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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모르는 순수함으로 (이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35
조회
279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5월 24일은 세계 여성 비무장의 날이다. 그런 5월 24일을 기념해, 세계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비무장지대에 모였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라는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지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걷기 퍼포먼스에는 두 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일랜드 분규를 해결하는 데 공로를 세운 메리어드 매과이어, 라이베리아의 내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리마 보위가 함께했다. 메리어드 매과이어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평화활동가로, 지난 2009년에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향하는 구호선에 탔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되어 국외 추방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리마 보위는 여성평화운동을 조직하여 라이베리아의 인종 문제로 인한 내전을 종식하는 데 애썼으며, 현재는 트라우마 치유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또 월트 디즈니의 손녀 애비게일 디즈니,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지지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에 연대한다. 애비게일 디즈니는 라이베리아의 평화활동가 리마 보위를 만난 후 여성, 전쟁, 평화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지나친 순수함이라고. 그 여성들이 비무장지대를 걸어온다고 해서 하루아침 사이 과연 무엇이 바뀌겠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함께한 김반아 박사는 말한다. 그런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의 ‘두려움을 모르는 순수함’이 바로 지금껏 역사의 원동력이 되어온 거라고.

남북의 끊임없는 갈등, 그리고 그 상황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 평화통일은 분명‘골치 아프고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라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한 사람으로 이번 걷기에 참여했다. 분단을 넘어서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5월 24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으로 향했다. 보수 세력의 맞불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흰색 옷을 입는 국제여성평화걷기 팀에 대항하는 의미로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모여 있었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국제여성평화걷기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이 행사는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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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여성평화걷기
사진 출처 - 필자


 

걷기 행사 뒤 이튿날, 서울시 청사에서 열린 국제여성평화회의에도 역시 보수 세력은 맞불 시위를 하며 자리를 지켰다. 엄마부대봉사단, 어버이연합 등은 “국제여성평화걷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북한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탈북 여성인 이애란 씨는 국제여성평화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북한의 핵개발이나 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해서는 여기 있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예상치 못한 이애란 씨의 항의에 모두가 당황했지만 라이베리아 평화활동가 리마 보위는 그녀에게 다가가 “당신과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공감한다. 우리 역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연설이었다. 그녀는 머나먼 미국에서 한반도까지 평화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온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다니던 학교에는 한국전쟁에 징집될 뻔한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참전용사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고통이 실제 전쟁이 진행되었던 한반도 주민들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지구촌 어떤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하며 연설을 끝맺었다. 그녀는 이번 행사를 모두 마치고 난 파티 자리에서, 참여자들에게 ‘We are linked’라고 쓰인 팔찌를 선물로 남기고 갔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우리는 분단을 넘어, ‘보통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반도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반도에서 냉전의 망령을 쫓아내는 한바탕 유쾌한 굿판을 벌이기 위해, 분단이라는 굳은살을 슬슬 문질러 풀기 위해 국제여성평화걷기가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우리의 걸음은 분명, 끊어진 남북의 허리를 잇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은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과 상상력으로 잔뜩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이 꿈을 함께하는 모두에게 우주의 기운을 담아 열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