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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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이기도 하다. 쉬는 시간 10분이 끝났는데도, 아이가 눈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 '조용히 다녀오라'고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작년 말에 복도 반대편 화장실 공사를 할 적에는 나부터 수업 시간을 종종 못 지켰는데, 겨울이기도 하고 줄을 서느라 일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학생 기준으로 30명이 화장실 1칸을 쓴 셈이다.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오고 가느라 휴식 시간이 줄어들고 보니 그동안 불편했지만 참고 살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고, 학교 행정실에도 몇 가지 건의한 적이 있다.   첫째, 여자 화장실 갯수가 부족하다. 학교는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실의 갯수가 같다. 양적 평등이다. 학생 중에는 남자가 약간 더 많고, 교직원 중에는 여자가 많다. 그러나 여자 화장실 칸이 더 많아야 한다. 여자는 한 칸에 한 명 들어가서 볼 일을 더 오래 본다. 변기 갯수가 같거나, 오히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를 포함하면 더 많다. 집 밖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항상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 오래 된 학교라면 새 화장실로 바꿀 때 깨끗한 변기만큼이나 신경 쓸 부분이다.   둘째, 여성 화장실 칸에는 생리대 수거함과 선반이 설치되어야 한다. 생리컵 판매가 시작되면, 이용한 생리컵을 씻는 작은 세면대가 칸 안에 설치되면 금상첨화겠다. 관련 시설물이 화장실 안에 없어서 생리대를 턱에 괴고 볼 일을 보거나, 다 쓴 생리대를 들고 나오는 것은 고역이다. 남자들은 한 달에 3일 이상 팬티 속에 생리대를 착용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새 것으로 바꾸어 봤는가? 당장 시험삼아 생리대를 한 번 차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생리를 선택한 적이 없는데, 여성의 몸을 숙명처럼 여기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셋째, 학교 화장실은 8살부터 60살까지 이용하는데, 좌변기의 크기와 높이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저학년이 주로 있는 2, 3층은 좌변기가 작고 낮은 편이다. 외부 출장을 다녀보면 화장실 공사가 최근에 진행되지 않은 학교일수록 어른의 몸을 기준으로 한 좌변기만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는 쪼그려앉는 변기가 많은 걸까? 작던 크던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것은 위생 문제만 아니라면 불편한 경험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는 할머니가 쉬는 장소   - 한여름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좁고 답답한 휴게 공간이다.   누군가 창고에 물건을 가지러 가면 벌떡 일어나신다. 그 누군가는 초등교사고, 초등학생이다.   사진 출처 - 동료 교사     넷째,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의 성별이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은 대부분 용역 업체 직원이고, 학교 직접 고용이 아닌 듯 한데 50살 이상의 여성이 담당해왔다. 남자 화장실도 여자가 청소한다. 기간제 노동자의 성별은 전국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 청소 여사님은 마땅히 쉬는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채, 여기 저기서 '알아서' 쉬는 것을 종종 보았다. 어느 학교에서는 창고 앞 빈 공간에 장판을 작게 깔고 가끔 누워 계시더라고 동료 교사가 알려왔다. 화장실과 청소,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 이미지는 객관적인 노동 조건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치원 최고 나이 7살 아이들에게 학교 적응 훈련을 시킬 때, 주변 초등학교의 화장실 구조와 상태를 고려하여 '쉬는 시간에 화장실 이용하기'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1학년 아이들은 바지에 가끔 실례를 하고, 고학년이 되더라도 아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변기는 자주 더러워진다. 위생 관념이 없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기술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쉬는 시간은 짧고, 학교 화장실 구조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탓해본다.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09-27 | hrights | 조회: 1158 | 추천: 0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박기영 교수가 과학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들고 나섰다. 이 반대 여론은 일파만파 번져 급기야 박기영 교수가 SNS에 자진 사퇴의 변을 올리고 중도하차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글이 석연치 않았다. 바로 “11년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습니다”라는 대목에서였다. ‘주홍글씨’라는 말을 박기영 교수가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은유적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인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이 주홍글씨라고 생각한다.   ‘주홍글씨’는 흔히 알려진 의미로는 ‘낙인’이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유명한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서 유래한다. 