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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제가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김태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28 10:02
조회
144

김태민/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7일 국가재정회의에서 긴축재정 기조를 예고한 정부는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13일에 경제형벌규정 TF 출범 공개회의를 열었다. 경제형벌 규정을 없애거나 행정제재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친기업적인 정책을 공표한 정부는 18일에 대우조선하청노동자 파업 강경 대응에 나선다.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노조활동”으로 규정하고 총동원령을 내리듯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노동 단속을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국가와 자본의 승리를 선포하려는 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새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법인세·보유세·상속세·증여세 완화, 공공기관 긴축재정, 공공기관 민영화, 경제형벌의 비범죄화, 실질임금 삭감을 위한 파업 강경 대응 등등. 목록은 더 이어질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은 새 대통령의 존재감이 국정운영에 온전히 체현되기 이전부터 동시다발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 Madote, Neoliberalism and African Development


 분명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이전 행보와는 다른 속도감을 보여준다. 내각 인선 실패에서 사적 채용 논란까지 현 정부는 국정운영의 절차상의 문제에서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제법, 노동법 개악, 노동운동 분쇄에 있어선 이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 번 더 놀라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정부조직이 민생 대책에 무능해도 자본계급을 위해서는 없던 능력까지 끌어 모을 수 있구나. 지지율에 연연치 않고 국민만 보겠다는 대통령의 말에서 그 ‘국민’은 서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포함하지 않는구나.

 이런 깨달음은 다음과 같은 의심으로 이어진다. 혹시 정권의 배후에 공화국 시민의 요구는 적극 배제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도록 사주하는 외부 권력이 있지 않을까? 그들이 국가의 숙제를 ‘대신’하느라 민생대책이 좌초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물음을 좇아가다 보면 재벌기업가와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멸콩”이라는 텅 빈 구호로 한 몸이 되었던 지난 대선 때를 떠올리게 된다.

 7일과 13일 양일간 확정된 긴축재정과 경제형벌의 비범죄화는 단순히 경기부양에 관한 사실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시장의 자연적 회복 능력과 자기 완결성을 호소하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노동 탄압이라는 정치적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대우조선하청 파업 사태에서 이를 목격했다.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방향성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으로 하청노동자의 쟁의를 분쇄해야 하며 손해배상소송으로 노조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제 아무리 시장의 자율성을 운운하며 경제정책에 과학적인 외피를 휘두르고자 한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정치적인 스캔들이다.

 경제는 정치라는 이 한 마디에는 굴곡진 노동체제의 역사가 묻어있다. 오래도록 예속되고 탄압받아온 노동의 역사는 서민을 질식시키는 ‘그 경제’가 경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가 아니라고 증언한다. 비정규직, 하청, 불안정, 특수고용, 그림자, 밑바닥 노동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사는 최선의 선택지가 아님에도 ‘그 경제’ 속에 살아가도록 강제된 정치적인 경험의 과정이었다. 국가는 민간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공언하지만 노동자들은 공권력의 겁박과 법률적 위협 속에서 일해야 하는 역설에 직면해 왔다. 이 역설은 착취적이며 불균등한 사회관계를 기초로 한 실재로서의 경제와 완전무결한 시장의 항구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의 대립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가 감세 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 여력을 확대하고 긴축재정으로 잠재적인 재정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할 때 ‘경제정책’은 전문가들의 영역에나 속하는 고도의 기술 따위로 여겨진다. 이때 경제라고 함은 상품이라는 사물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자연법칙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고 그런 까닭에 경제 전문가들이 국민을 대표해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경제 정책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윤리로 여겨진다.

 혹여나 특정 경제주체에게 불리한 경제적 조치가 취해진다면 이는 경제의 총체적인 흐름 속에서 대의를 위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살기 위해 임금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귀족노조 이데올로기의 논리는 이런 맥락 속에 놓여 있다. 경제 법칙에 순응하는 태도는 자기완결적인 자연법칙에 대한 과학적 태도로서 ‘문명적’ 삶의 기초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이런 이해는 매우 편향적이다. 경제가 자기 자신을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그 ‘경제’로 정당화하는 과정이 순전히 정치적이고 계급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와 실재로서의 경제를 분간해야 한다. 실재로서의 경제는 경제침체를 눈앞에 두고도 감세조치가 기업 투자를 확대하리라는 신화적 호소에 기댄 새 정부의 부자감세의 환상을 과감히 횡단한다. 이를 통해 기업 투자 없는 부자감세가 실은 특정 계급의 이윤축적을 위한 정치적인 대책임을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는 잠재적인 재정위기에 대응해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할 것을 호소한다. 하지만 실재로서의 경제의 시선에서는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면서도 부자감세를 추진하는 정책이 계급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게다가 긴축재정이 삶의 질적 저하에도 불구하고 균일한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사회보장의 손길마저 차단한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부유해지는 사람 따로 가난해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 셈이다. 가난해지는 자들은 더욱 굶주리고 더 많은 노동력을 갈취 당한다.

