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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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박서현/ 청년 칼럼니스트 돌이켜 보면 내 정치적 자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다. 우리 반의 실세 권 아무개가 “너 그 머리 끈 이상하다”라며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을 때였다. 보통 친구였다면 “난 좋은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 진학 이후 더 많은 부조리함을 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던 잔인한 학교폭력, 친구들끼리의 눈치싸움, 만만한 선생님을 조롱하는 학생들.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차별... 나는 많은 일들이 너무나 부당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변명하자면, 나는 내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그대로 끝나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이제서야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사회 활동은 가능한 참여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는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 곳곳에는 대자보가 붙었고, 나도 시위에 참여했다. 학교 구성원의 격렬한 반대 탓에 학과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듬해 결국 소수 과는 통폐합되었다.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용돈을 털어 후원했던 위안부 소녀상도 아직 건립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여중생 시절 조그만 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약자들이 강자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그 때의 나로. 10월 29일 광화문 시위에 참여했을 때 역시 그랬다. 입으로는 하야하라, 퇴진하라를 외치고 있었지만, 내심 무거운 현실은 꿈쩍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시위 규모는 점차 커졌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이후 분명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시위에 참가한 적 없는 친구가 시위에 동행했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인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화제로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능할까. 희망의 싹이 트는 걸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이는 내 생애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통령 심판 그 이상이다. 100만 명이 참여한 사회적 저항이 성공하는 경험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성공한 시위의 경험은 이제 시민운동이 사회를 직접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 대학생들이 학교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 중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대중에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패한 권력자에게는 부정은 결국 처벌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덧씌워질 것이다. 100만 명의 시민이 시위 경험을 공유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100만 시민에게 시위의 결과가 성공으로 각인되기 위해서는 그 결과가 다른 형태가 아닌 시민들이 말하는 그대로, 하야 혹은 퇴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권한 이양,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같은 해법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실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그저 복잡한 셈법의 정치적 타협으로 비칠 뿐이다. 권한을 일부 내려놓은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직에 있는 모습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고작 몇 주 봉사활동 처분만 받은 채 끝나버린 결과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번 주 주말도 시위에 나선다. 더 큰 변화의 도화선이 되기를, 보다 정의를 목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조금 더 커진 희망을 갖고 “퇴진”, “하야”를 외칠 것이다. 박서현씨는 노동과 정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3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68 | 추천: 0
지영의/ 청년 칼럼니스트 무료 급식권 받아야 하는 학생은 조례 끝나고 교무실로 오세요. 조례를 마친 담임선생님이 무심하게 던진 말에, 교실이 일순간 술렁거렸다. 무료 급식권을 줘? 왜? 호기심에 수군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나 혼자 얼어붙었다. 주변의 공기가 확 다르게 느껴지던 그 순간. 교무실로 가기까지는 무던히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결국 죄인 아닌 죄인 같은 기분으로 교무실 문 앞에 섰다. 교무실에 들어가서 무료 급식권을 받는 순간, 모든 선생님들이 알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의 사업이 망했다는 걸.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들추어내야 하는 발걸음이 천근이었다. 내가 용기를 끌어 모아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담임선생님의 자리에는 나보다 먼저 온 아이가 있었다. 내 짝꿍이었다. 그 아이의 손에 쥐어지는 노란 급식권. 그 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던 내 뒤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 나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뻣뻣하게 돌아섰다. 나 본거 모른 척 해주라. 친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비겁하지만 안도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나 너 뭐하는지 못 봤는데. 열네 살. 한 끼의 배고픔보다 자존감이 더 중요했던 시기의 나는, 몇 달의 점심시간을 그냥 잠으로 보내고는 했다. 인간적인 배고픔이 자존감의 바닥까지 긁게 만드는 수치심을 이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교무실에서 마주한, 그 친구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내가 부끄러워서 직시하지 못한, 열네 살의 내 표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배어나는 표정. 인격체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간신히 만들어 썼던 가면이, 강제로 벗겨질 위기를 마주한 열네 살의 표정을. 