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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삶의 가능성(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12 17:20
조회
773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1.


 큰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아이가 어디서 작은 토끼를 데려왔다. 내내 토끼와 같이 놀던 아이는 학교에 가면서 애비에게 잘 돌보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는 감나무와 화초가 조금 있는 마당에 토끼를 풀어놓았다. 집안에 있었으니 답답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토끼를 찾았다. 그때야 나는 생각나서 찾아보았으나,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것이다. 순간 몇 년 전, 마당에서 병아리를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범인은 고양이였다. 아차! 하지만 차마 나는 아이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점점 토끼를 찾을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아이 눈에서 뚝뚝 눈물을 떨어졌다. 그때의 미안함이란…….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저렇게 아파할 줄 알면 사람 노릇은 하겠구나.”


출처 - 직접 촬영 (전주대, 우석대, 원광대 학생들이 함께 플래카드를 걸어두었다. 위는 한 역사동아리의 플래카드이다.)


 1.


 “8년이면 충분하다, 진실을 밝혀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모든 국민의 의무입니다.” 최근 학교 정문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길을 가던 사람이 말했다. “아직도 세월호 얘기야?” 순간 내 속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오갔다. 하나는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안다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반감. 다른 하나는 사건 이후 만 8년이 지났는데 사회의 상례(喪禮)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역사를 공부하는 나도 조선의 예학(禮學), 예송(禮訟)에 대해 허례허식이라고 단죄하는 관점을 먼저 배웠다. 귀찮고 쓸데없는 절차라고 말이다. 같이 살던 사람과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인간들이, 그 헤어지는 아픔을 연착륙시키는 장치가 상례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거기에 고인과 가까웠던 정도를 구분해서 부모는 3년, 8촌은 석달, 하는 식의 5복(五服)이 있었다. 아무렴 살았을 때 맺은 관계가 엄연한데 뭔가 마음이든 생활이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이런 절차를 허례라고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다. 우리 사회의 경박한 애도, 심지어는 애도에 대한 모독이 발견된다면 이런 교과서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경험,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입이라도 다물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경황없는 와중에 병원 장례식장에서 00상조회가 하라는 대로 어머님 상을 치렀다. 대도시에 살고 있던 우리는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친척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으니 상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삼년상의 절차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삼일장이나마 잘 치르는 게 다행이었다.


 개인의 경우든, 세월호 같은 사회의 경우든, 상례에 준하는 연착륙 과정이 있어야 한다. 왜?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자식이 죽자 슬픈 나머지 눈이 멀어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는 고사를 남겼던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조차도 자식을 잃은 뒤의 여생을 살아야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픔에서 빠져나와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나는 고인(故人)과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아내, 자식, 친구, 동료, 그리고 이 사회 사람들과도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과 다시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의 도움으로 사흘만에 가까스로 상례를 마치는 것은 바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에서는 3년씩 부모님 무덤을 지키는 여묘살이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삼우제, 상식, 졸곡을 챙기기에도 어림없다. 부모님도 그럴진대 하물며 친척, 친구, 스승과 제자, 동료의 관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로 생기는 정신질환이 있다면, 현대사회의 상례가 허겁지겁 치러지면서 너무도 많은 관계에서 영원한 이별이 어설펐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가정하고 있다.


 정문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며 다시 사회의 상례를 생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원인 규명이 늦을 수도 있고, 규명한다 해도 미흡할 수 있다. 그래서 상례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까이는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와 선생님들, 친구들부터,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시민들까지 어정쩡한 상례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 삶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이 지루할 수 있는 상례를 인간답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진상을 알고 어디까지 알지 못하는지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갖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위정자가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시민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과연 이게 정당에 따라, 지지 세력에 따라 다를 일인가.


 1.


 그러나 나는 어떤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절망을 느낀다. 더 나쁜 것은 그런 정치인들이 사회를 타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시민들끼리만이라도 타락을 늦추거나 막아서, 우리가 사람답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고 싶다.


 세월호뿐 아니라 산업재해 등 사람의 사상(死傷) 사건 끝에는 보상 문제가 나오고, 그 보상 과정을 두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짓들이 나오기도 한다. ‘자식 팔아 운운’하며 그 보상 논의를 모욕하거나, 자식 잃고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폭식하는 망동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멀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조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인간 집단들은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소나 양으로 자식이나 형제의 죽음을 대체하려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목숨은 목숨으로만 대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보상 또한 공통으로 나타난다. 왜 그럴까?


 이때의 보상은 “그 목숨과 죽음을 재화로 잴 수도 보상할 수도 없지만, 이 재물을 받아주셔서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라는 의미이다. 즉 보상은 목숨값이 아니라, 반대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지만 참회하니 용서해달라는 간청의 뜻이다. 기념비를 세우든, 글을 지어 추모하든, 재물로 보상하든, 거기에는 측정할 수 없는 인간 자체의 가치에 대한 경외와, 상심하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 가족들의 상심이 너무 커서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면 친지들이 나서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보상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런 마음들이 오고가면서 사회는 살만한 곳이 되었던 것이다.


 인류는 참으로 오래 전부터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조심스럽고 품격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노자(老子)는 3천 년 전에 이미 승전(勝戰) 행사는 상례로 한다고 천명했다. 전쟁조차 이러할진대 안전사고의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는 ‘자식팔이’, ‘먹고 떨어져라’ 같은 비루하기 그지없는 이 사회 일각의 타락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인류의 경험을 보여준다. 타락이 만연하면 그곳이 곧 지옥이다. 다행인 것은 많은 역사의 경험은 우리가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