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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대본, 숨겨진 대본(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9-01 17:27
조회
675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몇 년 전 학생들과 대만 답사를 갔다. 고궁박물관도 가고 국립정치대에서 강의도 들었는데, 한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너무 조용하고 간단하게 묻는 말에도 대답을 못 해서 어디가 아픈지 의심될 정도로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답사에서 그가 벗들 사이에서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참으로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보았던 느낌과 너무 달랐다. 그 학생이 늦게 일어난 친구들의 아침밥을 자상하게 챙겨주는 모습도 보았다.


 역시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또는 나와 같이 있는 상황은 그의 자상한 행동이나 따뜻한 눈길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하지 못했던 셈이다. 내 수업이 그의 활기를 드러내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 사태를 역사학도답게 접근해보자.


1.
 어떤 관계냐에 따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은 다르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는 건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건 사회의 산물이고 역사적이라는 뜻이다. 흔히 누구더러 왜 앞뒤가 다르냐는 핀잔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앞뒤가 다른 것이 꼭 인간성 문제, 도덕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교수, 군대 상관이나 상급자에게 행동을 조심하려고 애를 썼고, 말도 조절하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네가? 행여!’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누구나 행동 특히 말씨에는 관계의 압박이 배게 마련이다. 쭈삣거림에서 존경심까지 질적 편차는 크겠지만, 압박과 조절은 상존한다. “연기(演技)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자발적인 예의와 강요된 연기를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이다.


학생들이 선물로 준 롤페이퍼. 이 말을 다 믿어도 될까^^
사진 출처 - 필자


 어떤 학자는 앞에서 드러나게 하는 행동을 공개된 대본(臺本),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숨겨진 대본이라고 부른다. 회식자리에서 사장에게 술 따르며 사원이 한 말과, 자기들끼리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 사이의 괴리, 그것이다. 통상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권력 차이가 크면 클수록, 또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수록 피해자 집단의 공개 대본은 정형화되고 의례화된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권력이 위협적일수록 가면은 두꺼워지고 연기는 빛을 발한다.


1.
 ①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십수 년 동안에 가뭄과 장마의 피해와 바람과 벼락, 그리고 서리와 우박의 재앙과 별들의 이변과 기후의 이상과 요사스러운 인물들이 해마다 겹쳐서 나타나 천이나 백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그러한 이변을 당할 때마다 성상은 놀라셔서 죄책하고 직언을 구하셨으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시는 말씀을 한해에도 여러 차례 내리셨으니, 이미 두려워하시는 뜻과 애통해하시는 말씀이 지극하였습니다.


 ② 옛말에 ‘사람은 속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만, 신은 ‘하늘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속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근래 애절한 하교가 내렸을 적에 안팎에서 이를 예사롭게 보고 반응이 없는 것은 전하에게 애당초 성심(誠心)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말과 글로 하늘에 대응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근본의 절실한 처지에 깊이 유념하십시오.(숙종실록 12년 9월 13일)


 ①은 숙종 초반에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무척 많았는데, 숙종이 늘 자책하면서 반성하는 태도가 지극하였다고 짐짓 치켜 주는 말을 하였다. 반면 ②는 숙종의 하교, 즉 신하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성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이 감동하지 않았으니 사람이 감동하겠냐고 거의 면박을 주고 있다.


 만일 ①과 ②가 별개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나는 쉽게 ①은 공개 대본, ②는 숨겨진 대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①과 ②는 같은 사람이 같은 상소에서 한 말이었다. 요즘 감사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사헌부 장관을 맡고 있던 김창협(金昌協)의 상소였다. ①은 ②를 위해 한 말이다. 그는 아예 숨겨진 대본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사이다 발언은 듣는 사람들에게 시원하지만, 공포를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김창엽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공포를 넘어서며 의연함을 보여준다.


