론 등의 담당자도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일 것이다. 둘째, 현직 교사들에 대한 구속수사 과정이 부당하다. 일정한 주거지가 있고, 이미 자료 등을 모두 압수당했으므로 증거를 인멸할 염려도 없고, 경찰에 협조를 했고, 자진출두 약속까지 하였으므로 도주 염려까지 없는 상황이므로 구속의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엄청난 액수의 주가 조작을 한 기업인도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상황에서 현직 교사들은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셋째, 수사기관이 구속 과정상 불법 행위들을 자행했다. 헌법과 형법에 엄연히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것이 존재함에도 수사과정에서 근거 없는 허위사실까지도 누설하였고, 피의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명예 또한 훼손하였다. 더불어 개인동의나 영장 없이 개인 정보 검색, 도청 의혹 등 사생활 침해에 의한 기본권이 박탈당함으로써 헌법, 통신비밀보호법, 형사소송법 등을 위반하였다. 교사가 교육과 관련된 내용의 자료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를 통해 보다 분석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그런데 이 땅의 공안당국과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교사의 당연한 몫에 6․15 시대를 역행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을 아직도 마구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건설해 놓은 ‘살기 좋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해치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수갑을, 그리고 펜끝을 매섭게 휘두르고 있다. 아니 겉으로는 애국자인척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쓸지 몰라도, 사실은 오랫동안 축적해 놓은 그들의 밥그릇을 절대 놓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밥그릇이 깨질 위기일수록 그들은 국보법 위반자를 마구 만들어내 미치도록 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이들의 그 대단한 활약상(?)이 국보법 폐지와 함께 곧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폐탄광촌의 막장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어두운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미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데, 과거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의 후신인 국가보안법이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 지금도 구치소 안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두 교사들이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교단에 설 수 있길 바란다. 이상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국가보안법 위반자 수백만 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이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84 | 추천: 0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어느 일요일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면사무소인데요.” 우리 딸내미 유치원 보육료 지원과 관련한 면사무소 공무원의 안내 전화였다. 일요일 날 어쩐 일이냐고 하니 “새로운 업무인데 머리가 나쁘니까 일요일이라도 나와야지요.” 한다. 흐뭇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시골로 내려오고 나서 시골사람들 빼고 가장 절친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농협직원, 면사무소 공무원, 시 기술센타 공무원들이다. 내가 시골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데 공무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파트너였다. 모든 행정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은 공무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공무원 한사람이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시골사람들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나 공무원들과 일을 하다보면 좋은 소리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은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기다리고 점심식사 끝나면 퇴근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야”라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공무원은 농사꾼의 중요한 파트너 옆 동네 한 젊은 친구가 귀농을 하면서 1년 전 ‘창업농 후계자’라는 것을 신청했다. 젊은 농부 육성이라는 농림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이고 신청자도 많지 않기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신청자 대부분이 선정된다. 그런데 얼마 전 선정 결과를 확인해보니 1년 전에 제출한 서류가 면에서 누락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면에서 시로, 시에서 농림부로 올라가 1년 동안의 서류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이 후계자 서류가 면에서 썩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해보니 담당 공무원이 1년 동안 세 번 바뀌는 과정에서 업무 인수인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 답답한 건 따지고 싸우고 해서 공무원 한사람 징계 받게 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이 동네에서는 공무원들에게 찍혀 생활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거다. 춘천의 환경농업을 하는 농가들이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대하기조차 싫어하는 공무원이 한명 있다. 농민들이 모이면 이 사람 얘기가 단골로 등장한다. 춘천의 환경농업 일을 맡아 처리하는 직책이기에 환경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누구나 1년에 몇 번 씩은 마주쳐야 하는 공무원이다. 그러나 ‘벽창호’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감인지 줏대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고집으로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아무리 얘기하고 설득하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싸우기도 해보고 좋게 얘기도 해 보지만 여전히 자기 멋대로다. 