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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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세계사 속 혁명’이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왜 서양의 혁명만 세계사 속 혁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수업의 거의 90%가 서양의 혁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창 <파농>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서구가 만든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의문은 커져갔다. 대학 강의뿐인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그 외의 혁명을 본 기억이 없다. 왜 서양이 아닌 곳의 혁명은, 이를테면 <파농>에 나오는 알제리 혁명은, 또 수많은 독립전쟁은 나오지 않는 걸까? 왜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서 우리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일까?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 취급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그대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것이 우리에게 내면화된 것이다. 서양의 혁명만을 혁명으로 박제하고 그것을 전시함으로써 그 외 것을 테러로 만들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일 때가 많다. 항상 우리에게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제 3세계에서 어떤 민족이, 어떤 나라가 무슨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알지 못한다. 서양의 합리적인 시민들은 혁명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혁명의 주체가 되면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객체가 되었다. 이들은 곧 식민지 시장을 개척했고 독립하겠다는 나라들을 탄압했다. 혁명의 국가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혁명의 진압과정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베트남에서 3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들의 저항만 혁명이었고 저들의 저항은 테러이고 진압해야하는 것이었다. 알제리 독립혁명 사진 출처 - 인터파크 ‘혁명의 박제’는 서양 이외 다른 국가들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더 이상 미국은 초기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혁명을 서술하고 역사화하고 보물처럼 숨겨두느라 그 정신과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일부는 그렇게 혁명이 빛을 잃기를 바랐다. 혁명정신은 이제 위험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혁명정신을 탐구하는 것보다 독립혁명 당시의 정신은 되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독립혁명을 촉발시켰던 중요한 문건인 <상식>에서 당대의 지식인 토머스 페인은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이고 이러한 평등을 깨 부시는 것을 빈부차별’이라고 말했다. 그에 준하는 차별이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신하처럼 대하는 차별이기 때문에 거기에 저항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빈부차별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 투쟁으로 만든 국가에서 호위 호식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뼈아픈 소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혁명의 정신을 박제시키지 않고 이어가려고 몇몇 리버럴한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혁명정신 발굴은 어디까지나 국내적인 것이다. 그들 역시 서구의 혁명만 혁명이라는 제국주의적 사고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박제는 깨부술지 모르지만 그것만을 혁명이요 하고 ‘전시함’으로써 여전히 다른 모든 것들을 테러의 위치로 규정한다. 사르트르 등을 제외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알제리 독립전쟁 때 냉담했는가. 그들뿐 아니다. 우리도 그들의 사고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웃나라의 살아 있는 혁명을 접하지 못하고 언제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하는 나라들의 혁명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게 마치 우리 것인 줄 안다. 그들이 용인하는 몇 가지의 투쟁만 겨우 인권운동에 반열에 오른다. 제도 밖에서 흑인해방을 부르짖었던 말컴 엑스보다 제도 안에서 조금 덜 급진적인 주장들을 펼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훨씬 더 많이 기억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제리 독립투사 파농은 덜 기억될 뿐더러 ‘테러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했다. 100만 명을 희생시킨 프랑스 군인들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교과서 밖에서 혁명을 찾아야한다. 서양의 혁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박제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수많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는 굉장히 주체적인 일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교과서를 볼 것이고(지루해서 그것마저 안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죽은 것들에 매달릴 것이다. 결국 나도 강의실로 돌아왔고 그 수업을 또 들으며 학점을 위해 하나라도 더 외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강의실에 편안히 앉아 서양의 박제된 그리고 전시된 혁명을 들을 때, 혁명이 되지 못한 그 많은 투쟁들이 조용히 내는 울음소리에 마음 한 구석에서 콕콕 이상한 소리가 난다.