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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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 / 사회복지사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밝혀둘 것이 있다. 난 퇴사하지 않았다. 아직도 버티고 있다. 소위 고인물이 되었다.  직업으로서 사회복지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한 후 대개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 취직을 하고는 한다. 그렇다. 특정한 조건을 갖춰 본인이 직접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보통의 사회복지사들은 직장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의 사회복지사들 역시 자신이 다니는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고 칭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자신이 다니는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도 했다. 어쭙잖은 소명의식이라고 해야할까. ‘사회복지는 사람을 돕고,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인데 수익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칭하는 게 맞아?’라는 식의 감정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들어차 있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게 된 첫 직장에 이제 조금 적응이 됐을까. 나보다 3년 정도 먼저 일을 하기 시작한 선임 사회복지사가 날 불렀다. 조금 차갑다는 평이 있긴 했지만,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고, 무엇보다 일은 성실히 잘한다는 평을 받던 직원이었다. “샘, 저 말할 게 있어요. 퇴사하려구요.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더 못 할거 같아요. 샘은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퇴사 예고를 처음 들은 신입 직원인 나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퇴사하지 말라고 잡는 게 맞는걸까’ 하는 많은 고민들이 찰나의 순간을 채웠다. 이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입 직원에게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전에 미리 말을 하는 그 진심이 어디 간단한 마음이랴 하는 생각에 도저히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예... 많이 힘들어하고, 많은 고민 끝에 하신 말 일 테니, 퇴사 응원할게요. 고생 많으셨어요.”  퇴사 예고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2년 동안 일했던 첫 직장은 나를 포함한 전체 사회복지사의 7할이 퇴사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너무 힘들다. 더 이상은 할 수가 없다.”라는 것. 박봉으로 유명한 사회복지사의 임금이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더는 할 자신이 없다’라는 것이 퇴사의 공통된 변이었다. 퇴사한 직원의 3분의 1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 자체를 그만두기도 하였다.  첫 직장에 다니면서, 딱 두 번 퇴사를 고민했다. 취업을 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열심히 한 일에 비난이라는 이자가 붙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겪은 후,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는데, 그 ‘사람들의 행복’ 안에 사회복지사의 행복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1년이 지난 가을, 내가 맡지도 않은 일에 또 한 번 비난이 붙어 날 괴롭힌 사건이 있었다. 결국 그해 12월 31일 첫 직장에서 퇴사했다. 퇴사하기 한 달 전, 퇴사 인사를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죄송해요.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올해까지만 일하고 이제 그만두려구요. 다음 직원에게 잘 설명해 놓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퇴사 인사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이럴 줄 알았어... 샘은 좀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정 다 들게 해 놓고 왜 그만두는 거야... 또 속았어...”라며,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 “어째 오래 일한다 했어요. 매번 그렇게 바뀌네. 뭐가 문제에요? 돈이 너무 적지? 일은 너무 많고? 내가 어따 좀 말을 해볼까?”  짧지만 강렬했던 첫 직장에서의 퇴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이렇게까지 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고 퇴사 인사를 다니는 한 달 동안은 눈물을 흘린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일이 여사였다.  첫 퇴사 후 아직까지 자발적으로 퇴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수도 없이 떠나는 동료들을 마주했다. 입사 첫날 나를 보며 자신은 퇴사를 한다며 기분 좋게 인사하던 직원부터, 더 같이 있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어 미안하다며 퇴사는 해도 퇴근은 하지 않던 직원까지(그는 퇴사 일까지 야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사 후에도 출근을 했다). 다들 떠났다. 함께 일하는 직원 중 고민을 편하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10년 넘게 일을 하는 동안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직장동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 칭하던 사회복지사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사회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 좋은 일도 사실은 고용주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 그 어떤 인간에 대한 고귀한 가치나 사회에 대한 가치 이전에 사용자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행하는 노동이라는 것. 노동에 지친 동료들이 현장을 떠나는 동안 내가 아직도 퇴사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고여 있는 것은, 다행히도 내 마음의 우물이 메마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복지사가 사회개혁가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소로의 말이 더욱 슬프게 들린다.  “나는 사회개혁가가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곤궁에 처한 동료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비록 그 자신이 신의 가장 성스러운 아이임에도, 개인적인 괴로움에서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2023년 12월 18일 12시 32분.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붉어진 눈시울로 퇴사의 변을 말하던 동료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2023년의 마지막 날, 괴로움 끝에 퇴사를 결정한 그가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자신을 소홀히 했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아주 조금만 더 자신을 챙길 수 있길 바라본다. 말라버린 마음에 다시금 물이 고일 수 있길 바라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팀장님.
