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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한일 관계 정상화와 못 다한 문제들(전예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8-22 17:32
조회
258

전예원/ 회원 칼럼니스트


 한국과 일본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요즈음이다. 지난 4일 도쿄에서는 양국 정계 인사들로 이루어진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 간 합동간사회의가 열렸으며, 같은 날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는 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 차 만난 박진 외교부장관과 일본의 하야시 외무상 간 양자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만남에 ‘호응’과 ‘협조’와 같은 수사를 덧붙이는 헤드라인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혐한-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3년 전의 이맘때와는 상반된 분위기를 체감한다.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반목하던 양국의 입장이 연일 기사화되었고, 이는 곧 민간의 이례적인 불매운동으로 번져 상점가에 'NO JAPAN' 표식이 줄을 잇는 현상마저 나타났기 때문이다.

출처 - 한겨레 (중구청 제공)


 국가 간 경제 갈등이 조속히 처리되지 못하고 국민적 반향으로까지 이어진 까닭은 무엇이었나. 개인적 경험에 비추었을 때, 수출문제를 대하는 양국의 의견차가 쉽사리 좁혀지지 못한 데에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한일 간 갈등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2019년 여름, 대학생민간교류단체 활동에서 일본의 학생들과 수출규제 조치를 주제로 토론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 측 학생들은 일제의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청구에 대한 보복조치를 수출규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이에 반해 일본 측 학생들은 수출규제가 강제동원 문제와는 무관하며 북한을 의식한 안보정책이라는 입장이었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핵 제조의 재료가 되는 물자가 여러차례 무단 반출된 정황이 포착되었기에 정당한 조처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한-일 사회에서 지배적인 여론과도 상당 부분 유사한 해석이었고, 토론이 진행될수록 해결방안의 모색이 요원해보였다.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 차에 기인한 논쟁이 반복되었고, 평행선을 걷는 듯 접점을 찾기 어려운 주장들만이 오갔기 때문이다.

 논쟁의 중심에 놓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역시 토론을 어렵게 했다. 2018년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의거하여 일본 회사의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한 한국 측 입장과, 이미 두 차례의 외교 합의를 통해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일본 측 주장이 대립했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각국의 주장이 식민지 역사 청산에 있어 합의와 보상의 완결 여부를 두고 오랜 시간 갈등해 온 양국 관계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다.

 실제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문제의 명확한 타개책을 찾지 못한 채 새 정부가 들어섰다. 현 정부는 유세 과정부터 당선 이후까지 ‘한일 관계 개선 본격화’를 내세우며 이전 정부와의 단절을 꾀했고, 그 결과 출범 이후 3개월 간 네 차례 회동을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던 3년 전의 여름이 무색하리만큼 한일 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는 행보다. 한국을 향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여전히 유효함에도 말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청구 문제도 대중의 관심에서 자연히 멀어진 것 같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2018년의 판결을 뒤집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려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나, 이 같은 변화는 이전만큼의 관심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외교부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약속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외교부와의 신뢰 파기를 이유로 민관협의체를 탈퇴하여 ‘당사자 없는’ 협의체에 그치고 있다.

 현 정부가 의도하는 대화와 협의를 통한 양국 관계 개선은 환영해 마땅한 일이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결로 남은 수출규제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들 구명의 문제를 끌어안은 채 이루어지는 화해와 협력은 반쪽짜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해결되지 못한 이전 과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명확한 해법이 동반되어야 한다. 양국 간 화해와 협력은 피해당사자를 배제하고 이루어지는 합의와 보여주기 식 외교를 지양하고, 국내외 여론과 반향을 적극적으로 의식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해당 칼럼은 8월 9일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