 이처럼 정부가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을 강화할수록 노동자들의 고통이 가중된다. 이 암울한 상관관계는 기업과 초고자산가의 명분 없는 이윤 축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는지를 입증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에 따르면 새 정부는 보유세 완화로 50억 다주택자에게 연간 6000만원의 절세 혜택을 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정부가 시행하거나 예고하는 경제 조치는 기업인들 또는 초고자산가들의 수익을 위한 사회적 관계의 조정일 뿐이다. 시장의 자연적인 회복력이라든가 민간 주도 성장 신화를 운운하며 경제 정책의 본질을 흐리려 하더라도 착취적이고 비용 전가적인 힘의 논리가 새 경제 질서를 관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경제가 정치적인 적대와 모순을 통해 운행됨을 망각해선 안 된다.

 경제형벌의 비범죄화는 어떤가? 기업범죄를 친히 사하여 주는 정책이라 하니 아무래도 이제 시행 6개월차 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업살인’을 저지르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실형을 살 수도 있다는 당연한 논리 앞에서 중처법을 개악하자고 난리법석을 벌인 끝에 ‘경제형벌의 비범죄화’에 이르게 되었다. 국민의힘 친윤계 국회의원들은 중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 경제형벌의 비범죄화를 앞두고 산업안전보건에 대해 강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중처법 개정안은 법무부의 안전인증을 받으면 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형벌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법원에서 양형 참작 사유를 판단하기도 전에 형벌이 감면된다니 이건 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법무부에서 안전인증만 받으면 미래의 산업재해 리스크에 대해 선제적으로 형벌 감면을 보장해주는 것은 보험 상품의 회계학적 논리와 닮았다. 미래의 산업재해 리스크를 현재화해 안전인증을 위한 얼마간의 자본을 투자하고 이로써 안전보건인증을 취득할 경우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손해를 보전해주는 게 보험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물론 기존의 타 안전인증제도가 그러했듯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안전인증의 요건은 기업의 투자 여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구색 맞추기 식의 안전보건 인증서류로 채워질 것이고 그렇게 안전보건체계의 의무는 한없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형벌의 비범죄화와 긴축정책 기조가 도저히 규제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 되면 중처법 개정안은 중처법의 보험 상품화라고 일컬을 수 있을 듯하다. 기업살인에 대한 형벌을 고심하며 설계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의 리스크를 보전해줄 상품을 만들고 있던 셈이다. 형사처벌만큼 공정해야 하는 절차도 없을 것인데 공적 기관이 형벌 집행을 사유화해 처벌을 받지 않는 특권계급을 창설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축적에 내재한 위협을 시공간적으로 분산시켜 주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이번 개정안은 노동자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법무부의 인증을 받으면 산업재해에 따른 형사적 책임이 감경 또는 면제되는 예외적인 공간이 전국에 선포되고, 노동자의 신체에 대한 형사법적 진공상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결국 미래의 산업재해 리스크와 공적 기관의 안전 인증이 거래되는 순간 노동자는 잠재적으로 죽거나 다치도록 내버려진다.

 죽도록 내버려진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기업형벌의 행정 규제화와 긴축정책 때문에 산업안전보건 법률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도록 내버려진 역사는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teve Tombs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더 나은 규제’와 ‘긴축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정부 예산을 삭감한 바 있고, 그 결과 규제 감독관의 수, 근로감독 건수, 기소 건수, 유죄 선고율이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어느 규제 감독관은 이를 “공중 보건의 위기”로 표현했다는 면담 내용도 등장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국가 권력은 특권 계급의 요구에 따라 형벌의 진공상태를 명령하고 죽거나 다쳐도 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억압적인 국가 장치는 결코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제할 때라야 주권 권력이 기능할 수 있는 탓이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노동하는 신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권을 박탈당한다.

 이처럼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국가 장치들이 사유화되고 있는 움직임은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대통령실, 여당 국회의원, 검찰, 법무부 등 국가기구들은 발 벗고 나서 민생을 옥죄는 방안들을 고안하고 집행한다. 기업의 예상 수익률이 떨어져 기업투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부자감세를 시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민생을 옥죄고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긴축재정과 경제형벌의 비범죄화를 단행한다. 이제는 실질 임금 삭감을 정당화할 요량으로 노동계 단속에 나섰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그 목표의 첫 번째 표적이다.

 민생 안정에 무능하고 민생 탄압에는 유능한 정부는 앞으로도 선택적 공정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여러 분야에서 비전 부재와 메시지 실패를 보여주다가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에는 발 빠르게 강경대응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정부가 공권력의 사유화에만 집중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억압적인 국가 기능에 기대어 국정을 운영하려는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초반부터 신선함이 전혀 없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국가가 그저 억압할 뿐이라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예상대로 ‘올드 보이’들은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전 정부에 대한 비토 정서만으로 탄생한 정권이기에 무엇을 기대하겠냐고들 하지만 경제 전반이 사유화되고 있는 현실을 버티는 건 너무 고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