2023-12-20 | hrights | 조회: 562 | 추천: 1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10월 7일 이후 너무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있다. 수치로 확인하면 팔레스타인 전체 사망자는 18,483명이고 부상자는 53,010명이다.(12월 12일 14시 기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사망자 부상자 합산 수치, 알자지라 뉴스 자료 인용) 여기에 건물 잔해에 묻히거나 실종된 인원이 최소 7,780명이라고 하니 사망 및 실종만 2만 6천 명을 상회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한 2007년 이후, 4번의 가자 전쟁(2008~2009년, 2012년, 2014년 그리고 2021년)을 포함한 총 17년 동안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숫자(5,365명)의 거의 5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한 약 2년에 걸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체 사망자(9,614명)의 2.5배를 넘는 수치이다. 출처: 알자지라 뉴스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기록된 이 처참한 피해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과 아동의 심각한 피해이다. 지난 11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2/3가 여성과 아동(18세 이하)이고, 매일 1시간마다 2명의 어머니가 살해되며, 매일 2시간마다 7명의 여성이 사망한다. 또한 가자지구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됐고 전체 사망자의 40%가 아동이다”라고 밝혔다. 왜 이렇게 여성과 아동의 피해가 심각한지에 대해 팔레스타인 여성 언론인이자 전직 팔레스타인 정부 대변인인 누르 오데(Nour Odeh)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폭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의료시설이 붕괴되고 의약품, 생필품, 식수가 고갈된 상황에서 취약계층인 여성과 아동의 치료와 보호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주요 공격 지점이 주거지역과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공용공간, 병원과 유엔 시설, 대피처에 집중이 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동이 어렵고 집단으로 모여 있는 여성과 아동의 피해가 크다“라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팔레스타인 상황에서 성인 남성에 비해 이동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여성과 아동 다수가 밀집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이 밀집된 공간이 공습과 폭격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빌딩의 피해를 조사하고 부상자를 찾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10월 7일.>사진출처: 알자지라 뉴스, Abed Khalid_AP Photos 더불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 정부가 가장 빨리 내린 조치 중 하나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전력, 식수, 생필품과 의료품을 끊어 버린 것이다. 이미 2007년 이후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고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던 이스라엘 입장에서,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나마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전기와 물, 생필품을 막아버린 것은 그 지역 내 사람들을 절멸 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그렇기에 11월 7일 유엔의 사무총장은 “가자는 공동묘지가 되고 있다”라고 표현하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였다. 또한 12월 4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지하에 건설된 터널에 바닷물을 쏟아부어 침수시킬 계획을 드러냈다. 17년간의 이스라엘의 봉쇄를 피해 식자재와 생필품이 오고 갔던 그 터널 안에 누가 있는지, 어떤 환경인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바닷물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은 민간인 피해와 나아가 생태계 파괴를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UN 사무총장> 출처: MBC뉴스 이 모든 야만적 행위는 ‘하마스 제거’라는 미명하에 이스라엘 군에 의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제인권규약 및 국제인도주의법, 전시국제법에서 규정하는 집단학살과 반인도주의범죄, 전쟁범죄의 혐의가 너무도 분명하지만 국제사회가 합의한 법과 제도는 이 야만의 시간을 막지 못하고 무력하다. 거기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 장비와 예산을 지원하고 있고, 한국 역시 이스라엘에 무기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면 지난 10월 27일 유엔총회의 휴전 결의안에 한국 정부가 기권하면서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한국 외교부장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기도 했다. .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라는 이번 전쟁은 현대 전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상자와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폭격과 공습으로 인한 사상 외에도 이미 심각한 물자부족으로 ‘절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소수의 친이스라엘 국가를 제외한 다수의 국가들은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집단학살 규탄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거주하는 한 여성활동가는 “이번이 첫번째 전쟁도 아니고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 참상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저항에 함께 해달라”라는 메세지를 아디에 전달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더욱 세진다면 가자지구의 비극은 더 빨리 멈출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끝은 휴전이 아닌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종식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2023-12-13 | hrights | 조회: 247 | 추천: 8
