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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을 권리, 죽음 이후 존엄할 권리(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2-29 13:37
조회
520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플랜 75>는 죽음 권하는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일본 영화다. 영화는 삶만큼이나 죽음도 평등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한다. 75세가 되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자격을 주는 법이 통과되고,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어르신들은 알아서 죽어달라는 플랜 75 정책에 아무도 ‘노’라고 외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루지만 극적인 폭력은 없다. 아무 일 없는 듯 잔잔한 일상이 흐르는 가운데 노인들은 조용히 플랜 75를 상담하고 죽을 날을 정해놓고 위로금을 받아 온천여행을 간다. 다큐가 아니라 픽션이라 다행이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을 이루는 초고령화, 노년 빈곤, 노년 고독, 돌봄노동의 이주화 같은 현상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곧 현실이 될 수도 있겠는데, 아니 일부는 이미 현실이 아닌가, 불안과 우려가 엄습한다.


                              영화 <플랜 75> 포스터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75’라는 숫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후기고령자(後期高齡者)라고 부른다. 단지 그렇게 부르기만 하는 게 아니다. 따로 분류되고 다른 제도에 편입된다. 75세가 되면 국민건강보험에서 탈퇴 처리되고, 75세 이상만을 위한 후기고령자의료보험제도에 자동 가입된다. 이 제도는 2008년에 4월부터 도입되었는데 기존 제도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본인 부담이 새로 생겼다. 후기고령자의료보험제도에서는 10%를 본인이 부담하고 부양가족 개념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후기고령자가 일정액(월 1만엔) 이상의 보험금을 새로 부담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초고령화로 증가하는 노년층 의료비 부담을 본인 부담을 늘려 충당하겠다는 제도이다.


감독은 정부에서 처음 후기고령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75세를 기준으로 인생이 마지막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특정한 나이부터 후기고령자라고 부르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반대의견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착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마저 없다고 전했다. 만일 초고령화사회 대책으로 극적인 전환을 꾀하는 정책이 생긴다면 75세를 기점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독은 말했다.


영화 <플랜 75>는 잔인한 정책에 익숙해지고 마비되어가는 과정의 무서움을 그리기 위해 시민들의 저항은 일부러 배제하고 순응하는 모습으로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 미치는 국가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죽어주지 않고 살아 돌아온다. 평생 순응하며 살아온 미치가 국가와의 약속을 어기고 제 발로 걸어 나와 언덕을 오르고 산에 올라서 해를 맞이한다. 허위적 허위적 걸어 산을 오르는 후기고령자 여성 미치의 모습은 우아하고 강단이 있다.


합법적 살인의 현장에서 살아 나오는 미치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면, 히로무의 행동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삶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일깨운다. 영화는 플랜 75 정책의 대상이 되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이 정책의 실행자로 내몰리는 청년세대의 심적 동요와 고뇌를 함께 그린다. 후생성 인구관리국에 근무하는 히로무는 이 정책을 실행하는 일선 상담 공무원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던 삼촌 유키오가 플랜 75를 신청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리지 않는다. 친족 상담은 껄끄러우니 담당자를 바꾸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실행 당일 삼촌을 차로 배웅할 때까지도 담담했던 히로무는 결국 차를 돌려 삼촌에게로 향한다.


이미 사망한 삼촌의 시신을 빼내오는 히로무. 삼촌은 이미 죽었으니 포기하고 다시 나올 수도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꺼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플랜 75 죽음 이후 시신 처리 과정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모신다고 선전했지만 히로무가 우연히 본 서류에는 시신이 폐기물로 처리되는 정황이 적혀 있었다. 쓰레기가 되는 시신이라는 사실은 만남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삼촌과 가까워져 가던 조카의 마음이 일렁이다 범람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이 되지 않았을까? 삼촌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어도 죽음 이후 시신은 거둬야겠다는 마음이 히로무를 움직이지 않았을까? 묵묵히 제도를 실행하던 말단 공무원의 뒤늦은 저항은 죽음 이후 존엄해야 할 권리를 일깨운다. 하찮은 죽음은 함부로 취급받은 삶의 결과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존엄히 여기지 않는 사회는 삶도 함부로 대한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고 죽음 이후에 존엄할 권리가 있다. 영화 <플랜 75>가 건네는 말이다.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