여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로 ‘간통 (adultery)’을 상징하는 ‘A' 문장을 가슴에 달고 산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주홍글씨의 효과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녀를 분리시켜 그녀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마력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낙인을 당하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헤스터 프린은 진실로 결백한 사람이다. 종교적 위선에 저항하는 소수자이자, 그 당시 남성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헤스터 프린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으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없었다. 오직 선행으로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하고픈 말은 정작 낙인찍힌 피해자들은 ‘나 낙인 찍혔소’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박기영 교수의 사퇴의 글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사진 출처 - 필자     소설『주홍글씨』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낙인찍히기 쉬운 환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가 많다. 낙인은 다수가 합리적 이유 없이 소수자를 억누른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성소수자들,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도 결국 낙인찍는 행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힘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장기간 배제를 당한 피해자라면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박기영 교수가, 당신께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내가 껄끄러웠던 이유는 진실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기영 교수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니다. 12년 전 황우석 사태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낙인을 찍는 가해자 집단이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박기영 교수 임명을 비판한 연구 윤리를 추구하는 과학자 집단 또는 시민 단체들이 문제 집단이란 말인가?   정작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피해자들은 이 말을 사용하기는커녕 이 사회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끽’ 소리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진실로 주홍글씨를 당하며 힘겹게 사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서글픈 마음에 울컥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09-27 | hrights | 조회: 1368 | 추천: 2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가출을 했다. 이어진 방황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별다른 준비 없이 한 중퇴였기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2’라는 게임에 빠져 도서관을 간다며 피시방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검정고시 학원에서는 한 살 형과 주먹다짐까지 하기도 했으니, 술·담배까지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군대 전역하고는 치킨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십대 때 체육관 관장님이 “공부 안 하면 짜장면 배달이나 하고, 그러다 사고 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신선한 장기 배달까지하게 되는 거야”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넉넉한 시급을 포기할 순 없었다. 눈비가 오는 날에는 목숨을 걸고 배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삼십 분 이상의 노동과 위험수당으로 만들어진 ‘치맥’에 대부분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수고하세요”라는 말 뿐이었다. “조심히 가세요”라는 한마디 듣는 날에는 퇴근 때까지 힘이 났다.   사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그 덕에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도 노무현 대통령을 보며 “나도 고졸 출신 인권 변호사가 될 거야!”라며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막상 수험공부를 해보니 내 길이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진로를 바꿔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다행히 영어에 소질이 있었던지, 영어특기자 전형으로 경찰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 가고 싶어하는 학교에 열아홉 살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돈 욕심이 있어서인지, 치킨배달과 함께 대기업에서 알바도 시작했다. 