사진 출처 - pixabay.com 한 언론사의 기사에서 정부의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사업을 보았다. 정부는 인권을 위한 사업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리대를 받기 위해 보건소에 자신의 신상 정보를 기재하고,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입증할 서류를 줄줄이 제출하고 나서야 생리대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자신을 노출하느니 차라리 생리대를 포기하겠다는 기사 속 인터뷰 한 줄 한 줄에서 그 아이들이 느꼈을 감정이, 지었을 표정이 묻어났다. 아이들이 생리대를 받는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비록 숨어서 곤란함을 겪을지라도, 그 선택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으려면, 직접 증명하라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강제로 인정하고, 학습하는 경험이다. 생리대 지원사업에서 정부가 복지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동정’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방식의 복지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내걸면서 말이다. 복지는 수혜자를 고려하는 체계와 배려가 필요한데, 불쌍하니 챙겨주겠다는 동정에는 그런 것이 없다. 정부는 자신들이 자선단체가 아니라 국민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조건부 자선이 아니라 진정한 복지가 필요하다. 복지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정부의 복지 정책이 국민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를 누리고자 자신의 결핍과 괴로움을 인정하고, 또 인증해야 한다면 과연 그 어떤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 국민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뻗는 복지, 국민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지영의씨는 KTV 국민방송에서 인턴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3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09 | 추천: 0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은 대중들에게는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은 낯선 작품이지만, 독립영화 매니아와 일부 관객층 사이에서는 꽤 입소문을 탄 영화다. 올 봄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대상을 탔고 뒤이은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표가 동났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동성애물, 그중에서도 레즈비언의 연애를 아주 사실감 있게 다뤄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식 개봉을 앞둔 요즘은 뭇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홍보 목적의 유료 시사회를 진행하는 중이다. <연애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무비스트 이 영화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유료 시사회 좌석을 대거 예약한 뒤 상영 직전에 취소를 해버리는 누군가다. 지난 12일 토요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GV)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던 <연애담>은 영화 시작 직전 32석이 일괄 취소되는 ‘사건’을 겪었다. 해당 극장의 좌석 수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두 자리를 포함해 98석이다. 1/3에 해당하는 자리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선점됐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구매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촉박한 시간만 남겨두고 돌연 전부 취소 된 것이다. 영화 배급사 인디플러그 관계자는 “극장 측에 확인한 결과 해당 취소는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일명 ‘티켓테러’다. 물론 영화계에 아예 없던 일은 아니다. <변호인>(2013)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런 주장은 명확한 근거 없이 떠도는 인터넷 루머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부터는 거의 대부분 수그러들었다. 물론 사람들은 당시에도 그런 논란이 불거진 원인만큼은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영화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만큼 그에 대한 정치적 호오에 따라 반응이 갈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티켓테러’를 정당화 할 빌미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그런 행동의 동기만큼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인간의 정치적 호오는 합리의 영역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연애담>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라온 이현주 감독의 호소문 <연애담>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성 정체성의 영역에서 논의 될 만한 작품이다. 정치는 호오를 따질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성 정체성은 타인이 함부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고난, 바꿀 수 없는 어떤 조건이기 때문이다. <연애담>은 그런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두 여자의 연애를 담담한 화법으로 그려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티켓테러’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행위의 일환이다. 그것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말이다. 바꿀 수 없는 누군가의 어떤 조건을 ‘반대’하거나, 차별하거나, 공동체와 격리시키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우리 사회는 혐오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내놓기 쉽지 않은 레즈비언의 사랑을 소재로 정식 개봉까지 하게 된 <연애담>은 동성을 좋아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기 드물게 자신, 혹은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다뤄준 작품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 한 예비 관객의 마음에 찬물을 뿌린 ‘티켓테러’도, 우리 공동체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혐오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12 | 추천: 0