신종환 / 공무원 속초시 공무원으로서 내 첫 업무는 속초시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노학동 주민센터의 복지 민원대 상담이었다. 주민센터의 별명은 복지 놀이터였다. 시에서 가장 많은 수급자 분들이 거주하는 복지 아파트가 주민센터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수급자 분들이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다. 선임자 분은 전반적으로 착하고 원만하신 분이었다. 그 분께서 인수인계 해주신 내용 중 고령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만 85세 이상 중 특정 조건 충족하는 분들께 드리는 공경봉양수당과 10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수수당 두 가지가 있었다. 장수수당을 설명하시면서 선배는 나에게 위로하듯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아서 곧 끝낼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당시 내 마음속은 거의 아이히만이란 사람을 면밀히 조사해보니 보통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유럽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저렇게 친절하게 민원을 응대하고 사람들을 위해주는 사람이 한편으로는 사람의 죽음을 건조기가 발명되면 덜 귀찮아질 세탁물처럼 희망차게 말할 수 있는건지. 마음이란 어떤 보호막을 벗어나면 빠르게 마모되기 마련이란 걸, 섬세한 마음은 강한 의지로 늘 아픔을 향하거나 아니면 어느정도의 뜻과 그 뜻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응해 서로의 고통을 풀어보고 나누며 해석하지 않으면 덜 힘들기 위해 마음이 뭉툭해지기 쉽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뭉툭해진 마음은 자신에게 물질적인 위로를 건넬지언정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만들어줄지 고민하기에는 적적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도. 임용되고 시간이 약간 지난 지금은 어느새 예전 선임자처럼 모니터 속의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한편 아파서 병가휴직에 들어간 이에게 마음 아파하는 동료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한편 가끔 예전의 마음을 가끔 마주하거나 대학생 시절 쓴 글을 다시 보게 되면 세상을 향한 선명한 태도에 흠칫 놀라고, 이 낯선 사람이 나였다는 게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지금부터 그때까지를 따라가다보면 그 선명한 생각 너머로 물러나면 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서 그 생각들에 기대 떨림은 가라앉히려는 마음들의 느껴져서 기분이 좀 복잡해진다. 그러다 이제 어느 정도는 남이 되어 버린 그때의 내게 ‘나는 네가 그렇게 경계하던 선명하지 않고 풍화된 나날에 있단다. 이렇게 될 것 같았지. 근데 완전히 망하지는 않고 어찌 어찌 있단다.’ 라고 말을 건넨다. 이런 되새기는 모습과 생각이 스스로도 하잘 없게 느껴지는데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움과 연대가 절실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고, 오랜만에 찾은 내 마음의 한적함이 그들의 절실함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반증 같아서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하잘 것 없는 고민과 흐지부지한 생각들을 계속 주워 섬겨야 할 것 같은  같은 이유는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닿는 글을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까닭 같다. 예전 나의 시선으로는 인권연대를 비롯한 곳에서 여러 필자들이 쓰는 글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약간 재생산되어 서로의 마음을 공공히 하지만 지금의 내눈으로 보면 같은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시선을 견지하지 못하는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세상의 이격됨을 더욱 선명히 하는 것만 같다. 2014년 출간된 각지의 투쟁 현장의 풍경을 엮은 책 ‘섬과 섬을 잇다’는 현장의 화, 눈물, 좌절, 결의를 더욱 세밀하게 그려 전달하면 서로를 이을 수 있을거란 소망을 제목과 내용에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책들은 그런 절실함을 미처 전달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도 보였다. 그래서 엄청나게 몇 달마다 부끄러운 오늘같은 날 오히려 닳을대로 닳은 마음에서 주운 뭉툭한 말들을 억지로 내보이며 글을 쓴다. 섬세한 사람들이 용기내어 벗은 마음으로도 우리를 불러낼 수 없다면, 우리의 뭉툭한 마음 속에 서툰 온기의 씨가 그들의 애환과 같은 것임을 문득 느끼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마모된 생각들로 더듬더듬 만들고 어쩌라는 건가 싶은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런 시도가 서로 뭉툭해진 손가락 같은 마음이 덮지 못해 시려서 마비된 마음을 덮어주면 큰 기쁨이고, 그러지 못해도 덮어주지 못해서 크게 나버린 구멍을 보여주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 때 문득 느낀 한기와 거기서 비롯된 그리움이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으로 말하면 인간-서로와 서로의 관계가 우리의 전부임을 깨닫는 것이고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순식간에 우리를 어느 장소로 보내주는 향기의 단초라고 생각해서 이 찬 시절에 쓸데 없는 소리를 쓰고 쓰려고 한다.
2023-12-05 | hrights | 조회: 282 | 추천: 3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기자에서 활동가로 진로를 바꾼 이유 가난한 삶을 꿈꿔왔다. 이타적인 삶을 결심했다.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의로운 시민으로 살려고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했는데 직업으로 언론 기자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학신문 기자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기자는 모름지기 현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는데 막상 기사 마감 스트레스가 견디기 힘들었고 어떻게 쓸 것인가 보다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를 더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진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바 활동하는 삶,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삶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삶을 직업으로 선택하였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런데 언론 보도에 목마르더라, 사회적 울림 때문에 대학 졸업 후 25년 동안 교육운동 단체와 진보정당 국회의원 보좌관, 지역 풀뿌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글도 많이 쓰고 이런 저런 집회 등 행사와 기자회견을 자주 했다. 시민단체 활동,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어떤 주장과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 언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얽히고설켜서 돌고 돈다더니 역시 세상은 그렇게 연결되어 굴러가고 있었다. 좋은 언론, 열혈 기자를 접할 때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른다. 언론에 보도되어야 울림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울림이 있어야 변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노에 머물지 않고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를 배워야! 시민단체 활동가와 진보정당 당원이라는 양 날개를 펼치고 불편하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 참 답답한 점을 많이 느꼈다. 왜 세상이 이렇게 더디게 바뀌는가? 왜 나쁜 놈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후 선악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악으로 바라보면 누군가, 어떤 집단을 적대시하면 싸우기 수월하고 감정적으로는 편할 수 있겠지만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을 느꼈다. 문제가 있다면 이유를 찾아야 하고 그 이유에 근거해 세상을 바꾸는 법을 찾는 길을 모색하는 게 훨씬 지혜롭다는 것을. 분노에서 시작해 대안을 설계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물론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의 부조리와 한계에 직면하면 아주 고통스럽기도 하다. 고통 속에 진주가 만들어지듯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활동을 잘하는 방법으로 터득한 게 있다. 