총수가 구속되거나 말거나 매출액·영업이익 1위를 지키는 그 기업이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어와 영어로 내·외국인들에게 홍보와 안내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 치킨배달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낮은 강도의 노동에도 사람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밥 한 끼를 위해 외부에서도 찾아오는 식당에서 무료로 식사를 하고, 두 시간을 근무하면 꼬박꼬박 삼십 분을 쉬며 일한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판단할 때 ‘지위’, ‘직장’, ‘학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내 대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만해도 고등학교 중퇴생이라고 소개할 때와 대학을 일 년 일찍 간 사람으로 소개할 때 그 대접의 차이가 전혀 달라졌다. 꼭 ‘자퇴생’ 뒤에 ‘조기졸업자’ 같은 불필요하고, 가식적인 표현을 추가해야할 것만 같았다. 치킨 배달을 한다고 말할 때와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고 말할 때도 사람들의 온도차가 달랐다. 종종 “배달은 시급이 쎄요”라는 부연설명을 자연스레 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프랑스 마르세유 보를리 박물관에 소장된 <야누스>   사진 출처 - 미술대사전(인명편)     담배 냄새를 혐오하고 흡연자들을 이해할 수 없던 내가 지금은 애연가가 됐다. 허구한 날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칭했던 내가 진보 정당에 가입하여 선거운동을 했다. 성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그런 언어를 즐기던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과거와 내가 달라진 것은 한 가지이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나의 한계를 어렴풋이 짐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야누스를 하나 둘 발견하고, 이방인들의 야누스를 짐작하며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651 | 추천: 1
박용석/ 회원 칼럼니스트     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를 봤다. 목포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한 배는 그 곁을 스치듯 지나고 있었다. 적자생존이라는데, 살아남은 것은 정말 가장 적합한 것일까 생각했다. 계약기간 만료 통보와 포상휴가를 거의 동시에 받은, 본의 아니게 너무 긴 휴가 중이었다. ‘세월호의 슬픔 우리가 함께합니다’라 적힌 목포해양대학교와 목포신항 사이, 8월의 바다는 숨 막히게 뜨거웠다.   답답했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반적으로 옳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 일을 함께하고 있음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본말이 전도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 상황에도 “나는 뭐가 되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다. 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레닌처럼, 계급과 사회에 대한 웅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었다.   전의 나는 그렇게 말할 처지가 되지 않아 이렇게 썼었다. ‘천재는 되지 못하지만, 천재들이 인간의 이성을 지키는 데 자신의 재능을 쓰도록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엇인가 되어야만 했기에 1년 전쯤 쓴 ‘자기소개서’에 그리 적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처지다.     사진 출처 - 필자     “저기 세월호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외쳤다. 조금 전까지 혼자 서있던 난간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제야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같은 슬픔을 나누었다. 그 순간, 나는 중학생쯤이나 되었을 그 아이에 비해 한심했다. 중요한 어떤 것을 잊고 있었다.   목표를 위한 방향과 속도, 혹은 실익이란 것들 때문에,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그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는 결국 침몰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 지난 3년여를 함께 외쳤지 않았나. 침묵하는 자, 침묵을 강요하는 자, ‘적폐’라고.   여전히 서울시의 ‘노동존중’ 정책 전반은 옳고, 많은 점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아주 작은 사례 한 가지를 늘어놓은 것이 그 전부를 매도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여전하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다. 그것이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말해줄 사람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몇 년에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사람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단 생각 때문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당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슬픈 예감은 좀체 틀리는 적이 없다고 한다.   계약기간 만료 10일 전, 계약기간 만료 통보를. 계약기간 만료 5일 전, 그나마도 엎드려 절 받기로 5일 간의 포상휴가를 주는 건 잘못된 일이다. 적당히 서로를 위하는 척, 입 다물게 만드는 건 더욱 잘못된 일이다. 노동존중특별시란 서울시의 노사정 협의기구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좀 아니다.   생각해보니 잘된 일이었다. 이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됐으니. 그렇게 한다고 더는 계약해지 될 일도 없으니. 