-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광장에 나왔다. 서울 시청 앞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버스 안에서 벨을 누르고 거리를 살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잰걸음에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4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광화문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행진을 시작하자 사람은 더 불어났다. 많은 인파의 이동으로 도로에 갇힌 차들도 눈에 띄었다. 운전자들은 짜증내기는커녕 집회 참가자들의 구호에 맞춰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보냈다. 분노보다 슬픔이, 질문보다 염증이 커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와라_최순실’을 외치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대답 없는 정부를 향해 직접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지난 29일에 이어 일주일 만에 인파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주최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4만5000명)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부터 아이와 함께 나온 부부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세대를 가로질러 청계 광장으로 쏟아졌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피켓에 적힌 글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글귀가 있었다. ‘이게_나라냐’ 사진 출처 - 필자 국가란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반복돼 온 물음이다. 비선 실세라 불리는 최순실이 등장하면서 이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물음이었다면 이제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됐다. 사전 집회 성격이었던 지난 10월 29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외침이 오늘도 계속됐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던 국가의 구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종 비리 스캔들과 국회의 충돌을 지켜보면서도 국민은 옳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피로 이룬 민주주의 체제 국가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의견이 다르고 인물이 바뀌어도 자유와 평등을 가치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체제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친구와 국정을 결정해왔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뜻을 전하고 권력의 남용을 감시 견제 해야 하는 국회는 이를 묵인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 씨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전에 언론 보도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달리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최 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각종 특혜 비리에 연루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며 옹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 씨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과거 힘들었을 때 알게 된 인연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논란이 커지자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외롭고 슬픈 대통령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혐의에 대해 변호하는 것은 모든 이의 권리다. 최 씨나 이경재 변호사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나 증거가 아니라 ‘어린 나이’를 운운하고, ‘과거 힘들었을 때’를 강조하며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려는 행동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두 번째 사과문에서 박 대통령의 ‘이러려고 대통령됐나 자괴감 들어’라는 표현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만이 이게 나라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는 길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판결문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 행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2차 집회에서는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집회가 시작되기 전 오후 2시, 중고생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단다. 기사 사진 속 학생은 ‘시험이 대수냐! 나라가 미쳤다’라는 글귀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라가 미쳤다. 미쳐버린 국가를 심폐소생하기 위해 모두가 광화문에 모였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진실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괴감을 느낄 때가 아니라, 자기반성을 할 때다.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44 | 추천: 0
이은주/ 청년 칼럼니스트 무대 위 눈부신 조명 아래, 정갈하게 단복을 맞춰 입은 합창단이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입을 모아 노래하고 있다. 그 사이로 다소 낯선 차림이 눈에 띈다. 형형색색의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그들의 합창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퍼져나갔다. 서울의 한 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소선어머니 합창 공연에 다녀왔다. 여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파업과 쟁의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도 함께 모였다. 쌍용자동차, 동양시멘트, 콜트·콜텍, 철도노조 등 각계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무대 위로 깜짝 등장해 ‘연대의 광장으로 모이자’, ‘해방을 향한 진군’ 등 노동가를 경쾌히 합창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하모니로 재탄생한 노동가의 완벽한 변신에 연신 감탄하는 도중, 사회자의 긴급지령(?)이 들려왔다. “지금 극장 측에서 무슨 얘기가 들어왔는데, ‘투쟁’이나 ‘싸움’ 이런 얘기를 조심해달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너털웃음과 함께 나를 포함한 관객석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그런데 어째 웃음의 뒷맛이 씁쓸했다. 2016년에, 그것도 표현의 자유가 십분 보장되어야 할 공연장에서 특정 단어를 언급하지 말라니. 지금으로부터 50여년은 회귀한 듯한 구시대적 문법에 다들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으리라, 생각했다. 