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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한국 이름을 얻은 무국적자 (허윤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1:41
조회
354
2005년 성탄절 즈음에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어린 생명의 보호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만한 어린 생명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장치에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이 땅에 일하러 온 부모는 우즈베키스탄인 아버지와 엄마는 러시아인이었습니다. 힘겨운 삶에 낙태를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시기가 지나 출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2개월 이상 먼저 세상에 나오다보니 900g에 36cm도 못 미치는 미숙아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 300g이상의 몸무게가 더 나갈 때 까지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살아야 한답니다. 병원비도 2000만원이 넘어가고 결국 엄마 아빠도 떠나버렸습니다. 아이를 불쌍히 여긴 신생아실 수간호사가 이주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도 돌보고 있는 ‘베들레헴 어린이 집’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투를 벌인 어린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도 합니다.  조막만한 것이 또랑또랑한 큰 눈, 참 귀엽습니다. 수녀님이 자주 방문해서인지 수녀님이 움직이는 곳으로 눈을 옮겨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아기가 뭔가 아는 것 같아요.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누군지 아나 봐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수녀님이 안타까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 죄 없는 어린 생명을 어찌해야 할지……. 삶의 모진 가난이 인정머리 없는 부모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에 지친 그 부부를 어찌 손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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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향이와의 첫 만남



우리 주변에는 사고로 인해, 또는 부모의 무능력으로 인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이웃과 사회가 그 부모의 역할을 해 준다면 죄 없는 소중한 생명이 밝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그 어린 생명은 퇴원을 했고, 지금 ‘베들레헴 어린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진향(眞香)이라는 한국 이름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26일에 돌잔치를 했습니다. 이제 진향이는 7.9kg으로 1년 동안 7kg이 늘었습니다. 돌상을 차려서 돌잡이를 했더니 붓을 잡고 놓지 않더니 나중에는 돈을 잡았습니다. 앞으로 좋은 학자가 되어 세상에 큰 공헌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11월13일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베일리 발달검사를 했는데, 인지능력과 운동능력은 뛰어난 편이고 언어와 사회정서, 적응행동에서 모두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진향이를 돌보아 주신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직 갑상선약을 복용해야 하고 난청문제도 안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밝고 예쁘게 웃는 공주님입니다. 아직 걷지는 못하지만 벽을 잡고 일어서서 한 발짝을 떼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힘찬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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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나 수녀님과 함께



2007년도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앞 다투어 내놓는 전망 덕분에 국민들은 너나없이 심리적 어려움을 지니고 한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돌봐 줄 손길 하나 없는 주변의 어린 생명들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말로만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어린 생명들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움츠린 마음에 우리 본연의 선한 마음의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야 하겠습니다. 돌아보면 늘 다사다난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일 한 두 가지는 있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참 대견하게 여겨지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내 행위를 생각하면 굳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착한 일을 하면 행복해지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 행복을 느끼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