그 멋대로인 고집이 농민들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있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내가 보기에는 농민과 농촌의 사정은 둘째고 행정의 편리함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여 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를 잘 모르지만 행정이나 정책이나 그 혜택을 받는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실천되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과중한 업무 탓인지 기분 좋은 행정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림 출처 - 부산일보   진정성을 가진 공무원을 기대한다 농촌의 농민들을 공무원이나 농협직원들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공무원도 노조가 있고 농협 직원들도 노조가 있으니 ‘노동자 공무원, 사장 농부’는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장들이 노동자의 펜 끝에 의해 좌지우지 되니 살기 좋은 세상인가? 어느 한 개인을 비난하자는 것도 노동조합을 비판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공무원들이 그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들의 편에 서서 이 사회를 든든히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일뿐이다. 계속되는 경제난 속에서 공무원은 안전한 직업 1순위로 꼽힌다. 공무원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단순히 시간만 때워도 짤리지 않는다는 철밥통 직업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아니라 일요일 날 전화 한통 걸어주는 공무원, 시골의 이름도 없는 농부와도 진지하게 토론하는 농림부의 사무관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29 | 추천: 0
김지연/ 방송 작가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시작되면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이 대목을 맞았다.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들의 난타전부터 정계개편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파열음, 탈당행렬까지 특히 정치권이 연일 쏟아내는 새로운 소식들은 매일 매일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것으로 방송을 채워내야만 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이 더 이상 아이템 기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언론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아진(?) 탓일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오면서 시사 전문채널도 생겼고,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굵직한 시사프로그램만도 10개가 넘게 각자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그래서 청취자들이 이런 환경을 반가워하고 있는지, 다양한 현안과 정보를 제공해줘서 청취자들의 각종 정치적 판단, 혹은 먹고 사는 문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로선 회의적이다. 택시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하다보면 왜 이렇게 하루 종일 골치 아픈 얘기만 해대냐고 불평 하는 분들을 접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되살아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존재감 아무튼 분명한 건 시사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서 제작하는 사람들의 여건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노동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질적 정신적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현안을 어떤 방식으로 분석하고 다룰 것인지, 사회적 아젠다 세팅을 위해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할 것들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그렇게 여유부리다가는 여타 다른 방송들에게 베스트 인터뷰이를 빼앗기고, 뉴스 생산할 기회도 박탈당한다. 진지한 기획보다 재빠른 선점이 중요하고, 전화기 숫자버튼을 누가 더 빨리 눌러 원하는 인물에게서 인터뷰 약속을 받아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지금은 무소속인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이 여당 내에서 처음으로 탈당을 시사했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염동연 의원을 향해 레이더를 뻗친다. 첫 번째 인터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쟁, 아니 전쟁인 셈이다. (사실, 청취자들에게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MBC‘손석희의 시선집중’, SBS‘김신명숙의 SBS 전망대’, KBS‘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CBS‘뉴스레이더’(왼쪽부터) 사진 출처 - 뉴스메이커 요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의 관심은 단연 ‘뉴스 생산’이다. 대개 라디오 TV 할 것 없이 방송들은 신문 기사를 재가공해 생산해내는 2차 생산물들이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엔 순수한 ‘뉴스 생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역전됐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신문 기사의 아주 중요한 소스가 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방송이 시작되기 전, 그 새벽 이른 시각에도 대여섯 곳의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사들로부터 그날그날의 출연자를 묻는 전화들이 걸려온다. 그리고 구미에 맞는 인물이 출연해 뭔가 새로운 내용이라도 언급했다싶으면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사화돼, 당장 그날의 석간부터 다음날 조간신문들까지 모두 그 방송과 방송에서 언급된 새로운 얘기들로 지면을 장식한다. 좀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동안 TV며 인터넷 환경에서 소외받아왔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해주는 사람 사이의 철저한 상부상조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실여부를 떠나 라디오는 인터뷰이들에게도 기자들에 의해 분석, 혹은 일정정도 가공되는, 그래서 왜곡될 수도 있는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하여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뭔가 발언하고 싶거나, 홍보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자신의 육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 라디오, 그리고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송사 채널, 시간대까지 고려해가며 기꺼이 활용한다. 이른바 라디오 정치시대가 존재할 수 있게 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종종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자괴감을 안겨준다. 