극장 측의 의중을 추측해보자면 노동자들의 바람과 열망을 담은 이 합창이, 문화시민이 즐기는 공연의 ‘고상함’을 해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아트센터’라는 이 문화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단어라고 생각했다던가. 그들에게 노동자들의 노래는 왜 예술이 될 수 없었을까. ‘투쟁’, ‘해방’, ‘단결’…. 공연장에서 이런 말들이 들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극장 직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을 다소 왜곡되게 인식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과격한’, ‘급진적인’, ‘폭력적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문제를 함께 논의해나가야 할 ‘대화의 대상’이 아닌, 어떻게 해서든 반기를 들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탄압의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이들은 ‘투쟁’이나 ‘쟁취’라는 단어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트센터의 ‘고상함’을 해칠까 우려했던 극장 직원처럼,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노동문제에 대한 각종 잡음들을 편집하고 싶어 한다. 이 정도 되면 노동자의 노래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를 걱정하기 이전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찾기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인 노동운동도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행위’가 맞는지에 대한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문제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편집증’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작동되기도 한다. 이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기부정을 하는 식의 시도로 이어진다.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블루칼라 노동자와 구별되고 싶어 하는 의식이나, 우리나라의 많은 사무직 노동자와 고임금노동자들이 ‘노동자’보다는 ‘근로자’에 귀속되고 싶어 하는 의식(아마도 ‘노동자’는 과격한 이미지, ‘근로자’는 근면성실한 이미지로 표현돼 보다 더 고상하고 귀한 뜻으로 여겼을 테다)은 노동자 스스로의 계급에 대한 자기부정과 함께, 자신들로부터 노동문제를 ‘타자화’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대형마트 비정규직의 부당 해고 문제를 그린 영화 <카트>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이 뭐가 아쉬워서 노조를 만듭니까?” 이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이란 ‘오르지 못할 벽’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육체노동, 사내하청 노동, 비정규직 노동 등 하층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은 가장 어두운 곳으로 밀려난다. 고대 로마에는 ‘사회로부터의 배제’라는 형벌을 받은 죄인을 가리키는 사람들, ‘호모 사케르’가 있었다. 이들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들을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처럼, 그들은 사회공동체의 바깥 테두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희생양으로 바쳐지기도 한다. 또한 죽음을 통한 대속(代贖)조차도 금지된 존재였다. 올해 인천의 한 지하철역에서 50대 청소 노동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안전모만 썼어도 살 수 있었지만, 계약직이었던 고인에게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안전모가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사회공동체 속에서 살면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배제를 당하는 호모 사케르처럼, 이들은 노동자 층 내에서도 철저한 소외와 고립을 느끼며 살아간다. 노동자들을 호모 사케르, 즉 희생양으로 고립시키는 인식체계는 이 사회를 공존의 사회가 아닌 차별의 사회로 만든다. 호모 사케르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회의 병폐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는 가방 속에 공구통과 컵라면만을 남기고 떠나간 구의역의 비정규직 청년을 기억한다. 청년은 끼니를 때울 수조차 없도록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비인간적인 노동 시스템에 희생양으로 올라타야 했다. 이번 이소선합창단 공연의 이름은 ‘종이담쟁이’였다. 구의역 청년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슬픔과 분노를 담은 포스트잇 종이가 스크린도어를 넘어 담쟁이넝쿨을 드리웠듯, 우리 사회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널리 퍼뜨리자는 의미이다. “바람이 분다 모두가 숨죽인 오늘 밤 / 건물 사이 쫓기는 피하는 눈길들 /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버릴 수 없어 놓을 수 없어 / 바람보다 드세게 숨소리 내어본다 / 내어본다 숨소리” -이소선합창단 창작곡 <바람보다 드세게> 中 합창단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비정규직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바람보다 드세게’ 숨소리를 내자며 이 시대의 ‘호모 사케르’들을 응원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외된 자들과 공존하고자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밥 딜런은 이 고통이 끝나는 시기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려, 입 밖에 꺼내어본다. “친구여, 그건 바람(hope)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지.” 이은주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91 | 추천: 0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지하철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구도심을 관통하는 1호선이다. 가정용 스탠드부터 셀카봉, 어깨결림용 파스, 팔토시 같이 특별한 공통점도 없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는 이동상인이나, 척 봐도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모 복지관의 비참한 상황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빼곡히 적은 메모를 돌리는 사람 등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다양한 군상들 중에는 한국에서 기독교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갖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주 예수를 믿으라”를 끊임없이 외치는 그들. 말하자면 현대 한국에 나타난 ‘순교자’들이다. ‘순교자’의 유형은 다양하다.