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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멘토라는 신기루 (최수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5:18
조회
294
최수범/ 청년 칼럼니스트

치열하고, 힘들고, 기다리고, 노력해야 한다. 바로 청춘 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멘토의 말을 듣기 위해서 다양한 청춘 콘서트에 몰려간다. 청춘 콘서트는 문전성시고, 청춘을 말하는 책은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멘토의 트위터 글 한줄에 수많은 청년들이 열광한다. 청춘을 향한 치유와 멘토링이 시대적 사명이 된 듯하다. 그들이 하는 조언은 대부분 비슷하다. 조금 지난 유행어로 말하자면 “내 안에, 너 있다” 정도 되겠다. 나는 너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는, 너와 나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위로의 말이다.

대표적인 멘토인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는 저자 스스로 핵심을 짚어준다.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들은 모두 큰 지식을 얻고, 큰 책임을 느끼고, 큰 꿈을 꾸라는 뻔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저자는 청춘에게 가난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이 가난이 미래를 위한 아름다움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가난은 사회구조적이고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 저자는 순진함을 넘어서 황당하게 느껴질 만큼 이 현실을 모른다.

그는 일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소득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직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택할 것을 조언한다. 지금 불합리함을 참고 기회를 노리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에서 ‘열정노동’(너희들은 원하는 일을 하니까 저임금을 받아도 참으라는 논리)을 착취하는데 공모자로 작동할 뿐이다.

꿈을 위한 열정 앞에 돈은 불경스러운 것이 된다. 그는 ‘학창시절에 과외로 너무 많은 돈을 벌어서 오히려 나약해졌다’는, 지금 청년 세대들에게는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책 속에서 상담한 학생들은 학벌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축에 속한다. 등록금에 허덕이며, 학벌의 낙인 때문에 줄줄이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지방대생은 빠져 있다. 저자가 위로하는 '대학생'은 ‘실제의 대학생’을 대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청년들은 자신을 위한 이야기인 듯 감동한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8월 말 기준으로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법륜 스님의 청춘 콘서트 ‘즉문즉설’에 수많은 청년들이 몰린다. 스님 멘토가 말하는 치유와 소통은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스님은 불교의 성직자로,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에서 빗겨나 있다. 그들은 청년들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 매몰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마음을 비우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불화와 화합하길 권한다. 사회구조적 개혁 대신 자신의 성찰로 고난을 극복하고, 사태에 초연한 초인이 되길 주문한다. 이때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스님 멘토의 조언은 현실의 살인적인 경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의 청춘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강요당하고, 경쟁에 승리하길 요구받는다. 패자부활이 매우 힘든 사회에서 낙오는 곧 나락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등록금 고지서와, 수많은 서류전형 탈락 통보 페이지와, 학자금 대출 상환 통지서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멈추면 안된다.

그래서, 스님 멘토는 역설적으로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보수주의와 결탁하고 있다. 그들의 조언을 가장 반길 사람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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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또 한편으로는 청년세대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너희들이 잘못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는 응원형 멘토가 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는 “<88만원 세대>를 통해 청년세대가 변화하길 바랐지만, 오히려 청년들이 움직이지 않을 명분을 주었다”며 얼마 전 절판을 선언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청년세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필자는 88만원 세대를 읽고서 진보정당에 가입했고, 청년문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책이 출간된 후 청년유니온이 설립되었다. 청년유니온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주휴수당 문제를 제기했고, 문제를 해결했다.

그 스스로 창당 발기인으로 참석한 청년당 창당식에서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석훈의 심정변화(?)에는 ‘20대 개새끼론’적 사고가 엿보인다. 20대 개새끼론은 20대의 반성을 촉구하는 기성세대의 논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보수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하지도 않으면서 사회에 불만만 많은 젊은이를, 진보 입장에서는 사회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으면서 취업과 학점 등 개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를 비난한다.

이들은 20대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계몽을 요구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총선에 패배하자 낮은 20대 투표율을 두고 욕을 한 것도 비슷하다. 총선 전에는 청년들에게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며 사랑고백을 해놓곤! 가혹하기도 하셔라! 그들은 자신의 이념을 위해 청년세대를 이용할 뿐이다. 응원은 응원이 아니다.

멘토가 위로하는 20대의 서사와 환경은 각자 다르고, 가치관과 세계관도 모두 다르다. 질문시간에 잠깐 자신의 상황과 고민을 설명하고, 멘토가 자신의 서사와 가치관을 다 이해해주리라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사실 멘토는 멘티의 서사와 가치관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경험과 윤리가 진리인 양 조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전하라고 말한다. 도전했다가 망하면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실패가 경험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도 않았으면서 무책임하다.

청년 세대도 반성해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온 기나긴 서사를 쉽게 폐기하고, 멘토의 즉흥적인 대답에 깨달음은 얻었다는 것은 스스로 성찰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이 땅의 20대는 아이돌이라는 멘토 앞에 팬심을 불태우며, 시대를 고민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척 코스프레를 한다. 아니, 자신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이 절망의 코스튬을 단호히 찢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멘토가 만든 이 기만적인 매트릭스에서 깨어나야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이야기는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열악한 상황 속에 체조 유망주를 방치한 사회가 껴안아야 할 부끄러움이다. 1등이 되지 못하면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데도 도전을 강요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멘토는 청춘이라는 단어 안에 온갖 낭만을 집어넣고, 진통제가 치료제인양 약을 팔고 있다. 이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 싸워야 한다.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멘토가 아니라 꿈이라는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생태계다. 하지만 멘토들은 생태계에 관심이 없다. 멘토는 비슷한 말을 반복하며 우쭐해하고, 멘티의 존경은 아이돌 가수를 향한 팬심처럼 가볍게 남발된다.

멘토라는 신기루는 생태계를 사막화하고 있다. 이제는 허황된 신기루에 눈길을 주기보다 생태계를 키우고 지켜나가는데 나서야 한다. 이 생태계가 꿈을 따듯하게 품어 줄 수 있을 때, 멘토는 자연스럽게 필요 없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