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나라님 일동 전성시대 (김원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0
조회
259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화장실에서부터 기분이 영 아니다. 어차피 반복되는 일이다. 신문을 훑는다. 1면, 2면, 3면... 꼬깃꼬깃 신문을 접는다. 그리곤 아침부터 힘을 내고 있는 환풍기를 바라본다. 뭐가 그리도 신나기에 요란하게 돌아가는 걸까. 신문은 환풍기의 날처럼 뾰족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경질적이다. 갈등과 논란, 첨예함이 지면을 지배한다. 어떤 점에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예술가다. 이 예술가에겐 천적이 있다.

예상 가능한 바, 대통령 이하 행정부다. 대한민국 행정부는 힘이 세다. 원래 셌다. 그런데 더 세졌다. 대통령도 힘이 세고 공무원도 힘이 막강하다. 흐름이 그렇다. 문제는 ‘문제’가 드러나 곳곳에서 ‘문제제기’가 된다는 데 있다. 상식이 대표적이다. 체제안정에 힘 쏟는 국가교육이 가르쳐준 지식체계인 보수적인 ‘상식’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에 어리둥절해한다. 이를테면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같은 것.

법치주의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법치주의란 국가의 행정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하여 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여 사법처리하겠다는 어느 정부의 엄포는 엄격히 말해 ‘법치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법치주의’는 고대 정치 사상가들이 말한 군주 시대의 ‘법가’에 가깝다. 법가는 주로 형법과 신상필벌에 의존한, 지금으로 따지면 공안 통치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헌법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또 의문이 든다. 백번양보해서 정부의 통치를 ‘법치주의’라고 인정하자. 그렇다면 법치주의는 옳은가. 대한민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규정한다. 견제와 감시, 협력의 매커니즘이 작동(해야만)한다. 행정부가 ‘법치주의’를 들고 나올 때, 행정부는 엄연히 사법부(검찰을 포함한) 위에 군림한다. 법치주의의 작동은 모든 형법조항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호출된 몇 개의 법 조항만이 서슬 퍼렇게 눈을 번쩍인다. 정부는 사법부를 휘두르고 사법부는 다시 법을 주무른다. 정권의 시녀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법, 엄벌, 일벌백계, 처벌 따위의 단어가 세상을 부유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법은 무력하다. 대학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젊은 강사는 분노한다. “우리나라는”하고 그가 말했다. “한 번도 68시간이었던 적이 없어요.” 정부와 여당이 주당 최고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노동법의 입법취지의 핵심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휴일 그리고 근로시간 외에는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기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법과 판례는 주당 최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한다. 행정부는 다르게 해석한다. 법과 판례 따위는 우스개다.

행정부는 행정해석을 내린다. 그래서 68시간이다. 그러나 행정해석은 ‘법원’, 그러니까 판결의 근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68시간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68시간과 52시간에는 16시간이라는 간극이 있다. 여기서 16은 8과 8의 합이다. 앞의 ‘8’은 토요일의 8시간을, 뒤의 ‘8’은 일요일의 8시간을 의미한다. 16시간이 법적 테두리에 들어오면 기업은 추가,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8시간과 8시간이 정규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추가근로수당을 노동자에게 줘야할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전경련 산하 기관일지도 모른다.

의문은 이제 얽히고설켜 뫼비우스의 띠가 되었다. 통상임금은 어떻게 됐을까. 법원의 판례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행정부의 수장은 통상임금 문제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결해보겠다고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말했다. 법이 지켜야할 자리는 이렇게 또 하찮아졌다. 통상임금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각종 가산임금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자연스레 연장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가산임금도 높아진다. 연장근로수당의 산정 기준은 ‘통상임금’이다. 대통령은 노동자가 받을 노동의 대가를 8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의 투자와 맞바꾸려 한다. 투자가 곧 일자리인 시대는 이미 지났거늘, 여전히 투자가 우선이다.

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슬슬 의문을 멈추려 한다. 고용노동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통보했다.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외노조 취소 1심 판결까지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행정부는 따지고 들었다. 괘씸하다는 듯이. “법에 맞도록 시정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전교조가 고의적으로 법을 무시해 법치주의를 흔들었다는 게 정부 주장이었으나 법원은 다른 고려 없이 법외노조가 됐을 때 객관적 손해 유무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경향신문 11월 14일) 그 놈의 법치주의, 또 등장했다. 행정부는 자타공인 서열 1위다.


PYH2013120404760001300_P2_59_20131204133002.jpg
4일 오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수서발 KTX 분할 반대! 철도민영화 반대! 철도 외자개방 반대!
계 원탁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철도 민영화 반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안타깝게도 매조지어야할 의문은 정치인들에게까지 뻗쳐 나간다. 삼권분립의 한 축, 의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행정부와 사법부로 견제하고 있는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명목의 국정감사는 제대로 진행됐던 걸까. 정치혐오가 아니다. 분주히 뛰어다녔던 보좌관, 국정감사를 발판삼아 얼굴 한 번 알리려고 노력했던 정치인, 참 수고 많으셨다. 그러나 수고와는 별개다. 행정부의 방종을 제어하지 못한 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의회 탓이 크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통령 앞에 일동 차렷이다. 아무도 찍소리 못하고 있다. 여당, 야당 매한가지다. ‘닥치고 정치’의 호기로움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답을 구하지 못한 의문은 길을 잃었다. 아마 영원히 미로 속에 헤맬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비보가 들려온다. 대통령 이하 행정부의 ‘센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속보가 도착했다. 국회비준도 없이 정부주도로 철도시장을 외국자본에 개방한다는 안을 기습 의결했다는 소식이다. 더욱 씁쓸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위축돼 있다. 혹시나 유, 무형의 불이익을 받을까봐서. 정말 힘이 세긴 센가보다.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