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목청 크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 일갈하는 ‘마르틴 루터’형, 건강이 염려되는 외양을 가진 가녀린 노파가 한 사람씩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조곤조곤히 그리스도를 믿길 당부하는 ‘마더 테레사’형, 어떻게 저 많은 레파토리를 외웠는지 성경구절과 그 시사점을 쉬지 않고 쏟아내며 주위를 감탄하게 만드는 ‘수다맨’형 등……. 유형은 다르지만 이들 순교자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공격적 선교에 익숙지 않은 대다수의 비교인들에겐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마주하면 보통은 시선을 피하거나, 심한 경우엔 혀를 차거나 면전에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밤중에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수없이 많은 붉은 십자가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라. 세계 순위권의 대형교회가 다수 모여 있다는 이 나라. 종교 중 기독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 나라에, 이 열렬한 ‘순교자’들의 포교는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가? 도대체 누가 이들을 보냈단 말인가? 역시 이 나라에 그릇되게 정착한 일부 기독교회가 사회 각지로 조직적인 포교망을 갖추고 파견하는, 소위 ‘개독교’의 하수인들이었던 걸까? 뜻밖에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연히 만났던 어느 목회자는 ‘순교자’들이 한국 기독교회에도 부담이 되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국 교회에서 그런 거부감 드는 포교방식으로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된다고 판단했을 리가 없다. 그 목회자는 교회가 그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해가며 “여기여기 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6시간 하고 오세요.”라며 조직적인 파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순교 상당수는 자발적인 행위라는 얘기였다. 조직적인 파견체계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순교자’들의 신비. 그럼 이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런 수고를 도맡아 한단 말인가? 그 실마리 중 하나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마주한 ‘순교자’들은 대체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거나 하는 식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았다. 원만한 경제활동이 어렵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버린 사람들을 받아주는 우리 사회 몇 군데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교회다.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교회는 오는 사람을 마다하는 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겁고 짐진 자들이 교회에 보금자리를 트는 일이라면 더더욱. 로마 시대에 박해받던 이들을 구성원으로 받아준 초대 교회의 정신에 감화된 이들이 순교에 앞장섰던 역사처럼, 현대 한국의 ‘순교자’들은 그렇게 하나 둘씩 시키는 사람 없이도 자발적으로 지하철에, 거리에 나타나 복음을 전파하는데 한 몸 바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사실 소외받는 이들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해 왔다. 시대에 따라 힘든 이들을 품는 주체는 달라져왔고 그 역할을 교회가 맡는 게 꼭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개념이 정착된 오늘날 그들을 보듬어야할 1차적인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국가가 소외 계층을 다시 원만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게 해주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그 역할의 일부분을 교회가 떠안아 버린 것이다. 이에 감화된 이들 일부가 거리로 지하철로 나서며 국가도, 교회도, 시민들도 원하지 않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목청 높이는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말하는 ‘지옥’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아니라 이 사회의 빛이 닿지 않아 소외된 곳들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김정웅씨는 사회와 정치의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67 | 추천: 0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1년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과도한 업무와 근무시간, 그에 반해 적은 월급이 대외적 이유였지만, 날 괴롭힌 가장 큰 이유는 ‘배워온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이었다. 남을 도와야 한다고 배웠기에 동료나 상사가 도움을 요청하면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미뤄진 그들의 일은 모두 내 일이 되어버려 떠안기가 부지기수였다. 퇴사자가 발생하면 그 1인분의 일도 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업무는 늘었다. 나도 좀 편해지고 싶었기에 어느새 그들처럼 뺀질거리며 업무를 피할 줄 아는 능숙한 사회인이 되어갔지만 그는 내가 아니었다. 그런 태도는 내가 배워온 윤리가 아니었다. 지난 9월 방영했던 TV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가 한창 젊은이들 사이에 화제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학벌과 스펙을 갖춰 결실을 맺었지만 1~3년 차, 심하게는 1년도 못 채우고 끈기 없게 그만둬 버린 청년들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들은 이른바 ‘똥군기’, 도가 지나친 회식 문화, 폭언과 폭력, 성차별 등 개인의 인권이 짓밟히는 근무환경에 회의감을 느껴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 어디 대기업뿐일까. 나 뿐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도 대중소기업이나, 학교, 공기관, 매장 영업직 등 다양한 곳에 종사하고 있지만 직장생활에 대해 들어보면 다 똑같다. 내가 이러려고 부모님 고생시키며 몇 년간 공부하며 이 자리에 왔나 싶은 한탄들 천지다. 다큐 속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상사들은 “요즘 애들~” 운운하며(신입면접자들이 엄연히 20대 후반 이상의 성인임에도 방송에서 이런 호칭을 쓰는 것도 거슬리지만...) “기본도 모르는 개념 없는 신입들 때문에 업무효율이 떨어져 손해”라고 자기네 사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 세대들이 자초한 것 아닌가? 어이없는 신입을 만든 것도 윗세대들의 교육과 사회이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배우면서 자라온 우리 젊은 세대들은 어느 정도 머리가 익어가는 나이가 될 때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시작해 경쟁 속으로 끌려간다. 나를 돌아보는 성찰? 인성교육?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좋은 대학 가야지”, “대기업 가야지”, “연봉이 이 정도 되는 곳은 가야지” 같은 강박에 시달리며 고생 끝에 입사하지만, 이제까지 쌓아온 가치관과 현실 간 괴리가 찾아온다. 