바로 좋은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 나은 조직 구성과 운영, 필요한 재정 확보 등. 그 조건이 잘 만들어지면 어떤 목표에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다다를 가능성이 커진다. 부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고 시민단체 활동가는 억울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밥 먹듯이 자주 접한다. 대부분 억울한 일은 가난한 이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힘이 없어서일까? 힘없는 이들에게는 권력이 없다. 무언가를 강제하는 힘, 권력이 없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살게 된다. 출처: 뉴스타파 언론 기사를 검색하다가 뉴스타파의 기획 보도를 접했다.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 고위공직자 재산 30년 치 분석. 방대한 자료 분석 시도가 놀랍다. 이런 언론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고위공직자 재산 30년 치를 분석해보니 우리 사회는 부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나라였다는 결론이다. 매우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사실이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작은 제목만 언급해보자. 국회의원 70.6%는 상위 10% 부자 / 국회의원 절반은 다주택자, 무주택은 11%에 불과 / ‘강남 3구 집주인’ 국회의원 연평균 78명 / 국회의원 1인당 토지 4724평 보유, 일반인 8배 그렇다면 왜 부자 국회의원이 많은 것일까?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선거비용의 부담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할 조건이 안된다는 것이다. 뉴스타파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2019년 전용주 동의대 교수가 20대 국회를 분석해 발표한 ‘후보의 선거 경쟁력 결정 요인에 관한 연구’를 보면, 개인 재산이 평균 득표율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연구진은 “한국의 선거에서 후보의 선거자금 대부분은 개인 재산에 의존하고 있다”라며 “실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후보의 선거자금 중 약 60%를 개인 재산이 차지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시민운동과 정치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려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갑자기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까지 주제를 확장해보니 더욱 답답한 마음이 내 머리를 짓누른다 시민운동을 하면 할수록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상태의 정치 상황에서는 세상이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는 정치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들로 이뤄진 정치구조이다 보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골고루 반영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고 조건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사회문제에 예민하게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종종 세상을 바꾸는 일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비유한다. 그만큼 어려워서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계란이 깨지면서 세상은 바뀌어 왔다. 지금은 부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이지만 뉴스타파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조금씩 부자들 비율이 줄어들고 있단다. 결국에는 우리 사회의 다수인 가난한 이들이 정치 권력을 가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 매일 매일 정치개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몸부림을 치는 이유이다.
2023-11-28 | hrights | 조회: 609 | 추천: 8
윤요왕 / 전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웃마을 원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이 논란과 갈등 끝에 철거가 되었다. 원주지역 시민단체들과 종교계는 물론 한국영화학회, 한국사회학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역사·기록·문화·예술·건축·사회 등 다양한 학제를 망라한 단체들까지 나서서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고 국회포럼을 여는 등 보존에 대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주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현장 농성장에 가서 찬반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어쩔수 없는 ‘힘’ 앞에 무기력한 생각이 들면서 씁쓸함과 허탈감이 들었다. 시민들의 여론조사를 통해 보존-철거의 결정을 내리자는 시민사회의 마지막 요구도 무산되었다. <‘깊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예>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단 하나의 근거로 국민(혹은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 않고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는 정치지도자, 행정책임자들에게 너무나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 할까?" <경향신문 2015년 / 고 김종철 | 녹색평론> 얼마 전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 관한 포럼에 참가하면서 2015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故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장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원주 아카데미 극장 철거현장이 오버랩되었다. 그동안 마을자치,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활동과 정책사업들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노력들이 다양한 곳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 멀었구나 생각되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까지만 내려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마을자치 등)를 통해 주민,시민,국민들의 권한과 자치를 위해 노력해 온 것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비단 지방작은 소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2024년은 알 수 없는 국가의 경제위기, 소득불균형으로 그 어느때보다 힘든 한해가 될 거란 예측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걷어진 예산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하나로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아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 관한 포럼에서 발제를 한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님의 한국 민주주의의 자화상에 대한 분석을 새겨 봐야 할 것이다. 