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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갈아엎는 달”이다(김희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3-13 11:33
조회
309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시 4월이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신동엽이 그렇게 노래했다. 그의 간절함대로 우리는 4월마다 많은 것을 갈아엎었고, 많은 것을 새로 세웠다. 총칼로 국가를 유린하던 군부세력을 갈아엎었고, 문민정부가 군부를 통제하는 틀을 새로 세웠다. 외세가 독재정부를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던 틀을 무너뜨렸고, 보다 평등한 국가간 관계의 틀을 새로 일궈왔다. 재벌이 노동을 압도하던 관행을 허물었고, 노동하는 자들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4월은 그렇게 늘 꽃 피울 줄 알았다. 봄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랬다. 놀랍게도 모든 영역의 민주화의 꽃들이 시들고 저무는 데는 2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 반대 세력은 언제라도 감옥으로 보내는 군부독재 시절이 재현되고 있다. 광인으로 불렸던 트럼프 대통령조차 눈치 보게 만들었던 한국의 위상은 이제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종속적 국가의 지위로 전락했다. 노동하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시대는 고사하고 재벌 총수들 조차 떡볶이를 먹는데 동원되는 시대가 되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는 3월 초 윤석열 정부를 ‘독재화’ 국가로 분류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급속히 반동의 시기가 왔을까.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고유 명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좀 큰 문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타율적 해방에 따른 미완의 근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근대를 완성하지 못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위기가 찾아 올 수밖에 없는 체제에 살고 있었다.


전후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인 샌프란시스코체제와 중국이 들어와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인 키신저시스템이라는 양 축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국은 지금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체제로 회귀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이 회귀하고자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일방적 불평등 동맹체제이다. 수출로 먹고 살아 온 분단된 한국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반동적 회귀전략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1970년대 미중 간에 구축된 키신저시스템은 한국에게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은 미중수교를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미중수교에 이어 단행된 한중수교는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키신저시스템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를 해체하고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었다.  불평등한 국가체제 위에서 한국은 정치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기댄 채 모래 위에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회귀전략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분명했다. 미국을 따라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회귀했다. 그동안 확보해놓았던 전략적 자율성을 버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올인하며 미국의 첨병 역할을 자처했다. 모든 것은 다시 197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다시 북한을 대화조차 불필요한 적성국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 틈을 활용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나아갔고 민족국가 지향을 폐기하고 2국가체제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넘어서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대시 해나갔다. 러시아로부터 모든 사업은 중단되었고, 중국으로부터 흑자로 유지되어 오던 성장은 무너지고 적자경제로 돌아섰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우리의 주력산업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도전받고 있고,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가계부채는 GDP의 100%를 넘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축배를 들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야수들은 그저 숨죽이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확보했다고 믿었다. 국가간 불평등 구조는 해체되지 않았는데 마치 온전한 주권을 확보한 것으로 착각했다. 물대포 하나만 등장해도 위태로운 촛불 시위의 성과를 촛불 혁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민주화의 동력이었던 청년들이 가장 축제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두고도 위기의 시대라 말하지 않고 신세대의 등장이라고 불렀다. 아직 우리는 겨우 30%의 진보세력만 확보되어 있는 불안정한 민주체제일 뿐인데도 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은 전후체제가 흔들리고 반동세력이 전쟁과 폭력의 20세기로 회귀하고자 하는 위기의 시기이다. 위기의 크기에 맞는 큰 싸움을 해야 할 때이다. 큰 것부터 갈아엎고 다시 세워야한다. 주권의 온전한 확보와 국가간의 불평등 체제로부터 자유를 얻지 않는 이상 나라 안의 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의 확보라는 근대의 완성 없이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다시 외세가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는 외압으로 작동하는 시대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우리의 민주화를 망가뜨리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다시 우리를 전쟁과 폭력의 시대로 몰아가게 쳐다만 보고 있어서도 안된다. 중국이 부상한 힘을 동아시아를 패권 싸움의 전장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된다. 윤석열 정부의 폭거가 어설프게 보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 뒤에는 거세되지 않은 폭력적 권력집단이 틈을 노리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식민주의 세력들이 언제라도 그들의 뒷배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국가의 꿈을 세울 큰 그림을 그리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이 땅의 엘리트들은 이번 4월 만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적 위기이다. 여차하면 나라의 운명이 골짜기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이다. 엘리트들은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반동 세력을 앞에 두고 우리 안의 민주의 차이를 말하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워야 할 반동세력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진보언론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묻은 때를 탓하는 일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다. 지금은 달을 가리킬 때이다.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꼭 나여야 한다고 강변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엘리트라면 자신이 원하는 그 자리가 아니어도 국가를 위해 일할 곳은 많다. 모든 정치인은 국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엘리트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상식을 가진 시민들의 각성이 중요한 시기이다. 결국 국가의 운명은 그들이 결정한다. 넥타이 색깔이나 아파트 가격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들이 다수인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국내 문제야 다음이 또 있지만 국가 간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그것이 시스템으로 고착되어 백년을 간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면 우리 시민들이 일어서야 한다. 국가의 꿈에 대해 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4월이다. “그날이 오기 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이다. 반동의 역사를 갈아엎을 시기가 왔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일어서자. 우리가 여기서 분열하여 다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을 헤맬 수는 없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