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1월 1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0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K가 학교에 천막을 쳤다. 때는 학교 가을 축제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캠퍼스 한 가운데 서는 디스코 팡팡과 바이킹이 떠들썩하게 운행됐다. 학생들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때다. 삼겹살 굽는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는 천막 옆에서, 에이드 값 흥정하는 소리가 쟁쟁한 천막 옆에서, K는 자리를 펴고 앉았다. 어느덧 한 달이 넘어섰다. K가 쓴 대자보 몇 장이 발단이다. 올해 초부터 학교 건물에 대자보가 붙여졌다가 떼어지곤 했는데 일이 제법 커진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몇 자 글로 풀어 쓴 게 전부지만, 게시 자체를 거부당한 적도 있다. 붙이고, 거부당하고, 또다시 붙이기를 수차례. K는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승인도장이다. 게시물 관리를 담당하는 학생회의 승인도장이 없으면 대자보는 떼어진다. 둘째, 분량이다. 그 어떤 생각도 전지 한 장을 넘어서는 안 된다. 게시판이 협소하기 때문에 전지 한 장 이상의 대자보는 타 학생들의 표현할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셋째, 정치적이거나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서는 안 된다. 학내 구성원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이 학생회의 입장이다. 마지막, 학생증을 제시해야 하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자보에 명시해야 한다. 소개팅에서나 요구할 법한 개인 정보를 무슨 이유로 꼬치꼬치 캐묻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실제로 학생회가 내뱉은 말들이다. 비록, 불법일지라도. 후배 K는 학교 도서관 앞에 천막과 간이 게시판을 세웠다. 사진 출처 - 필자 학생(학생회)이 학생(K)을 검열하는 아이러니는 학교의 교칙에서 태동한다. 학생들이 게시물을 부착할 땐, 학교의 권한을 위임받은 학생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행여 무분별한 게시물이 학교의 미관을 해칠지도 모르니,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리’라는 이름이 K의 입을 가로 막았다. 어찌됐든 그 관리 덕에 학교 게시판에는 기업의 홍보 게시물만 덕지덕지 남아 있다.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 게시물부터 새로 출시된 자동차 광고물, 학원 홍보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학교는 언제나, 참으로 조용하다. K는 사실,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자보가 떼어지는 순간에도, 천막을 치는 순간에도 학교의 눈치보다는 학생들 사이의 눈총이 따가웠을 터다. 악의적인 비난과 불편한 시선 가운데서 K는 묵묵히 천막을 지켰다. 다만, 서로 제 할 말 조금씩 내뱉으면서 시끄러워 지자고, 적어도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하지 말자고 외칠 뿐이다. 주장하고, 반박하고 또다시 반박하는, 그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 속에서 배움이 있다고 믿는 듯 했다. K는 나와 같은 수업을 들으며, 인간의 절반은 표현이라는 한 교수의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절반을 찾기 위해 오늘도 K는 천막 행이다. 며칠 전에는 직접 나무판대기로 간이 게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대자보의 크기도 내용도 가로막는 이 없다. K는 단과대학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일 적 보다 몸과 마음이 수월하다며 너스레 떤다. 간이 게시판이 하나 둘 늘어나자 그곳에 다른 학생들의 대자보가 더해지고 있다. 조용한 학교에 별안간 K의 천막이 들어섰다.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5년 11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9 | 추천: 0
안상현/ 청년 칼럼니스트 그때는 틀렸다: 나는 내 표와 싸우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교사 두 명이 각 반에 명함을 놓고 다녔는데 명함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오전 수업 때 뿌려진 명함은 오후 수업 땐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른 교사들에 의해 수거됐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어 두 교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징계를 당했다. 해당 교사들이 미쳤다고 폄하하는 담임선생님을 보며 교사들 간에도 큰 견해차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전교조가 무엇인지, 왜 저런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때였을 거다. 현실 속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처음 느낀 건. 그만큼 학교는 ‘정치 제한구역’이었다. 초·중·고 12년간 정치적 중립을 미덕이라 여기는 교육을 받았고 정치적 입장과 표현에 대해 무의식적 거부감을 길러왔다. 당시 명함 사건에 대한 친구들 반응 역시 사회부적응 교사들의 일탈로 여기는데 그쳤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사회적 갈등보단 사회적 합의를 가르치는데 치중했고, 졸업 후 우리가 마주할 세계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곳처럼 느껴졌다. 현실은 순응의 대상이었지 저항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갈등과 딜레마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채로 성인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정치를 배울 순 없었다. 교수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들 수준에 반어적 감탄을 하거나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바빴고 전공 너머의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운동권 선배들의 구호는 점잖은 교육만 받은 나에게 지나치게 과격했고 세련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입시에서 벗어난 고등학생에 불과했고 내게 정치란 단순히 선거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투표를 할 때도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름이나 TV나 인터넷을 통해 스쳐본 이미지에 표를 던졌다. 