첫째, 옅은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선진국이다(선거,법의 지배 등) 둘째, 뿌리없는 정당의 포플리즘 공세로 편가르기 속의 혐오아 적대 감정의 격화로 과제해결 능력의 퇴화가 가져온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정치 셋째, 특정 소수의 단기적 이익 넷째, 불신과 냉소주의가 만연되어 돈과 권력과 사회적 위세를 향한 질주로 진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현실의 대안으로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정치권력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마음(heart)’을 화두로 던지고 있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이 될 때,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제도나 체계, 질서, 법 등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이게도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구축한 건 아닌가 성찰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8,000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산골농촌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자치)와 마음이 정책화되고 마을을 가꾸어 가면서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호기심과 관심을 끈 것은 근사한 중장기 정책도 상큼한 아이디어도 아닌 주민들과 행정의 지역의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었다. ‘너의 의자’ ‘배움의 의자’라고 불리우는 태어난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작은의자였고 중학생들이 3년동안 공부하는데 앉는 의자였다. 지역의 마음의 선물로 시작한 의자가 산업화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여기서 하나 더 궁금한거는 행정과 어떻게 이게 논의가 되고 합의가 되었는지였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또 깊어진 풀뿌리 지방자치(마을자치)가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게되었다. 히가시카와 행정공무원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지켜야 하는 원칙같은 것이 있는데 ‘3無’라고 한다. 이 3無는 공무원들이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 다른지역 사례가 없어서 못한다, 우리지역에는 없다’라는 변명과 핑계가 없다는 뜻이다. 다양한 마을의 분과위원회가 있고 자생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이 제안되고 토론해서 협의하면 행정은 최대한 그것이 가능하도록 방안과 정책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의 효능감이 높아져 참여가 왕성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 각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민주주의가 ‘마음((heart)’을 기본으로 권한과 권력을 국민들에게 가능한한 이양해야 하는 단계로 발전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선거라는 그 제도 하나로는 국민이 주인인 국가를 만드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없음을 우리모두 깊이 깨달아야 한다. 권력을 권한을 가졌다고 모든 것이 통용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들에게 묻고 확인하고 대화하는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또한, 시민들의 삶은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에 달려있음을 다시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2023-11-22 | hrights | 조회: 438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얼마 전 사무실 아파트 우편함에 은평구청 장애인복지과로부터 온 과태료처분 통지서가 있었다. 바로 사무실 아파트 내의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위반 신고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출처: 전북일보 알고 보니 차 안 장애인전용주차표지가 떨어져서 생활신고앱으로 고발한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늦은 심야 시간이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 여기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충분해서 나 때문에 주차 못한 사람도 없었을 텐데 굳이 주차 자격을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는 품을 들여 신고를 실천한 것이었다. 아파트 주민만 주차장 출입이 가능하니 같은 아파트 주민이었을 것이다.  주차 표지를 새로 발급 받으려고 구산동 주민센터를 갔을 때는 마침 점심시간 직전이었는데 담당자께서는 직원들과 함께 가는 식사 시간도 뒤로 미루고 노란 주자표지를 발급해 주셨다. 점검을 받으러 아파트 정비소를 찾았을 때는 주섬주섬 목발을 짚고 내리려는 나를, 그냥 차에 타고 있으라며 민망하게도 즐비하게 앞질러온 비싼 차를 대기하게 한 채로 내 차를 먼저 봐주셨다. 그리고 손수 사무실 앞으로 자동차를 배달해 주셨다. 그렇게 사무실로 올라오는데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를 뵈었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서 평소에 걱정되었던 것을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혹시 가끔 쿵쿵 층간 소음이 있지는 않나요” 그러자 아래층 할머니가 바로 응답하셨다. “아우, 좀 쿵쿵거리면 어때요, 사는 게 좀 시끄러우면 어때요,” 이러시면서 내가 사과할 여유도 주지 않고 그냥 가버리셨다. 9월 21일 은평구는 서울 지자체 최초로 민방위 대피시설 표지판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부착하는 ‘행사’를 진행했다고 보도자료로 널리 알렸다. 민방위 지침 등의 규정에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집행하지 않았던 것을 은평구청이 적극 실천하고 이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은 분명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출처: KBS 그러나 이런 것이 단순히 ‘행사’나 ‘보도자료’나 ‘기념사진’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이런 소식은 그 누구보다 은평구에 사는 장애인 당사자 한명 한명에게 명확하게 전달되고 인지되어야 할 재난 정보다. 우리는 화재사고에 대피하지 못해 홀로 돌아가셔야만 했던 시각 장애인 주민을 기억해야한다. 점자표지를 설치했다는 기념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각 장애인을 찾아 함께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 곧 장애인과 만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민감한 실천이다. 민방위 대피시설에 점자표지를 설치했다고 홍보했으면 장애인 당사자가 재난 시에 그곳까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와 방법도 당사자에게 인지되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민방위 관련법에서 여러 이유로 훈련과 소집 등에서 장애인을 제외하고 있는 것은 그 구조적,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 서글프고 차별적인 이야기이다. 국가에 의한 재난 방위이든 민간에 의한 재난 방위이든 장애인을 우선 고려하라는 것은 상식이고 지침이나 시행령 등에도 명시한 것이지만 그것이 구조와 방위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훈련되거나 시행되지는 않는다. 9.11 미국 테러 때 시각장애인이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비장애인 기십 명을 구조한 것을 기억해 보라. 허나 우리나라는 장애인 당사자가 알아서 스스로를 구조하거나 방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구조와 방위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민방위 훈련에서조차 법적으로 탈락되어 있고 재난정보 접근성 개선이 구청의 기념사업으로만 포장되는 것은 반갑지만 동시에 슬픈 것이다. 