언제부터인지, 방송 가치의 초점이 온통, 사회적 화두와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방송, 일반청취자들이 듣는 방송이 아닌, 어떤 인물과의 인터뷰가 보다 화제가 될 수 있을지, 그 인물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이끌어 내야 기사가 될 수 있을 지에만 맞춰져 있는,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에 스스로 함몰돼 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 우선주의에 매몰돼 있는 언론 얼마 전 청와대 국내 언론실에서 전화가 왔다.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청와대가 주재하는 정책설명회 겸 오찬을 계획하고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오늘 몇몇 PD가 그 모임엘 다녀와서 말들을 전한다. 오프 더 레코드라는 전제하에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과 여권과 야권의 향후 정계개편 향방에 대해 몇 가지 개인적인 언급들을 하더라고. 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동지의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꽤 허심탄회한 얘기들이더라고. 그런데, 모 방송사의 한 PD가 그것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더라고. 얘기 뒤끝에 우리의 관심사는 당연히 그 PD가 오늘 오찬에서 들은 내용들을 과연 기사화 시킬 것인가 아닌가에 집중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얘기라면 언론사들의 관심을 자극할 것임이 분명했고, 오직 오프 더 레코드를 지킬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그 PD의 판단만 남아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자 기사가 올라왔다. 이병완 “탈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2중대란 얘기냐” 급했던 모양이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뉴스 유통구조는 대개 연합뉴스로부터 출발하는데, 조선일보에 첫 뉴스를 전할 기회를 준 것을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농담도 실수도 정치적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언론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속성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알려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발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일면식도 없는 방송사 PD들과의 공식적인 오찬 자리에서 민감한 현안에 대한 얘길 하며 오프 더 레코드를 주문한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이미 갈 데까지 가 불편해진지 오래인 당청관계의 한 단면일 뿐인 탈당 의원들에 대한 언급을 굳이 기사화한 것이나. 씁쓸한 에피소드다. 가치판단이야 기사를 접한 독자와 청취자들 몫이겠지만, 기사 우선주의에 매몰돼 있는 언론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나부터 우선 반성해볼 일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775 | 추천: 1
“대통령(大統領)은 NO! 호민리(護民理) YES!” - 권위적인 ‘대통령’은 가고 ‘민중의 친구’만 남아라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해입니다.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고 있을까요. 대다수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은 언제쯤 가능할까요?(이미 존경하는 대통령이 있는 분들께는 죄송) 잊고 지내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아, 우리 국민에게도 참 좋은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문득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말은 △굉장히 권위적인 표현이고, △군사용어(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군대의 우두머리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이었다)였다는 사실, △또 일제의 용어(일본에선 통령이라는 용어가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음)로써 외세에 강점(청나라와 일본)된 치욕의 역사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문제 제기 등이 상기되면서 이참에 용어도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용어부터 권위적인 ‘대통령’ 예전 사회주의권 국가에서는 지도자를 비서(秘書)나 서기(書記)로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인민의 심부름꾼’ ‘인민을 지키는 호민관’이라는 뜻의 ‘민중적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베트남 사회주의의 ‘호 아저씨(호지명)’는 그런 분에 가까웠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옛날 로마시대 민중의 보호자였던 호민관처럼 ‘호민리(護民理)’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요? 권력을 민중의 것으로, 체제를 더 나은 민주주의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민중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상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여지없이 옥살이 감이었던 그 때에 비해 지금은 ‘대통령이 동네 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는 좋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국민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고, ‘탈권위’를 내세운 현 대통령으로 인한 수혜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박정희가 그립다는 분들은,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면서 제발 ‘박정희가 제일 낫다’라는 말만은 말아주십시오.   호지명(호치민) 주석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로인해 억울하게 죽었습니까. 그에 비하면 여러 문제점에 대한 정당한 비판 외에도 그 수없이 많은 모욕과 비난까지의 자유를 허용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국민에겐 정말 좋은 대통령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분단체제 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 60년이 넘는 분단으로 통일의 꿈마저도 가물가물하다는 우리 국민들, 희망을 이야기할 기력도 없고 살아가기도 벅차기만 하다는 우리 국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이, 인간다운 삶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우리 국민은 이 꿈을 실현시켜줄 그러한 대통령을 간절히 원합니다. ‘밥은 먹고 잠은 자고 살자!’ 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소박한 말입니까.