심지어 선거 날, 아는 후보가 없다는 핑계로 놀러간 친구도 있었다. 예능을 좋아하던 우리에게 정치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뉴스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배운 건 오히려 거리에서였다. 2008년 촛불시위에 나서는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이 사회에 얼마나 속해있는지 그리고 이 사회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들은 일어나 소리치고 부딪쳤으며 갈등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떠나 뜨거운 공기가 흐르는 그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정치적 감수성이 깨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내가 뽑은 대통령과 싸우고 있었다는 걸. 홍상수 감독의 17번째 장편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맞을 줄 알았지만 나의 답은 여전히 틀려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스 지금도 틀리다: 나는 달라졌지만 내 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 감수성이 깨어난 후 바라본 세계는 지금까지와 너무 달랐다. 내가 없이도 잘 흘러간다고 느꼈던 사회는 사실 나와는 다른 수많은 내가 만들어낸 사회였다. 던지는 표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를 절감한 순간부터 좀 더 많은 게 알고 싶어졌고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선택지는 좁았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영남과 호남 등 늘 선택지는 2개였다. 고심해 던진 표가 ‘죽은 표(死票)’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2번의 대선과 2번의 총선밖에 못 겪었지만 그중 단 한 번도 뿌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19대 총선 때는 기호 17번으로 등장한 청년당에 투표했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로 원내진출에 실패했고 당은 해산됐다. 청년이 직접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기를 높게 봤지만 현실정치의 벽이 더 높은 게 문제였다. 거대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한국정치판에서 청년당 같은 군소정당이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최다득표자만 당선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군소정당에게 보내는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돼버렸다. 단순히 낮은 지지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거대 지역정당과 군소정당이 가지는 표 가치는 불평등했다. 2008년과 2012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받은 표에 비해 5~20%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반면 군소정당은 2008년과 2012년 모두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의석을 얻었다. 기성양당은 과다대표 되는 반면 군소정당은 과소대표 되고 있다. 처음 정치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선거제도는 정말 정치의 모든 것이 돼 가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지개였지만 이를 대변한다는 정치는 빨강과 파랑뿐이었다. 양자택일의 강요된 선택을 할 때 마다 정치에 대한 감수성은 다시 마모돼 간다. 투표로는 제대로 된 의사를 전할 수 없었다. 당장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노동개혁만 하더라도 청년을 대변할만한 정치적 채널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 영역에서 청년은 증인이나 피고일 뿐 원고가 될 수 없었다. 그저 여론조사의 대상이다. 정당 정치에서 지분을 갖지 못한 우리들의 목소리는 징징거림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 환경, 페미니즘, 다문화, 동성애 등 사회에 대변되고 논의해야할 사회적 이해관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반영할 정치적 채널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보완책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확대가 주장되지만 실현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는 진척이 없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되레 농·어촌지역 대표성을 명분으로 지역구 의석을 지켜야 한다며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길 원한다. 이대로 간다면 퇴보나 현상유지다. 내년 총선에도 아마 강요된 선택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죽음의 표를 던질 것이다. 분명 나는 달라졌건만 내 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의 답은 여전히 틀려 있다. 안상현씨는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문제점을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1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77 | 추천: 0