여전히 걱정스럽고 답답하지만, 덕분에 무엇도 되지 못한 것이 아픈 청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꼰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동안 묻어 놓으려던 어설픈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음으로, 무엇도 되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바다에도 때론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박용석 :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일했었고, 서울시 노사정 협의 기구에서 일했고, 여전히 무엇이 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615 | 추천: 1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더위가 한창이던 7월과 8월의 경계에 북간도와 만주를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심양으로 출국하여 2주에 걸쳐 창춘, 옌지, 하얼빈에서 하이라얼의 만주 벌판과 베이징까지 돌아보았다. 대기업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우연히 참석하였고, 중국 대륙을 처음 마주한 필자로서는 쉽게 여행을 다녀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인 행사였기에 방문한 장소들에서의 보고 느낀 풍경들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여행을 떠나며 작은 출판사의 초판본 육사시집 한권을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동주가 여행의 주요한 동반자였지만 육사의 시와 질문들이 북방이라는 지역과 마주하며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룽징의 용정중학교와 명동촌, 하이라얼로 떠나는 야간열차와 만주의 게르에서 동주와 육사의 시를 다시 읽었다. 광야의 매운 눈보라에도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던 육사,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웠으나 한 점 부끄럼 없이 주어진 길을 걸어가던 동주를 친구이자 선배, 선생으로 삼아 여행을 다녀왔다.   둘을 동반자로 삼으니 대륙의 풍경들이 그저 평범하게 스쳐지지 않았다. 수많은 투사(鬪士)와 지사(志士)들이 목을 걸고 싸우며, 뜻을 품고 길을 모색하던 한복판에 내가 서있음이 번뜩 떠오르곤 하였다. 일제에 의해 수많은 조선과 중국의 민중들의 삶이 유린되었고, 그에 맞서 각자조국의 진로를 고민하던 선비들이 있던 땅. 내가 선 곳은 창과 방패가 쉴 틈 없이 부딪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북방의 넓은 벌판을 걸었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날 듯, 망망하게 펼쳐진 광야에 처음 발을 디뎠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이어폰을 꽂아 ‘광야에서’를 들으며, 초원을 걸었다. 오래전부터 찬 겨울 툰드라에 싹을 틔우는 잔디들 위에. 맘모스가 뛰놀았다는 초원 위에. 광야를 정복하겠다고 말을 달리던 칸이 지나간 자리에 지금은 말을 치고 양을 치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얼빈에서 만주리로 가는 열차에서 바라본 초원   사진 출처 - 필자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시인들은 시를 적던 시점을 많이들 남겨두었다. 스물 세 해를 헐떡이며 커왔다는 서정주부터, 참회를 적으며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의 기쁨이 무엇이었던지 돌아보던 윤동주까지. 나는 몇 해 몇 개월쯤을 살아왔나 꼽아보며 나는 무얼 바라 살아왔는지, 무얼 바라 살아야할지 물었다. 오래된 질문들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질문들과 흐릿한 답변 사이에서 헤매다보니 어느새 다시 일상이다.   광야를 걸으면 슬그머니 어떤 해답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답이 없을 질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을 버리지 않고 우선 주어진 길을 최선으로 걷는 것 일 터이니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뒤를 좇으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고마운 당신에게도 오래된 질문이 이어질까? 언젠가 나의 흐릿한 답변과 당신의 이야기들이 함께 만나는 순간을 기대한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670 | 추천: 1
  -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를 통해 본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점과 대안 정석완/ 회원 칼럼니스트     우리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복지 제도가 있습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제도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와 함께 국가에서 최소한의 삶의 여건을 지원해주기 위한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의 대상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된 조건에 미달될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저소득층으로, 정부에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기타 현물지원 등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의를 시작하여 1999년에 제정된 후 2000년부터 제도가 시행되었고, 과거 생활보호대상자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제도가 입법화된 배경에는 정권 교체로 인한 정치적 환경 변화와 함께 1997년 외환위기라는 대규모 경제위기와 기업 도산으로 실직자가 양산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의 대상자를 선정함에 있어 근로 능력, 일정 금액 이하의 소득과 부양 의무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등의 조건은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무 부양제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초 생활 수급자 지정에 필요한 소득과 관련한 것’입니다.   