한길만 보느라 경험 못한 성장통을 이십대 후반, 서른에 이르러 된통 치르는 것이 현재 서랍 속에 사표를 숨겨둔 젊은 일개미들의 현실이다. 사진 출처 - 양경수 일러스트 <그림왕 양치기 약치기>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 참고 지내야 해, 지나가는 거야, 다 그런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뎌온 기성세대는 끈기 없는 젊은것들이 심히 못마땅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던 그들에게는 한 곳만 파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괜히 나오겠나. 우린 그런 거 없다. 윗세대들이 열심히 우물을 파던 삽 대신 우린 다양한 길로 연결되는 그물, 네트워크를 가졌다. 사표 쓴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꿈을 찾아, 곧게 뻗은 좋은 길 차 버리고 험한 여정에 나선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외로 나가거나 알바, 프리랜서로 관계망을 형성해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도 있다. 다큐에는 그런 자식들을 걱정하고, 보기엔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원망하는 부모들도 나오지만, 씁쓸함을 뒤로 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 후회 없이 살라.”는 응원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보낸다. 나도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처음엔 앞날이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두 달 동안 여유 있게 지친 심신을 달랜 후 더 조건이 좋고 궁합이 맞는 곳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이 고생하는 회사를 각자 사정대로 그만두고 나오는 청년들을 철없다 손가락질하는 윗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당신들의 ‘애들’이 아니다. 퇴사 이유가 아주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그 개인에게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이다. 부당하고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은 어딜 가나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찾아갈 줄 아는 우리는 어른이다. 앞날이 위험하고 잘 보이지 않더라도, 도전할 줄 아는 우리는 청춘이다. 쯧쯧, 혀를 차기보다 응원해달라. ‘젊은 것’(따옴표)들의 퇴사는 끈기 없음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낫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시작이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42 | 추천: 1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옆집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보통 여자의 괴성이나 통곡소리가 들린다.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할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지금 112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평소에 지나다니며 마주친 그 집 부부의 모습과 새벽에 들려오는 괴성의 추이를 듣고 있으면 한쪽이 얻어맞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이 요즘에는 약간 타협적으로 변했다. ‘내가 지금 112에 신고하면 오지랖이겠지.’하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언젠가 금태섭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본 후로 그렇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를 주변 이웃이 신고하고, 법이 엄벌하면 정의를 실현하는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두 부부가 완전히 헤어지지 않는 이상 남편을 수세에 모는 상황은 아내폭력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고뇌가 묻어있었다. 매년 몇 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하고 살해당할까? 여성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매년 ‘분노의 게이지’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지난 3월 발표된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91명이다. 이 정보의 토대는 ‘언론에 보도된’ 기사다. 보도되지 않는 사건은 훨씬 많을 테니 사실상 최소한의 통계인 셈이다. 내 경우에는 옆집 부부싸움을 신고할까 말까로 새벽마다 스스로와의 투쟁을 하느니, 여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라도 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겠다고 판단한 탓에 올해 초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조사된 통계를 발표하는 관례상 당시 2015년 한 해 통계치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 작성되고 있는 단계였고, 나는 2015년 1월에서 3월까지의 분량을 맡았다. 그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선생님 중 한 분은 걱정의 언사를 보냈다. “이런 자료 자꾸 보다보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그러니 쉬엄쉬엄 하세요.”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사실이다. 워낙 관심과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던 분야라 새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건 큰 자만이었다. 사진 출처 - 알렉산드로 팔롬보, #StopViolenceAgainstWomen 캠페인 여성폭력은 기본적으로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히는 구도라는 점에서 모두 악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정에서 남편에 의해 일어나는 아내폭력이 가장 비인간적이다. 그 가정에 자녀가 있을 때 그렇다. 아내에게 갖은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녀에게 직간접적인 학대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례 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가 14살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욕하도록 강요했다. 물그릇에 물을 떠와 5차례 어머니 머리에 붓게 하고, 허리띠로 어머니를 세게 30대를 때리라고 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인 내가 너를 더 세게 300대를 때릴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말이다. 이건 광주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결국 남편은 아내 폭행뿐만 아니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다. 많은 경우 여성폭력은 아동학대까지 동반한다. 