이보라/ 청년 칼럼니스트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 중 하나는 '꼰대'다. 정치사회적 권력이 있는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방식, 가치관, 지식 등만이 옳다고 강요할 때, 이런 기성세대들을 우리는 꼰대라 부른다. 그런데 꼰대는 일상 생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꼰대는 정치의 영역에까지도 깊숙이 침범해 있다. 기성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 등을 배경 삼아 젊은이들의 정치적 의사를 얕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모습이 최근 있었다. 지난 8~9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 선거권 연령 하향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정치권의 무덤덤한 풍경이다. 현재 한국의 만 18세 청소년들은 선거권만 갖지 못한 '불완전한' 국민이다. 이들은 국민으로서 운전 면허 취득, 군 입대, 공무원 임용 등이 가능하다. 선거권만 연령 기준이 만 19세로 돼 있어 투표를 하지 못한다. 운전대도 잡고 입대할 수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지만 투표 용지는 집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뭘 모르는 너희 대신 판은 우리가 짤 테니까” 한국 사회의 꼰대들이 투표 용지를 이들에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선거권 연령이 늦어지니 20대 청년들이 정치에 대해 보이는 관심도도 떨어지게 된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처음 투표를 경험한 연령이 높을수록 향후 투표율이나 정치참여율이 낮았다.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가 지난 2014년 5월 6월4일 총선을 앞두고 청소년 선거권 보장을 위해 시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희망의우리학교/ 머니투데이 현행 선거권 연령 기준은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다. 세계적으로 만 19세 이상으로 선거권 연령으로 잡는 나라는 소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만 19세로 선거권 연령이 책정된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본도 지난 6월 만 20세였던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동떨어진 높은 선거권 연령으로 한국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과열경쟁, 주입식 교육, 체벌 문제 등 뿌리 깊은 교육 문제에 교육의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가장 깊이,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교육 정책에서 소외되자 교육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다. 만 18세 선거권이 필요한 이유들을 열거해봤다. 하지만 정작 18세 선거권이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만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가져야하는 건 이들이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들은 부가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헌법에선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있다고 규정돼있다. 이들이 국민이라면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의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인 참정권이 청소년, 특히 만 18세부터 점차적으로 열려야 한다. 청소년들은 꼰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거나 충동적이지 않다. 이들이 꼰대가 지배하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이보라씨는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머니투데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69 | 추천: 0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1% 부자들의 성공비결은 인문고전이다.”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겉표지에 있는 글귀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부자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이러한 책들은 상위 1% 부자들이 모두 인문학 서적 애독자들이었고,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문학 부자론’을 설명한다. 자본주의 시스템도 인문학을 통해 만들어졌음으로, 인문학만 이해해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인문학 부자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이다. 이병철 전 회장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논어》였다고 한다. 지금의 삼성을 창업하는 데 있어서 인문고전을 통해 얻은 사고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자기계발서들은 설명한다. 인문학 부자론은 허구다. 인문학을 액세사리처럼 쓰는 부자들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실제 인문학 전공자들의 현실은 참혹하다. 인문계 전공자들은 1% 부자는커녕 먹고 살 것을 걱정하고 있는 판이다. 인문대학생들은 인문학도 90%가 놀고 있어 ‘인구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뉴스토마토> 설문조사에서 인문대학생 70%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다시 입시를 치르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인문학을 더 공부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10년만 꾹 참고서 인문고전을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책들의 설명과 달리, 인문고전만 10년 넘게 읽은 인문계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현실은 보따리장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학에서는 인문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으로 성공했다는 스티브 잡스가 우리나라에서 성장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 아무 이유 없는 인문학 독서를 하고 있는 철학과 중퇴생을 받아주는 사회가 아니다. 물론 잡스는 인문학 부자론자들의 주장처럼 인문학만 가지고 성공한 게 아니지만 분명히 잡스의 성공에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었다. 만약에 잡스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이런 상상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투자의 천재’라 불리는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는 철학자가 되고 싶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3년간 철학 공부만 했다. 