물론 구청이 앞장서서 이런 일을 널리 알리는 것은 장애인의 재난 정보 접근성의 중요도를 알리고 대중들이 실천하는 자극은 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주민으로의 장애인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당연한 일을 구청이 이제야 이렇게 선전하는 것은 때때로 쓴 웃음을 짓게 한다. 도리어 밤늦게까지 장애인 주차 위반을 감시하고 신고한 같은 아파트 주민이 더 감동적일 정도다. 장애인 대피에 관심이 있는 구청이라면 은평구에서 장애인들이 이런 대피 훈련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구의 수영교실이나 체육시설 등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든지 생존수영 수업을 비장애인들과 함께 받을 수 있는지도 널리 찾아 보도자료를 뿌리고 그 태권도장 앞에서 수영교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지진과 같은 기후 위기 재해가 남의 일 같지 않고, 포화가 터지는 전쟁 등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은 시대에, 나는 늘 제일 먼저 가깝게 탈출하라고 주차위반을 신고하고 내 차량에 법적 지위를 알려주고 자동차를 손봐준 이웃 주민들을 각종 언론에 알리고 더욱더 칭찬해 드리고 싶다. 그게 인권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그리고 뒤늦게 민방위대피소 점자표지를 설치한 것은 자랑하고 기념해야 할 일이 아니다.  지역 주민에게 유감을 표하고 먼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은평문화예술회관은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할 공공시설이 아니던가? 대피소는 모든 구민들이 이미 함께 대피해야 할 시설 아니던가? 설마 모든 구민에 장애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2023-11-07 | hrights | 조회: 271 | 추천: 6
정한별 / 사회복지사   2018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세 번 죽는다. 숨이 멎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죽고, 장례식에 온 하객들이 떠나갈 때 사회적으로 죽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에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고 뉴스에 이은 전원구조 뉴스로 세월호 사고는 잠깐 동안 관심 밖으로 비껴났다.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했고, 300여명이 숨졌다. 생존자들의 다수는 해양경찰보다 늦게 도착한 민간선박에 의해 구조되었고, 침몰한 선체의 인양은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인 2017년 3월 22일이나 돼서야 시작되었다. 출처 - 무등일보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형 여객선의 선장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해운사, 선원 교육 등의 관리 소홀, 선박의 적재 한도 초과, 사고가 나자 배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선장과 선원, 대형 재난의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 보도윤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언론, 이와 대비되는 시민사회의 구조와 자원봉사. 세월호 사고를 기점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겠구나,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일들을 뻔뻔한 얼굴로 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구나. 부패한 정부에 비해, 우리 시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성숙했기에 그래도 희망은 있구나. 2014년 봄에 생겼던 관심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내내 뉴스를 챙기며, 관련 소식을 챙기고 관련 행사를 챙기고, 자원봉사활동을 했던 마음은 얼음이 전부 녹아버려 싱거워진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옅어졌다. 그 사이 세상은 또 변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은행과 기업도 무너지고, 배가 침몰하는 것도 모자라, 도심의 길거리 마저 무너져 버렸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길에서 160여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사람 많기로 유명한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사람들이 깔려 유명을 달리했다. 축제 이전 많은 인파가 예상되었지만 경찰, 지자체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인파운집을 대비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기 3시간 전부터 수많은 인파로 인한 압사 우려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시민들의 신고 역시 참사를 막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불현 듯 2014년 4월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에 볼을 꼬집어도 봤지만, 아무리 볼을 꼬집어도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출처 - KBS뉴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정하며 근조 리본에 근조라는 글씨를 쓸 수 없게 했다. 참사라는 명칭도, 피해자라는 용어도 쓸 수 없게 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의 장관은 “경찰 등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태원 참사 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한 높으신 나으리는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느냐”라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잘 안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무엇인가” 라며 웃는 얼굴로 농담을 뱉었다. 한 기초지자체 의원은 세월호를 운운하며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조롱 섞인 혐오를 SNS상에 뿌렸고, 대통령실의 비서관은 “부모도 놀러 가는 것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냐”라며 도대체 이해가 불가능한 논리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여당의 국회의원은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치는 비극을 똑똑히 보았습니다”라며 혐오표현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어찌보면 고마운 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분노는 연료로 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출처 - 한겨레 10년 같은 1년이 흘러, 다시 10월 29일이 되었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게 될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국정조사는 그 어떤 의혹도 밝혀내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사의 원인도, 참사에 대한 책임도 밝혀진 게 없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잊지 않아야 할 것들,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현실에 가을밤의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 일찍 별이 된 이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라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도록 기억의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 어떨까.  