그런데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든 건, 아내가 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는 생존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남편은 아동복지법 위반만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사진 출처 - 알렉산드로 팔롬보, #StopViolenceAgainstWomen 캠페인 옆집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다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아주 가까운 공간에서 누군가가 꽤 심각해 보이는 폭행에 노출된다고 추정되는데, 덩달아 학대당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할 때 인간으로서 어떤 비참함을 느낀다. 이 비참함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단체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교육프로그램에 사활을 거는 것 같다. 가해자가 쉽게 양성되지 못하는 사회적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서, 당장 현실을 바꾸기는 힘들다. 내 옆집에,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설령 외부에 그 폭력을 알려지게 만들어서 단기적으로 가해자가 처벌받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종래에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감당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란해진다. 이건 실천할 수 없는 정의다. 가정이라는 영역은 너무 사적인데, 결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처벌은 공적인 영역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간극을 피해자의 고통 없이 메꿀 수 있을까?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71 | 추천: 0
박서현/ 청년 칼럼니스트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핵심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 기술 혁신이라는 단어는 언뜻 장밋빛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신산업의 성장은 기존 산업의 퇴보를 의미하며, 새로운 기술 변화에 발맞추어 제조업이 개편된다면 전반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요란한 산업 구조조정의 예로 현재 진행 중인 조선업 대란이 있다. 세계 경기 침체와 경쟁 심화로 조선업의 부가가치가 점차 감소하여, 수익성이 낮은 국내 기업들이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항상 강조되는 입장은 경영부진의 원인이 현대사회에 역행하는 경직된 노동구조, 즉 노조와 정규직 과보호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경영계는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 보호법 완화 및 파견근로 확대를 요구한다. 그러나 기술 변화의 위험성과 경기 변동성은 기업의 일만이 아니다.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노동시장 선진화 방안이라며 제시되는 대책들은 늘 노동 수요의 유연화, 즉 쉬운 해고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경직적 노동구조가 원인이라면 노동 공급의 유연화, 즉 고용보험과 교육지원 또한 해결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경남신문 이번 조선업 대란의 여파로 전문가들은 협력업체 포함 2만 명에 가까운 조선 인력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스스로 실업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울산광역시 설문조사 결과 조선 사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 예정자의 88%는 재취업을 원하며, 그중 61%는 희망업종으로 여전히 조선업을 꼽았다. 조선업 전체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실직자들 스스로 가장 잘 알지만서도 그들에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이 국가가 전문적인 직업능력개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 지점이다.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여러 정책적 기능을 갖는데, 먼저 노동자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안전망 기능을 한다. 노동자는 종사하던 업종이 사회 변화에 의해 후퇴할 때,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훈련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유망 업종으로 이직함으로써 안정적인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이러한 개개인의 선택이 모인 사회적 차원에서는 업종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을 빠르게 해소하고, 유망 신산업의 발전을 가속하는 기능을 한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수준 높은 인적자원을 축적하여 신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동일한 노동유연화 정책이지만, 비정규직 확대와는 전혀 다른 정책 기능을 갖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구조조정 개념은 새로운 유망 산업으로의 (인적)자원 이동이라는 개념보다는 사업을 축소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인력개발 프로그램 역시 장기 교육 및 교육기간 중 생활비 보조가 아닌, 1년 이하의 단기 기술 교육, 취업정보 제공 프로그램이 주를 차지한다. 전폭적인 교육 지원 정책으로 손꼽히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며, 자녀가 25세가 될 때까지 수당을 지급한다. 대학생 무이자 대출 제도 등도 갖추고 있다. 현재 독일이 우수한 인재와 높은 제조 기술력을 보유하고, Industry 4.0 전략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상황은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요약하면 대기업 구조조정 때마다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을 확대하자는 논의는 결과 중심적인 접근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변동의 리스크를 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변동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부문 간 이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교육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본질적인 접근이며, 사회변동에 대한 국가 전체의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다. 박서현씨는 노동과 정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월 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48 | 추천: 0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간만에 동향 친구 A를 만났다. 고등학교에서 서울로 대학을 온 몇 안 되는 귀한 친구다. 이공계 학과를 나온 A도 요즘 취직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신촌에서 만난 A는 나처럼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었다. 