기초 수급 대상자가 되려면 ‘본인이 근로 능력이 없고, 자식 중에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로 능력이 있는 자식이나 친인척 등을 의무 부양제도에 의해 의무 부양자로 지정함으로써 국가의 복지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산을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 명의로 자산을 돌려놓고 생활 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제도이지만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부양을 전제로 한 부모와 자식 간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다툼을 방지하고자 ‘불효자 방지법’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이 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 관련   사진 출처 - 라포르시안 (2014.10.14일자)     기사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일명 ‘송파 세 모녀’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무 부양제도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지만, 실상은 의무 부양제도로 인해 기초생활 수급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본인의 소득이 기준보다 높아서 탈락한 사람은 10.1%인데 반해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 탈락한 경우가 54.1%나 되었습니다.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역설적으로 사회보장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으로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 조건인 재산과 소득 관련한 문제입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 자격 조건이 되려면 가구당 인원수에 따라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소득을 판정하여 기초 수급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 문제는 이 기준 소득 이상으로 소득이 발생할 시에 기초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입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 관련   사진 출처 - YTN(2014.9.11일자)     2015년 국정감사에서 김성주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자녀의 소득이 기준선보다 45원 많아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한 사례도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 2016년 YTN 뉴스는, 일정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마저 박탈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초 생활 보장법의 문제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내에서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무 부양자 제도는 실질적으로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의 혜택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문제를, 의도치 않았지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행정 편의적 제도 적용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행정 공무원들이 실질적으로 기초 생활 수급자 자격에 해당이 되나 의무 부양자로 인해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 분들을 찾아 뵙고, 현장을 조사하는 현장 중심의 행정 집행이 이루어진다면, 의무 부양제도에 대한 개정이 있기 전이라도 이러한 문제는 일정 부분 보완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초 생활 수급자의 소득 증가로 인한 수급자격 박탈 문제는 복지 제도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문제로 곰곰히 생각해 봐야합니다. 복지 제도의 역할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시민들을 국가가 도와줌으로써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해 주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복지 제도를 통해 안정적 생활 기반을 잡고, 나아가 복지 제도의 혜택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초 생활 수급자의 일시적인 소득 증가로 인한 기초 수급자 자격 박탈로, 다시 기초 수급자로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초 생활 수급자의 소득 증가를 권장하며 증가한 소득을 인정할 수 있는 증가 소득의 유지 및 지속 기간을 정해야합니다. 이 기간 동안 소득이 유지 및 증가하면 자격에서 제외하는 등의 보완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은 복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복지제도가 일시적이고 획일화된 기준으로 적용되고 현장 중심이 아닌 행정 편의적으로 처리가 된다면 본연의 목적과 달리 오히려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초 생활 수급자 제도를 통해 본 현상과 문제점을 개선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방지되었으면 합니다. 복지제도를 만들 때 더 신중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야합니다.   정석완 : 민주 사회를 위해 사회 문제를 시민사회와 정치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입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785 | 추천: 1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교 일의 상당수는 글을 읽는 것이다. 