단지 철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조지 소로스의 결단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사진 출처 - 뉴스토마토 인문학의 본령은 무용함, ‘쓸모없음’이다. 회사 출근, 학교 진학과 같은 일상은 삶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취직하지 못했다고, 진학에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도 우리 인간은 우주의 일부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다.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의 과정이 인문학의 본령인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스티븐 잡스나 조지 소로스처럼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삶과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인문학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인문학을 대해야 할까. 우리는 인문학의 ‘무용함’을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당연 인문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 부자론도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나,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생각까지도 이 우주의 작은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다. 지금 보기에 비효율적이고 이상적이기만한 이 인문학의 본령이 반복되는 일상과 경제적 어려움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진짜 쓸모는 쓸모없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를 택하련다(將處乎材與不材之間)”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30 | 추천: 0
신종환/ 청년 칼럼니스트 ‘헬조센’. 지옥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헬’(Hell)과 조선의 일본식 발음인 ‘조센’의 합성어인 이 말이 요즘 자주 쓰이고 있다. ‘헬조선’이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굳이 비하의 뉘앙스가 강한 ‘조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일제치하 시기와 비교하여 나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는 고단하고 자조적인 마음을 담은 것으로 읽힌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교를 맴돌다 보면 모두에게 평등한 건 고단함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선배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한다며 하소연 한다. 취업준비 중인 친구는 도서관 개관 시간인 오전 6시에 등교해서 자정에 도서관을 떠난다. 이런 삶 속에서 북한의 준전시태세, 선거개혁, 교수의 총장 간선제를 반대하며 투신한 부산대 교수 등의 얘기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일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시간을 쓴다. 사회의 요구는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시간을 쓰라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공부로 쓰이는 시간은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제대로 습득했는지 확인하는 반복노동의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 물론 여러 경로에서 접하는 정보를 접하고 세계를 전망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특정 관점을 가진 정보들을 수용하면서 이를 곱씹을 시간이 없다면 그 정보에 내재된 관점을 내면화하기 쉽다. 이는 나아가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좋지 않은지를 질문하기도 답하기도 어렵게 한다. 앞서 말한 헬조센 같은 표현을 자기 시간이 없는 청년의 차원에서 보면 표현의 등장 배경이 조금은 이해된다. 생각하는 것도,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공유할 수 있는 건 고통, 회의 두려움 같은 심리적 감각이다. 헬조센은 그런 심리적 각각을 표현하며 비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단어이다. 그 바람은 어디서부터 이뤄나가야 하는 걸까. 고흐- '불가에 앉아 책 읽는 농부' (1881) 사진 출처 - 중앙일보 꼭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예전부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사수해온 것이 지금 청년들에게도 필요하다고는 할 수 있다. 다른 사회적 요구나 소용을 위해서 쓰이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밤의 시간. 자기를 생각하는 밤은 스스로를 자각하고 규정하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생기는 토대가 된다. 밤의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 부조리한 구조에 저항할 수도 있고, 개인으로서는 스스로에게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를 세울 수 있다. 이렇게 뿌리가 내리면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고 수위 높은 사회의 요구와 비난에서 덜 흔들릴 수 있다. 하루가 늘 모자란 사람들에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사수하기란 어렵다. 막상 어렵사리 사수하더라도, 고되게 살다보면 지켜낸 밤이 하잘 것 없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기 좌표를 알기 위해서 밤은 필요하다. 산업 혁명 당시에 영국의 노동자들에게도 그랬고, 평화시장의 전태일에게도 그랬다. 그들에게 힘이 되었던 밤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신종환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2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0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어렸을 때 일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접했을 때 유치원의 교재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말투였다. 