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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당진시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7-20 17:46
조회
361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구 17만 명이 살고 있는 충남 당진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선로를 타고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로 보내진다. 이를 위한 고압송전탑이 526기가 설치돼 있고, 15만4000V(154kV), 34만5000(345kV), 76만5000(765kV) 등 고압의 전기를 전선을 통해 흘려보내는 송전선로의 길이가 무려 199km에 달한다.


 세 가지 종류의 고압 송전선로가 모두 지나는 석문면 교로리에서는 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최근 30년 동안 암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해왔다. 대규모 변전소가 있어 송전선로가 거미줄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정미면 사관리에서도 주민들의 암 발생이 증가했고, 가축이 기형인 새끼를 낳거나 유산하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밝혀내지 않았다. 발전소와 한전 모두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압송전선로 아래에서 형광등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불이 켜지는 현상이 여러 차례 뉴스를 통해 보도됐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전자파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주민들은 전자레인지 속에 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2013년 무렵 밀양에서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당시에 당진에서도 주민들의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있었고, 그 지난한 싸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석문면 교로리의 고압 송전선로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7월 12일, 신평면을 지나는 송전선로 구간의 마지막 송전탑이 건설되는 현장에서 공사 강행을 반대하던 우강면 주민 6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신평면 마지막 구간인 신당리에 송전탑이 건설되면 곧이어 우강지역으로 송전선로가 이어져 내려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지중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강지역 주민들이 소들섬에 철탑을 꽂는 가공송전선로(철탑을 이용해 공중으로 연결한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이유는 밀양이나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자파로 인한 주민 건강에 대한 염려, 지가 하락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도 소들섬을 지키기 위해서다.


 소들섬은 삽교천 하구에 위치한 5만 평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유속의 흐름과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삽교천 하구에 자연스럽게 모래가 쌓이면서 생긴 하중도다.


 오랜 세월 동안 이름도 없어 ‘무명섬’으로 불리다가 송전철탑이 섬에 꽂힐 위기에 놓이면서 주민들은 지난 2016년에 토론회를 열고 ‘소들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강지역의 너른 평야를 예로부터 조상들은 소들강문 또는 소들평야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들섬은 지역주민들의 오랜 삶터였다. 삽교호방조제가 막히기 전만 해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었다. 썰물 때는 소들섬까지 이어지는 갯벌이 드러나 이곳에서 각종 조개와 민물장어 등이 잡혔다.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에는 최근 몇 년 전까지 농민들이 소들섬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제 호수가 된 이곳 주변에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온 낚시꾼과 캠핑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을이면 우거진 갈대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겨울이면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추는 곳이다.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은 이곳에 철탑을 꽂겠다는 한전은 두어 달 뒤 수확을 앞둔 벼를 굴삭기로 깔아뭉개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맨몸으로 굴삭기를 막아섰지만, 경찰에서는 업무방해라며 주민들을 끌어내 연행했다. 주민들은 물이 첨벙대는 논에 빠져 홀딱 젖은 채로 사지가 붙들린 채 질질 끌려 나왔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 농민은 윗옷이 가슴까지 올라가 신체 일부가 노출되기도 했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던 평범한 농민들이 순식간에 악성 시위꾼, 범법자가 되어 경찰에 끌려갔다.


 그리고 해당 뉴스를 전한 어느 기사에 “그냥 돈 더 달라고 하는 것”,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사람 몇 명 안 사는 동네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지중화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댓글을 단 사람들은 전기가 어디에서 생산돼서, 어디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까지 와서, 자신이 편리하게 전기를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감수돼야 하는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당진은 소비 대비 전기 생산량이 500% 이상이다. 당진에서 생산해 당진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불과 1/5도 되지 않는다. 당진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 중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서 도시민들의 삶을 밝히고 있다.


 작은 시골 지역엔 몇 사람 살지 않으니까 해당 주민들은 국가를 위해, 또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절대다수의 소비자인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 주민들을 위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는 당진시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적힌 어느 현수막의 문구가 지역주민들의 피눈물 맺힌 절규라는 것을 도시민들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