교육청에서 온 공문을 읽는다. 공문 작성 전에 작년 공문을 참고삼아 열어 읽는다. 늘 쌓이는 업무용 메신저의 글을 읽는다. 잘못 전하면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특히 반 아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내용은 꼼꼼히 읽는다. 교장, 교감님이 가끔 보내오는 글은 의도를 추리하며 잘 읽는다. 학생들의 글도 많이 읽는다. 지필평가에 포함된 서술형 답은 단답식에 가까워 읽기 쉽다. 논술형 수행평가처럼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긴 글은 시간을 들여 읽는다. 요즘은 교내 대회가 많다. 대학 입시에서 교내 수상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1년에 열리는 교내 대회가 100개를 넘기도 한다. 올해 내가 맡은 교내 대회는 5개이다. 참가자는 보통 100명에서 250명가량이니 보고서나 논설문, 시, 산문 등을 끊임없이 읽는다. 애들 글을 읽다가 1년이 가는 것 같다. 학생들의 글을 읽기 전에는 믹스 커피를 한 잔 마셔 정신을 깨운다. 공강 시간을 두 시간 정도 확보하거나 야근을 한다. 논제와 채점 요소가 정해져 있으니 비슷비슷한 글이다. 평가의 대상이니 3번씩 읽는다. 꼼꼼하고 딱 부러지는 아이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헐렁한 논리를 전개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입 한 번 뻥긋 안하는 아이인데 글의 구석구석에 생동감이 넘쳐 나기도 한다. 아이들의 글을 통해 일부이지만 그들의 생각을 엿본다. 하지만 평가나 수상을 위한 글은 포장이 잘 되어 있고 큰 재미는 없다. 사진 출처 - 필자  오히려 아이들의 발랄한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복도의 게시판이다. 작년 학교 예산의 일부를 사용하여 커다란 화이트보드 세 개를 복도에 설치하였다. 학교 일정도 써놓고 대회나 행사를 알릴 용도로 쓸 계획이었다. 4년 째 같은 학년을 맡고 있는 내가 복도 게시판을 관리하겠다고 자청했고, 하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유게시판이라고 알렸다. 화이트보드가 가장 활발히 사용된 시기는 국정 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작년 가을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게시판에 표현하였다. 크고 작은 대자보가 붙기도 하였다. 바쁜 3학년 수험생들도 내려와 한 줄 쓰고 돌아갔다. 가득 차면 또 쓸 수 있게 한 번씩 지웠다. 곧 가득 찼다. 게시판에 남겨진 아이들의 생각을 읽으며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 정부 비판을 위해 내가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엉뚱한 소문도 났다. 억울했다. 해가 바뀌고 나서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게시판에 왔다 간다. 시험 기간 같이 스트레스가 큰 시기에는 무서운 내용도 많다. 최근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학교 폭파 버튼’이었다. 누르면 학교가 폭파될까? 재미있어서 지우지 않았는데 누군가 지워버렸다. 아깝다.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7-08-18 | hrights | 조회: 705 | 추천: 1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아무리 더워도 한 달만 지나면 처서(處暑)다. 매년 그랬듯이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은 서로 비슷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얼굴이 탔네, 좋은 데 다녀왔어? 더 예뻐졌다.” 이런 말은 40대가 시작한다. 20대의 응대도 고만고만한데, 일단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좋아 보여요. 젊어지신 것 같아요” 기혼 50대와 어린 아이를 둔 30대가 나누는 말은 색깔이 좀 다르다. “한 달 동안 급식을 안 먹어서 살이 빠진 것 같아요. 방학 동안 세 끼 밥 하느라 힘들었어요” 외모 얘기에서 살림이나 가족 여행 여부로 넘어간다. “아유, 그래. 방학이 더 힘들다니까. 집을 탈출하니까 좀 살 것 같아.”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길 마련이다. 며칠 전 친구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께서 딸 얼굴을 보자마자 요구하셨단다. “꿀물 좀 타 와라.” 개인 사정으로 바깥출입을 며칠 안 하시고 하루 종일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주 5일 출퇴근하는 딸에게 하는 첫 마디가 먹을 것 가져오라는 말이었다. “잘 다녀왔니?” 라던가, “오늘 일찍 왔네, 배고프지?” 같은 말은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는다. 배려심 많은 착한 딸이, “집에 계셨네요? 배고프시죠? 저녁 뭐 먹을까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야 진부한 TV 드라마라도 전개되는 2017년에, 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밥 짓기를 숙명으로 여기는지 궁금해졌다.   영등포구청역 화장실에서 6월 4일 발견한 스티커. 미소지니(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미러링을 택한 ‘워마드’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 서부 지역 공공장소에서 이런 스티커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사진 출처 - 필자   밥은 누가 하는 걸까? 아내일까? 누나일까? 실생활에서 상차림을 기획하고,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해서, 칼질하고 가스 불 켜서 음식을 익히고, 돈도 안 나오는 그 일은 ‘누구’의 일일까? 사회화된 의무감을 가진, 착한 성품을 타고 난, 살림 파업하지 않는, 육아의 주된 담당자가, 잘 해왔고, 빨리 배우기 때문에, 밥을 하는 건 ‘여성’적 특성인건지, 주로 어머니가 담당해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을 때에는 딸이거나, 여동생이다. 