존대에서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하시오.’ 하는 명령형 문장들을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질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나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제는 그 말투에 익숙해져있었다. 국가가 지정한 교과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반말, 명령형이다. 이것이 나와 국가가 관계를 맺는 방식인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누가 명령을 하고 누가 그것을 수용하는지, 말투에서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국민을 주체가 아니라 명령을 듣는 객체로 만들려는 의무교육의 목표가 여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국가가 우리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명령에 적응시킨 국가는 우리가 성인이 되자 달라진다. 갑자기 자유인 대접을 한다. 책임지지 않는다. 국가가 자존감을 말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이집트 대표가 말하는 이집트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인 이미지로 나온다. 가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 역시 가장이 진다. 물론 이것이 타당하고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가부장적 권위는 해체당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일관성이 없다. 학교와 군대에서 복종하는 객체로 만들어놓고 그 사람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는 선택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책임도 지지 않는다. 취업, 결혼, 육아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나에게 먼저 반말로 명령을 시작한 것은 국가고 고등학교까지의 삶을 좌지우지 한 것도 국가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때부터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가 생긴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청년들이 쏟아진다. 내 주위에도 이런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사진 출처 - 페이스북 이런 이중적인 구조에서 청년들이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일까. 아예 모든 것을 국가가 선택하도록 하자는 전체주의를 꿈꾸는 청년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규제사회와 민주화사회의 경계를 밟고 있다. 하지만 규제사회나 전체주의 사회로의 복귀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은 87년에 만들다 만 민주화의 완성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명령에 복종하게 만들다가 사회에 내다버리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힘,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당장 교과서의 반말부터 고쳐야한다.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1 | 추천: 0
김기림/ 청년 칼럼니스트 친구와 함께 밥 말리의 노래가 흥청대는 거리를 지나는데 빵빵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파파팍! 짝 날카롭고 짜릿한 아픔이 팔에 전해졌다. 흘러내리는 물컹한 액체가 손에 닿았다. 누군가 날계란을 던진 것이다. 지프차를 탄 백인 남성들이 달리며 우릴 향해 소리 질렀다 “헤이 차이니스~ 블라 블라” 그 뒤엔 F를 섞은 심한 욕설이 날아왔다. 뒤이어 또 다시 날계란 세례가 이어졌다. 뉴욕에서 가장 자유분방하다는 이스트 빌리지에서의 일이다. 당시 뉴욕에선 중국인들이 상권을 점령해가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중국인들을 향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는 다른 것에 편견을 가지고 차별과 공격을 가하는 언어적 폭력 행위다. 폭언에 그치지 않고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증오범죄‘에 속한다. 나와 친구는 뉴욕 거리에서 인종 차별적 폭언과 물리적 공격을 당했고, 공포를 느꼈다. 동양인들은 종종 ‘헤이트 스피치’ 혹은 날계란 세례 같은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우릴 중국인인줄 알고 행한 범죄지만, 그 저변엔 동양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심리도 깔려 있는 것 같아 섬뜩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무서운 이유는 파급력이 빨라 사회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또 폭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 모임)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 결성된 혐한 단체인 재특회는 각종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들에게 인정되는 특별영주자격을 박탈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들은 각종 시위에서 “한국인을 모조리 죽여라”, “조선인 목을 매라” 등 헤이트 스피치를 자행해 왔다. 2010년 재특회 회원들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계열 학교를 지원한 교직원 노동조합을 규탄하러 조합 사무실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폭력으로 키워진 대표적인 사건이다. 디지털로 간 헤이트 스피치 사진 출처 - zennews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헤이트 스피치가 물리적 폭력으로 번진 사건은 없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선 헤이트 스피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정 지역과 여성 혐오를 접할 수 있는 일베 사이트와, 온라인 콘텐츠 아래 달린 악성 댓글들은 온라인 헤이트 스피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헤이트 스피치는 자정작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정 개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심어 줄 가능성이 크다. 