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여전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빈민·서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결식아동, 비정규노동자, 집 없는 서민, 과중 채무자, 신용 불량자, 노숙자들을 합치면 국민의 절반이 넘고, (절대)빈곤층이 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네 서민들은 부자의 삶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제때에 제대로 밥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주거비나 이사 걱정 없이 편하게 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삶’이 더 중요합니다. 국민의 삶이 어떤 것보다 우선 바라건대, 우리나라 ‘호민리’께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가져 주십시오. 그 애정을 바탕으로 고단한 국민의 삶에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현 정부 들어서 권력층의 부패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지난 김대중 정부부터 복지를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복지국가는 여전히 멀게만 보입니다. 1940년대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천국을 선포했던 영국이나 서유럽은 복지가 너무 잘 돼 ‘복지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제발 우리나라도 ‘복지병’에 한 번 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이 빈곤의 나락에서 벗어나 ‘제대로 먹고는 살고, 잘 자고는 살게 되면’ 생산이 늘고 소비가 늘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복지 천국으로 일컫는 스웨덴. 사진은 스웨덴 국회와 궁궐이 모여있는 구시가지.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밥 걱정, 집 걱정, 의료비 걱정, 교육비 걱정까지 우리네 서민들의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제안한 ‘무상의료·무상교육’은 정녕 불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서유럽 국가의 대학들은 아예 등록금이 없거나 아주 싸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유학생, 여행객들에게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데, 복지국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나라의 무상의료·무상교육도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 이를 위해 불철주야 함께 할 대통령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돈을 낸 만큼만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는 사회’, 돈을 낸 만큼만 교육받는 것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는 사회’가 언제쯤 올까요. 우리 국민에게 또 하나 근심거리가 있다면 한반도 분단입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감상적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경제문제, 부동산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문제입니다. 전쟁이 나면 순식간에 수백만 명이 죽는다는 한반도. 2006년 북-미 대결구도로 촉발된 북핵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미국에서는 계속 선제 공격론이 흘러나오고(‘페리 프로세스’의 그 페리마저도 폭력론을 주창하다니!), 일본의 군국주의화 및 주변사태 개입 의지도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믿을 것은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뿐입니다. 무력과 충돌은 절대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WAR 게임’이고 군산복합체와 공화당의 이윤이 극에 달할지 몰라도, 한반도에는 수백만 명의 죽음이고 민족의 파멸입니다. 평화를 위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대통령, 긴장과 대결의 근본적인 원인인 분단 체제를 해소하고 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에 묵직하게 앞장서는 대통령이 우리 국민에겐 필요합니다. 혹자는 문제 많은 북한이라고 욕할지라도, 꾸준히 북한과 대화하고 지원하고 협의해서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은 ‘잘 먹고 잘 자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를 바랍니다. 누구는 땀 흘려 일해도 여전히 가난하고 누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부자가 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월급쟁이보다 세금을 덜 낼 수가 있을까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보다 특권이나 연줄이 있는 사람이 출세하게 된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려 할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반칙과 특권을 물리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여전히 그 많은 반칙, 탈세, 특권,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등등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국민이 신명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에겐 ‘민중의 친구’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국민을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같은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에는 동참하지 않는 대통령,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에도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대통령, 적어도 의식주와 교육․의료만큼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줄 대통령, 시민사회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귀를 가진 마음이 넓은 대통령, 국민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겸손하고 성실한 대통령. 정말 그런 ‘호민리(護民理)’를 보고 싶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몫만은 아닐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성숙한 국민이 ‘좋은 나라,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대통령보다 더 앞장서야겠죠. 너무나 무모한 꿈인가요? 하지만 이 꿈은 온 국민이 함께 꾸는 꿈입니다. 언젠가 분명 현실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군사독재와 가난의 고통을 뚫고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뤄낸 국민의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은 그 저력으로 호민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권위적인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국민에겐 베트남의 ‘호 아저씨’같은 민중의 친구가 꼭 필요합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8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