당연하다는 듯 가족 중 누군가는 지정 성별이 ‘여성’인 자에게 밥을 요구한다. 자기 배가 고픈데, 남에게 밥을 요구하는 문제해결 태도는 어디서 배운 걸까? 자기 숙제를 엄마에게 미루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밖에 나갈 때 ‘네 신발은 직접 신으라’고 집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왜 목이 마를 때, 물은 자기 손으로 안 떠먹을까? 아직 애라서? 철부지 같은 남자는 평생 보살펴 줘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라도 있는 마냥 어머니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길들여져서인지 점심시간 당연한 듯 식당에서 일행의 수저를, 휴지 깔고 놓는 대다수 여성과 각자의 자리에 물이라도 챙기고 있으면 가정적이라고 칭찬받는 남성을 본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리고 집에서 해 먹든, 집 밖에서 사 먹든 여자가 밥을 짓는다. 요즘은 직장 다니는 여자도 많고, 승진하는 여자도 많고, 밥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자고 남편과 합의한 여자도 많아서, 각자가 해결할 사안인가? 여성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예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승진해봤자 부장급으로 가면 10%도 안 되며, 아이가 있는 집에서 끼니를 항상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50살 이상인 여성 조리 종사원 20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주 5일 점심을 먹으면서, 여자인 나는 ‘밥 먹기’가 종종 불편하다. ‘아빠! 어디가?’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각종 먹방에서 백종원 같은 남성 요리사가 진행을 주도할 때, 미디어가 ‘밥 짓기’를 교묘히 포장하면서 일상을 짓누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다. 변화나 진보라는 게 있다면, 거대한 담론 같은 거 말고 밥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사소하고 개인적이어서 가장 정치적인 ‘밥’말이다.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08-09 | hrights | 조회: 519 | 추천: 1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기숙사 생활 6개월째 일이다. 박사 논문 마지막 심사를 앞두던 때였다. 논문 심사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기숙사 행정실에서 모든 기숙사생에게 종강일에 맞춰서 퇴사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종강일은 학생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학부생은 종강일 전후 5일에 기말고사를 치르고, 대학원생은 종강일 전후 7일에 소논문과 같은 과제를 제출하거나 나처럼 학위 논문 심사를 준비한다. 학점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 처지에서는 피가 마르는 시기다. 대학이 아닌, 보통 임대업자도 이렇게 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숙사에 입사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20대 학생시절에는 얻지 못했던 기숙사 생활 기회가 30대 중반에 생겼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에 생겨난 기숙사가 처음에는 좋았다. 학교 중앙도서관과 가깝기 때문에 논문 작업을 하다가도 피곤하면 언제든지 기숙사로 돌아와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기숙사가 학업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가 맞기는 하다. 그런데 종강일에 퇴사를 하라니! 그러면 이사가 하루아침에 끝나는가? 이삿짐을 한 번도 싸보지 않은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너무 편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방학에도 거주하는 사람인데, 순전히 기숙사 행정 편의를 이유로 짐을 싸서 외부에 보관했다가 다시 다른 방으로 옮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대로 같은 방에 살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다. 또한, 기숙사에는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몇몇 학생들은 그 기간 동안에 호텔 방을 전전하기도 했단다. 비용을 아끼려고 기숙사에 들어왔다가 시험 및 과제를 마무리할 시기에 낭패를 본 것이다. 새로 지은 기숙사라 행정의 미숙함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행정실도 올해 초에나 겨우 갖춰졌다. 학부생은 ‘사생회’라도 있어서 그나마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생은 사생회도 없다. 학생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행정상의 편의만 고려하는 그들! 기숙사를 새로 지었으면 직원을 충원해서라도 행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새로 지은 기숙사 비용은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았다. 가령 고시원 방만한 크기의 1인실은 한 학기에 약 140만 원 정도 한다. 월세로 따지면 대략 월 40만 원 선이다. 왜 기숙사가 학생들의 학사 일정을 보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행정 직원의 관리 편의를 도모하는 공간이 된 것일까? 여기서 ‘무엇이 가장 먼저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듯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는 학생의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를 철저히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학생이 가장 학업하기 좋은 학교가 전통 있는 명문학교이지 않을까? 너무 답답한 나머지 총장님께 호소문을 썼다. 설마 답변이 오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했다. 