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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평범한 날들을 향해 함께 걸어요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9
조회
286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또로롱'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날도 평범한 어느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속보라며 알림을 하나 보여 주었다. '법원, 쌍용차 해고 노동자 47억 배상 판결'. 지난 해 11월, 나의 평범한 일상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었다. 47억? '해고'된 사람들한테 47억이라고? 나는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노동자라 할지라도 평생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도 보기 힘들 액수였다.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여러 말이 오갔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었다. 그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수많은 분노와 한탄의 목소리가 가득 가득 공간을 메웠다. 동시에 이런 살인적인 판결 앞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기력함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시사IN>에 4만7천원이 담긴 편지가 도착했다는 기사를 하나 보았다.

47억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공감한 평범한 노동자의 가족이 보낸 그 편지는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 나가고 있다. '노란봉투' 프로젝트라고 불리게 된 이 사연에 마음이 녹아든 사람들은 다양했다. 해고 노동자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가족들, 청년들, 그리고 나와 함께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했던 친구들도 10명이 4700원씩 갹출해 4만7천원을 만들어 이 노란봉투에 참여했다.

2월 26일,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출범식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자원 활동을 하러간 그 곳에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때문에 분신했다는 것을 알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음을, 이 짐은 무겁다 못해 한 가족을 파괴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있음을 더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는 노조를 향한다. 그리고 이 손해배상청구의 근거는 '불법파업'이라는 딱지가 가장 앞에서 총대를 메고 노조에 총질을 해댄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올해 2월, 사측의 해고 조치는 부당하며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물론 사측은 예상대로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를 한 상태다. 이와는 별개로 이들의 '불법'파업 사실은 여전하고 가압류도 여전하다. 사측의 부당한 해고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법'파업인데도 말이다.

애초에 '불법'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헌법에도 당당하게 보장되어 있다. 지난해 말, 올해 초에도 있었던 철도노조의 파업과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일부 언론과 사측, 정부가 '불법'파업이라는 낙인을 찍어 노조의 단결을 방해 받기도 했다. 이 '불법'파업이라는 단어는 노조의 결사권을 해치는 대표적인 무기다. 합법적인 파업은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만을 위할 때 성립 가능하다. 다른 시민들을 고려하는 이타적인 파업, 가장 가까운 예로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파업에 나섰던 철도 노조의 파업은 이타적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불명예를 입어야만 했다.

'불법'파업은 차치하고서라도, 말도 안 되는 손해배상청구액도 문제다.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자의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헌법에서도, 노동조합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파업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는 오로지 합법파업일 때에만 가능해 보인다. 손해배상청구의 주체도 사측만이 아니라 경찰까지 합세해서 노동자와 노조의 목을 옭아매고 있다. 특히 청구액은 실질적인 손해액 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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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시사인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해배상청구액은 수십억대가 넘는 금액들이다. 노동자들이 평생 벌어 모아도 구경도 못 할 돈을, 무슨 수로 내놓으라는 것일까. 이 표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죽으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쟁의를 하면 자꾸 불법이라며 괴롭히려 든다. 이럴 때는 정말 '있는 것들이 더 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불법'파업, 시민 불편 초래 등등의 오명으로 얼룩져 있던 노동자와 노조에게 그동안 잠잠했던 시민들이 하나 둘 손을 내밀고 있다. 가족, 노동자, 해고, 아이.. 이 단어들은 민영화, 공공성, 판결 등의 어떤 단어들보다 사람들의 가까이에서 마음을 토닥였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도 미래의 노동자로서 조금이나마 공감하려고 노력 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어둠 속에서 작은 변화가 움트는 것이 보인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다. '손잡고' 함께 걷고 싶은,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거대 자본과 권력 앞에서 나 한 사람은 무기력해 보이고, 또 나 자신이 무기력함을 느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처럼 이렇게 함께 하는 마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이렇게 정말 10만 명이 모인다면, 손해배상액만 갚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당한 손해배상 제도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도, 시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봉투와 함께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모금이 아닌, 분노하고 있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치유가 아닐까.

나도, 우리 가족도, 이웃도, 그리고 손배가압류에 지친 노동자들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낼 날들을 꿈꿔 본다.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