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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반말하지 마! (오민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50
조회
387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어렸을 때 일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접했을 때 유치원의 교재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말투였다. 존대에서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하시오.’ 하는 명령형 문장들을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질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나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제는 그 말투에 익숙해져있었다. 국가가 지정한 교과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반말, 명령형이다. 이것이 나와 국가가 관계를 맺는 방식인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누가 명령을 하고 누가 그것을 수용하는지, 말투에서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국민을 주체가 아니라 명령을 듣는 객체로 만들려는 의무교육의 목표가 여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국가가 우리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명령에 적응시킨 국가는 우리가 성인이 되자 달라진다. 갑자기 자유인 대접을 한다. 책임지지 않는다. 국가가 자존감을 말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이집트 대표가 말하는 이집트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인 이미지로 나온다. 가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 역시 가장이 진다. 물론 이것이 타당하고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가부장적 권위는 해체당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일관성이 없다. 학교와 군대에서 복종하는 객체로 만들어놓고 그 사람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는 선택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책임도 지지 않는다. 취업, 결혼, 육아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나에게 먼저 반말로 명령을 시작한 것은 국가고 고등학교까지의 삶을 좌지우지 한 것도 국가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때부터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가 생긴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청년들이 쏟아진다. 내 주위에도 이런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20150916web01.jpg사진 출처 - 페이스북


이런 이중적인 구조에서 청년들이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일까. 아예 모든 것을 국가가 선택하도록 하자는 전체주의를 꿈꾸는 청년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규제사회와 민주화사회의 경계를 밟고 있다. 하지만 규제사회나 전체주의 사회로의 복귀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은 87년에 만들다 만 민주화의 완성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명령에 복종하게 만들다가 사회에 내다버리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힘,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당장 교과서의 반말부터 고쳐야한다.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