뜻밖에 이번에 새로 선출된 총장님은 반응을 보이셨고, 기숙사 관장님께서 회신을 주셨다. 답변인즉, 행정상 관리 문제 탓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요지이고 대학원생은 내년부터 안 옮기게 해준단다. 아! 그럼 진즉부터 안 옮기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는 살던 방에 그대로 살게 해서 종강일 즈음에 방을 옮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생겨난 행정실에서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아무튼 종심 준비도 벅찬 시기에 행정상의 관리만 믿고 옮겼다. 그런데, 방을 옮겨보니 방청소가 하나도 안 되어있다. 도대체 왜 옮기게 한 것일까? 행정상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새로 생긴 기숙사 외관 사진 출처 - 필자 얼마 전, 대학교 주변 임대업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기숙사의 신축을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는 임대업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사 행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기숙사 행정을 겪고 보면 정말 비판받을 대상은 기숙사 행정이 아닌가 싶다. 학교 주변 임대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교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의식을 잊어버린 채 어쩌면 학교가 학생을 상대로 임대업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이 글은 2017년 7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8-09 | hrights | 조회: 557 | 추천: 2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큰 주먹을 휘두르며 ‘으리!’를 외치는 사나이, 탈모가 진행 중인 퇴물 헤비메탈을 생각나게 하는 사나이, 특히나 큰 머리만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나이, 바로 김보성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기약 없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중감량과 격투기 수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김보성에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뉴스를 보니 그는 소아암 환자의 가발제작에 기부할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던 것이었다. 말로만 의리를 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그는 내 인생에 쑥, 들어와 버렸다. 무더위가 시작된 작년 7월, 눈을 가릴 듯 말듯 한 머리카락들을 더 이상 자르지 않기로 했다. 숱 많고 굵은 머리카락을 묶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지인들은 땅콩 같은 뇌가 만개할 만한 표현들로 내 장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탈모를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고, 친구들은 그 산적 같은 머리를 보고도 애인이 뭐라 안 하냐고 물었고, 친형은 ‘주진우 기자’를 따라서 머리 기르는 거 같은데, ‘현실은 김어준’이라는 등의 코멘트를 남겼다. 머리카락 기부 당시 사진 출처 - 필자 평가와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들이 SNS를 통해 “미용실 예약해줄게”라고 말하는가 하면, 엄마는 줄곧 “꼭 사는 것 포기한 애 같아, 너!”라며 머리 자르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꼬마가 내 머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엄마에게 “엄마, 저 아저씨는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기도 했다. 아빠는 어느 날부터 나를 ‘잘생긴 이외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자 화장실에서 머리를 묶다 본의 아니게 남자들을 쫓아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장발 남성’의 장점도 있었다. “남자는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면 안 돼” 같은 ‘성역할 강요’를 겪다 보니 소수자성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글과 말로만 배워온 페미니즘 같은 소수자에 관한 학문과 운동을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정상인’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나, 설득할 기회조차 없는 무수한 행인들의 ‘시선’을 감내해야하는 순간들이 그러했다. 소아암 환자 기부금 모금을 위한 종합격투기 행사에서 ‘파이터 김보성’은 ‘1라운드 TKO패’했다. 동시에 남성으로서 35cm를 기른 3년, 50대의 나이에 격투기를 위해 13kg를 감량한 과정, 6급의 시각장애를 안고서 2분 35초를 버틴 링 위의 사투에서 그는 ‘완승’했다. 나 또한 계획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하지만 30cm를 만들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머리카락을 기부했고, ‘머리 긴 남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과 꾸준히 대화하고 설득해나가고 있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처럼 소수자 운동도 조금씩 자라는 일일 테다. 매번 큰 노력을 쏟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쑥, 자라날 것이다. 이런 믿음이 오늘도 머리를 기르게 만든다.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7년 7월 2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8-09 | hrights | 조회: 763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