1.
 왕정이란, 이렇게 한 나라의 조정을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제도이다. 한편 권력의 세습이란 점에서 가족이 왕정이고, 요즘 한국엔 재벌이 왕정을 구현하고 있다. 왕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봐야(의식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 절대성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부모에 비견된다. 부모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내 부모는 평생 죽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뒤로 없던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국왕이 백성의 어버이로 비유되는 건 웃을 일이 아니다.


 또한 국왕은 권력과 기득권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다. 그가 10년을 재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장년의 국왕은 거의 절대자가 된다. 2, 30년이 지나면 새로 들어온 신하는 다 아들 같다. 숙종이나 영조처럼 4, 50년을 재위하면 손자뻘이 된다. 그래서 임금이자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란 말이 생긴다. 사상과 정치권력을 한꺼번에 잡는 것. 내가 ‘학자 군주 정조’를 위험하게 보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며 가르쳤다. 그렇지 않아도 군주 앞에서 떨고 있는 유생들에게 지적 우위까지 과시하면서.


1.
 김창협이 상소를 올렸던 숙종 12년(1686) 9월, 숙종은 연인 장씨(후일의 장희빈)를 위해 몰래 별당을 지어주었다. 사헌부에서 중지할 것을 청했지만, 숙종은 잘못 전해 들은 것이라고 둘러대며 공사를 중지하지 않았다. 이어 12월에는 장씨를 종4품 숙원(淑媛)으로 삼았다. 궁녀로 들어와 왕자나 공주를 낳지도 않은 사람이 숙원이 되는 것은 특별한 조치였다. 또 며칠 뒤 장씨의 궁방인 숙원방(淑媛房)에 노비 100명을 내려주었다. 위법이었다.


 숙종의 행동은 스스로 했던 말과 달랐다. 이럴 수 있는 게 왕정이다. 연인에 대한 숙종의 과도한 집착을 둘러싸고 신하들과 숙종 사이에 긴장이 흐르기 시작한 초엽, 대사헌에서 성균관 대사성으로 옮겼던 김창협이 말했다.


 신은 근래 실제로 별당을 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만 하시고는 안으로 급하지 않은 공사를 일으키고 밖으로 신하의 말을 막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또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숙종실록 12년 12월 10일)


 그의 발언은 국왕 숙종을 흔들었을 것이다. 숙종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억측이 지나치다’고만 답변했다. 실록에서 김창협의 말을 읽었을 때, 이 ‘숨겨진 대본’이 햇볕으로 나오는 통쾌한 순간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 말을 위언(危言)이라고 한다. 위험한 말이라는 뜻인데, 어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비판을 말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나라에 도리나 상식이 통하면 말과 행실을 높게 하고, 나라에 도리가 도리나 상식이 없을 때에는 행실은 높게 하되 말은 겸손하게 하여야 한다[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라고 한 데서 나왔다.


 자존심은 강하나 성숙하지 못하여 꽁했던 숙종의 화는 3년 뒤에 터졌다. 장희빈의 아들을 책봉하면서 인현왕후를 폐위한 뒤, 김수항 등을 유배 보내 사사하고 숱한 인재를 귀양 보내거나 고문해서 죽였던 기사사화(1689)였다.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영돈녕부사 김수항이 사약을 받고 죽은 것을 두고 혹자는 그의 아들 김창협의 직언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창협이 상소를 올려 후궁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매우 절실하였다. 이 때문에 임금의 마음에 불평이 생겨 그의 아비에게 화풀이하게 된 것이라고, 숨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
 숨어서 말하는 말, ’숨겨진 대본‘이다. 숨겨진 대본이 없을 수 없으나 가능한 적은 게 열린사회, 편안한 관계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대단한 권력을 가지지 않았으니 불편할 일은 적다. 하지만 나이도 그렇고 가르치는 처지에 있으면서 내가 조장한 숨겨진 대본은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운이 좋아 당신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받아주시던 어른들과 선생님들 밑에서 자라고 배웠거늘 말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