2023-10-31 | hrights | 조회: 333 | 추천: 7
사단법인 아디 이동화 활동가   팔레스타인에서 한국으로 급하게 돌아온 지도 거의 2주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제 정신은 팔레스타인 어딘가에 두고 온 듯 몽롱하고 멍합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 때문인지 가슴속 분노와 슬픔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합니다.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을 넘어 공격할 때 저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올리브 수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디는 정의기억연대의 후원을 받아 2021년부터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현지여성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트라우마힐링센터 사업을 하고 있고, 그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팔레스타인에 방문한 것이지요. 10월 7일, 제가 가장 먼저 목격한 광경은 올리브를 따고 있는 곳 반대편에서 피어오르는 커다란 화재였고, 그것은 이스라엘 정착촌민이 하마스 공격에 보복을 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올리브농장에 방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올리브 수확을 마치고 나블루스로 돌아왔을 때 현지 사람들에게서 기쁨과 우려를 동시에 보았습니다. 가자가 봉쇄된 지 15년, 높이 8미터의 거대한 분리장벽이 가자지구를 둘러친 지 21년 만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벽을 넘어 자신들의 예전 땅이었던 지금의 이스라엘에 도달했다는 기쁨을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잔혹한 보복 군사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디의 팔레스타인 방문팀은 안전확보를 위해 서둘러 현지 일정을 종료하고 귀국 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요된 며칠 동안 저는 현지 활동가들과 많이 언쟁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민간인과 비전투요원을 살해하고 납치하는 전쟁범죄는 용납할 수도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현지활동가에게는 제 주장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공자님 말씀처럼 들렸나봅니다. 그들은 10월 7일의 하나의 사건이 아닌 지난 75년 동안 자신들이 당했던 고초를 이야기하며 우리에게도 당신들과 같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평행선과도 같은 언쟁 속에서 현지 활동가는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아이와 여성, 민간인이 살해당할 때 세상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어느 누가 우리 편에서 목소리를 내준 적이 있었느냐? 라고 항변할 때 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사진 1. 나블루스 부린마을,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해 방화되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 사진 출처: 한톨 우려했던 대로 하마스의 공격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과거의 선례처럼 이스라엘은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보복군사공격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전 세계의 여론의 지탄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상 관련 뉴스는 정제되지 않고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채 공중파, 케이블, 신문, 심지어 개인의 sns를 타며 엄청나게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병원이 공습으로 큰 피해를 봤다는 소식에 전 세계 여론은 다시 한 번 출렁거렸고 지금은 서로의 탓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죽음의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이스라엘의 사망자 수는 멈췄고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와 부상자는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의 절반 이상이 아이와 여성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하마스의 만행과 알 아흘리 병원 폭격이 누구 소행인지에서 멈춰 있는 듯합니다. 지중해에 맞닿아 있고 서울시 절반가량 크기의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외부로 연결된 모든 도로가 봉쇄된 감옥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부가적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가자지구는 외부에 의해 완벽하게 봉쇄됐으면서도 또 외부에 완전하게 의존해야만 하는 지역입니다. 이런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은 전기를 끊고 물을 끊었습니다. 모든 물류의 흐름을 차단했습니다. 하늘에서 전단지를 뿌리며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하마스편이라 간주하고 폭격하겠다고 연신 협박합니다. 두려움에 떨며 남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포자기 심정으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가자지구 현지에서 전해주는 소식은 200만명의 가자지구 사람들이 하루하루가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속에서 지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들이 갈 만한 안전한 곳은 딱히 없습니다. 지난 23일 월요일 하루 동안 만 이스라엘 공중 폭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민간인 수만 어린이 182명을 포함하여 436명이 사망했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이스라엘의 공중 폭격이 이어지고 지상전을 위한 무시무시한 탱크와 전차는 가자지구 코앞에서 대기중 입니다. 사진 2. 10월 22일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이스라엘은 민간인 학살을 멈춰라” by 아디 어느 순간 우리의 기억은 멈춰졌습니다. 언론은 연신 하마스의 악행을 계속 선전합니다. 한국의 몇몇 언론사는 현지에 기자를 파견하며 현지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그들은 비극의 한 면 만을 강조합니다. 만약 그들이 가자지구에 있다면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공포와 죽음, 사방이 벽으로 막힌 절망적인 현실일 것입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는 가자지구만 있지 않습니다. 서안지구 역시 공격받고 있습니다.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 군의 군사공격으로 1,400명 이상이 체포되고 9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아디의 현지 활동가역시 이스라엘군이 발포한 유탄에 맞아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서안지구의 대부분의 도시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봉쇄됐고 아디의 센터 역시 현재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은 하마스가 이 지옥의 문을 연 당사자이고 10월 7일부터 비극이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유엔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칭할 때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즉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번 사태는 긴 점령의 역사 중 하나의 사건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점령의 상징과도 같은 분리장벽이 처음 무너지고 본인의 고향에 발을 딛는 최초의 기억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수많은 보도를 통해 팔레스타인은 점령됐고 점령이 불법이라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사태 이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평화롭게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이번 비극적인 사태를 통해 저는 인류의 양심이 시험대에 올랐고, 그동안 국제사회가 구축한 신념의 토대는 그 앙상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찢을 듯한 전투기의 굉음과 곧바로 이어지는 폭격의 섬광은 인구 230만의 가자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부상자와 사망자로 병원은 이미 아수라장이 돼버렸고,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맨손으로 콘크리트 잔해를 파헤치고 있지만 그 밑에 갈린 아이들은 서서히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잔인한 세상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고통 받는 이들의 절규는 점령의 담장을 넘지 못합니다. 이들의 절규가 마지막 숨을 다할 때 우리가 믿는 양심과 신념역시 끝날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사망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며 하루빨리 이 비극이 끝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2023-10-25 | hrights | 조회: 260 | 추천: 7