사진 출처 - 노 헤이트 스피치 페이스북 유럽 국가들은 이미 랜선을 타고 확산되는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에선 인터넷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접한 사람들(특히 청소년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와 의식 함양을 위해 2013년 ‘노 헤이트 스피치’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헤이트 스피치를 모니터링하고, 사람들에게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교육을 한다. 국가적 캠페인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확장되는 걸 저지하려는 활동이다. 일본에선 ‘혐오 발언 규제법’에 대한 국회 심의가 진행 중이다. 헤이트 스피치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며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한 게 법안의 골자다. 하지만 올해엔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공명당은 혐오 발언의 문제점 인식엔 동의했지만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소지를 놓고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헤이트 스피치 규제 법안이 생겨난다는 것 자체가 사유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인간됨’이 사라져간다는 방증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는 다른 이들의 인권을 지켜줄 때 용인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서 ‘표현’은 생각의 표현을 말한다. 생각이 깊어져 사상이 생기고 이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는 다양한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개개인 모두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인권을 침해하거나, 후퇴시키는 표현은 거부돼야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용인되는 마지노선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해 주는 지점에서 합의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도 헤이트 스피치가 시나브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잠시 한눈팔면 순식간에 자라나 소행성을 부수는 어린왕자의 바오바브나무처럼 걷잡을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김기림씨는 고공 농성과 세월호 등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9 | 추천: 0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S양은 올해 25세로 나와 동갑이다. 둘의 공통점은 그뿐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나는 지방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의 재산은 이미 1,300억 원의 주식가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재산은... 빚도 재산이라 치자면, 1,3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전부다. 그녀는 화장품 회사의 경영을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그 회사 가맹점포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 그녀는 비범했고 나는 평범했다. 우리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있다. 나와 S양의 가장 큰 차이는 노력이나 능력의 크기가 아닐 것이다. 운이다! 그녀는 이미 12살에 주식 일만 주를 보유했다고 하니 삼신할매의 랜덤 운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만하다. 당시 나의 조부모가 남겨준 유산은 아빠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S양과 나는 각자 부모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서 밟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학력이 그러하다. S양의 부모와 나의 부모의 학력 차는 S양과 나의 학력 차로 고스란히 옮겨온다. 그리고 그 부모 역시 그들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삶을 살았다. 비단 S양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 차이가 그 자녀의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여럿 발표됐다. 대물림이다. 요즘 청년들은 이런 사회를 ‘헬조선’이라 명명한다. 지옥이라는 뜻의 ‘hell’과 조선이 더해져, 현재의 한국이 지옥과도 같다는 뜻이다. 이들이 고발하는 헬조선의 모습은 꽤나 선명한데, ‘열정과 노력, 의지 세 단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면서 ‘성수저설-인간은 날때부터 물고 태어난 수저의 재질로 인생이 결정된다-이론이 완벽히 성립하는 곳’이다. S양의 노력은 회사의 경영자를 만들어 낼 테지만 내 노력은 기껏해야 2년짜리 계약 인생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노력보다는 수저가 내 삶을 결정하는 사회,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해도 도통 나아지지 않는 사회다. 사진 출처 - 사이트 ‘헬조선’-http://hellkorea.com 그동안 청년들은 이 사회 내에서 성공을 바랐다. 남과 비교하며 우위를 점해야 하는 경쟁은 아프긴 했으나, 청춘이라는 시간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인식했다. 기다리면 지나갈 것이라고, 성장하는 중이라는 마약 같은 말도 더해졌다. 누구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한권씩 가지고 다니며 위로받기도 했다. 이제 청년들은 깨닫는다. 나를 아프게 하는 고통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가 가하는 것임을. 그러자 청년들이 현실을 바로 바라보고 외친다. “이곳은 헬조선이다”라고. 헬조선은 청년들의 선언이다. 제 사회를 헬조선이라 깨닫는 순간, 비로소 헬조선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청년은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왜 자신들에게 이러한 현실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고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미약하지만 변화의 거점이 될 것이다. 이미 지옥인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헬조선이라 외치는 일뿐이다.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22 | 추천: 0