가방 속엔 둘 다 노트북이 들어있다. 하반기 공채가 시작된 탓이다. ‘오랜만에 수다 떨자’던 만남의 목적은 어느새 ‘자소서(자기소개서) 돌려보기’로 바뀌었다. 카페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요즘엔 공대도 취직이 쉽지 않다더니, A도 ‘자소서 쓰기-자소서 쓰기-필기시험-자소서 쓰기-면접’의 굴레에 묶여 있었다. 친구는 ‘문과보다 이과가 취업하기 좋지 않냐’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문과 나온 친구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니면 이거밖에 못 했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과 쪽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는 것은 똑같은 데 남들이 알아주는 곳에 가야한다는 압박이 크단다. 그러다보니 정작 어떤 직무를 하고 싶은 지는 뒷전이 된다고 한탄했다. 스스로를 잘 팔리는 상품인 것처럼, 어디에나 맞출 수 있는 만능 제품인 것처럼 고군분투해야하는 건 문과나 이과나 매한가지다. 우리는 한참 자판을 두드리다가 헤어졌다. 격려 인사도 잊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해! 시험 잘 보자!” ‘오늘 아침: 바나나랑 요거트’ ‘오오.. 잘 지켰네! 나는 삼김(삼각김밥)이랑 하루견과 ㅠ 망함’ 대학친구 셋이 모인 단체 카톡방이다. 우리는 365일 다이어트 중이다. 취직시험 공부를 하다 보니 살이 쪘다. 아침‧점심은 편의점 음식이나 빵으로 때우기 일쑤고, 저녁에는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면접에 가면 외모가 중요하단다. 아니, 실상은 같은 값이 아니라도 다홍치마다. 면접관들의 기준을 알 수가 없으니 외모 지상주의라고 욕하기도 뭐하지만, 합격자들을 보면 죄다 예쁘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했던 친구 B는 3년 만에 꿈을 접었다. B가 발표를 하면 넓은 강의실 끝에 앉아 있어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전달력 있는 목소리가 B의 무기였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필수 코스라는 아카데미에서는 친구에게 더 마른 몸과 더 예쁜 얼굴을 요구했다. 다이어트와 성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의실에 친구의 전신사진을 띄워놓고 외모지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B는 충분히 예뻤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교와 반복되는 탈락이 B를 작아지게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며 아나운서를 포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외모 지상주의’를 탓하며 분노한다. 아나운서처럼 얼굴이 알려지는 직업이 아니고도 외모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일화는 차고 넘친다. 이건 어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며,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먹는 것까지 줄여야 하냐며 욕하다가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다짐 한다. ‘나 살찜 ㅠㅠㅜㅜㅜㅜ 우리 운동 열심히 하자!’ 고등학교에 입학한 17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늘 ‘열심히 하자!’를 입에 달고 있다. 대학가는 데 목숨을 걸었던 그 때도, 취업에 허덕이는 지금도. 공부도 과제도 운동도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열심히 해야 할 판이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칠판에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라고 써 붙여진 교실에서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했다.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놀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왜 더 열심히 하지 못 하지’라며 자책했다. 사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공부하라는 명제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도, 하면 된다식 논리는 나를 옭아맸다. 취업 기숙학원이 인기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재수생 기숙학원의 취업판이다. 숙식과 수업만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일과를 엄격히 관리해주는 곳이다. 어떤 학원은 원생끼리 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고 번호로 부른단다. 교도소가 따로 없다. 나는 고등학교 3년을 내내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와 기숙학원은 전혀 다르지만, 처음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났다. 잠을 자는 방 말고 공부하는 면학실이 따로 있었다. 오후 10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11시부터 12시까지 의무로 공부를 해야 했다. 이후에는 선택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방에 올라가 쉴 수 있다. 기숙사 입소 첫날, 공부 깨나 한다는 애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서로 눈치싸움을 하느라 자정이 지나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2시가 넘어서야 빈자리가 생겼다. 일주일쯤 지나자 각자의 페이스로 돌아가긴 했지만, 졸린 눈꺼풀을 비비며 버티던 그날 밤은 내 고등학교 생활의 축소판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워진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3년을 버텼다. 대입보다 막막한 취업 앞에 서로 격려해 줄 친구 하나도 없이 지낸다니.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다. 사진 출처 - pixabay 생존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만 해야 하는 우리는 언제쯤 열심히 ‘안’해도 괜찮아질까. 좋은 대학 명패를 위해서 20살 이후로 모든 행복을 미뤘더니, 이제 사회의 구석이라도 차지해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자유와 행복은 모두 나중 일이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유예한다. 대체 열심히 안 해도 괜찮은 때가 오긴 오는 걸까. 늘 행복을 미루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이런 고민도 사치다. 질문은 ‘열심히’의 반대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어 이 전선에서 자진퇴각을 할 수도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직업이라도 명확한 나는 괜찮은 편이라 자위하면서,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원하던 일이니 보람찰 것이라 기대하면서, 씁쓸함을 목 뒤로 밀어 삼키며 신문을 넘겼다. 다음 장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반퇴시대, 인생 후반 설계하자 인생 이모작 시대다. 퇴직 후에도 생계를 위해 구직시장을 떠날 수 없다…’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8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