신종환 / 공무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격언은 많고 그만큼 여기저기서 언급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만큼 생각보다 쉽게 잊힌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있지만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을 지금과는 관계없는 일들로 치부하고 또 그런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하다고 믿고 여지저기에서 말하곤 한다. 그런 일들의 시비를 가리는 일 이전에 그런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벌이는 까닭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들의 생활과 환경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아가서 우리가 처한 여러 상황적 맥락에 과거와는 다른 점들이 많아졌다는 말인 것도 같다. 출처 - 뉴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를 비추는 시선들은 짧은 시간에 달라지는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복잡하고 비참한 풍경 중 하나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 속에서 팔레스타인에 살던 여러 아랍계 민족집단의 후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빼앗긴 과거와 고통받는 현재를 공유하고 있고, 세계를 방랑하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운 유대인의 후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강토를 침범하는 이들에 대해 심적으로 정정당당한 분노를 가림 없이 표출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언론에 실린지 20년 가까이 된 사진에서 이스라엘 아이들이 헤즈볼라를 향해 발사될 포탄에 낙서하고 있는 장면은 서로를 향한 인식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사이가 안좋은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포탄에 웃는 얼굴로 우리의 죽음을 기원하는 사진을 어느 아이가 인터넷에서 보고 자란 아이가 10명이라면 그중 몇이 어떤 마음을 먹을지 확답을 할 수 없어도 평화적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진행자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기울어진 보도에 ‘팔레스타인 사람의 죽음은 다섯 글자로 적히고 이스라엘인의 죽음은 책 한권으로 적힌다’고 말했다.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는 반대방향으로 비대칭적인 보도와 이에 따른 비난이 이어진다면 이는 차라리 다음 폭력에 대한 양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출처 - KBS뉴스 하마스는 음악축제를 기습해서 수십의 사람을 죽이고 기백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았다. 당시 영상과 상황은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 이스라엘은 먼저 잘못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듯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천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가자지구에 백린탄을 발사한 영상이 인터넷에 듬성듬성 보였다. 백린탄을 실제로 쏘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죽음들 앞에서 편을 드는 일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팔레스타인이 백린탄을 쏘았다면 양상이 달랐을 거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앞으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을 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궁지에 몰린 가자지구에는 비명이 멈추지 않고, 눈물에도 멈추지 않는 피와 불을 본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의 목젖을 마이크 삼고 그들의 집을 무너뜨림으로 자신의 집이 무너졌음을 알리고자 마음 먹는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줄곧 피가 흐르고 비명이 이어진 비극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양 터전에서 이어지는 비참함에 의식적으로 비대칭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를 알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은 불꽃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국에서 먼 땅의 비참한 냄새를 맡으며 한다.
2023-10-17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2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사건의 지평선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 아스라이 하얀 빛 /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 새로운 길모퉁이 /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출처 - 대학신문 가수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매우 어려운 물리학 용어를 노래 가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놀랍다. 예술의 경지라고 부를 법하다. 사건의 지평선은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공간의 영역의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사건의 지평선에는 블랙홀 주변의 사건의 지평선과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네이버지식백과)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경계를 왜 물리학에서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지칭했을까?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는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며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라고 애절하게 표현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은 무수히 많은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많은 관계와 사건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원 참사 1주기와 너무 멋진 가을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이태원참사는 있어서는 안될 사건, 159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진 사건이다. 이런 사회적 참사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붙은 이유는 사회적 원인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동아일보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고 오랜만에 할러윈 축제가 열린 공간에는 수많은 군중이 밀집할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수 군중의 원활한 흐름을 아무도 통제하지 못해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몇 시간 전부터 그곳에 머물렀던 시민들의 심각한 경고와 호소가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지 못했다. 결국, 이태원참사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정부의 부재, 행정력의 외면으로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 드러났다. 사회적 참사는 그 사회 공동체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이웃과 가족에게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그런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사 이후, 용산 시민사회 공동체의 노력 작년 10.29 이태원참사 이후 용산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1029이태원참사추모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용산시민행동’이라는 연대단체를 꾸렸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용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젊은 청춘들이 모이는 축제의 공간, 해방의 공간이기도 하다. 너무도 익숙한 공간에서 참사가 발생했기에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지킴이를 일요일마다 해 왔다. 녹사평역 부근 분향소에서 시작해 지금은 시청 앞 분향소에서 진행하고 있다. 또 추모 문화제와 현수막 게시, 유가족간담회 등을 비롯해 유가족협의회의 활동에도 결합해왔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퇴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세 달 사이에 2천 명 가까운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고 구속되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6월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보석 석방되어 용산구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용산구청의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매월 한 차례씩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재판이 있을 때마다 유가족들은 법원 앞에서 “구청장 자격 없는 박희영은 사퇴하라”라며 울부짖었다. 159명이 죽었는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사회적 참사가 왜 계속 반복되는지를 바로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용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형사 처벌을 제대로 받고 그 사퇴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이 많기는 하지만 주민소환 운동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다.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 이태원참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기억과 안전의 길’을 조성하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렇지만 기억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바로 투쟁하는 일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제정되고 생명안전기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매우 험난한 투쟁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항상 그 징후가 발견된다. 누군가는 그 징후를 경고하고 해결을 하라고 촉구했다.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조치했다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참사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말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가 만지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믿음과 희망으로 시민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우리,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2023-10-11 | hrights | 조회: 386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