안상현/ 청년 칼럼니스트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반말에 욕도 한다. 목소리는 또 왜 그리 우렁찬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내버려두면 일이 터진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한 가족캠프에서 운영요원으로 있을 당시 이야기다. 캠프에는 말썽꾸러기가 유독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잘 따라주는 몇몇 얌전한 아이들이 유달리 예뻐 보였다. 운영회의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1회 캠프는 70%가 차상위계층 가정이라 애들이 좀 거칠었을 거예요. 그래도 2회부터는 일반가정이 대부분이니까 분위기도 다르고 일하기 좀 더 수월할 겁니다.” 회의 때 캠프운영실장에게 들은 말이다. 편견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개연성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르던 배경을 알게 된 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굳이 명단을 보지 않아도 누가 취약계층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이가 모두 썩어 검은 입을 갖고 있었고 치통 때문에 캠프 프로그램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단 앞에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낑낑대던 모녀도 있었다. 가방을 들어드리려 다가갔을 때, 아이의 어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도움을 거절하진 않았지만 내려가는 내내 어머니는 가방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불신하는 건가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운영요원이란 것도 알고 있었고 3일간 함께한 만큼 낯선 사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가방을 잡은 채로 어정쩡하게 내려갔다. 내려오는 도중 모녀의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엄마는 사모님이 바로 출근하라고 하셔서 내일 같이 못 있어줄 거 같아. 미안해...” “괜찮아~ 엄마.”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짐짓 쾌활한 척 답하는 아이의 모습이 더 이상 말썽꾸러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아마 가사도우미 일을 하시는 듯했다. 낡은 등산조끼를 걸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야 가방 손잡이를 놓지 못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사소한 도움마저 받아본 경험이 적었던 것이리라. 위선(僞善)과 위악(僞惡) 사진 출처 - 네이버 카페 그 후 악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떤 상처처럼 느껴졌다. 예외인 아이들도 있었지만 캠프 안에서만큼은 집안 형편에 따른 아이들의 태도 차이가 쉽게 구분됐다. 슬러시를 먹기 위해 줄을 설 때도 줄을 지키는 아이들과 새치기 하는 아이들의 그룹은 비례했다. 슬러시가 다 떨어졌다고 하면 쉽게 수긍하고 돌아가는 아이와 왜 없냐며 따지고 매달리는 아이도 비슷하게 나눠졌다. 가난이 미치는 영향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부모 수준에 비례하는 자녀의 교육수준이나 직업, 소득수준 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소득불평등이 기회불균등을 야기한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빈곤은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런 아이의 성격과 태도가 빈곤의 작품이라면 기회의 균등은 무의미다. 기회의 유무를 넘어 기회를 대하는 모습마저 결정돼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겪은 일들은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부인할 수 없는 근거들이 많다. 빈곤과 아동 발달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논문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학협회저널 소아과학(JAMA Pediatrics)에는 가족의 빈곤이 아동의 두뇌 발달과 학업 성취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논문이 실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빈곤층 자녀들의 회백질은 또래 평균보다 8~10% 적었다. 회백질은 대뇌 신경세포가 모이는 부분으로, 적은 부위가 마침 행동과 학습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었다. 작년 1월에 나온 미국 교육학자 찰스 넬슨의 연구논문도 비슷한 결과를 시사한다. 빈곤이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오염시키는 ‘원죄’가 되어가고 있다.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저서 <담론>(돌베개)에 나오는 글귀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명예를 얻고자 한다. 위선이다. 반면 약자는 약하다는 걸 들킬까봐 거친 모습으로 자신을 가린다. 취약계층 아이들이 그렇다. 그들의 성격이 거칠다 해도 그건 보이는 것일 뿐 본질이 아니다. 아이들은 악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빈곤에 의해, 그리고 자신들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 위악의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안상현씨는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문제점을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5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