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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처럼 흘러라, 너와 나의 삶을 바꿀 때까지 (이상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52
조회
303

이상욱/ 청년 칼럼니스트



한 달에 한 번,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수십여 명의 학생들이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노고를 같은 처지에서 느껴보기 위해서 새벽5시에 학교 건물 곳곳을 청소한다. ‘단 한번만이라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활동이 ‘상쾌한 아침’으로 이어져 오기 벌써 몇 해, 이제는 함께 일하고 밥도 지어먹으면서 청소노동자들과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인연이 ‘상쾌한 아침’으로만 맺어진 것은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생활 가능한 임금, 그리고 원청인 학교의 사용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싸웠던 2009년 말과 2011년 초에 많은 학생들이 힘을 보탰다. 등록금 인하 운동에서 받은 서명의 몇 배에 달하는 ‘청소노동자 투쟁지지’ 서명의 수는 대학생인 나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다. 게다가 차가운 아침이슬을 맞으면서 굳이 새벽 청소를 하고 청소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그 마음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록금 1000만원 시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의 담론에 둘러싸인 채 ‘불안’과 ‘경쟁’의 20대를 보내는 오늘의 대학생들이 과연 무슨 마음으로 그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저 열위에 있는 약자에게 보내는 연민일까.


선배의 선배들에게서 전해지는 구전 설화 같은 이야기지만, 한때 대학생이 ‘사회발전의 선도세력’이자 ‘민주주의의 선봉대’로 수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선진적인 지식을 획득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대학생들이 이 나라의 선두에서 사회의 개조를 이야기하고, 불우한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연대’해야 한다는 담론은 바로 그 시기의 좌표였으리라.


언제 대학생이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쥔 적이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 자원을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정신적 풍요를 누리며 신념에 찬 길을 걸어가던 한국사회의 길잡이들이 있었다. 그러한 우리의 대학생 선배들이 있었다. 고통으로 피워낸 전태일의 불꽃이 어두운 한국현대사의 오밤중을, 아니 그 밤중을 헤매고 있던 장삼이사들의 깜깜한 가슴 속을 밝힐 때, 그들이 절실하게 원했던 ‘대학생 친구’들이 분명히 한국현대사의 현장에 살아 있었다.



88만원 시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사진 출처 - 시사IN



민주광장, 불안의 메아리에 잠기다

그렇다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사회민주화의 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정치적 연대를 도모한 것이었나? 솔직히 말하면, 그야말로 서로 위안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대학생은 더 이상 힘차게 사회의 진보를 외치는 선봉장이 아니다. 직선으로 뻗어있는 투명한 진보의 전망을 맨 앞에서 가리키는 존재가 되기에, 너무 불우하다. 높은 등록금과 만성적인 청년실업, 무엇보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불안’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생존’에 대한 갈망에 1분 1초의 흐트러짐도 없이 접속해 있다.


이제 민주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열망의 언어’가 아니라 불안의 메아리이다. 대학생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정치적 약자이며, 경제적 불안 위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경제적 약자이다. 뿐인가. 종로에선 ‘경쟁력’의 논리에 뺨맞고, 한강에선 화풀이도 못한 채 ‘정치적 무뇌아’로 무시 받는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렸다. 만약 오늘의 대학생들이 타인의 아픔에 ‘연대’하고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대안에 대한 확신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소박한 공감과 연민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을 패배적 논리의 좁은 방에 가두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대학생은 여전히 가능성의 존재이며, 자신을 둘러싼 거센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잠재력의 주인공이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설령 ‘연민’에 불과할지라도, 이들은 연민을 ‘연대’로 제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루 종일 할 일로 꽉 찬 다이어리를 비집고 겨우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은 비록 그것이 사소한 연민과 미완성의 공감에 불과할지라도, 세찬 강물을 예비하는 가느다란 시냇물이 될 수 있다. 작은 마음에서 출발한 자기회의와 성찰의 진통이 더 큰 공감으로, 세상을 바꾸는 단단한 ‘연대’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경쟁에 내몰리는 자신의 삶에 물음표를 가질 때 이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성공’의 수사들이 무책임하게 건네는 격려에도 불구하고 척박하고 건조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자신이 연민할 만큼 더욱 질척거리는 자리에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살아가는 청소노동자들의 하루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지친 하루를 그들의 고된 노동이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희망은 가까운 터전에서부터


다만 희망의 물 한 동이를 가까운 우물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고 믿을 뿐이다. 멀리 있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기는 쉽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자기 손톱 아래의 가시만큼 절박하게 아파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청소노동자의 노고에 감사하고, 직접 듣는 고된 현장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훨씬 쉽다. 쉬울 뿐 아니라 절실하고 그 절실함이 클수록 생활의 단단한 관성을 파고드는 더 날카로운 반성이 가능하다.


‘88만원 세대’의 이름표를 달고 ‘1000만원 등록금’에 사로잡힌 젊음들에겐 그 의심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자’라거나 ‘권력을 교체하자’라는 드높은 외침은 손쉽지만 공허하고, 그만큼 위험하다. 그 외침을 처음 낳은 인간적 감수성과 작은 염치의 마음을 압도해버리기도 하는 까닭이다. 맨 처음 우리가 출발한 작은 터전을 잊게 하기도 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대안을 강변하는 완강한 주장은 너무나 먼 휘발성의 구호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것은 바삐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학생들의 범속한 욕망을 세워 돌릴 수 없고, 이들의 두려운 마음을 설득할 수 없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꿈이 고파서였는지 굶어죽은 젊은 작가의 비운을 온전히 아파할 수 없다. 150원 오른 교통비에 한 달 생활비를 다시 계산하는 복학생의 고민을 가까이서 나눌 수 없다.


의심 없는 눈빛보다는 친절하게 서로 위안할 수 있는 관심이 마침내 가공할 자기검열의 틈을 비집고 죽비처럼 자신을 내리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적 감수성마저 지그시 밟아버린 채로 20대를 옥죄는 거친 포위망을 격파하고, 우리 시대의 젊음을 낙인찍는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의 비굴한 명찰을 떼어버리는 세찬 강물의 수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젊은 5월을 위하여


다시 5월이다. 이 땅의 4월은 혁명의 기억으로 경건하고, 유월엔 항쟁의 긍지로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5월은 ‘광주’의 상처로 아프고, 아픈 만큼 날카로운 신념을 단련해내기도 하였다. 그것이 우리 현대사를 만들어온 젊은 5월이었다. 젊은 5월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온 청춘들은, 이제 새로운 세기의 숨 막히는 도시에서 무엇을 모색해야 하는 걸까.


부도덕한 권력을 바꾸겠다고 나선 진보정당이 ‘비민주’의 주홍글씨를 새긴 채 속절없이 상처입고 있는 지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모든 꿈이 어디서 잉태된 것인지를 기억하자. 정의로운 권력과 올바른 정치에 대한 열망 그것은, 실상 자신과 주변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피로한 20대들이 같은 처지의 누군가와 주고받는 한 마디의 위로와, 어린 새처럼 연약한 자기 회의가 마침내 젊음을 젊음답게 하는 한 발자국이 될 거라 믿는다. 그 작은 우물에서 시작한 물이 흐르고 흘러 현실을 바꾸는 강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날은 정말이지 아주 ‘상쾌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